제 1 장 천하통합 1. 동아시아의 신정세 1543 種子島(타네가시마) 표류중인 중국선박에서 포르투칼인이 鳥銃 전래 15세기 초 琉球는 쇼오씨(尙氏)가 明에 租貢함으로써 琉球國中山王으로 책봉됨. 2년에 한번씩 對明租貢. 琉球는 동남아시아, 조선, 일본의 중개교역의 거점이 됨. 대륙의 生絲와 일본산 銀의 교환. 명의 海禁政策의 해제(19657)로 琉球王國의 교역에 타격을 입음, 1494년의 로마교황의 지시에 따라 포르투칼, 스페인 양국은 지구상의 미발견 영역을 양분한다는 조약을 맺고 포르투칼은 동쪽에서 스페인은 서쪽에서 각각 아시아에 도달함. 2. 쑈꾸호오 정권 1559~1562 : 조선에서는 황해도 지방에서 임걱정의 난이 일어났다. 1573 織田信長(오다노부나가)의 구속을 꺼리던 요시아끼와 대립하여 足利義昭(아시까가 요 시아끼)추방하고 室町幕府 멸망시켰다. 이 당시 주종관계에 포섭되기를 거부한 백성들의 잇기결합은 오히려 비군사적인 公家와 사사의 지배를 바라고 있어 무사정권에 대한 반발이 심했다. 1575~1580 大阪의 石山本願寺를 중심으로 하는 잇꼬오잇끼(一向一癸)를 진압. 일본 역사상 무사가 백성집단과 싸워 수치심도 체면도 없이 대량 살육을 자행함. 현재의 오사카성 부근 쬬(町) : 중세기 이후부터 근세에 걸쳐 도시를 구성하는 기초단위. 도로를 중심으로 양측을 쬬오(町)라 하며 이러한 쬬오가 모여서 마찌(町)를 이룬다. 1576 오다노부나가는 오오미국(近江國) 아즈찌(安土)에 城과 성아래 시가지인 쬬오까마찌 (城下町)를 건설. 1582 本能寺의 變(혼노오지의변) : 明智光秀(아께찌 미쓰히데)가 쿄오토의 혼노지에 숙박중 인 노부나가를 공격하여 오다 노부나가를 사망하게 만든 사건 明智光秀(아께찌 미쓰히데)는 토요토미 히데요시와의 야마자키(山崎)전투에서 패배함. 1583 石山本願寺의 자리에 大阪城 건설에 착수 1584 노부나가의 아들 노부가쯔와 이에야쓰의 연합군과 전투 후에 화친함. 1585 지금의 오이따지방의 성주 오오도모소린(大友宗麟)이 포르투칼 신부 쟈비엘의 영향을 받아 다이묘 중에서 최초로 세례를 받고 서양문물을 도입하고 총을 도입하여 무장을 강 화하여 그리스도교국의 이상향을 지향하여 서양의 십자군과 같은 전쟁을 일으켰으나 사 쓰마군에 패해 우쓰기성까지 몰렸으나 히데요시의 도움을 받아 나라를 유지함. 후에 히 데요시에 의해 그리스도교의 박해로 결국 꿈을 이루지 못하였다. 1586 고요세이(後陽成) 천황으로부터 타이죠대신에 임명되고 성도 豊臣으로 받아 羽자秀吉 (하시바 히데요시)에서 豊臣秀吉(토요또미 히데요시)로 성을 바꿈. 戰國시대의 十字軍 (NHK 역사 사스펜스) 1587년을 전후하여 豊後(붕고)지방(大分,오이따지방)의 통치자 오오도모소린(大友宗麟)는 그리스도교에 귀의하여 그리스도국을 건설하고자 하여 시마쯔군(島津軍, 싸스마지방, 나가사끼 지방)과 교전을 하였다. 전쟁에 패하여 우스끼죠(臼杵城)까지 쫓겼으나 히데요시의 도움으로 전쟁에 이겼으나 6년후 히데요시에 의해 그리스도교는 박해를 받았다.
조선에서는 율곡 이이(1536~84)가 10만 양병설을 주장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1590 풍신수길에 의한 천하 통일. 오다와라(小田原)의 호오죠오우지마사(北條氏政)를 멸망시키고 아이즈에 입성하여 천하 통합을 달성. 德川家康을 關東으로 이주시켰다. 고다이교(五奉行), 고다이로(五大老)를 뽑아서 정무를 위탁 一地一作制 확립, 농민으로부터 무기를 환수하여 兵農분리정책의 확립. 무사, 백성, 町人의 신분을 확정하고 대도(帶刀)를 지배층의 사회적 신분표시로 삼음. 그리스도교를 금지. 중세국가를 해체하고 근세 武家를 수립. 1590 조선에서 일본에 파견된 통신사의 정사는 황윤길(서인, 일본의 침략 위험성을 주장), 부사는 김성일(동인, 유성룡이 천거, 일본의 침략성을 부인)이었으나 이들의 보고는 정반대의 보고로써 임진왜란의 대비를 못하였다. 1592 조선 침략. 文祿(분로꾸)의 침략. 임진왜란. 왜병 16만. 명의 개입으로 1593 명으로 부터 일본에 강화 사절. 일본측의 장군 : 加藤淸正(히데요시의 동료, 축성의 대가), 小西行長, 黑田長政 1597 조선침략. 慶長(게이쵸)의 침략. 정유재란. 왜병 14만. 강화조약시의 요구가 무시됨에 따라 재침략 도요토미 히데요시군에 납치되었던 이삼평 등 도공들에 의해 조선의 백자가 일본으로 건너 가 오늘날의 伊万里燒의 원형이 되었다. 1598 히데요시 사망. 일본군 철군 임진왜란 당시의 삼대승리 : 한산대첩(이순신), 제1차 진주성 전투(김시민), 행주산성 전투(권율) 서생포성 유적(진하성) : 가토오기요마사(加藤淸正)가 축성한 것. 일본군의 최대거점 기장성(왜성) : 기장군 죽성리에 있는 것으로 구로다나가마사(黑田長政)가 축성하였다. 본성, 자성, 외곽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왜성 가운데 최대규모이다. 조선침략의 결과 1. 조선사람들을 전화에 휘말리게 하여 많은 피해를 주었다 2. 철수 시에 佛像, 금속활자 등의 문화재를 약탈했다. 3. 製陶, 인쇄기술자, 주자학자 등 많은 민중을 포로로하여 일본에 강제 연행했다. 4. 연행된 조선인 도공에 의해 아리따야끼, 가라쓰야끼(唐津燒),사쓰마야끼, 이마리야끼 등의 조선계 도자기가 시작되었다. 5. 연행된 주자학자가 일본의 유교학자와 교류하여 에도시대의 주자학에 큰 영향을 미쳤다. 6. 막대한 전비와 병력을 소모하여 토요토미정권의 지배력이 급속히 약화되었다.
江戶幕府의 開設 에도는 가마쿠라시대에 江戶氏가 지배하다가 무로마찌시대에 太田盜灌(오오다도우간)이 에도성을 축성하였다. 히데요시의 지시에 의해 1590년 에도로 옮겨온 도쿠가와는 이곳에 축성하고 도로를 만들고 오다하라에서 상인을 불러 살게하였다, 에도는 바쿠후의 시작과 함께 정치도시로 되었다. 이에야스는 三河(미카와)통일->5개국 영유->관동이전 250만석 영유와 힘을 신장했다 세기가하라(關个原)전투에서 승리하여 에도에 바쿠후를 열었다. 이때 전국 다이묘는 180명 이었다. 1600 세끼가하라(岐阜縣) 전투 石田三成(이시다 미쯔나리, 히데요시의 부하)가 군사를 일으켜 大名들은 東西로 나눠져 美濃(미노)의 세끼가하라의 전투에서 동군(토꾸카와 이에야쓰군)이 승리하여 패권 확정. 양군 모두 명목을 천황에 두지 않은 전쟁 1603 이에야쓰는 征夷大將軍(세이타이쇼군)에 올라 江戶(에도)에 幕府를 연다. 이때의 전국 다이묘는 180명 이었다. 이에야쓰 다음에는 히데요시의 아들 히데요리를 쇼군으로하는 토요토미의 기대를 저버 리고 3남인 히데타다에게 쇼군직을 양위하고 자신은 오고쇼(大御所 : 은거한 장군))로 서 권력을 장악하였음. 결국 万廣寺鍾銘사건( 國家安康 君臣豐樂)을 빌미로 오사카의 토요토미 히데요리와 전쟁하여 1615. 5월에 토요토미씨를 멸망하게 함. 이에야쓰는 1616년에 사망.
막부체제의 구조 무력의 기초는 장군직속의 가신단 旗本(하시모토 : 장군을 배알 할 수 있다)과 御家人(고게닌 : 장군을 배알 할 수 없다)으로 하고 정치는 중앙은 장군을 정점으로 요직은 譜代大名(후다이다이묘)의 중에서 지명되었고 지방은 藩의 大名가 통치하고 要地는 幕領으로하여 幕府가 통치하였다. 막부의 구조 將軍->大老(다이로)->老中(로우쥬우)->若年寄(오까도시요리)->寺社奉行->町奉行 ->勘定奉行 大名(다이묘)는 장군에게서 1만석 이상의 영지를 받은 자를 말한다. 大名의 종류 親藩(신반)大名 : 도쿠가와씨 일족의 다이묘. 그 중에서 오와리(尾張), 미토(水戶), 키이(紀 伊 : 지금의 오카야마 일대)는 고산게(御三家)로 중요시 됨. 이 다이묘들의 紋章을 아오이라고 한다. 譜代(후다이)大名 : 미가와시대 이래의 도쿠가와씨의 가신이었던 다이묘. 소수이었지만 막 부의 요직을 맡았다. 外樣(도자마)大名 : 세키가하라 전투 이후에 도쿠가와씨를 따른 다이묘. 큰 번이 많았지만 막부의 요직에는 기용되지 않았다. 大名의 통제 大名의 통제 大名의 종류-----토쿠가와씨와의 관계의 강약에 따라 신반(親藩)大名, 후다이(譜代)大名, 도사마(外樣)大名 배치 : 신반·후다이->요지, 도자마->원격지 토목공사의 시행명령 : 다이묘의 재정을 어렵게 하기 위한 것임. 武家諸法度 : 參勤交代의 제도화, 위반한 大名에게 改易(가이사이)·減封·轉封 등의 제제
한국사 1607~1811 조선통신사 12차례 일본 방문 1613 : 동양최고의 임상의학서인 허 준의 동의보감(1597~1613, 선조/광해군의 시대))의 인 쇄가 완료 임진왜란 때에는 세자인 광해군의 능력이 뛰어나 선조의 견제를 받았다. 1623. 3.12 인조반정 인목대비->능양군(선조의 손자)을 왕으로 지목->인조 崇明排金정책 1624 인조반정의 반정포상에 불만으로 이괄이 난을 일으킴. 1627 정묘호란(후금의 침공) 1636 여진족인 누르하치 청나라 건국(후금->청) 1636. 12 병자호란. 처태조의 조선 침공 1637.1.30 인조. 이마를 땅에 부딪치며 삼전도에서 항복. 이후 1895 청일전쟁 후 시모노세 키 조약에서 청의 조선 포기까지 청의 간섭을 받았다. 1644 明의 멸망. 수도를 뻬이징으로 함- 주변 민족에 의해 中華정복국가가 성립.
노부나가, 히데요시, 이에야스의 비교 : 세명 모두 지금의 나고야지방의 사람이다. 織田信長(오다 노부나가) 오와리(尾張, 淸洲城)를 중심으로 한 지금의 아이치켄 愛知縣 서부 : 지금도 그대로 이름이 남아 있다)지방의 무사였으나 장군 요시노리의 사후 후계자의 문제로 일어난 應仁의 난(오 닌, 1467, 應仁元年에서 11년간의 전란)이후의 전국시대(1457~1573)에 하극상의 와중에 서 센코쿠 다이묘가 된 오다노부히데(織田信秀) 집안에서 태어남. 1560년 오케하자마桶狹間 전투에서 센코쿠 다이묘인 이마카와 요시모토(今川義元)를 격퇴 하여 공을 세움. 1573년 아시카가 요시아키(足利義昭 : 이 후 興福寺 一乘院의 승려가 되었다)를 추방하고 무로마치 막부를 멸망하게 함. 1575년 長蓧(나가시노)전투에서 철포(鐵砲, 텟보우)를 유효하게 사용한 전법에 의해 甲斐 (카이, 山梨縣)의 武田(다케다)씨를 격퇴함. 1576년 安土城 축성. 총포를 도입. 그리스도교 보호 지금의 오사카성부근의 혼간지(石山本願寺)를 중심으로 한 승려들의 반발을 무지막 지하게 굴복시키고 절을 불태워 버렸다. 훗날 히데요시는 이 자리에 오사카성을 축 성했다. 1582년 아케치 미쓰히데(明智光秀에 의한 혼노사(本能寺)의 정변으로 사망. 두견새가 울지 않으면 죽여 버려라.
豊臣秀吉(토요토미 히데요시, 1536~1598) 오와리지방의 하급무사의 아들로 태어남. 생가는 나고야 中村區의 조그만 공원으로 되어 있음. 오다 노부나가의 부하. 본명은 하시바(羽紫)히데요시 이다. 1582 야마자키(山崎)전투에서 아케치 미쓰히데를 격퇴시킴. 1583 石山本願寺(오다 노부나가가 정치세력이 된 중들의 반발을 무지막지하게 누르고 없 애버린 절)의 터에 오사카성을 축성. 1584 노부나가의 아들 織田信雄(노부가쯔)와 도쿠가와이에야스의 연합군과의 전투 후에 화해했다. 1585 關白으로 됨 1590년에 천하를 통일했다. 이에야스를 關東지방으로 옮기게 했다 1592, 1597 조선침략 1598 사망. 사후에 豊國大明神(호우코쿠)이라는 신이 되었다. 두견새가 울지 않으면 울게 만들어라.
德川家康(토꾸카와 이에야쓰, 1542~1616)) 오카자키성(岡崎城)을 중심으로 하는 미카와(三河, 愛知縣)의 영주 마쓰다이라 히로다다(松 平廣忠)의 아들로 태어남. 유년기에 戰國大名인 今川(이마까와)·織田(오다) 양씨의 인질이었 으나 信長에 의해 今川義元(이마까와 요시모또)를 오게하자마(桶狹間)전투에서 격파. 三河 國(미까와국)을 통일. 노부나가와 동맹. 秀吉정권하에서 五大老(고따이로)의 벼슬. 1600 세기가하라전투에서 승리하여 江戶幕府를 개설함. 1603 征夷大將軍이 되어 江戶幕府(에도 바쿠후)를 개시함. 1615 오사카성의 豊臣씨를 멸망시킴 1616 사망. 사후 東照大權現(토우쇼우다이콘겐)이라는 신이 되었다. 토치기켄의 닛코우시의 日光東照宮에 모셔져 있음. 陽明門의 호화함이 유명함. 두견새가 울지 않으면 울 때까지 기다려라.
다음은 제 2 장 막번체제, 제 3 장 근세사회의 성숙, 제 4 장 근세사회의 전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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