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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악양루(岳陽樓,2009.11.21.토)

대한유성 2010. 11. 4. 22:26

 경남 함안군 법수면과 대산면을 연결하는 지방도를 따라 법수에서 대산으로 가다보면 악양들판이 끝나는 지점의 남강과 함안천이 만나는 함안군 법수면 악양마을에는 강 건너 절벽에 풍류가 흐르는 운치있는 누각 하나가 걸려 있다.

서쪽에서 흘러 내려온 남강물이 앞을 가로막는 산을비켜 북쪽으로 살짝 물굽이를 틀고,남쪽에서 흘러든 함안천이 이 남강물과 합수하는 "T"자 모양의 절벽에 물길을 굽어보듯 우뚝 서 있는 누각이 바로 악양루(岳陽樓)다.

 

악양루는 안에서 밖을 보거나,밖에서 안을 보아도 모두 빼어나다.

강 건너편에서 올려다 보면 절벽에 솟아 있는 누각이 그림같고, 누각에 올라보면 남강의 물굽이 그리고 법수면의 제방과 너른 들판이 한눈에 들어온다.

 

악양루는 "낙동강 강바람이 치마폭을 적시면.."으로 시작되는 노래 "처녀 뱃사공"의 노랫말이 만들어진 곳이기도 하다.

1953년 9월 유랑극단 단장인 고 윤부길(가수윤항기 윤복희의 부친) 씨가 피란을 끝내고 서울로 가면서 함안군 가야장에서 공연을 마치고 이곳 악양에 머물렀는데,이곳에서  군에 입대한 뒤 소식이 끊긴 오빠(박기준,6.25전쟁에서 전사) 를 대신해 나룻배로 길손들을 건네주던 여동생의 사연을 듣고는 "처녀 뱃사공"의 노랫말을 지었다고 전해진다.

 

악양루에서 내려다 보면 남강변을 따라 악양제방이 끝없이 이어져 있는데, 가을철이 되면 그 제방 양옆으로는  만개한 코스모스가 끝없는 절경을 연출한다고 한다.

 

본래 홍수가 잦았던 함안에서는 오랜기간 동안 제방을 쌓아왔다.

믿기지 않지만,함안군내의 제방을 다 잇는다면 무려 383km에 달한단다.

 

대산면에 조성된 코스모스 꽃길은 7~8km에 달한다고 하니, 아마도 여기가 우리나라에서 제일 긴 코스모스 꽃길이 아닌가한다. 

 

누각에 오르면,

서쪽에서 정면으로  흘러드는 남강물이 악양들판의 젖줄임을 알 수 있고

우측으로는 자굴산 한우산이

좌측으론 방어산 여항산 봉화산이 그림같이 펼쳐져 있다.

 

 ▲법수에서 대산으로 가다보면 악양루 들어가는 입구 우측에 세워져 있는 "처녀 뱃사공"노래비.

▲▼악양 제방에서 바라본 악양루의 모습.

여기서는 절벽의 바로 앞쪽으로 흘러드는 함안천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악양 제방에서 바라본 남쪽의 산들.

좌로부터 무학산 광려산 봉화산.

▲▼남강물이 함안천과 합수하는 지점이다.

좌측에서 흘러 내려오는 남강물이 우측의 바위가 있는 곳에서 함안천과 합수한다.

 

 

 ▲중간의 하얀색 집이 메기탕 참게탕 등을 파는 음식점 악양루고 그 좌측의 암벽 중턱에 걸려있는 정자가 악양루다.

악양교에서 바라본 풍경이다.

▲남강을 가로질러 함안 법수에서 의령 정곡으로 건너가는 백곡교 뒤로 자굴산이 보인다.

우측 하단에는 경비행기 활주로가 있는 실버윙 항공이다.

이곳 남강변 고수부지에는 악양제방 안쪽으로 광활한 비옥토가 펼쳐져 있다.

 ▲▼악양 제방위에는 멋스런 풍차도 있다.

 

▲남쪽의 여항산 계곡에서 발원한 함안천이 이곳 악양루 앞에서 남강물과 합류한다.

전방의 다리가 법수와 대산을 잇는 악양교다.

저 멀리 우측으로 여항산이 희미하게 보이고, 그 좌측으로 봉화산 정상도 보인다.

▲▼단애의 중턱에 외로이 앉아 서쪽으로 악양 들판을 굽어보는 약양루.

경상남도 문화재 자료 제 190호다.

악양마을 북쪽에 있는 정자로 조선시대 1857년에 세워졌다고 한다.

아래로 남강이 흐르고 앞으로 악양들판의 넓은 들이 한눈에 들어오는 전망이 뛰어난 곳에 위치하고 있다.

한국 전쟁후에 복원하였고 1963년에 고쳐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규모로 옆에서  볼 때 八자 모양의 팔작지붕을 올렸다.

이곳의 풍광이 중국의 명승지인 악양에 비길만하다 하여 악양루라 지었다고 전한다.

옛날에는 의두헌(倚斗軒)이라는 현판이 있었다고 전하여지나  악양루(岳陽樓)라 쓰인 지금의 현판은 청남 오제봉(吳濟峯)의 글씨이다.

 

☞청남 선생은 1908년 경북 김천시에서 태어났다.

젊은 시절 출가해 해인사 강원에서 강사를 지냈을 정도로 불법에도 밝았고, 초창기 국전(國展) 서예부 심사위원장을 지내는 등 최고의 서예가로 작품활동을 했던 청남 선생은 무엇보다 부산을 비롯한 영남지역에 현대 서예의 씨앗을 처음 뿌린 이로 기억된다.

그는 1955년 부산에 정착한 이후 동명서예학원을 차리고 후진을 양성하는 한편 서예 보급을 위해 대단히 많은 작품을 남겼다.

이 때문에 오늘날 부산 등지에서 활동하는 서예인들 중 청남 선생의 음덕을 입었음을 부정하는 이는 거의 없다.

 

 

 

▲악양루에서 내려다 본 남강의 모습이다.

우측에 자굴산의 모습이 희미하게 보인다.

▲악양루에서 바라본 함안천의 모습이다.

함안천의 발원지인 여항산과 그 좌측에 봉화산이 보인다.

 ▲▼악양루 기둥사이로 일몰시간이 가까워 오자, 주위가  서서히 붉게 물들기 시작한다.

 

 

 ▲▼해는 서쪽으로 기울어 지고 강물은 서서히 빛을 발하기 시작한다.

 

 

 

 ▲악양루 지붕밑에는 수많은 시인 묵객들이 저마다의 소영(嘯詠)을 자랑하며 걸어둔 작품들이 수두룩하다.

 ▲석양에 물들어 가는 악양루.

 

 

 

 

 

 ▲▼악양루의 일몰.

 

 

 

 

 

 

 

 

 

 

 

 

 

 

 ▲악양루로 들어가는 석문.

 

 

 

출처 : 진공묘유
글쓴이 : 진공묘유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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