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등사 삼랑성(三郞城)
전등사로 들어가는 관문 같은 산성이 하나 있으니 바로 삼랑성(三郞城)인데
성을 축조한 연대는 확실치 않으나 단군이 세 아들에게 성을 쌓게 하고는
이름을 삼랑성이라 명했다는 기록이 고려사에 보인다고 하는데,
처음에는 토성이었으나 삼국시대에 이르러 토성 위에 막돌을 맞추어가며 쌓아올려
튼튼한 석성으로 축조되었습니다.
꽃무릇(석산)
석산(石蒜)은 수선화과에 딸린 여러해살이 풀로서 일본 원산이며 학명은 Lycoris radiata입니다.
꽃무릇이라고도 부르며 산기슭이나 습한 땅에서 무리지어 자라며 절 근처에서 흔히 심는다는 꽃으로
불행하게도 사찰에서 이 꽃을 본 적이 없고 보면 고창 선운사의 꽃무릇 같은 명성만 듣게 되는데
오후 햇살이 길게 늘어진 해그름속에 피어난 강화 전등사 입구에 핀 꽃무릇을 만나니 만갑습니다.
죽림다원(竹林茶院)
전등사 입구의 전통찻집 죽림다원은 사실, 대나무 숲속에 위치한 것은 아닌지라
이름 만큼이나 운치를 자아내지는 못하지만 나름의 찻집 분위기를 자아내는 곳이긴 합니다.
국화차, 모과차, 오미자차(茶)를 다려주는 죽림다원...
찻집 뜨락에 펼쳐놓은 테이블 위에 소품으로 꽃무릇이 꽃혔으니 차향 대신
화려한 자태의 꽃무릇 두어 송이로 방문객의 정서를 닦아내려는 산사 찻집의
마음 씀씀이를 읽어내면 바쁘게 서둘고 싶었던 것도 자연 사그라듭니다.
천년고찰 강화 전등사
강화 전등사는 해를 넘기면서 찾게 되는 사찰인데 긴 산그림자가 사찰 뜨락을 가린
그 사이로 방문객의 띄엄띄엄 눈에 뜨이니 해그름의 시간입니다.
전등사 대웅보전 아래 섰는 오랜 느티나무의 자태도 한 몫을 하게 되네요.
사찰 어딜 가더라도 빈 공간에는 어김없이 부처상이나 동자승이 놓였는데
부처가 아니 보인다고 중생의 그 많은 번뇌와 고통이 잊혀질까요?
아마 불자들이 이곳 저곳에다 부처를 모셔둘 요량으로 놓아둔게 맞을 것 같습니다.
천년고찰 대웅보전의 빛 바랜 단청이 고색창연하여 오히려 엄숙합니다.
깨끗하게 채색된 처마 아래 단청보다 이게 훨씬 더 친근감을 느끼게 됨은
풍상을 겪고 나온 세월을 읽게 하기 때문인데 나 혼자만의 생각은 아닐테지요.
인천 강화군 길상면 온수리의 전등사가 창건된 것은 서기 381년(고구려 소수림왕 11년)으로
우리나라에 불교가 처음으로 전래된 것이 서기 372년이므로 지금은 그 소재를 알 수 없는 성문사,
이불란사(375년 창건)에 이어 전등사는 한국 불교 전래 초기에 세워진 이래 현존하는
최고(最古)의 도량임을 알 수 있는데, 처음 전등사를 창건한 분은 진나라에서 건너온 아도 화상으로
당시 아도 화상은 강화도를 거쳐 신라 땅에 불교를 전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아도 화상이 강화도에 머물고 있을 때 지금의 전등사 자리에 절을 지었으니
그때의 이름은 ‘진종사(眞宗寺)’라 하였습니다.
전등사 처마를 받드는 벌거벗은 여인
오래 전, 손재주 좋은 도편수 한 사람이 집을 떠나 강화 전등사에서 절을 짓고 있었는데
인근 주막의 주모에게 마음을 주고서는 녹봉으로 받은 돈을 전무 맡겨두었는데
어느날 그 주모가 야반도주를 해버리니 졸지에 돈도 사랑도 다 잃어버린 도편수,
화가 난 도편수는 벌거벗은 여인상을 대웅전 처마끝에 조각해두고는 천년의 업보로
주모가 무거운 처마를 받들게 했으니, 전등사 대웅보전 네 곳 처마끝에는
지금도 도편수가 조각해놓은 나부상이 처마를 받들고 있다는 유명한 일화가
여지껏 전해내려오고 있습니다.
,
재미난 것은, 강화 전등사 뿐만이 아닌, 또 다른 사찰에도 대웅전 처마를 받들고 있는
나부상이 있는지라 전해오는 이야기의 진실이 어디까지인지 모르겠는데
동행한 친구왈, "그 도편수가 또 다른 곳에서 절을 지을 때도 마을 주모를 사귀다가
그 여자도 도망을 갔을거야. 도편수가 만나는 여자마다 도망을..."
그렇다면 이야기는 일단 맞아들어가는 셈이 됩니다. 사찰 몇 곳에서 같은 조각이 있다면
필시 이곳 저곳을 떠다닌 도편수의 여성편력과 줄행랑 친 주모... 또 나부상 조각,
여성 편력으로 웃고 우는 불쌍한 도편수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사실, 처마 아래의 조각은 나부상이라기 보다 오히려 원숭이상에 가까우니
전해오는 이야기에 뭐라 말하긴 어렵고, 사찰에서도 정확한 답을 내어주지 않으니
이래저래 옛 구전(口傳)은 재미가 있습니다.
예전에 전등사를 방문했을 때 수염 긴 두 용두가 튀어나온 명부전을
보았는지 안 보았는지 도통 기억이 나질 않으니 그참...
산국의 가을내음
들국화인 산국(山菊)이 하얗게 피어난 사찰 뒤편 화단으로 가을 바람이 굴러 떨어집니다.
전등사 대웅보전 처마 아래 벌거벗은 여인의 마음도 새벽 찬 이슬에 더욱 시려올텐데
구절초의 가을 내음과 함께 하루가 다르게 깊어가는 가을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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