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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은 낙후산업은 아니라 아무도 손을 대지 않은 블루오션이다!
농업. 이 단어를 떠올릴 때 마다 잠깐이지만 항상 스쳐가는 기억이 있다. 대학 복학 후 대동제를 앞두고 너덧 명이 미팅을 했더랬다. 호기심 반 설렘 반으로 나름대로의 성장盛裝으로 미팅장소에 들어설 때 새내기시절부터 ‘농민의 자식’으로 자신을 부르던 동기 녀석도 끼어 있었다. 장학금을 타지 않으면 등록금을 낼 때마다 소 한 마리를 팔아야 한다던 녀석은 학문보다는 ‘학습’에 더 열성적이었고, 강의에 참여한 날 보다 전국에서 진행되던 학생운동에 참여하는 날이 더 많았던 ‘상비군’급 운동권이었다. 미팅을 유치한 ‘아이들 소꿉놀이’ 쯤으로 여기고 비웃던 녀석이 그곳을 참여한 건 생리학적으로 엄연한 ‘아저씨’가 되었기 때문이다. 재미있는 건 녀석의 파트너가 된 여학생이 ‘농업관련업을 하는 집안의 딸’로 소개하면서부터 였다.
그녀는 얼핏 봐도 고가를 짐작케 하는 옷차림에 악세서리들, 그리고 행동과 말본새는 그 당시 강남의 멋진 젊은이들을 일컫는 ‘오렌지족’과 많이 닮았다(실제로 그녀는 강남에 거주한다고 했다). “아버님이 농업 쪽에서 어떤 일에 종사하시죠?” 농민의 자식이 던진 질문은 우리도 묻고 싶었던 당연한 의문이었다. “네에, 밭떼기 장사해요.”
밭떼기란 쉽게 말해 밭에서 나는 작물을 수확 전 밭에 나 있는 채로 농민에게 돈을 주고 몽땅사는 방식을 말한다. 벼농사를 짓는 농민의 입장에서는 입도선매立稻先賣 즉, 아직 논에서 자라고 있는 벼를 미리 돈을 받고 파는 것과 동일하다. 이 매매방식은 날씨와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는 농업에서 주로 이뤄지는데, 농민 쪽에서는 당장 급전이 필요하거나, 풍수해의 자연재해와 풍작으로 가격하락의 피해를 입을지도 모르는 불안한 미래를 피해 미리 적절한(과연 해피한 가격일까는 알 수 없지만) 가격을 받고 팔 수 있다는 잇점이 있지만, 수확의 결과물을 중간상인 밭떼기 장사꾼의 몫으로 돌아가 ‘영세성’을 벗어나기 힘들다는 단점이 있다. 그러니 농민의 자식과 밭떼기 장사꾼의 자식의 미팅이 잘 될 법이 있겠나? 미팅은 고사하고 녀석의 한숨과 푸념을 들으며 밤을 새워야 했다.
친구가 밤을 새워 푸념했던 말들의 핵심은 농사를 지어 봤자 이익은 모두 중간상들의 몫이라는 것이었다. 품종을 개량하고 수확을 몇 배 수 늘려봤자 직거래를 할 수 있는 판로가 없어 중간상들이 알아서 매기는 가격에 수확물을 넘길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더 높은 값을 쳐달라고 요구하면 ‘다른 곳에서 사겠다’고 발길을 돌리니 시간이 지나면 상해버리는 식물이니 눈물을 머금고 팔 수 밖에 없는 것이 농민의 현실이었다. 친구는 ‘유통구조의 개혁’만이 살 길이라고 목소리 높여 주장했다. 아무리 차별성 있는 제품을 만들어봤자 그 판단의 유무를 소비자가 아닌 중간상이 내린다면, 그리고 그 이익을 모두 그들이 취한다면 어떻게 생산성을 높일 수 있겠나 하는 것이 친구의 판단이었다. 그런 기억이 있는 지 벌써 십 수 년이 지난 후 농업 유통의 후진성은 많이 개선되었다지만, 여전히 문제는 남아 있다. 일년 간 땀흘려 일한 농민들의 수고가 소비자를 통해 고스란히 소득으로 돌아올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그 답을 책 <상추 CEO>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장안농장의 홈페이지에 가면 더 많은 정보를 알 수 있다 - http://www.ssamnhub.com
이 책은 1997년에 귀농해 유기농 상추 재배로 13년 만에 매출 100억원대의 유기농 기업으로 성장시킨 류근모 씨가 쓴 것으로, 오늘을 살아가는 농업인의 미래를 잘 보여주고 있다. 전체적인 책의 내용에는 류씨가 조경사업으로 실패 한 후 융자금 300만 원으로 시작해 지금의 ‘장안농장’을 이룩하기까지의 과정을 자세히 설명하고 아울러 농업인과 귀농을 꿈꾸는 이들에게 하고 싶은 메시지를 담고 있다. 저자는 자신의 성공 비결을 한마디로 이렇게 말했다.
“지금의 장안농장을 어떻게 일구었을까. 지난 13년을 돌이켜 봅니다. 어려웠던 많은 순간이 눈앞을 스치지만 무엇보다 다음의 말이 제가 드리 수 있는 성공 비결입니다.
‘편견과의 싸움’
농업에 승부를 걸기로 마음먹었기에, 숱한 밤을 지새우며 활로를 찾았습니다. 그렇게 아이디어를 얻어 실행에 나섰지만 사람들은 번번이 고개를 저었습니다.
“네? 상추를 소포로 팔겠다고요? 말도 안 됩니다.”
“농사짓는 사람이 혁신인증을 받아서 뭐합니까?”
“브로콜리를 왜 잘라서 팝니까? 품이 많이 들고 남은 것도 없잖아요?”
농사꾼이 무슨 마케팅을 하느냐, 농사꾼이 왜 빵집에서 교육을 받아야 하느냐, 농사꾼이 서비스는 잘해서 무엇 하느냐, 농사에 무슨 비즈니스 마인드를 접목하느냐, 남들도 안 하는데 왜 굳이 우리가 하느냐...안된다. 안된다. 안된다. (중략)
한 물 간 사업은 세상에 없습니다. 사양사업이란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농사에 뛰어든 이후로 농업이 호황을 구가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제아무리 IMF의 위기 앞에서도 성공하는 사람은 있습니다. 다 쓰러지는 와중에도 살아남는 단 한 명은 존재합니다. 살아남은 그 사람이 희망입니다. 여러분 자신이 그 한 명이 되면 됩니다. 미리 한계를 긋지 마십시오.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 한 살아날 길은 반드시 있습니다. 제가 바로 그 증인입니다.“ 본문 5~6쪽
장안농원의 유기농 채소들은 마트에 가면 유기농 코너에서 볼 수 있는 채소들이다. 류씨는 ‘잘 먹고 잘 사는 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트렌드를 읽고 유기농 채소를 키우는 농업으로 뛰어들었고, 모두가 괜한 짓이라고 무시하거나 불가능할거라 여기는 일을 보란 듯이 성공시켰다. 그가 이 일에서 최고가 되고자 마음을 먹었을 때 농사의 달인들에게서 반면선생反面先生으로 얻은 교훈은 세 가지였다.
첫째, 과거의 좋았던 시절에 연연해서는 발전이 없다.
둘째, 객관적인 데이터 없이 주먹구구식으로 농사를 지어서는 안 된다.
셋째, 자신이 지은 농산물이 어디로 어떤 가격에 팔리는지 몰라서는 최고가 될 수 없다.
요약해 보면 농사꾼 역시 제품을 만들어내는 회사를 CEO가 경영하듯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단순히 농사일지를 써내려가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서 객관적인 데이터를 뽑아내야 하고 꾸준히 공부하고 연구해야 한다. 또한 전자제품을 팔 듯 탁월한 마케팅을 찾아내어 소비자들의 반응을 피드백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을 취해야 한다고 류씨는 생각했다. 그는 ‘농사꾼이자 장사꾼이 되어야 성공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가 추진했던 사업방식의 대부분은 이전에는 없었던 ‘최초’로 시도하는 방법들이다. 우체국 소포를 이용한 물류 배달로 그렇고, 땅심(힘)을 높이기 위해 지하 암반수에 옥돌과 맥반석 가루를 섞어 물을 준 것 역시 처음이다. 그가 보는 농업은 낙후산업이 아니라 미개척지 즉, 아무도 손을 대지 않았던 블루오션이었다.
“농업이 미개척지라는 사실은, 재배 방식뿐 아니라 마케팅이나 유통 과정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그만큼 기회가 많다는 뜻이기도 하고, 그만큼 후진성을 벗지 못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만일 누군가 나보다 앞서 이 길을 개척했던 사람이 있었다면 과연 나는 지금의 장안농장을 만들 수 있었을까? 그 사람의 뒤를 따라 손쉽게 갈 수 있는 길이었다면 나는 이 일에서 살아가는 보람을 느끼며 살았을까? 번번이 새로운 것을 개척할 때마다 왜 농사에는 이렇게 안 된다는 게 많은 것인지 답답할 때도 많았다. 그러나 지금 돌이켜 보면 그렇게 처음 가는 길이었기에 어쩌면 내 적성에 맞지 않았나 싶다.” 본문 101-102 쪽
그의 농업 경영에 있어 주요 정보 습득처는 바로 책이었다. 앨빈 토플러의 <제3의 물결>을 읽고 인터넷의 발전으로 유통혁명이 있을 것을 발견하고 인터넷을 통해 대형 쇼핑몰을 공부하고 홈페이지를 만들었다. 장안농장의 홈페이지를 살펴보면 김영세의 <이노베이터>, 공병호의 <10년 법칙>, 김영모의 <빵굽는 CEO>, 로버트 그린의 <전쟁의 기술> 등 그가 경영을 위해 펼쳤던 수십 권의 책을 발견할 수 있는데, 과연 이것이 농사꾼이 읽은 책이란 말인가 놀라울 정도였다. 또한 류씨는 21세기는 ‘감성의 시대’라는 것을 이미 감지 하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장안농장을 통해 펼치는 마케팅의 핵심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마케팅’하고 질문을 꺼낼 때는 도깨비 방망이 따위를 기대하는 것이겠지만 세상에 그런 마케팅은 없다. 별다른 노력 없이 단박에 수익을 거두는 방법은 세상에 없다. 머리 좋아서, 잔꾀를 부려서 돈을 벌 방법은 없다. 머리 좋기로 따지면 요즘 소비자를 누가 따라갈 것인가? 잔머리로 돈을 벌려고 하면 그 머리 때문에 망하는 게 요즘 시대이다. 싸게 판다고, 품질만 좋다고 고소득을 올리는 시절은 지났다. (중략)
‘좋은 상품을 만들자.’
나는 이런 말을 하고 싶지 않다. 세상에는 좋은 상품이 넘쳐난다. 제품 만드는 기술은 금세 공유되므로 따라잡기는 시간문제이다. 좋은 상품만으로는 경쟁력을 갖출 수 없다. 좋은 상품을 넘어 감동을 주는 상품을 만들어야 한다. 그것이 유일한 마케팅 방법이다.“ 본문 144-145 쪽
이 책은 성공한 인물의 한 맺힌 사연을 주저리 밝힌 고백서도 아니고, 자화자찬과 허장성세가 그득한 성공스토리도 아니다. 농사꾼에게는 이룩한 자가 말하는 농업 발전을 위한 계몽서이고, 귀농하여 부농이 되고자 하는 이들에게는 ‘헛꿈’ 꾸는 것을 경계하는 경험담이다. 류씨의 말을 듣고 있자니 편집광만이 살아남는다는 앤드 그로브의 말과 공병호가 말하던 10년 법칙의 전형적인 사례가 이 사람을 두고 한 말이 아닐까 생각됐다. 1차 산업의 성공사례를 책으로 만나서 반가웠다. 저자는 물론 세상에 널리 알려야 할 인물을 잘 찾아내고 책을 편 출판사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이 책과 더불어 두부를 팔아 주식상장을 이룬 일본의 다루미 시게루의 <두부 한 모 경영>(전나무숲)과 일본의 10년 장기불황기에 100엔 짜리 우동을 만들어 급성장한 '(주)하나마루' 우동 프렌차이즈의 성공기를 다룬 <하나마루 우동집 성공기>(씨앗을 뿌리는 사람)을 함께 읽으면 좋을 것 같다.
“이것저것 하다 안 되면 장사를 하던지, 시골가서 농사나 짓지, 뭐.”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주변에 다. 그런 친구들이 농사를 할 수야 있겠지만, 성공은 절대하지 못한다. 내게 이들의 성공여부에 돈을 걸라면 난 차라리 개가 껌을 씹어 풍선을 불고, 풀을 뜯어먹고 되새김질하기에 돈을 걸겠다. 숨막히는 도시를 떠나 귀농歸農하여 넉넉한 여생을 생각하고 있다면 이 책을 읽어둘 필요가 있다. 한낱 푸성귀 밖에 안된다고 생각되는 상추일망정 이것으로 밥을 바꿔 먹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언감생심 농사를 지어 부농富農이 되겠다고 마음먹었다면 이 책을 서 너 번은 더 읽어야 할 것이다. 행간에 숨은 성공의 비밀들이 무수히 숨어있기 때문이다(책의 말미에 따로 적어둔 류근모의 ‘귀농십계명’은 필독해야 한다). ‘죽을 작정’으로 실행하는 용기는 그 다음에 가져야 할 각오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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