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굴의 모험정신, 마리 퀴리
정진홍
과학계의 잔다르크 마리 퀴리 (Marie Curie, 1867~1934)
● 소르본 대학의 첫 여성교수
● 노벨상을 수상한 최초의 여성(노벨상 2회 수상)
● 프랑스 의학 아카데미 회원으로 선출된 최초의 여성
◈ 우등생 마리
● 1867년 폴란드 바르샤바 출생
● 본명: 마리아 스클로도프스카 (Maria Sklodowska)
● 아버지가 수학, 물리 교사
- 바르샤바 국립여학교 졸업(1883) 후 8년 간 일해서 모은 돈으로 소르본 대학 이학부(理學部) 입학(1891)
- 물리학과 수석(1893), 수학과 차석(1894) 졸업
◈ 사회적 제약과 기회
성적은 뛰어나나, 여성이라는 이유로 연구에서 제외...
한 교수의 배려로 금속의 자기특성 연구 시작
● 연구 중 피에르 퀴리(Pierre Curie)와 만남, 결혼(1895년)
● 1897년 이렌 출산
◈ 폴로늄과 라듐의 발견
폴로늄(Polonium): 방사능 방출량, 우라늄의 330배
라듐(Radium): 폴로늄보다 더 강력한 방사능 방출
◈ 집요한 실험
우라늄에서 순수 라듐염 0.1g을 얻기 위하여 ⇒
● 역청우라늄 8톤 처리
● 물 400톤 소요
● 화학실험 수천 회 반복
◎ 소르본 대학 박사학위
◎ 노벨 물리학상 수상 (남편과 공동수상) (1903)
◎ 피에르 퀴리는 파리大 교수로 마리는 실험주임으로 임명
◈ 방사능으로 인한 행복과 불행
방사능이 위험하다는 사실을 간과!
-라듐 염을 '내 아이'라 부르며 늘 곁에 두고 생활
-지금도 퀴리부부의 물건에서 방사능 검출
● 1906년 피에르 사망 (라듐노출로 인한 건강악화)
◈ 부부의 오두막 실험실
시체 해부실을 개조해서 만든 실험실
여름엔 용광로처럼 덥고 겨울엔 냉동창고처럼 추웠으며
온갖 유독가스에 그대로 노출
"우리의 초라한 헛간 안에는 평화가 충만했다.
우리는 현재와 미래의 작업에 대해 대화를 나눴다.
추울 때, 난로 곁에서 마시는 차 한잔이 우리를 위로했다. 우리는 마치 꿈 속 인 듯, 우리의 유일한 일에 몰두했다."
-마리 퀴리
◈ 스캔들로 얼룩진 영광
● 파리대학 정교수로 임명(1908, 여성최초)
● 금속라듐 추출 성공(1910)
● 노벨화학상 단독 수상(1911) (사상 최초 2회 노벨상 수상)
동료 폴 랑주뱅과의 관계로 위대한 과학자에서 '유태인 요부'로 전락!
◈ 역경에 굴하지 않고...
● 방사능연구소 설립(1913)
● 파리 라듐연구소 설립에 협력
● 1차 세계대전 당시 X선 검사반을 조직, 의료지원활동 개시
이동 X선반
-자동차에 발전기와 X선 장치를 실은 것
-불필요한 신체 절단을 방지
◈ 위대한 기부
● 라듐이 기적의 물질로 알려지면서 세계적인 명성 회복
● 라듐 생산공정에 특허를 내지 않고 사회에 조건 없이 기부
"그것은 라듐 산업을 위한 위대한 기부!"
◈ 진정한 모험가
방사능 노출 후유증으로 타계(1934)
이렌 퀴리(장녀) 노벨화학상 수상(1935)
"결코 파괴되지 않는 모험 정신이 나를 생동감 넘치게 한다!"
(박철원 옮김)
'코칭스킬 > 기타 낙서장'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 우리가 쓰는 숫자와 기호 이야기 > (0) | 2010.06.08 |
---|---|
[스크랩] 아킬레우스의 `명예로운 선택` (0) | 2010.06.08 |
[스크랩] [강원/금강산] 그리운 금강산 (0) | 2010.05.29 |
[스크랩] [전남/구례] "영원한 사랑을 찾아서..." 미리 가 본 구례 산수유꽃축제 (0) | 2010.05.29 |
[스크랩] [경북/영덕] 여기가 무릉도원 복사꽃 마을 (0) | 2010.05.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