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이란 무엇인가. "수많은 타인의 능력을 이용하여 목표를 달성하는 기술"이다. 수많은 타인들이 모인 집합체로 하여금 어떠한 에너지를 발산케 하느냐는 시스템에 달려있다.
조직이 콩가루면 한 사람의 힘 만큼도 발휘하지 못한다. 그 한 사람의 힘이나마 조직 속에서 이 사람 저 사람과 부딛쳐 소실돼 버리고 만다. 한 사람 한 사람의 개인을 통제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스스로 일하게 만들고, 그 일들이 저절로 시너지 효과로 연결돼야 한다. 스스로 일하게 만드는 것도 시스템이요, 각자의 노력이 뭉쳐져 저절로 시스템 에너지를 낼 수 있게 하는 것도 시스템이다.
첫째, 시스템이란 "그렇게 하라고 명령하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될 수 밖에 없도록 만드는 것"이다.
둘째, 시스템은 목수의 연장과 같아서 사용자의 역량만큼만 효과적이다. 그러나 아무리 역량이 훌륭한 목수라도 도구가 없으면 집을 짓지 못한다. 그래서 목수는 끝없이 훌륭한 연장을 개발해야 한다.
셋째, 개인의 능력은 아무리 훌륭해도 시스템의 벽과 한계를 극복하지 못한다. 개선을 하려거든 가장 먼저 시스템부터 개선해야 한다.
넷째, 품질도 경쟁력도 시스템의 산물이다. 국제경쟁이란 바로 시스템 경쟁력이다. IMF 위기란 WTO라는 링위에서 후진시스템이 선진시스템에 의해 KO패 당하고 있는 현상인 것이다.
불가능한 의식 개혁
시스템이 어떻게 의식을 바꿀 수 있는지를 보자. 세 대의 공중 전화기가 있다. 한국인들은 세 줄을 선다. 그러나 선진국 사람들은 한 줄을 선다. 가장 짧은 줄을 골라서 섰지만 그날은 재수가 안좋아 오래 기다렸다. 그때 무엇을 느낄까. "일찍 와야 소용없다. 줄을 잘 서야 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사회 곳곳이 이 처럼 요행에 의해 차례를 배분한다면 그 속에서 사는 사람들에게는 요행의식이 자랄 것이다. 요행이 차례를 배당해주는데 누가 열심히 일하고 공부하고 저축할 것인가?
반면 선진국 사람들은 한줄을 선다. 맨 앞에 서있는 사람이 먼저 끝나는 전화를 차지한다. 일찍 오면 일찍 차례가 온다. 예측도 가능해진다. 사회 곳곳이 이렇게 논리에 의해 차례가 배분되면 그 속에서 사는 사람들에게는 논리의식이 자란다.
동대문과 종로통은 상가 밀집 지역이다. 짐차들이 부지런히 다니면서 짐을 날라야 경기가 활성화된다. 뉴욕같이 복잡한 도시도 대형차가 상점 앞에 20분 간 정차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 상가에는 이것이 허용되지 않고 있다. 가끔씩 단속반이 나와 있으면 용달차들이 짐을 부리지 못해 수십 바퀴를 돌면서 눈치를 살핀다. 시간, 자원, 공해상의 엄청난 낭비다.
그러나 이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국민성의 파괴다. 눈치보는 습관이 길러지는 것이다. 한국 국민의 의식은 선천적으로 못난 것이 아니다. 바로 이렇게 눈치를 보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 없는 사회 시스템이 그렇게 만든 것이다.
의식이 개혁돼야 한다는 말이 아직도 유행이다. 모든 국민의 의식이 천사처럼 개혁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러나 이는 처음부터 불가능한 바램일 뿐이다. 그 누구도 수많은 타인들의 의식을 고치지 못한다.
자기 자식의 의식도 고치지 못하지 않는가? 그래서 의식 개혁 운동을 통해 선진국이 된 나라는 없다. 선진 사회를 만들 수 있었던 것은 시스템 개선에 투자했기 때문이다. 설사 모든 이들의 의식이 천사처럼 깨끗하게 개혁됐다 해도 의식 자체는 시너지를 낼 수 없다. 시너지는 반드시 시스템이라는 기계를 거쳐야만 나오는 것이다.
부질 없는 신바람
모든 국민이 각자가 서 있는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면 국가가 어찌 잘되지 않겠으며, 사원들 각자가 최선을 다하면 어찌 회사가 잘되지 않겠는가. 이 말이 틀렸다고 생각하는 국민은 그리 많지 않다. 그러나 이는 틀린 말이다. 열심히 일해봐야 개인당 생산성은 겨우 10% 정도나 향상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생산성 향상이 곧바로 이윤 상승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열심히 일할수록 근로자당 생산성이 상승할수록 이윤이 점점 더 내려갈 수도 있다.
도요타 자동차에 12대의 기계가 하나의 공정을 이루고 있었다. 12대의 기계에 12명의 근로자가 배치됐다. 일감을 기계에 걸어놓으니까 기계가 일했다. 기계가 일하는 동안 근로자는 할 일이 없었다. 이를 지켜본 사장이 각자에게 똑같은 기계를 하나씩 더 사주었다. 근로자 개인당 생산성이 2배로 올랐다. 어떤 근로자는 4대의 기계를 사주니까 쉬지 않고 일했다.
열두 사람이 쉴 새 없이 일하는 모습을 바라보는 사장의 마음은 기뻤다. 그만큼 이윤이 상승될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손익 계산서에는 이윤이 점점 더 내려갔다. 사장은 열심히 일할수록 이윤이 내려가는 이 기막힌 사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몰랐다. 부사장인 다이이찌오노 씨가 이 사실에 골몰하다가 차 안에서 무릎을 쳤다.
그는 각 근로자 앞에 미처 소화되지 못한 재고품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는 사실에 착안했다. 재고가 많이 쌓일수록 그만큼 자금도 사장됐다. 일주일 후에 구입해도 될 소재를 미리 구매한 것이다. 어지럽게 던져진 재고는 또 다른 일손에 의해 정리정돈됐다. 그만큼 인건비가 나갔다. 낭비가 이중으로 발생한 것이다. 그는 후공정에 의해 소화되지 못한 재고는 낭비라는 결론을 얻었다. 매우 간단한 관찰이었지만 이는 엄청난 변화를 불러왔다.
그는 하나의 작업 원칙을 만들었다. "전공정은 후공정에서 소화한 것만큼만 만들고 시간이 남아도 그대로 서 있으라"는 것이었다. 이렇게 하니까 두가지 비용은 절약됐다. 그러나 시간이 남는다는 원래의 문제는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는 발상의 전환을 했다. 사장은 시간이 남았을 때 똑같은 기계를 더 사주었다. 한 사람이 한 가지 기계만 다뤄야 숙달이 되고 생산성이 올라간다는 고정 관념 때문이었다.
그러나 부사장은 왜 한 사람이 열 가지 스무 가지 기계를 다룰 수 없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1번 기계를 다루는 근로자에게 2번 기계를 다루도록 했다. 그는 2번 기계를 배우면서 기계의 오묘한 원리를 터득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심지어는 봉급에도 관심이 없었다. 정복한 기계 수가 증가할 때마다 그의 자부심과 직업에 대한 안정감도 향상됐다. 그는 스스로를 직장에 꼭 필요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드디어 12사람이 다루던 12대의 기계를 한 사람이 다루게 됐다.
한 사람으로 하여금 여러 대의 기계를 다루게 하는 데에는 작업 반경이 문제가 되었다. 작업 반경을 줄이기 위해 그는 기계의 설치를 일렬로 하지 않고 U자형의 연속으로 배열했다. 몸만 돌리면 여러 대의 기계를 접할 수 있게 했다.
인건비가 12분의 1로 절약됐다. 간단한 발상의 전환이 오늘날 세계적으로 유명한 적시 생산(JIT; Just In Time)시스템을 탄생시킨 것이다. 현재의 시스템을 그대로 둔채, 열심히 일하라고 하는 것에는 문제가 있다. 일하는 방법 즉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
신바람 운동의 목표는 "어떻게 하면 근로자들이 스스로 열심히 일하도록 만들 수 있는가"에 대한 것이었다. 열심히 일만 해준다면 생산성이 자연적으로 올라갈 것이라고 잘못 생각한 것이다. 그래서 한동안 기업들은 근로자들에게 금전적 인센티브를 마련하는 일에 노력하기도 했다.
많은 이들은 아직도 금전적 보상이 근로자의 동기를 유발시키기 위한 가장 큰 수단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이러한 생각 때문에 생산성은 향상시키지 못하고, 노임만 올려놓았다. 그러나 방법을 개선하지 않으면, 설사 노임을 지금의 수백 배로 올려준다 해도 생산성은 올라가지 않는다. 도덕적 해이만 부추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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