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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신경림 한국명시 100선 (1-40)

대한유성 2019. 1. 4. 11:33


신경림 한국 명시 100선  (신경림시인 선정)

1.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 이상화

2. 복종 / 한용운
3. 진달래꽃 / 김소월
4. 송별 / 이병기
5. 향수 / 정지용
6. 깃발을 내리자 / 임화
7. 눈 내리는 보성의 밤 / 이찬
8. 모란이 피기까지는 / 김영랑
9. 바다와 나비 / 김기림
10. 산수도 / 신석정
11. 그리움 / 유치환
12. 청포도 / 이육사
13. 북방의 길 / 오장환
14.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 / 백석
15. 북쪽 / 이용악
16. 장날 / 노천명
17. 자화상 / 서정주
18. 설야 / 김광균
19. 풍장 / 이한직
20. 이별가 / 박목월
21. / 박두진
22. 고시 2 / 조지훈
23. 서시 / 윤동주
24. 나막신 / 이병철
25. 보리피리 / 한하운
26. 성북동 비둘기 / 김광섭
27. 묵을 갈다가 / 김상옥
28. / 김수영
29. / 김춘수
30. 목마와 숙녀 / 박인환
31. 낙엽끼리 모여 산다 / 조병화
32. 장미 / 송욱
33. 강강술래 / 이동주
34. 낙화 / 이형기
35. 생명 / 김남조
36. 귀천 / 천상병
37. 묵화 / 김종삼
38. 자하문밖 / 김관식
39. 성탄제 / 김종길
40. 울음이 타는 가을강 / 박재삼
41. 휴전선 / 박봉우
42. 무우 / 박성룡
43. 저녁눈 / 박용래
44. 갈대 / 신경림
45. 내 노동으로 / 신동문
46. 문의 마을에 가서 / 고은
47. 답십리 하나 / 민영
48. 진달래 산천 / 신동엽
49. 조그만 사랑 노래 / 황동규

50. 정신과 병동 / 마종기
51. 어물어 벙그는 알밥처럼 / 정진규
52. 유랑악사 / 이근배
53. / 이성부
54. 긴 봄날 / 허영자
55. 오래된 골목 / 천양희
56. 한국의 아이 / 황명걸
57. 노을 / 조태일
58. 저녁 바다와 아침 바다 / 최하림
59. 파랗게, 땅 전체를 / 정현종
60. 항토에 내리는 비 / 이가림
61. 구미호 / 유안진
62. 후투티가 오지 않는 섬 / 노향림
63. 아버지의 빛 5 / 신달자
64. 풀잎 / 강은교
65. 남자를 위하여 / 문정희
66. 참깨를 털면서 / 김준태
67. 타는 목마름으로 / 김지하
68. / 이시영
69. 저문 강에 삽을 씻고 / 정희성
70. 산정묘지 1 / 조정권
71. 동두천 1 / 김명인
72. 독직 / 박시교
73. 맹인부부가수 / 정호승
74. 혁명은 패배로 끝나고 / 김남주
75.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 / 김광규
76. 선림원지에 가서 / 이상국
77. 남해 금산 / 이성복
78. 북어 / 최승호
79. 밤 미시령 / 고형렬
80. 환한 걸레 / 김혜순
81. 철길 / 김정환
82. 대꽃 7 / 최두석
83.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 황지우
84. 사평역에서 / 곽재구
85. 노숙 / 김사인
86. 너에게 묻는다 / 안도현
87. 마음의 짐승 / 이재무
88. / 김용택
89. 시다의 꿈 / 박노해
90. 행려 / 박영근
91. 우기 / 도종환
92. 안개 / 기형도
93. 태아의 잠 1 / 김기택
94. / 함민복
95. 저 숲에 누가 있다 / 나희덕
96. 서울에 사는 평강공주 / 박라연
97. 그리운 시냇가 / 장석남
98. 선운사에서 / 최영미
99. 가재미 / 문태준
100. 내 혀가 입속에 갇혀 있길 거부한다면 / 김선우

 

1.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이상화

 

지금은 남의 땅--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나는 온몸에 햇살을 받고,

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으로,

가르마 같은 논길을 따라 꿈속을 가듯 걸어만 간다.

  입술을 다문 하늘아, 들아,

내 맘에는 나 혼자 온 것 같지를 않구나!

네가 끌었느냐, 누가 부르더냐, 답답워라, 말을 해 다오.

  바람은 내 귀에 속삭이며,

한 자국도 섰지 마라, 옷자락을 흔들고

종다리는 울타리 너머 아씨같이 구름 뒤에서 반갑다 웃네.

  고맙게 잘 자란 보리밭아,

간밤 자정이 넘어 내리던 고운 비로

너는 삼단 같은 머리를 감았구나. 내 머리조차 가뿐하다.

혼자라도 가쁘게나 가자.

마른 논을 안고 도는 착한 도랑이

젖먹이 달래는 노래를 하고, 제 호자 어깨춤만 추고 가네.

나비, 제비야, 깝치지 마라.

맨드라미, 들마꽃에도 인사를 해야지.

아주까리 기름을 바른 이가 지심 매던 그 들이라 다 보고 싶다.

  내 손에 호미를 쥐어 다오.

살진 젖가슴과 같은 부드러운 이 흙을

발목이 시도록 밟아도 보고, 좋은 땀조차 흘리고 싶다.

  강가에 나온 아이와 같이,

짬도 모르고 끝도 없이 닫는 내 혼아

무엇을 찾느냐, 어디로 가느냐, 웃어웁다, 답을 하려무나.

  나는 온 몸에 풋내를 띠고

푸른 웃음, 푸른 설움이 어우러진 사이로

다리를 절며 하루를 걷는다. 아마도 봄 신령이 지폈나 보다.

  그러나 지금은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

 

2. 복종 / 한용운

 

남들이 자유를 사랑한다지마는

나는 복종을 좋아하여요.

자유를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당신에게는 복종만 하고 싶어요.

복종하고 싶은데 복종하는 것은

아름다운 자유보다도 달콤합니다.

그것이 나의 행복입니다.

그러나 당신이 나더라 

다른 사람을 복종하라면

그것만은 복종을 할 수가 없습니다.

다른 사람을 복종하려면

당신에게 복종할 수 없는 까닭입니다.

 

3. 진달래꽃  / 김소월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오리다.

영변에 약산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

가시는 걸음 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 밟고 가시옵소서.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

 

4. 송별 / 이병기

   

재너머 두서너 집 호젓한 마을이다

촛불을 다시 혀고 잔들고 마주 앉아

이야기 끝이 못나고 밤은 벌써 깊었다

눈이 도로 얼고 산머리 달은 진다

잡아도 뿌리치고 가시는 이 밤의 정이

십리가 못되는 길도 백리도곤 멀어라

 
5. 향수 / 정지용

 

넓은 벌 동쪽 끝으로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비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짚베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흙에서 자란 내 마음파아란 하늘빛이 그리워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려풀섶 이슬에 함추름 휘적시던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전설 바다에 춤추는 밤물결 같은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사철 발 벗은 아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줍던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하늘에는 성근 별알 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서리 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지붕,
흐릿한 불빛에 돌아앉아 도란도란거리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6. 깃발을 내리자 / 임화

 

노름꾼과 강도를

잡던 손이

위대한 혁명가의

소매를 쥐려는

욕된 하늘에

무슨 깃발이

날리고 있느냐

동포여!

일제히

깃발을 내리자

가난한 동포의

주머니를 노리는

외국 상관의

늙은 종들이

광목과 통조림의

밀매를 의논하는

폐 왕궁의

상표를 위하여

우리의 머리 위에

국기를 날릴

필요가 없다

동포여

일제히

깃발을 내리자

살인의 자유와

약탈의 神聖

주야로 방송되는

남부조선

더러운 하늘에

무슨 깃발이

날리고 있느냐

동포여

일제히

깃발을 내리자


7. 눈 내리는 보성의 밤 / 이찬

 

시월 중순이언만 함박눈이 퍽퍽

보성의 밤은 한치, 두치, 전설속에 깊어간다

깊어가는 밤거리엔 '누구얏'소리 잦아가고

압록강 굽이치는 물결 귓가에 옮긴 듯 우렁차다

江岸 강안엔 錯雜 착잡하는 경비등 경비등

그 속에 번쩍이는 森森 삼삼한 총검

포대는 산벼랑에 숨죽은 듯 엎드리고

그 기슭에 나룻배 몇 척 언제나의 도강을 정비코 있다

, 북만의 15도구 말없는 산천이여

어서 크낙한 네 비밀의 문을 열어라

여기 오다가다 깃들인 설움 많은 한 사나이

들어 목메던 그 빛, 그 소리로 한껏 즐거워 보려노니


8. 모란이 피기까지는 / 김영랑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을 테요 
모란이 뚝뚝 떨어져 버린 날 
나는 비로소 봄을 여읜 설움에 잠길 테요 

오월 어느날 그 하루 무덥던 날 
떨어져 누운 꽃잎마저 시들어 버리고는 
천지에 모란은 자취도 없어지고 
뻗쳐 오르던 내 보람 서운하게 무너졌느니 
모란이 지고 말면 그뿐 내 한 해는 다 가고 말아 
삼백 예순 날 하냥 섭섭해 우옵내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을 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 


9. 바다와 나비 / 김기림

 

아모도 그에게 수심을 일러 준 일이 없기에
힌 나미비는 도모지 바다가 무섭지 않다.

청무우 밭인가 해서 나려 갔다가는
어린 날개가 물결에 저러서
공주처럼 지처서 도라온다.

삼월달 바다가 꽃이 피지 않아서 서거푼
나비 허리에 새파란 초생달이 시리다.


10. 산수도 / 신석정

 

숲길 짙어 이끼 푸르고

나무 사이사이 강물이 희어...

햇볕 어린 가지 끝에 산새 쉬고

흰 구름 한가히 하늘을 거닌다.

산 까마귀 소리 골짝에 잦은데

등 넘어 바람이 넘어 닥쳐와...

굽어든 숲길을 돌아서 돌아서

시냇물 여운이 옥인 듯 맑아라.

푸른 산 푸른 산이 천 년만 가리

강물이 흘러 흘러 만 년만 가리

산수는 한 폭의 그림이냐.

 

11. 그리움 1. / 유치환

 

오늘은 바람이 불고

나의 마음은 울고 있다.

일찍이 너와 거닐고 바라보던 그 하늘 아래 거리언마는

아무리 찾으려도 없는 얼굴이여.

바람 센 오늘은 더욱 그리워

긴 종일 헛되이 나의 마음은

공중의 깃발처럼 울고만 있나니

오오 너는 어디메 꽃같이 숨었느뇨.

 

그리움 2 / 유치환

 

파도야어쩌란 말이냐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임은 뭍같이 까딹 않는데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날 어쩌란 말이냐

 

12. 청포도 / 이육사

 

내 고장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

이 마을 전설이 주저리주저리 열리고

먼데 하늘이 꿈꾸며 알알이 들어와 박혀

하늘 밑 푸른바다가 가슴을 열고

흰 돛 단 배가 곱게 밀려서 오면

내가 바라는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

청포를 입고 찾아온다고 했으니

내 그를 맞아, 이 포도를 따 먹으면

두 손은 함뿍 적셔도 좋으련

아이야 우리 식탁엔 은쟁반에

하이얀 모시 수건을 마련해 두렴


13. 북방의 길 / 오장환

 

눈 덮인 철로는 더욱이 싸늘하였다

소반 귀퉁이 옆에 앉은 농군에게서는 송아지의 냄새가 난다

힘없이 웃으면서 차만 타면 북으로 간다고

어린애는 운다 철마구리 울듯

차창이 고향을 지워버린다

어린애가 유리창을 쥐어뜯으며 몸부림


14.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 / 백석

 

어느 사이에 나는 아내도 없어지고,

아내와 같이 살던 집도 없어지고

그리고 살뜰한 부모며 동생들하고도 멀리 떨어져서

그 어느 바람 세인 쓸쓸한 거리 끝에 헤매이었다

바로 날도 저물어서

바람은 더욱 세게 불고, 추위는 점점 더해 오는데

나는 어느 목수네 집 헌 삿을 깐

한 방에 들어서 쥔을 붙이었다

이리하여 나는 이 습내 나는 춥고 누긋한 방에서

낮이나 밤이나 나는 나 혼자도 너무 많은 것 같이 생각하며

딜옹배기에 북덕불이라도 담겨 오면

이것을 안고 손을 쬐며 재 우에 뜻없이 글자를 쓰기도 하며

또 문 밖에 나가지도 않고 자리에 누워서

머리에 손깎지베개를 하고 굴기도 하면서

나는 내 슬픔이며 어리석음이며를 소처럼 연하게 쌔김질하는 것이었다

내 가슴이 꽉 매어올 적이며

내 눈에 뜨거운 것이 핑 괴일 적이며

또 내 스스로 화끈 낯이 붉도록 부끄러울 적이며

나는 내 슬픔과 어리석음에 눌리어 죽을 수밖에 없는 것임을 느끼는 것이었다

그러나 잠시 뒤에 나는 고개를 들어

허연 문창을 바라보든가 또 눈을 떠서 높은 천장을 쳐다보는 것인데

이때 나는 내 뜻이며 힘으로, 나를 이끌어 가는 것이 힘든 일인 것을 생각하고

이것들보다 더 크고 높은 것이 있어서, 나를 마음대로 굴려 가는 것을 생각하는 것인데

이렇게 하여 여러 날이 지나는 동안에

내 어지러운 마음에는 슬픔이며, 한탄이며, 가라앉을 것은 차츰 앙금이 되어 가라앉고

외로운 생각만이 드는 때쯤 해서는

더러 나줏손에 쌀랑쌀랑 싸락눈이 와서 문창을 치기도 하는 때가 있는데

나는 이런 저녁에는 화로를 더욱 다가 끼며, 무릎을 꿇어 보며

어느 먼 산 뒷옆에 바우섶에 따로 외로이 서서

어두워 오는데 하이야니 눈을 맞을, 그 마른 잎새에는

쌀랑쌀랑 소리도 나며 눈을 맞을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라는 나무를 생각하는 것이었다


15. 북쪽 / 이용악

 

북쪽은 고향

그 북쪽은 여인(女人)이 팔려간 나라

머언 산맥(山脈)에 바람이 얼어붙을 때

다시 풀릴 때

시름 많은 북쪽 하늘에

마음은 눈감을 줄 모른다


16. 장날 / 노천명

 

대추 밤을 돈사야 추석을 차렸다.

이십 리를 걸어 열하룻장을 보러 떠나는 새벽

막내딸 이쁜이는 대추를 안준다고 울었다.

송편 같은 반달이 싸릿문 위에 돋고,

건너편 성황당 사시나무 그림자가 무시무시한 저녁,

나귀 방울에 지껄이는 소리가 고개를 넘어 가까워지면

이쁜이보다 삽살개가 먼저 마중을 나갔다.


17. 자화상 / 서정주

 

애비는 종이었다. 밤이기퍼도 오지않었다.
파뿌리같이 늙은할머니와 대추꽃이 한주 서 있을뿐이었다.
어매는 달을두고 풋살구가 꼭하나만 먹고 싶다하였으나...
흙으로 바람벽한 호롱불 밑에
손톱이 깜한 에미의아들.
갑오년이라든가 바다에 나가서는 도라오지 않는다하는
외할아버지의 숯많은 머리털과
그 크다란눈이 나는 닮었다한다.
스믈세햇동안 나를 키운건 팔할이 바람이다.
세상은 가도가도 부끄럽기만하드라
어떤이는 내눈에서 죄인을 읽고가고
어떤이는 내입에서 천치를 읽고가나
나는 아무것도 뉘우치진 않을란다.
찰란히 티워오는 어느아침에도
이마우에 언친 시의 이슬에는
멫방울의 피가 언제나 서꺼있어
볓이거나 그늘이거나 혓바닥 느러트린
병든 숫개만양 헐덕어리며 나는 왔다.

18. 설야 / 김광균

 

어느 머언 곳의 그리운 소식이기에

이 한밤 소리없이 흩날리느뇨

처마 밑에 호롱불 여위어가며

서글픈 옛 자췬양 흰눈이 나려

하이얀 입김 절로 가슴이 메어

마음 허공에 등불을 켜고

내 홀로 밤 깊어 뜰에 나리면

머언 곳에 여인의 옷벗는 소리

희미한 눈발

이는 어느 잃어진 추억의 조각이기에

싸늘한 추회 이리 가쁘게 설레이느뇨

한 줄기 빛도 향기도 없이

호올로 차단한 의상을 하고

흰눈은 내려 내려서 쌓여

내 슬픔 그 위에 고이 서리다


19. 풍장 / 이한직

 

사구(砂丘) 위에서는

호궁(胡弓)을 뜯는

님프의 동화가 그립다.

계절풍이여

카라반의 방울 소리를

실어다 다오.

장송보(葬送譜)도 없이

나는 사구 위에서

풍장이 되는구나.

날마다 밤마다

나는 한개의 실루엣으로

괴로워했다.

깨어진 오르간이

묘연(杳然)한 요람(搖籃)의 노래를

부른다, 귀의 탓인지.

장송보도 없이

나는 사구 위에서

풍장이 되는구나.

그립은 사람아.


20. 이별가 / 박목월

 

뭐락카노, 저 편 강기슭에서

니 뭐락카노, 바람에 불려서

이승 아니믄 저승으로 떠나는 뱃머리에서

나의 목소리도 바람에 날려서

뭐락카노 뭐락카노

썩어서 동아 밧줄은 삭아 내리는데

하직을 말자, 하직을 말자

인연은 갈밭을 건너는 바람

뭐락카노 뭐락카노 뭐락카노

, 흰 옷자라기만 펄럭거리고…….

오냐, 오냐, 오냐.

이승 아니믄 저승에서라도…….

이승 아니믄 저승에서라도

인연은 갈밭을 건너는 바람

뭐락카노, 저 편 강기슭에서

니 음성은 바람에 불려서

오냐, 오냐, 오냐.

나의 목소리도 바람에 날려서


21. / 박두진

 

해야 솟아라.
말갛게 씻은 얼굴 고운 해야 솟아라.
산 넘어 산 넘어서 어둠을 살라 먹고,
산 넘어서 밤새도록 어둠을 살라 먹고,
이글이글 애뙨 얼굴
고운 해야 솟아라.

달밤이 싫여, 달밤이 싫여,
눈물 같은 골짜기에 달밤이 싫여,
아무도 없는 뜰에
달밤이 나는 싫여 .
해야, 고운 해야.
늬가 오면 늬가사 오면,
나는 나는 청산이 좋아라.
훨훨훨 깃을 치는 청산이 좋아라.
청산이 있으면 홀로래도 좋아라.

사슴을 따라, 사슴을 따라,
양지로 양지로 사슴을 따라
사슴을 만나면 사슴과 놀고.

칡범을 따라, 칡범을 따라,
칡범을 만나면 칡범과 놀고 .
해야, 고운 해야. 해야 솟아라.
꿈이 아니래도
너를 만나면,
꽃도 새도 짐승도 한자리 앉아,
워어이 워어이 모두 불러 한자리 앉아
애뙤고 고은 날을
누려 보리라.


22. 古寺 1 / 조지훈

 

木漁를 두드리다

졸음에 겨워

고오운 상좌아이도

잠이 들었다.

부처님은 말이 없이

웃으시는데

西域 萬理

눈부신 노을 아래

모란이 진다.

 

古寺 2 / 조지훈

 

목련꽃 향기로운 그늘 아래

물로 씻은 듯이 조약돌 빛나고

흰 옷깃 매무새의 구층탑 위로

파르라니 돌아가는 신라 천년의 꽃구름이여

한나절 조찰히 구르던

여울 물소리 그치고

비인 골에 은은히 울려오는 낮 종소리.

바람도 잠자는 언덕에서 복사꽃 잎은

종소리에 새삼 놀라 떨어지노니

무지개빛 햇살 속에

의희한 단청丹靑은 말이 없고......

 

23. 서시 / 윤동주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24. 나막신 / 이병철

 

은하 푸른 물에 머리 좀 감아 빗고

달 뜨걸랑 나는 가련다

목숨 수()자 박힌 정한 그릇으로

체할라 버들잎 띄워 물 좀 먹고

달 뜨걸랑 나는 가련다

삽살개 앞세우곤 좀 쓸쓸하다만

고운 밤에 딸그락딸그락

달 뜨걸랑 나는 가련다


25. 보리피리 / 한하운

 

보리 피리 불며
 언덕
고향 그리워
   닐니리
보리 피리 불며
 청산
어린  그리워
   닐니리

보리 피리 불며
인환의 거리
인간사 그리워
   닐니리

보리 피리 불며
방랑의 기산하(幾山河)
눈물의 언덕을 지나
   닐니리


26. 성북동 비둘기 / 김광섭

 

성북동 산에 번지가 새로 생기면서
본래 살던 성북동 비둘기만이 번지가 없어졌다
새벽부터 돌깨는 산울림에 떨다가
가슴에 금이 갔다
그래도 성북동 비둘기는
하느님의 광장 같은 새파란 아침하늘에
성북동 주민에게 축복의 메시지나 전하듯
성북동 하늘을 한바퀴 휘돈다.

성북동 메마른 골짜기에는
조용히 앉아 콩알 하나 찍어먹을
널찍한 마당은커녕 가는 데마다
채석장 포성이 메아리쳐서
피난하듯 지붕에 올라앉아
아침 구공탄 굴뚝 연기에서 향수를 느끼다가
번지 채석장에 도루 가서
금방 따낸 돌 온기를 입에 닦는다.

예전에는 사람을 성자처럼 보고
사람 가까이
사람과 같이 사랑하고
사람과 같이 평화를 즐기던
사랑과 평화의 새 비둘기는
이제 산도 잃고 사람도 잃고
사랑과 평화의 사상까지
낳지 못하는 쫓기는 새가 되었다.


27. 묵을 갈다가 / 김상옥

 

묵을 갈다가

문득 수몰된 무덤을 생각한다.

물 위에 꽃을 뿌리는 이의 마음을 생각한다.

꽃은 물에 떠서 흐르고

마음은 춧돌을 달고 물 밑으로 가라앉는다.

묵을 갈다가

제삿날 놋그릇 같은 달빛을 생각한다.

그 숲속, 그 달빛 속 인기척을 생각한다.

엿듣지 마라 엿듣지 마라

용케도 살아 남았으니

이제 들려줄 것은 벌레의 울음소리밖에 없다.

밤마다 밤이 이스토록

묵을 갈다가

벼루에 흥건히 괴는 먹물

먹물은 갑자기 선지빛으로 변한다.

사람은 해치지도 않았는데

지울 수 없는 선지빛은 온 가슴을 번져난다.

 
28. / 김수영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발목까지

발밑까지 눕는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29. / 김춘수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 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30. 목마와 숙녀 / 박인환

 

한잔의 술을 마시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의 옷자락을 이야기한다

목마는 주인을 버리고
그저 방울 소리만 울리며 가을 속으로 떠났다

술병에서 별이 떨어진다
상심한 별은 내 가슴에 가볍게 부숴진다

그러한 잠시 내가 알던 소녀는
정원의 초목 옆에서 자라고

문학이 죽고 인생이 죽고
사랑의 진리마저 애증의 그림자를 버릴 때
목마를 탄 사랑의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세월은 가고 오는 것
한때는 고립을 피하여 시들어가고
이제 우리는 작별하여야 한다

술병이 바람에 쓰러지는 소리를 들으며
늙은 여류작가의 눈을 바라다 보아야 한다

등대...

불이 보이지 않아도
그저 간직한 페시미즘의 미래를 위하여
우리는 처량한 목마 소리를 기억하여야 한다

모든 것이 떠나든 죽든
그저 가슴에 남은 희미한 의식을 붙잡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서러운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두개의 바위틈을 지나 청춘을 찾은 뱀과 같이
눈을 뜨고 한잔의 술을 마셔야 한다

인생은 외롭지도 않고
그저 낡은 잡지의 표지처럼 통속 하거늘
한탄할 그 무엇이 무서워서 우리는 떠나는 것일까

목마는 하늘에 있고 방울 소리는
귓전에 철렁거리는데
가을 바람 소리는
내 쓰러진 술병 속에서 목메어 우는데...

 
31. 낙엽끼리 모여 산다 / 조병화

 

낙엽에 누워 산다.
낙엽끼리 모여 산다.
지나간 날을 생각지 않기로 한다.
낙엽이 지는 하늘가에
가는 목소리 들리는 곳으로 나의 귀는 기웃거리고
얇은 피부는 햇볕이 쏟아지는 곳에 초조하다.
항시 보이지 않는 곳이 있기에 나는 살고 싶다.
살아서 가까이 가는 곳에 낙엽이 진다.
, 나의 육체는 낙엽 속에 이미 버려지고
육체 가까이 또 하나 나는 슬픔을 디디고 돌아온다.
비 내리는 밤이면 낙엽을 밟고 간다.
비 내리는 밤이면 슬픔을 디디고 돌아온다.
밤은 나의 소리에 차고
나는 나의 소리를 비비고 날을 샌다.
낙엽끼리 모여 산다.
낙엽에 누워 산다.
보이지 않는 곳이 있기에 슬픔을 마시고 산다.


32. 장미 / 송욱

 

장미밭이다.

붉은 꽃잎 바로옆에

푸른 잎이 우거져

가시도 햇살 받고

서슬이 푸르렀다.

춤을 추리라,

벌거숭이 그대로

춤을추리라,

눈물에 씻기운

발을뻗고서

붉은해가 지도록

추을추리라.

장미밭이다.

핏방울 지면

꽃잎이 먹고

푸른 잎을 두르고

기진하면은

가시마다

살이 묻은

꽃이 피리라.

 
33. 강강술래 / 이동주

 

여울에 몰린 언어떼.
삐삐꽃 손들이 둘레를 짜면
달무리가 비잉, 비잉 돈다.
가아응, 가아응, 수월래에-----
목을 빼면 설움이 솟고
달빛이 번지면
술보다 독한 것.

백장미 밭에
공작이 취했다.
뛰자 뛰자 뛰어나 보자
강강 술래.
뉘누리에 테이프가 감긴다.
열두 발 상모가 마구 돈다.
갈대가 쓰러진다.
기폭이 찢어진다.
강강 술래.
강강 술래.


34. 낙화 / 이형기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봄 한철 
격정을 인내한 
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

분분한 낙화……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 
지금은 가야 할 때
무성한 녹음과 그리고 
머지않아 열매 맺는 
가을을 향하여 
나의 청춘은 꽃답게 죽는다

헤어지자 
섬세한 손길을 흔들며 
하롱하롱 꽃잎이 지는 어느 날 
나의 사랑, 나의 결별

샘터에 물 고이듯 성숙하는 
내 영혼의 슬픈 눈


 35. 생명 / 김남조

 

생명은

추운 몸으로 온다.

벌거벗고 언 땅에 꽂혀 자라는

초록의 겨울보리

생명의 어머니도 먼 곳

추운 몸으로 왔다.

진실도

부서지고 불에 타면서 온다,.

버려지고 피 흘리면서 온다.

겨울 나무들을 보라

추위의 면도날로 제 몸을 다듬는다.

잎은 떨어져 먼 날의 섭리에 불러가고

줄기는 이렇듯이

층전 부싯돌임을 보라

금가고 일그러진 걸 사랑할 줄 모르는 이는

친구가 아니다.

생명은 추운 몸으로 온다.

열두 대문 다 지나온 추위로

하얗게 드러눕는

함박눈 눈송이로 온다.

 

36. 귀천 / 천상병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37. 묵화 / 김종삼

 

물먹는 소 목덜미에
할머니 손이 얹혀졌다.
이 하루도
함께 지났다고.
서로 발잔등이 부었다고.
서로 적막하다고.

 
38. 자하문밖 / 김관식

 

나는 아직도 청청이 어우러진 수풀이나 바라보며 병을 다스리고 살 수밖엔 없다.

혼란한 꾀꼴새의 매끄러운 울음 끝에 구슬 목청을 메아리가 도로 받아

얼른 또 넘겨 빽빽한 자기 틈을 요리조리 휘돌아 구을러 흐르듯 살아가면

앞길은 열리기로 마련이다.
사람이 사는 길은 물이 흘러가는 길.
()마을 어느 집 물항아리에 나는 물이 되어 고여 있다가 바람에 출렁거려

한줄기 가느다란 시냇물처럼 여기에 흘러왔을 따름인 것이다.
여름 햇살이 열음처럼 여물어 쏟아지는 과일밭.
새카맣게 그들은 구리쇠빛 팔다리로 땀을 적시고 일을 하다가 가을철로 접어들면

몸뚱아리에 살오른 실과들의 내음새를 풍기며 한번쯤 흐물어지게 익을 수는 없는가.
해질 무렵의 석양 하늘 언저리
수심가(愁心歌)같이 스러운 노을이 떨어지고 밤그늘이 덮이면 예저기 하나둘씩 초록별이

솟아나 새초롬한 눈초리로 운근히 속샐기며 어리석음을 흔들어 일깨워 준다.
수줍은 달빛일래 조촐하게 물들어 영롱히 자라나는 한그루 향나무의 슬기로움을

그 곁에 깃들여서 배우는 것은 여간 크낙한 기쁨이 아니라서

스스로의 목숨을 곱게 불살라 밝음을 얘기하는 난낱 촛불이

열두폭 병풍 두른 조강한 신혼초야 화촉동방에 시집온 큰 애기를 조용히 맞이하는

그러한 마음으로 죽음을 기다리며 구름속에 파묻혀 기러기 한백년을 이냥 살으리로다.


39. 성탄제 / 김종길

 

어두운 방안엔 

빠알간 숯불이 피고

외로이 늙으신 할머니가 

애처로이 잦아드는 어린 목숨을 지키고 계시었다

이윽고 눈 속을 

아버지가 을 가지고 돌아오시었다

아 아버지가 눈을 헤치고 따오신 

그 붉은 山茱萸 열매-- 

나는 한 마리 어린 짐생

젊은 아버지의 서느런 옷자락에 

열로 상기한 볼을 말없이 부비는 것이었다

이따금 뒷문을 눈이 치고 있었다

그날 밤이 어쩌면 聖誕祭의 밤이었을지도 모른다

어느새 나도 

그때의 아버지만큼 나이를 먹었다

옛것이라곤 찾아볼 길 없는 

聖誕祭 가까운 都市에는 

이제 반가운 그 옛날의 것이 내리는데

서러운 서른 살 나의 이마에 

불현듯 아버지의 서느런 옷자락을 느끼는 것은

눈 속에 따오신 山茱萸 붉은 알알이 

아직도 내 血液 속에 녹아흐르는 까닭일까.  


40. 울음이 타는 가을강 / 박재삼

 

마음도 한자리 못 앉아 있는 마음일 때,

친구의 서러운 사랑 이야기를

가을 햇볕으로나 동무삼아 따라가면,

어느새 등성이에 이르러 눈물나고나.

제삿날 큰집에 모이는 불빛도 불빛이지만

해질녘 울음이 타는 가을 강을 보것네.

저것 봐, 거것 봐,

네 보담도 내 보담도

그 기쁜 첫사랑 산골 물소리가 사라지고

그 다음 사랑 끝에 생긴 울음까지 녹아나고

이제는 미칠 일 하나로 바다에 다 와 가는,

소리 죽은 가을 강을 처음 보것네.

 


출처 : 무자천서 (자연의 책)
글쓴이 : 바람꽃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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