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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의 스피치]
때로는 침묵이 진짜 감동이다
말의 홍수 시대, 리더의 진짜 내공
달변보다 침묵이 더 강력한 힘을 발휘할 때가 있다. 자신의 프로젝트에 실패하고 기운 없이 축 늘어진 부하에게 힘내라고 여러 번 강조해 말하는 것보다 따뜻하게 어깨를 두드려 주는 마음이 상대에게 더 잘 전달될 때가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그동안 무수히 매력적인 스피치를 쏟아냈지만 그중의 백미는 바로 그 유명한 ‘51초간의 침묵’이다.
2011년 애리조나 주 총기 사건 희생자들을 위한 추모식장에서 오바마는 그 사건의 희생자 여덟 살짜리 크리스티나를 언급하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는 우리의 민주주의가 크리스티나가 생각하는 것과 같이 좋았으면 합니다. 우리 모두는 아이들의 기대에 부웅하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만 합니다”라고 말한 뒤 약 51초 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그리고 이 침묵은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그것이 의도된 침묵이든 아니면 가슴 아픔에서 나온 자연스러운 침묵이든 화려한 말보다 더 가치가 있었음은 당연하다. 아픔을 토해내지 않고 속으로 삼키는 리더의 속 깊음이 우러나오는 대목이다.
말의 홍수 시대엔 때로는 침묵하는 것이 더 많은 사람들이 당신에게 귀 기울이게 만드는 방법이기도 하다. 부하의 잘못에 바로 다그치기보다 부하 스스로 상황을 설명할 때까지 기다리는 침묵은 관대함의 표시요, 망가진 상황에 대해 설명을 듣고도 흥분하지 않고 듣는 침묵은 심사숙고의 표현이다. 기쁘고 좋은 일이 있어도 침묵하는 것은 가볍지 않은 품위요, 슬프고 낙담할만한 일에 침묵하는 것은 의연함의 표현이다.
침묵을 통해 경청할 수 있고 침묵을 통해 어떤 말보다 강력한 카리스마를 발휘할 수도 있다. 침묵은 리더의 따뜻한 리더십뿐만 아니라 때로는 문제를 해결하는 전략으로도 사용된다.
‘손자병법’ 11편 구지편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장군은 조용하면서 속을 알 수 없어야 하고 또한 반듯하고 의연해야 한다. 그는 장교와 병사들이 당신의 계획을 모르게 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이다. 모든 것을 다 말하지 않고 절제하는 침묵이 얼마나 중요한 내공인지를 암시하는 말이다. 절제의 미는 침묵으로 표현되는데 부하 직원을 다룰 때도 마찬가지다.
나이가 들고 경험이 많아질수록 상대에게 해주고 싶은 충고가 얼마나 많을까. 그러나 상대가 들을 준비가 되지 않았다면 때를 기다리는 침묵이 필요하다.
듣지 않으려는데 말하면 잔소리요, 들어도 무슨 뜻인지 모르는데 말하면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리더의 침묵이 곧 혜안이고 내공이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부하는 더욱 충성하게 된다. 그가 나보다 그릇이 크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는 것이다. 결국 리더의 마음속에 남들에게 말하지 않는 추가적인 공간이 더 있어야 하며 그것이 침묵으로 인해 드러나지 않고 때를 기다려야 하는 것이다.
일상에서의 무관심과 의도적인 침묵은 분명 다르다. 상대에게 관심을 가지고 바라보는 침묵엔 깊은 눈빛이 있고 따스한 안색이 보인다. 그러나 무관심은 시선조차 마주치지 않는다.
진정한 침묵은 상대가 어떤 의제를 꺼낼 때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답을 제시하지만 무관심은 상대방이 제안한 의제에 당혹해 하거나 이해하지 못한다.
리더의 침묵은 부하에게 관심을 쏟고 지켜보지만 단지 말을 연기하는 행동이어야 한다. 바꿔 말하면 ‘항상 대기 중인 말’이어야 한다는 뜻이다.
[리더의 스피치]
부하에게 주는 진정한 자율성, ‘알아서 해!’가 황금알이 되려면
안미현의 리더의 스피치
아내와 외식을 하자며 차를 몰고 나간 김 부장은 삼거리에 다다르자 아내에게 독촉한다. “자 어디 갈까? 빨리 말해. 우회전? 좌회전?”하며 자꾸 묻는다. 모처럼 외식이라고 나온 아내는 슬슬 기분이 나빠진다. 이 망망대해 같은 서울 거리에서 도대체 어떤 음식점을 고르란 말인가.
직장에서도 리더는 가끔 부하 직원에게 ‘전권을 주는(?)’ 마음으로 이렇게 부하 직원을 망망대해에 동동 떠 있게 하곤 한다. 일을 맡기고는 “알아서 해!”가 마치 엄청난 자율성을 부여하는 특혜라도 되는 듯이 말이다. 부하에게 주는 진정한 자율성은 어떤 것일까.
첫째, 무한한 범위가 아니라 최종 자율성을 가질 때 그 기쁨이 더욱 커진다.
따라서 일단 간추리고 뼈대를 잡아 준 다음 그 위에 자신만의 창의력을 덧입히는 연습부터 하면 부하는 즐겁게 일에 몰입하는 방법을 배운다. 부하 직원이 에디슨이나 아인슈타인이 아닌 바에야 모든 일을 알아서 할 수는 없다.
“나는 맨땅에 헤딩하고도 여기까지 왔네”라고 자신의 젊은 시절을 예로 들지는 마라. 지금의 시대는 시행착오를 기다려 줄 마음의 여유도 없거니와 부하 직원도 그러한 ‘막무가내’ 정신을 더 이상 미덕이라고 여기지 않는다. 전체적인 아우트라인은 잡아줘야 일하는 게 즐겁다. 그리고 주어진 대안들 중에서 ‘고르는 설렘’과 ‘고쳐보는 즐거움’을 만끽하게 해 줄 필요가 있다.
둘째, 이렇게 상사가 윤곽을 잡아줘도 결론적으로는 자신이 스스로 모든 것을 결정했다고 느끼게 해 줘야 만족감이 커진다. 상사는 다양한 소스와 방법을 알려줬지만 이번에 사용된 의사결정은 자신 스스로의 선택이라고 느껴야 책임과 보람이 함께 커진다. 따라서 상사는 권유하듯이 기존의 방법들을 소개하고 해결책을 논할 때는 지시하지 말고 브레인스토밍을 유도해야 한다. 이때는 인내심을 갖고 부하의 아이디어를 기다려야 한다.
도저히 진도가 나가지 않는 상황이 답답해 후딱 결론을 내려준다면 자신만의 성과물을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일러주면 빨리 될 것을 뭘 그리 복잡하게 하느냐고 따지지 말자.
왜냐하면 생각하는 힘이 생기면 부하 직원은 그 다음 프로젝트부터는 속도가 빨라진다. 전권을 주기로 했다면 부디 그렇게 하자. 부하의 의사결정이 미흡해 보인다면 거기서 예상되는 문제점들에 대한 보완책을 질문하면 된다.
세 번째, 진정한 자율성은 부하 직원이 ‘알아서 한’ 그 성과에 대해 인정하고 칭찬하는 일이다.
일의 전체 흐름상 문제가 없다면 웬만한 취향은 인정해 주고 그 사람만이 가진 아이디어는 참신하게 칭찬해 주자. 좋은 결과만 칭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과정이나 노력에 대한 칭찬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아 이번에 A가 아닌 B를 시도한 면이 참 좋았어”라는 말로도 부하는 힘을 얻는다. 만약 부족한 점을 지적한다면 그것은 일에 대한 방향이어야 맞지 상사의 취향을 드러낼 일은 아니다. 내가 평가할 영역과 평가하지 않아야 할 영역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
이렇게 자율성은 ‘알아서 해’라고 하면서도 따뜻한 지원을 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김 부장처럼 아내와 외식을 한다면 차를 몰기 전에 먼저 인터넷 검색을 하라. 그리고 아내에게 이렇게 말하라. “여보 내가 찾아보니 이 근처엔 유명한 고깃집 A와 분위기가 특이한 이탈리아 식당 B가 있네. 당신은 어디가 더 좋아?”라고 물어라. 이것이 진정한 자율성이다.
[리더의 스피치]
유머로 던진 말 ‘다큐’로 받는다? 아무 때나 진지하면 촌스럽다
어떤 사람이 ‘진국’이라는 말은 사실 칭찬이지만 동시에 안타까움이 스민 말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진국이라는 말은 그 사람이 가진 내공이 보기보다 훌륭하고 됨됨이가 바르다는 뜻인데, 바꿔 말하면 겉으로 보기에는 그 사람의 매력이 잘 나타나지 않는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진국의 반대말은 무엇일까. ‘베짱이’일까, ‘날라리’일까.
대화를 하다 보면 진국보다 베짱이나 날라리와 대화하는 것이 더 흥겹고 즐거울 때가 있다. 왜냐하면 웃어넘기는 재치가 있고 지나치게 집중하기보다 대충 보아 넘기는 적당한 무관심이 오히려 대화의 활력소가 될 때가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진국은 아무 데서나 대화를 너무 진지하게 끌고가 만남의 무게감을 더하는 특징이 있다. 지나친 신의 성실의 원칙이 말 한마디에도, 행동 하나에도 의미를 부여하기 때문이다.
어느 드라마에 이런 장면이 나온다. 친구와 술을 마시다가 한 사람이 술에 취해 “내 자식만 잘된다면 마누라가 바람을 피운다고 해도 눈감아 줄 형편”이라고 하자 상대방 친구가 “넌 변했다”며 술자리를 뛰쳐나간다. 속이 타서 던지는 한마디에도 진실성을 부여하고 정체성을 확인하는 상대에겐 사실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아는 사업가 한 분은 고객에게 보내는 e메일 끝에 부서와 소속 이름이 딸려나가게 되는데, 거기에 ‘착하게 살자’라는 문구를 항상 넣어 보낸다. 필자는 그분과 친해진 다음 그 문구를 삭제하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다. 좋은 뜻이지만 상대에게 부담을 주는 말이기 때문이다.
성실하고 올곧은 리더일수록 인생에 대해 진지한 태도를 갖는데 그러다 보니 그의 주위가 한층 무거워진다. 잠깐 만나 나누는 담소에도 정치 경제에 대한 불안감을 담는다. 그의 트위터나 페이스북에는 늘 마무리가 회의적이다. 봄날의 아름다운 꽃을 찍어 올리고도 마무리는 비참한 현실을 의미하는 ‘오늘도 가슴이 답답하다’는 멘트를 넣는 식이다. 상대가 안부를 묻는 트위터 글에도 답장은 언제나 심각한 ‘다큐멘터리’가 되어 온다. 세상에 관심이 많고 뭔가 기여해 보려는 진국의 노력이 누군가에게 부담이 된다면 진지함을 조금 가볍게 풀어보는 것도 중요한 센스가 된다.
지나치게 진지한 리더의 무의식엔 허투루 시간을 보내면 안 되고 무언가에도 의미와 결과를 가져와야 마음이 편한, 즉 그저 놀고 즐기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있는 가치관이 내재돼 있다. 그러다 보니 웃자고 던진 농담에도 진지하게 질문해 말한 사람을 ‘뜨악’하게 하는 경건함이 나오기도 한다.
만나면 왠지 숨이 턱 막히게 하는 사람, 함께 놀 때는 분위기를 가라앉히는 사람, 그리고 아무 곳에서나 시국을 논하는 진지함은 이제 부하 직원들이 보기에 촌스러운 리더의 항목에 들어갈 것이다.
무거운 상사가 되지 말고 어떤 이야기든 가능한 상사가 되자. 그리고 전달하는 메시지의 전체적인 양에서 긍정적이고 즐거운 내용이 더 많게 하자.
각 팀의 리더가 프레젠테이션을 끝냈다면 2차 뒤풀이에서 그것을 평가하는 멘트는 생략하자. 오히려 그 발표에서 있었던 인상적인 용어로 건배사를 만들어 흥겹게 돋궈보는 것은 어떨까.
그냥 푸념이나 늘어놓자고, 혹은 투정을 부리고 싶어 한 이야기인데 결론을 내려주거나 훈계를 하지는 않는가. 자신이 지나치게 진지한 것인지, 적당한 것인지 평가하는 방법은 하나다. 상대의 말에 자신이 뭔가 피드백을 던졌을 때 상대의 표정을 보라. 거기에 정답이 있다.
[리더의 스피치]
리더의 개방성, 어느 정도가 적정선일까
수평적 관계 vs 수직적 관계
외부 컨설턴트인 홍길동 씨는 오늘도 고객사인 X 기업의 김 차장과 통화하면서 마음이 답답하다.
“그러니까요, 김 차장님. 지금 회사에서 원하는 게 A 타입인지 B 타입인지 정확하게 말씀해 주셔야 우리가 일을 진행할 수 있습니다”라는 요구에 김 차장은 이렇게 대답한다.
“우리 상무님이 보내주신 e메일을 보면 아마 A 타입을 원하는 것 같습니다.”
업무에 대한 피드백을 e메일로 받은 김 차장은 행간을 읽어가며 상무의 의중을 살피기 위해 노력 중이다. 재차 구두로 확인해 달라는 컨설턴트의 요구에도 왠지 끙끙대는 모습이 상사인 박 상무와의 미팅 자체를 두려워하는 기분이 든다. “지금 상무님은 바쁘시고 또 게다가….” 전화기 너머로 느껴지는 기분은 아마도 뭔가 더 물었다가는 상무의 불호령이 김 차장에게 떨어질 것 같은 예감이다.
객관적으로 박 상무의 입장이 되어서 고민해 보자. 그가 만약 언제 어디서든 부하 직원이 대화를 요청할 수 있는 수평적 리더라면 어떤 문제에 직면하게 될까. 아마도 부하 직원은 업무에 대한 고민이나 조사도 하지 않고 궁금한 사항이 생기면 득달같이 달려와 물어보고 툭하면 상무의 업무 시간을 방해할지도 모른다.
아마 의존적인 부하 직원 때문에 골치를 썩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지금처럼 한 번의 피드백 e메일을 주고 더 이상의 질문을 허락하지 않는 카리스마는 부하 직원 혼자서 끙끙대다가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는 상황을 만들어 낸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지만 조직의 효율성에 부정적인 영향을 가져온다.
한편 수평적 리더십을 구사하는 많은 리더들의 고민은 이것이다.
“열린 대화를 하자면 의견 제시를 넘어 불평불만이 끊임없이 쏟아집니다. 스스로 알아서 하는 일이 없어요. 그래서 수직적인 자세로 나오면 아예 입을 다물어 버립니다. 자기들끼리 알아서 눈치 보며 재량껏 해결하다 보니 배가 산으로 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과연 리더의 개방성을 어느 정도로 하는 것이 현명한지 고민해 보자.
만약 당신의 카리스마가 엄청나 부하 직원들이 ‘쪼르르 달려오지 못하는’ 위엄이 있다면 업무에 대한 피드백이 정확하고 치밀해야 한다.
다만 이것만은 짚고 넘어가자. 윗사람이 언질을 주면 아랫사람이 알아서 헤아리는 문화는 기성세대의 커뮤니케이션이다. 자신을 조직과 환경의 일부로 생각하는 동양적 사고방식에서는 어떻게 하든 내가 그 목표에 맞추려고 노력했지만 신세대의 중심은 바로 자기 자신이다.
따라서 정확한 정보와 가이드라인이 있어야 원하는 만큼의 성과가 나온다.
수평적으로 대화한다는 것은 부하를 느슨하게 하는 것이라는 고정관념도 버릴 필요가 있다. 언제든 들어 줄 준비, 말할 준비가 되어 있되 리더가 무작정 코멘트를 하거나 해결책을 내려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브레인스토밍을 하는 과정을 만든다면 상사의 방에 들어오는 부하도 뭔가 조사해 준비하고 들어올 것이다.
수평적 관계는 리더만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관계가 아니라 부하도 아래서 위로 올라와는 책임감을 함께 공유하는 과정이다. 수평적이라고 해서 나의 리더십이 무너질 것 같은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결국 박 상무와의 면담에 부담을 느낀 김 차장은 A 타입으로 판단을 내려 일을 진행했고 어느 정도 진척이 이뤄지다가 박 상무의 지적을 받고 B 타입으로 변경했다. 서로가 답답했을 것이다. 과연 어떤 것이 더 남는 장사인지 고민할 시간이다.
안미헌 한국비즈트레이닝 대표
/ 한경매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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