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전쟁은 흩어진 국론을 모으고 집권세력에 대한 지지를 강화하는 효과를 낸다. 외환으로 내우에 대처하는 전략이 고래로 먹혀온 이유다. 그런데도 '러시아 국민은 왜 이 전쟁을 지지하느냐' 같은 의문이 자연스러운 것은 그만큼 이 전쟁이 불의하게 여겨지기 때문일 것이다.
러시아인은 왜 이 전쟁을 지지하는가. 2022년 4월 러시아 3대 여론조사기관 중 하나인 레바다센터(Levada Center)는 '우크라이나 사태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러시아인의 약 60%가 '미국과 나토'라고 답했다. 우크라이나 탓이라고 답한 비율은 17%에 불과했다.
즉, 러시아인에게 이 전쟁은 우크라이나와의 싸움이 아니다. 그들은 자신이 미국과 싸우고 있다고 생각한다. 러시아인 사이에는 '악의 축을 호명할 유일무이의 권리를 주장해온 미국이야말로 온갖 악의 기원'이라는 폭넓은 공감이 존재한다. '전쟁 지지 72%'는 그 결과에 해당한다.
하지만 이 72%는 결코 균일하지 않다. 얼마 전 러시아의 독립 인터넷 신문 <메두자(Meduza)>는 (72%의 조사결과가 포함된) 브치옴의 6월 여론조사 중 '비공개' 부분을 입수해 발표했다.(국영 여론조사기관인 브치옴은 크레믈의 영향력 아래 있다. 반면 크레믈에 의해 친미/친서방 에이전시로 분류된 <메두자>는 러시아 리버럴이 선호하는 언론매체 중 하나다.)
<메두자>가 발표한 브치옴의 미공개 조사결과에 따르면, 러시아인의 30%가 '전쟁을 당장 멈춰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전쟁을 계속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57%보다는 낮은 수치지만, '응답 곤란'을 택한 13%를 합하면 러시아 국민의 43%가 전쟁을 계속하는 데 반대하거나 유보적인 입장인 셈이다.
전쟁 지속에 대한 찬반 여부가 러시아 사회의 양극화 라인을 타고 흐른다는 점도 주목할만하다. 즉, 젊고 고학력 고소득의 대도시 거주자일수록 '전쟁의 즉각 중단'을, 나이든 저학력 저소득의 지방 거주자일수록 '전쟁의 지속'을 원한다.
예를 들어 60세 이상 러시아인의 72%가 '전쟁 지속'을 원하지만, 러시아 MZ세대의 경우 상황은 전혀 다르다. 18-24세의 56%가 '전쟁의 즉각 중단'을 원하며, '전쟁 지속'을 원하는 비율은 19%에 불과하다. 25-34세의 경우에도, 근소한 차이지만, '전쟁 중단'을 원하는 비율(43%)이 '전쟁 계속'을 원하는 비율(41%)을 앞선다.
일반 도시/지방 거주자의 62%가 '전쟁 지속'을 원한다면, 수도인 모스크바와 상트 페테르부르크 시민의 40%가 '전쟁의 즉각 중단'을 원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또, (주로 노년의 연금생활자로 구성된) TV시청층의 68%가 '전쟁 지속'을 원한다면, (주로 청장년층의 생산가능인구로 구성된) 인터넷 적극 사용층의 경우 47%가 '전쟁의 즉각 중단'을 원하며, '전쟁 지속' 주장은 35%다.
<메두자>의 위 기사가 발표된 얼마 후 브치옴의 대표인 발레리 표도로프는 한 언론 인터뷰에서 '돈바스 컨센서스'를 주장했다. 2014년 러시아의 크림합병에 대해 압도적 다수의 러시아인이 지지를 보냈고, 이를 '크림 컨센서스'라 부른다. 이를 빗댄 돈바스 컨센서스란 이번 전쟁(과 푸틴)에 대한 러시아인의 지지 역시 압도적이고 견고함을 주장하기 위함이다. 러시아 사회 내 크림 컨센서스의 존재는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러시아인의 절대다수가 200여 년 간 러시아 땅이었던 크림반도의 합병을 실지회복(失地回復)으로 여긴다. 하지만 돈바스 컨센서스는 어불성설이다.
'전쟁 지지 72%'라는 간판 아래 브치옴이 은폐한 바로 위의 여론조사 결과가 이를 생생히 보여준다. 전쟁 지속과 관련해 러시아 사회에 광범위하게 존재하는 균열은, 이번 전쟁에 관한 한 러시아 사회 내 어떤 국민적 합의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을 입증해준다. 다수의 러시아인이 전쟁의 명분에 공감할지라도, 그들 중 또 다수가 전쟁의 즉각 중단을 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