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영준 칼럼] 윤석열은 '박근혜 탄핵'의 주범인가
공무원인 대통령에 김무성·추미애가 '행상책임' 적용…법적 행위 아닌 '태도' 문제삼아
파면 대통령 구속한 것은 김수남 검찰총장… 윤석열은 '박근혜 구속' 주장한 적 없어
천영준 연세대 기술정책학 박사 칼럼니스트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입력 2021-04-21 14:55 | 수정 2021-04-21 16:12
대선 앞두고 반드시 짚어봐야 할 문제
▲ 천영준 연세대 기술정책학 박사.ⓒ천영준 박사 블로그
노재봉 서울대 명예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박근혜 탄핵은 박근혜 개인을 향한 것이 아니라, 그를 빙자한 체제 탄핵이었다." 이 말을 부산시장을 지낸 서병수 국민의힘 의원이 국회 대정부질문(20일)에서 인용했다. 나름 그럴듯해 보이는 주장이다.
여기서 한 발짝 더 나아가 보자. "윤석열을 중심으로 한 박근혜-최서원(최순실) 게이트 특검이 탄핵이라는 반역적 사태를 몰고 왔다." 한마디로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서원(최순실)을 찍어내려고 무리한 수사를 했다는 뜻이다. 마침 그는 국정원 여론조작 수사로 박 전 대통령 임기 내내 대구와 대전에 좌천되어 있었다. 특검 수사팀장으로 있으면서 칼자루를 쥐며 복수혈전의 맛을 봤다는 것이 '극우' 일각의 주장이다.
과연 노재봉 교수와 서병수 의원, 그리고 '윤석열 반역론자'들은 옳은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일까. 이 시점에서 우리는 특검과 탄핵의 정치적 관계를 따져볼 필요가 있다. 과연 박영수 전 특별검사와 특검보들, 그리고 윤석열 당시 수사팀장은 박 전 대통령을 대통령직에서 몰아내기 위해 수사를 한 것일까? 아니면 정권 차원에서 재벌 대기업과 유착해 민원을 들어주고 자신들의 영향력 하에 있는 비영리법인에 자금을 출연하도록 종용한 행위만 봐야 하는 것일까.
윤석열이 복수 위해 박근혜 탄핵 주도? '극우' 주장
우선 '박영수 특검'은 박지원 당시 국민의당 원내대표가 추천하고, 박근혜 당시 대통령이 승인함으로써 활동을 개시했다. 특검은 네 개의 조직으로 나뉘어 세 명의 특검보와 한 명의 수사팀장이 업무를 담당하는 조직이었다.
윤 전 총장은 당시 살림살이 담당이었고, 대기업들의 뇌물 공여 여부만 따지는 입장이었다. 물론 몇몇 기사에 따르면, 2007년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경선 당시 논란이 된 '조순제 녹취록'의 내용에 대해서도 조사를 한 것으로 보인다. 조순제는 최태민의 의붓아들이다.
최태민과 박 전 대통령의 오래된 관계에 대한 조순제의 증언록 전문을 검토함과 동시에, 그 자료를 취득한 정두언 전 새누리당(현 국민의힘) 의원을 만나 전반적인 상황에 대해 들어본 것이다.
당시 많은 언론은 최서원(최순실)이 박 전 대통령의 자산을 차명 관리하면서 자신의 것으로 착복했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었다. 생전의 조순제는 자신의 친모인 임선이와 최태민이 박근혜 영애를 만나기 전에는 경제적으로 궁핍했으나 그 후에 갑자기 부가 불어났다고 증언한 바 있다.
朴 탄핵, 촛불집회→언론 보도→특검수사
박근혜-최서원(최순실) 게이트를 여의도를 강타하는 정치적 쓰나미로 몰고 간 배경에는 ①촛불집회 ②언론의 연이은 단독 보도가 있었다. ③특검의 수사 내용은 사실 부차적인 요인이었다. 대부분의 콘텐츠가 언론에 공개되지 않았고, 실제로 특검이 기소한 혐의사실 중에도 상당 부분 재판 과정에서 무죄 처분을 받은 것들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윤 전 총장을 비롯한 검사들은 사법 행정 담당자로서 그들의 일을 했을 뿐, 2016년 12월의 '박근혜 탄핵'이라는 파국으로 가기 위한 기획을 했다고 보기엔 무리가 있다.
오히려 국회에서 대통령 탄핵의 요건을 성립시킨 결정적 이벤트가 일어났다. 추미애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김무성 비상시국회의(새누리당 내 탄핵 촉구파) 대표가 만나서 박근혜 대통령의 '행상책임'이라는 개념을 발굴해 낸 것이다. ※행상책임(行狀責任)=법률 형사 책임의 근거를 직접적인 행위 책임만이 아니라 행위자가 여태까지 생활하는 동안에 법과 관련하여 어떠한 태도를 취했는가에서 구하는 경우의 책임.
당시 혁신과 통합 보수연합(새누리당 내 탄핵 반대파)에 소속된 김관용 경북지사, 김진태 전 의원 등은 "형사상 책임이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았는데 정치적 탄핵을 하는 것이 옳으냐"고 했다. 대통령이 직접 수뢰를 저질렀다는 정황이나 물적 증거가 나오지 않는데 그를 파면하는 것이 온당하냐는 주장이다.
따라서 추미애 전 대표와 김무성 전 대표는 국회 탄핵이 사법적 행위라기보다는 정치적 행위라는 점에 착안하여 '행상책임'이라는 개념을 성립시켰다. 가령 민간인인 최서원(최순실)에게 취임식 연설문의 감수와 최종안 결정을 맡기는 모습 등은 국가의 최고 지도자로서 직무유기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자신의 측근이 기업들을 을러대고 용역으로 대가를 취하는 듯한 상황을 방조한 것도 최고 지도자로서 결격 사유가 될 수 있다.
朴 탄핵은 국회의 정치적 이벤트…추미애·김무성 作
대통령이 왕이 아니라 공무원임에도 불구하고 정상적으로 청와대 본관에 출근하지 않는 모습 역시 행상책임 방기로 볼 수 있었다. 다만 이 경우 성문법인 대한민국의 법이 행위가 아닌 태도에 책임을 묻는 모양새가 될 우려가 있었다. 잘못을 저지른 결과가 분명히 드러나야지, 그 의도와 배경만 보고서 누굴 징계하는 게 마땅하냐는 논란이다.
'체제 탄핵론'과 '윤석열 반역자론'의 또 다른 골격은 박 전 대통령 구속에 영향을 미친 책임성 논란이다. 많은 우파 지지자들이 윤석열 당시 대전고검 검사가 박 전 대통령을 감옥에 넣도록 상황을 만들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헌법재판소에서 파면된 대통령을 구속하도록 조치한 인물은 김수남 전 검찰총장이다. 그는 박 전 대통령과 오래된 악연이 있는 사람이다. 부친 김기택이 영남대 총장을 지내면서 1988년 '영남대 입시비리'와 관련된 검찰 조사 중에 결정적 증언을 했기 때문이다. 그 일로 박 전 대통령은 영남대 이사장을 그만두어야 했다. 김기택 전 영남대 총장은 '조순제 녹취록'이 뜨거운 감자였던 2007년 한나라당 경선 당시 친이계의 원로로 활약했다.
"朴은 왕이 아니고 尹은 朴 구속을 주장한 적 없다"
이런저런 점들을 종합해 봐도 '박근혜 탄핵'을 추동한 반역자가 윤 전 총장이라는 주장은 견강부회로 보인다. 아마도 그가 적폐수사를 주도했다는 것 때문에, 박 전 대통령이 영어의 몸이 된 사실 자체를 '윤석열 탓'인 것으로 돌리고픈 집단의 심중이 작동한 것 아닐까. 안타깝지만 박근혜는 왕이 아니고, 윤석열은 박근혜 구속을 주장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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