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부경(天符經)
글쓴이: 금소영당/김현숙
천부경(天符經)
단기4249년(AD1916년), 계연수(桂延壽)가 묘향산에서 수도를 하던 중, 암벽에 새겨진 글을 발견,탁본하여 서울 단군교에 전하므로써 천부경이 처음 세상에 알려졌다. -대종교(大倧敎) 경전의 하나-
<대종교요감 大倧敎要鑑>에 따르면, "천부경은 한배검께서 홍익인간이념으로 천하만민을 교화하기 위하여 조화의 원리(우주창조의 이치)를 81자로 풀이한 진경(眞經)으로, 1에서 10까지 수리(數理)로 천,지,인(天·地·人) 삼극(三極)의 생,장,노,병,몰(生·長·老·病·歿)의 무한한 반복경위를 설파한 것"이라고 한다.
천부경은 우주의 생성소멸 이치를 "일(一)에서 삼(三)으로, 삼(三)에서 일(一)로" 라는 "일-삼, 삼-일" 원리"의 상수(象數)이론으로 간단명료하게 정의하고 있다. 이는 대종교의 '삼신일체(三神一體), 삼진귀일(三眞歸一)' 교리를 말하는 것으로, 신도(神道)차원의 홍익인간세계 건설과 인간차원의 광명세계(光明世界) 구현을 수리(數理)로 표현한 철학지침으로서,인류 역사상 유일무이한 정신개벽 천어문(天語文)이며,노자,석가,공자,예수 등 세계 모든 종교사상의 모체가 된 문명(文明)사상이다.
민안부(閔安富) 농은(農隱)유집 천부경(은허 갑골문과 같은 글자 다수)
농은유집 천부경을 발견하기 전까지 알려진 천부경은 모두 네가지였다.
1. 계연수가 발견한 묘향산 석벽본, 2. 최문창전집 '고운(孤雲,최치원)선생 사적'편에 나와있는 최고운 사적본, 3. 노사(盧沙) 기정진(1798∼1876)으로 전유하여 내려오던 노사전본, 4. 조선조 이맥(李陌)의 <태백일사(太白逸史)>에 실려있는 태백일사본.
이중,태백일사본과 묘향산석벽본은 전문이 일치하며,현재 가장 많이 인용되고 있다. 그러나,태백일사본,묘향산석벽본은 농은유집 천부경과 네 곳에서 차이를 보인다.
하나: 석삼극(析三極)과, 신삼극(新三極)의 新(새로울 신), 둘: 무궤화삼(無櫃化三)과, 무궤종삼(無櫃從三)의 從(좇을/나아갈 종), 셋: 대삼합(大三合)과, 대기합(大氣合)의 氣(기운 기), 넷: 칠팔구운(七八九運)과, 칠팔구충(七八九衷)의 衷(가운데/통할 충).
신지 녹도전자 천부경 -중국 산동성 백수현의 창성조적서 비문과 북한의 법수교 비문(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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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은유집(農隱遺集) 천부경(天符經)[펌]
일시무시일 신삼극무진 一始無始一 新三極無盡
어떤 변화도 있기 전의 상태를 하나라고 하면, 하나가 시작인 것인데 그 시작이 바로 무이다. 하나가 세 부분으로 나누어지며 새로워지는 모습이 무의 진행하는 방식이다.
무(無),농은 천부경,갑골문
천부경의 옛 글자 "무(無)"를 보면, 하나가 내려오다가 셋으로 나누어지고, 옆의 두 가지에서는 다시 셋으로 나누어지는 모습을 하고 있으면서, 가운데는 밑으로 쭉 내려와서 다음 단계의 위치정도에서 둘로 나뉜다.
이것이 처음의 하나인 무극에서 음양중인 셋으로 분화된 후에, 음양은 지속적인 변화에 참여하여서 다시 음양중으로 분화하고, 중은 그대로 머무르는 상태를 설명하는 것이다.
그런데 음양중 셋이 공간이라는 넷에서 회전하는 일이 생기는데, 음양이 먼저 회전하는 상태가 되어서 오행이 생겨나게 된다. (.......)
[펌]☞ 새누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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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골문은 배달민족의 환국문자(桓國文字)다.
무(無),농은 천부경,갑골문
천부경의 갑골문 "무(無)"자를 보면,
하나가 내려오다 셋으로 나누어지고, 양쪽 두 가지에서 다시 셋으로 나누어지면서, 가운데는 밑으로 쭉 내려와 다음 단계에서 둘로 나뉜다.
이것이, 처음 하나인 무극에서 음양중 셋으로 분화한 후에, 음양이 지속적으로 변화하여 다시 음양중으로 분화하고, 중은 그대로 머물고 있는 상태를 그림으로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이상으로 미루어, 갑골문자 (무)는 무에서 유로 분화,발전하는 우주의 창조과정, 즉, 천부경 1-3, 3-1원리를 해설하기 위해 만든 그림글자(象形文字)라는 사실이 확인되는 것이다.
삼태극,易數8괘, 천부경,분화,회전, 삼태극,분화,회전,귀일 우주창조,일삼,삼일 천부경,일시무(無)시일
무(無) = 삼태극,1+2+3 = 역수(易數),1+2~8+9(무한) = 0(영,空,時)
천부경은 환인천제의 가르침으로서, 갑골문자는 9천년전 환국에서 창조된 배달민족의 글이며, 3태극,주역 역시 무에서 유로 확장되는 천부경 일삼원리를 해설한 대한민족의 우주창조사상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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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부경(天符經)』대종교(大倧敎)
천부경은 글자의 뜻 그대로「한울 보람[天符]」 곧 한울의 신비를 암시한 글인데 하나로부터 열까지의 수리(數理)에 의하여 천지창조(天地創造)와 그 운행의 법칙, 또는 만물의 생장성쇠(生長盛衰)하는 원리를 여든 한자의 짧은 말씀으로 가르치신 것이다.
우주와 인생이 한얼님의 조화신공(造化 功)으로 되었고 한울 · 땅 · 사람의 삼극(三極)도 그 근본에 있어서 동일한 것이며 또 사람의 마음이 태양에 근본하여 한울과 같다는 그 원리[天人一理]를 가르치시었다.
그리고 천체(天體)의 무형(無形)함이 원적(圓的)으로 되어 있고, 그 운동의 궤도(軌道)도 원형(圓形)으로 운행함과 같이 사람의 참 성품[眞性]도 이 원형을 본떠 작용한다는 것이다.
우주의 만유(萬有)는 하나마저 없는 데서 이치[理]를 일으켜 다시 기운[氣]을 타고[稟] 바탕[質]을 갖추고 모습[形]을 갖게 된다. 이 점은 한울이나 땅이나 사람이 창조된 순서는 다르다 할지라도 그 다함 없는 본체(本體)에 있어서는 다를 바 없다. 그러므로 쓰임[用]의 변화는 있을망정 근본(本)의 움직임은 없는 것이다.
이 움직임이 없는 근본을 주체[體]로 삼고 나고[生], 되고[化], 이루는[成], 변화를 쓰임[用]으로 삼아 한울과 땅과 사람과 물건의 모든 원리를 밝힌 것이 곧 「천부경(天符經)」에 나타나 있는 하나[一]로부터 아홉[九]까지의 수를 풀어 나가면 열[十]은 완성된 마감 종수(終數)이기 때문에 이를 제외하면, 하나{一]는 수의 시작이고 원(圓)의 약수(約數, 率)이며 우주의 본체수(本體數)를 뜻한다. 곧 상대가 없는 절대수(絶對數)이기 때문에 하늘을 가리키므로 계수(計數)보다 의미로 보는 하나가 된다.
그러므로 공자는 나의 도는 하나로써 꿰뚫는다[吾道一以貫之]고 했고, 석가는 만 가지 법이 하나로 돌아간다[萬法歸一]했으며, 노자는 하나는 둘을 낳는다[一生二]했고, 대종교(大倧敎)에서는 세 참함이 하나로 돌아간다[三眞歸一]라고 한 것이다.
둘[二]은 방(方)의 약수(約數)로서 하나가 낳는[生] 수라면 둘은 자라서[長] 변화하는 화수(化數)이다. 그러므로 하나가 하늘을 뜻하면 둘은 땅을 의미한다. 하나가 둥근 수라면 둘은 네모진 수요, 하나가 양(陽)이라면 둘은 음수(陰數)이다.
셋[三]은 각(角)의 약수(約數)로서 이루어지는 성수(成數)이다. 둘이 땅을 뜻한다면 셋은 사람을 의미한다. 또한 셋은 돌고 돌아 다함이 없는 수이다. 그러므로 하늘과 땅의 이치는 하나로써 떳떳함을 삼고 셋으로 변함을 삼는다[天地之理以一爲尙, 而以三爲變]이라 하였다. 이 셋이 아니면 하느님의 신공(神功)이 이루어질 수 없어 만물이 완전하지 못하고 삼일(三一)의 진리도 성립되지 못한다.
넷[四]은 방(方)의 주체되는 체수(體數)요, 만물이 이루어진 작용을 외형적으로 나타내는 수이다. 그러므로 방위에는 동서남북의 사방이 있고, 계절에는 춘하추동의 사시(四時)가 있고, 사람의 몸에는 팔, 다리 사지(四肢)가 있다.
다섯[五]은 선천(先天)의 중궁(中宮)을 차지한 수로써 넷이 만유가 이루어진 작용을 나타내는 수라면 다섯은 생성(生成)의 형태를 차지한 수이다. 그러므로 하늘과 땅과 사람에게는 물[水]·불[火]·나무[木]·쇠[金]·흙[土]으로 오행(五行)의 기운이 있고, 도(道)에는 어짊[仁]과 옳음[義]과 예(禮)와 지혜[智]와 믿음[信]의 오상(五常)이 있으며, 빛[色]에는 푸른 것[靑]과 누른 것[黃]과 붉은 것[赤]과 흰 것[白]과 검은 것[黑]의 오색(五色)이 있고, 맛[味]에는 신 것[酸]과 짠 것[鹹]과 매운 것[辛]과 단 것[甘]과 쓴 것[苦]의 오미(五味)가 있고, 내장(內臟)에는 염통[心臟]·간장(肝臟)·지라[脾臟]·허파[肺]·콩팥[腎臟]의 오장(五臟)이 있으며, 사람 몸의 손과 발가락도 오지(五指)로 되어 있다.
여섯[六]은 원(圓)의 주체와 쓰임[體用]을 겸한 수로써 우주의 원소(原素)인 하늘[天]·불[火]·전기(電氣)·물[水]·바람[風]·땅[地]의 육대(六大)를 대표한 수이다. 그러므로 만유의 어미[母]인 노음수(老陰數)에 해당되며 성수(成數)인 셋의 배수(倍數)이기도 하다.
일곱[七]은 만유의 생성된 부문을 상징하여 나타내는 수이다. 그러므로 하늘에는 일·월·화·수·목·금·토(日月火水木金土)의 일곱 성계(星界, 七曜)가 있고, 무지개[虹]에는 일곱 빛[七色]이 있으며, 사람 머리에는 귀[耳]·눈[目]·입[口]·코[鼻]의 일곱 구멍[七竅]이 있다.
여덟[八]은 방(方)의 쓰임 수[用數]로 그 체수(體數)인 넷의 배수(倍數)이며 역(易)에서 말하는 태음(太陰)·태양(太陽)과 소음(少陰)·소양(少陽)이 변성(變成)한 수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괘(卦)는 여덟으로 이루어진다.
아홉[九]은 각(角)의 쓰임 수[用數]로서 셋의 초승수(初乘數)요, 여덟이 입체적(立體的) 수라면 아홉은 각추적(角錐的)인 역할을 하는 수이다. 넷과 짝하여 노양(老陽) 수를 이루며 그리고 수의 가치로 제일 윗자리가 되고 성수(成數)의 가장 높은 수이다. 그러므로 음양학(陰陽學)에는 구궁(九宮)의 법칙이 있고, 사람 몸의 위아래에는 아홉 구멍[九竅]이 있는 것이다.
대체 이 수에 있어서 하나[一]와 다섯[五]과 일곱[七]은 형상으론 원(圓)이 되고 그 쓰임에는 고르게 변화함을 나타내고 뜻으로는 중심이 되며, 셋[三]과 여섯[六]과 아홉[九]은 운동과 성립을 뜻하고, 둘[二]과 넷[四]과 여덟[八]은 나눔과 형상을 나타내는 수이니 일삼오칠구(一三五七九)의 양수(陽數)는 시간적인 것을 의미하여 움직임을 상징하고, 이사륙팔십(二四六八十)의 음수(陰數)는 공간적인 것을 뜻하여 고요함을 표상(表象)하는 수이다.
『천부경(天符經)』해설(解說)
하나이란 우주의 근본이요, 만유의 비롯되는 수이니 이 하나보다 먼저 비롯됨은 없느니라. 이를 분석하면 한울과 땅과 사람의 삼극(三極)이 되지만 그 근본은 다함이 없느니라. 이 한울의 근본인 하나는 창조과정에서 있어서 첫째 번이 되고, 땅의 근본인 하나는 그 둘째 번이고, 사람의 근본인 하나는 그 셋째 번에 되었느니라. 이 만유의 비롯인 하나를 쌓아 나가면 열까지의 끝수에 이르도록 커지되, 아무 부족함이 없이 성수(成數)인 셋으로 화하나니 한울의 음(陰)과 양(陽)인 두 가지는 셋이란 성수의 자리에서 되었고, 땅의 음·양 두 원소(元素)도 셋의 자리에서 되었으며, 사람의 음·양 둘도 이 셋이란 자리에서 이루어졌나니 이 삼극(三極)의 큰 셋을 합하면 육대(六大)의 여섯이 되나니 이 여섯에서 일곱과 여덟과 아홉이 낳아지느라.
셋과 넷으로써 한울과 땅이 운행(運行)을 하며, 여섯을 중심으로 그 앞뒤에 있는 다섯과 일곱으로 서로 가락지와 같은 원형(圓形)을 이루는지라 이 근본과 비롯이 되는 하나는 오묘하게 불어서 우주 사이에 만 번 가고 오되, 그 쓰임은 변하지만 근본은 움직이지 않느니라. 이 근본이라 곧 마음이니 이는 태양에 근본하여 사람의 중심에 밝게 비치니 사람의 근본은 한울과 땅과 같으니라. 하나란 근본으로 돌아가면 마침이 되나니 하나에서 더 마칠 수는 없느니라.
天符經
一始 始一 析三極 盡本 天一一 地一二 人一三 一積十鉅 ?化三 天二三 地二三 人二三 大三合六 生七八九 運三四 成環五七 一妙衍 萬往萬來 用變不動本 本心本太陽昻明 人中天地一 一終 終一
일시(一始)의 일은 이치의 근원이요, 생명의 근본이요, 수의 비롯이 되는 까닭에 이 일(一)보다 먼저 비롯될 수는 없다. 또 이 일의 비롯을 무( )로 보는 해설도 있으나 일(一)을 역(易)에서와 같이 태극(太極)이라 한다면 무( )는 곧 무극( 極)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이 무극은 태극과 달리 음·양의 동정(動靜)이 없는 때를 말함이요, 사실상 일이란 이치와 일과 물건의 비롯이 된다.
비유하면 어머니의 뱃속에 있는 태아(胎兒)는 이름도 없고 성적 구별도 하기 어렵다. 그러나 한 번 어머니의 뱃속에서 이 세상에 나오면 이름도 지어지고 남자와 여자의 구별이 갈라진다. 이 아이는 다른 아이가 아니오. 그 태반에 있던 아이인 것과 마찬가지이다.
한울과 땅과 사람은 그 이름과 작용은 비록 다르다 할지라도 이치와 근본에 있어서는 다를 바 없다. 한울의 도[天道]는 창조함을 주장하고, 땅의 도[地道]는 변화시켜 기르는[化育] 것을 주장하고 사람의 도[人道]는 이를 본받아 행함[效行]을 주장한다. 이 창조와 화육과 효행의 작용은 다르지만 그 삼극의 근본됨은 마찬가지인 것이다. 그러므로 이 근본은 시간적으로 무진( 盡)하고 공간적으로 무궁( 窮)하다. 한울과 땅과 사람은 그 근본되는 이치는 같다할지라도 창조의 과정에 있어서는 차서(次序)가 다르다.
그러므로 음양학에서 한울은 자(子)에서 열리고, 땅은 축(丑)에서 열리고, 사람은 인(寅)에서 나고, 만물은 묘(卯)에서 생겼다[天開於子 地闢於丑 人生於寅 物生於卯]함은 곧 창조의 시간적 차례를 말함이다. 그러므로 이를 숫자적으로 나타낸다면 한울의 근본인 하나는 그 첫째 번이요, 땅의 근본인 하나는 둘째 번이요, 사람의 근본인 하나는 셋째 번이 된다. 하나를 쌓아 열에 이르기까지 크다는 것은 꼭 열[十]이라는 수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수의 극한된 백(百), 천(千), 만(萬), 억(億)을 뜻하는 말씀이다.
또 부족함이 없이 셋으로 화한다는 것은 하나에서 쌓아 불어난 많은 수들은 결국 성수(成數)인 셋의 원리에 의하여 화성(化成)됨을 말함이니 지구상에 있는 수십억 인류도 이 셋이란 성수에서 이루어졌고, 저 푸른 한울에 있는 수백억의 별들도 다 이 셋이란 성수의 원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한울에도 음·양이 있고 땅에도 음·양이 있고, 사람에게도 또한 음·양이 있다. 한울에는 몸이 텅 빈 체허천(體虛天)과 이치가 보이지 않는 이공천(理空天)의 두 갈래가 있고, 땅에는 물·불[水火]의 두 상극(相剋)이 있고, 사람에게는 남·녀의 두 상대가 있는 것이다. 이 한울의 이치와 몸체는 둘이 서로 어울리어 천도(天道)를 이루었고, 땅의 물과 불은 서로 부딪쳐 육지와 바다를 이루어 지도(地道)를 다하였고, 사람은 남녀가 서로 만나 인륜을 지켜 인도(人道)를 빛내었으니 삼극에 있어서 상대성(相對性)의 원리가 아니면 그 도가 쉴 것이다.
그러므로 역(易)에서 한울과 땅이 자리를 정하고, 우레와 바람이 서로 부딪치고 산과 못이 기운을 통하고, 물과 불이 서로 마주치지 않는[天地定位, 雷風相搏 山澤通氣 水火不相射]다 함은 이 상대의 순리 작용을 말함이다. 그러나 삼극이 음·양 배합으로 이루어짐은 결국 삼차(三次)의 과정인 생(生)·화(化)를 거쳐 성(成)의 단계에서 완성되므로 이를 수로 표현하여 한울과 땅과 사람의 두 상대가 다 셋에서 이루어졌음을 천이삼(天二三)·지이삼(地二三)·인이삼(人二三)이라 한 것이다.
큰 셋이 합하여 여섯이 된다함은 우주의 만유는 한얼님의 신공인 대덕(大德)과 대혜(大慧)와 대력(大力)의 삼대(三大)로서 성·명·정(性命精)의 삼진(三眞)을 받지만 이것만으로서는 형체를 갖추어 세상에 태어나지 못한다. 그러므로 심·기·신(心氣身)의 삼망(三妄)이 뿌리 박혀서 비로소 육체를 완성하게 된다. 이 삼진과 삼망은 우주의 구성원소인 천·화·전·수·풍·지(天火電水風地)를 상징한 것으로 성품은 한울을 상징하고, 목숨은 불을, 정기는 전기를, 마음은 물을, 기운은 바람을, 몸은 땅을 제가끔 상징한 것이다. 이 육대원소에서 만유가 이루어짐은 천·화·전의 삼양(三陽)과 수·풍·지의 삼음(三陰)이 서로 합하기 때문이니 그러므로 천대(天大)·지대(地大)·인대(人大)의 세 음양이 합쳐서 여섯이 되고, 이 여섯인 모체(母體)에서 일곱과 여덟과 아홉을 낳게 된다.
역(易)에서도 세번 변하여[三變] 소성괘(小成卦)를 이루고 여섯 번 변하여 대성괘(大成卦)를 이루며, 이 음양배합인 여섯에서 나온 일곱은 소양(小陽) 여덟은 소음(小陰) 아홉은 태양(太陽)이라 하며 여섯은 태음(太陰) 곧 어미와 같은 것이다.
셋과 넷으로 운행한다 함은 한울에서 있어서는 천체(天體)의 운행을 말함이요, 사람에 있어서는 사지(四肢)의 운동을 말함이다. 한 계절(季節)은 석 달이요, 한 해는 네 철[四時]이며 팔다리는 모두 넷이요, 한 지체(肢體)의 마디는 셋으로 되어 있음은 삼변사분(三變四分)의 원리를 가졌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한울의 운행과 사람의 운동이나 그 운명(運命) · 운수(運數)에 이르기까지 무엇이 다를 바 있으랴!
다섯과 일곱으로 가락지 같은 원(圓)을 이룬다 함은 다석은 중궁수(中宮數)로 복판을 차지한 변화의 수[化數]이니 육칠팔구(六七八九)는 이 화수인 다섯에 일이삼사(一二三四)를 더한 것이다. 중궁이란 복판을 말함이요, 또 복판이란 원(圓)의 중심을 뜻한다.
일곱은 독양수(獨陽數)라 하는 바 육칠팔구(六七八九)의 수 중에서 여섯과 여덟은 음수요, 아홉은 셋과 셋을 곱한 양수이지만 일곱은 양수와 양수를 곱하여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일곱은 양중(陽中)의 양수라 하며 이 수는 한울에서는 태양을 상징하고 땅에서는 남방이칠화(南方二七火)를 상징한다. 이 불은 양중의 양물(陽物)로서 그 형상은 원(圓)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 다섯과 일곱은 여섯의ㅏ 앞뒤에 자리하여 항상 천운(天運)의 순환(循環)을 뜻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라고 하는 이 근본수는 주체에 있어서는 아무런 변화도 없지마는 작용에 잇어서는 천만 가지의 상태로 오묘하게 불어나간다.
그러므로 인류가 수없이 늘어나고 만물이 한없이 번식함은 다 이 하나의 작용이 있음으로서이다.
그러나 천지의 운행이 몇 억만 년을 지나도 사시(四時)의 차서(次序)는 변함이 없고, 만물의 생성변화(生成變化)가 이 땅 위에서 여러 가지 모습으로 일어나건만 그 근본원리에는 조금도 다름이 없다. 그러므로 하나가 묘하게 불어 만 번 오가더라도 작용은 변하고 그 근본은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근본은 곧 마음의 근본이요, 마음의 근본은 참 성품[眞性]이다. 이 성품이 태양과 같이 밝게 사람의 속마음에 비치면 마치 한울 복판에 태양과 같이 높이 솟아 우주를 환하게 비쳐줌과 같이 성품에 의지한 마음이 가달길을 돌이켜 참에로 돌아오나니 이같이 하면 사람은 천지으 ㅣ중간에서 그 근본과 도를 천지와 함께 할 것이다. 그러므로 오직 사람은 만물 중에서 영특하게 빼내어 위로 한얼에 합하고 아래로 뭇별에 응하는지라, 그 도는 천지와 같이 한다[惟人 秀於物上合 明下應星辰其道與天地參]함은 이 뜻을 가르친 것이다.
하나에서 마친다 함은 천운의 순환이 일년 중에서 동지로부터 일양(一陽)이 시작하여 다시 제자리로 환원(環元)함은 그 해의 돌아감을 마쳤다 함이요, 사람이 세상에 왔다가 타고난 근본 자리로 돌아감은 인생살이를 마쳤다 함이요, 물이 근원에서 흐르기 시작하여 바다로 들어가 태양의 열을 받고 수증기로 떠올라 비가 되어 다시 근원으로 돌아오는 것도 또한 흐름을 마쳤다 함이다.
이와같이 만가지 이치가 돌고돌아 제자리로 돌아가면 마침이니 이 근본인 하나에서 비롯하고 하나에서 마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마쳤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고 다시 영원히 계속되어 사실상 그 마침이 없으며, 또한 하나인 자리에서 더 나갈 수도 없고 이밖에 더 마칠 수도 없는 것이다.
『천부경(天符經)』주해(註解)
단군천부경(檀君天符經)은 신지전견어고비문(神誌篆 見於古碑文)하고 최문창후고운해기자(崔文昌候孤雲 解其字)하여 각우태백산(刻于太白山)하니 금안기문(今按其文)하면 간이오(簡而奧)하며 요이정(要而正)하여 여복희대역지리(與伏羲大易之理)에 막불문합이인회(莫不?合而湮晦)하되 심용개연(深用慨然)하고 상가주해(詳加註解)하여 이발기의(以發其意)하노라.
단군 천부경(檀君 天符經)은 신지(神誌)가 전자(篆字)로 옛 비석에 쓰고, 최문창후 고운(崔文昌候孤雲)이 그 글자를 풀어 태백산(太白山: 현 묘향산)에 새겼으니 이제 그 글을 상고하면 그 글이 간략하고 깊으며, 중요하고 바로 되어 복희(伏羲) 대역(大易)의 이치와 더불어 부합되지 않음이 없으되 어두움에 빠져 깊이 강개(慷慨)함을 느끼고 이에 자세히 주해를 더하여 그 뜻을 펴노라.
일시무시일(一始 始一)
도자일이이의(道者 一而已矣)라 고일위시이무시어일자야(故一爲始而 始於一者也)니라 상도지체(狀道之體)는 막여일(莫如一)하고 달도지묘(達道之妙)은 막여일(莫如一)오 일지의대의재(一之義 大矣哉)하도다.
도(道)란 하나일 따름이라 그러므로 하나로 비롯하되 하나에서 비롯됨이 없느니라. 도라고 이름하는 그 주체는 하나만 같음이 없고, 도에사무치는 그 묘함도 하나만 같음이 없고, 도에 사무치는 그 묘함도 하나만 같음이 없은 하나의 뜻이 크도다.
석삼극(析三極)
석분야(析 分也)오 극자(極者)는 천지인지지리야(天地人之至理也)라 계사왈(繫辭曰)에 육효지동(六爻之動)은 삼극지도야(三極之道也)라 도생일(道生一)하고 일생이(一生二)하며 이생삼(二生三)하여 지우삼이변화불궁(至于三而變化不窮)하므로 고왈삼생만물(故曰三生萬物)이니라.
쪼갠다 함은 나눔이요, 한 끝이란 한울과 땅과 사람의 지극한 이치라 계사(繫辭)에 이르기를 "육효(六爻)의 움직임은 삼극(三極)의 도라. 도는 하나를 낳고 하나는 둘을 낳고 둘은 셋을 낳아 셋에 이르러 그 변화가 다함이 없으므로 셋이 만물을 낳는다" 하였느니라.
무진본( 盡本)
일위천하지대본(一爲天下之大本)이며 이분지위삼극(而分之爲三極)하고 삼극기립(三極旣立)이니 만물함유차출(萬理咸由此出)하나니 이대본무유궁진야(而大本 有窮盡也)이니라.
하나란 천하의 큰 근본이며, 이것이 나뉘어 삼극이 되고, 또 삼극이 이미 서 있음에 만 가지 이치가 다 이로 말미암아 나나니 큰 근본은 다함이 없느니라.
천일일지일이인일삼(天一一地一二人一三)
시즉삼극야(是卽三極也)이라 천득일이위일(天得一而爲一)하고 지득일이위이(地得一而爲二)하며 인득일이위삼(人得一而爲三)이니 내일일지분야(乃一一之分也)라 고도일이재천위천도(故道一而在天爲天道)하고 재지위지도(在地爲地道)하며 재인위인도(在人爲人道)하나니 분지위삼극(分之爲三極)하고 합지위일본야(合之爲一本也)니라.
이것이 곧 삼극이라 한울은 하나를 얻어 하나가 되고 땅은 하나를 얻어 둘이 되고, 사람은 하나를 얻어 셋이 되니 하나를 한 번 함의 나뉨이라. 그러므로 도는 하나이되 한울에 있으면 천도(天道)도 되고, 땅에 있으면 지도(地道)가 되고, 사람에게 있으면 인도(人道)가 되나니 나누면 삼극이 되고 합치면 한 근본이 되느니라.
일적십거(一積十鉅)
일수지시야(一 數之始也)오 십수종야(十 數之終也)라 자일이시(自一而始)하여 적지위십칙거의(積之爲十則鉅矣)니라 하도지십수(河圖之十數)는 위천지조하지본야(爲天地造化之本也)이니 기리역위암합(其理亦爲暗合)이니라.
하나란 수(數)의 비롯이요,열은 수의 마침[終]이라. 하나로부터 비롯하여 쌓아 열이 되면 크니라. 하도(河圖)의 열 수는 천지조화의 근본이니 그 이치 또한 깊이 합하니라.
무궤화삼( ?化三)
일이적십(一而積十)하여 자차이진(自此而進)하면 천변만화(千變萬化)가 무유갈( 有竭)하니 이기본칙개유어삼극변화야(而其本則皆由於三極之變化也)니라.
하나에서 열까지 쌓아 이로부터 나아감은 천만 가지의 변화가 그 다함이 없으되 이는 다 삼극의 변화에 말미암음이니라.
천이삼지이삼인이삼(天二三地二三人二三)
일분위이(一分爲二)는 자연지리야(自然之理也)라 계사왈입천지도(繫辭曰立天之道)는 왈음여양(曰陰與陽)요 입지지도(立地之道)는 왈유여강(曰柔與剛)요 입인지도(立人之道)는 왈인여의(曰仁與義)이니 겸삼재이량지(兼三才而兩之)므로 고역대육획이성괘(故易六劃而成卦)니라.
하나를 나누면 둘이 됨은 자연의 이치라 계사(繫辭)에 이르기를 "한울을 세움의 도는 음(陰)과 양(陽)이요, 땅을 세움의 도는 부드러움[柔]과 억셈[剛]이요, 사람을 세움의 도는 어짐[仁]과 옳음[義]이라 삼재(三才=三極)를 겸하여 두 번 하나니 그러므로 역(易)은 여섯 그음[六劃]으로 그 괘(卦)를 이루느니라."
대삼합륙생칠팔구(大三合六生七八九)
일분위이(一分爲二)하고 이이배가어일(而二倍於一)하면 고왈륙(故曰六)이니 천지인각득기이(天地人各得其二)하면 이합지위륙(而合之爲六)하고 자륙이가일이삼(自六而加一二三)하면 칙생칠팔구의(則生七八九矣)라 개수지어구(盖數至於九)하면 이순환생(而循環生)하고 기용불궁언(其用不窮焉)하나니 낙서지구수(洛書之九數)는 위천지조화용야(爲天地造化用也)이라 기역여차암합(其亦與此暗合)이니라.
하나를 나누어 둘로 만들고 하나에 두 갑절씩 곱하므로 여섯이 되나니 한울과 땅과 사람이 제가끔 그 둘씩 얻어 합치면 여섯이 되고, 이 여섯에 하나와 둘과 셋을 더하면 일곱과 여덟과 아홉이 되는지라 대개 수는 아홉에 이르면 돌고 돌아 다시 나서 그 쓰임이 다함이 없나니 낙서(洛書)의 아홉수는 천지조화의 작용이라 그 또한 이와 더불어 깊이 합하니라.
운삼사성환오칠(運三四成環五七)
삼자(三者)는 극지본야(極之本也)요 사자(四者)는 자삼이생야(自三而生也)이니 시원화지위야(是原化之位也)라 고왈운삼사(故曰運三四)하고 육자(六者)는 삼극지대합야(三極之大合也)이오 칠자(七者)는 자륙이생야(自六而生也)이니 시역원화(是亦原化)라 이호위륙선(而五爲六先)하고 칠위륙후(七爲六後)하며 고왈성환(故曰成環)하여 기언합륙(旣言合六)하고 이우언성환(而又言成環)하니 칙불언륙(則不言六)은 이재기중의(而在其中矣)니라.
셋이란 끝남의 근본이요, 넷은 셋으로부터 나는 것이니 이것이 근본의 변화된 자리라 그러므로 셋과 넷으로 운행한다 이르고, 여섯이란 삼극의 크게 합침이요, 일곱이란 여섯으로부터 나는 것이니 이 또한 근본의 변화함이라 그러므로 다섯은 여섯의 먼저가 되고, 일곱은 여섯의 뒤가 되므로 가락지를 이룬다 함이니 이미 여섯의 합침을 말하였고, 또 가락지를 이룸도 말했으니 그 여섯을 말하지 않음은 뜻이 그 가운데에 있음이니라.
일묘연만왕만래용변부동본(一妙衍萬往萬來用變不動本)
중용(中庸曰)하기를 기위물불이(其爲物不貳)하면 칙기생물불측(則其生物不測)하니 불이자일야(不貳者一也)니라 일지묘운(一之妙運)이 추연무궁(推衍 窮)이라 산이만왕(散而萬往)하고 권이만래(卷而萬來)하니 왕자(往者)는 일본이수야(一本而萬殊也)이요 성자(成者)는 만수이일본야(萬殊而一本也)이라 기묘용지변화(其妙用之變化)하여 불가측도(不可測度)하니 이기위본(而其爲本)하여 칙미상(則未嘗)이 유소동작(有所動作也)이니라.
[중용(中庸)]에 이르기를 "그 물건됨이 둘이 아니면 그 물건의 남을 측량할 수 없다 하였으니" 둘이 아니라 함은 하나를 말함이라. 이 하나의 묘한 옮김이 미루어 불어서 다함이 없는지라. 흩어지면 만 번 가고, 걷으면 만 번 오나니 간다 함은 한 근본으로 만 가지가 다름이요, 이룬다 함은 만가지 다름으로 한 근본이라. 그 묘한 작용의 변화를 가히 측량하여 잴 수 없나니 그 근본이 되어 일찍이 동작하는 바 있지 않으니라.
본심본(本心本)
심지본(心之本)은 즉도지일야(卽道之一也)이라 고자인이언(故自人而言)하면 칙도지본(則道之本)은 역오심지야(亦吾心之也)라 기왈인자(記曰人者)는 천지지심야(天地之心也)하니 역차의야(亦此意也)이니라.
마음의 근본은 곧 도의 하나이라. 그러므로 사람으로 말하면 도의 근본은 또한 나의 마음의 것이라. 기록에 이르기를 "사람이란 천지의 마음이라" 하였으니 또한 이 뜻이니라.
태양앙명(太陽昻明)
심지광명(心之光明)이란 여천지태양(如天之太陽)이니 무소불조( 所不照)이라 맹자왈일월유명(孟子曰日月有明)하니 용광필조언(用光必照焉)하여 언도지유본야(言道之有本也)이니라.
마음의 광명이란 한울의 태양과 같아 비치지 않는 곳이 없는지라. 맹자(孟子)가 이르기를 "해와 달이 밝음이 있으니 빛을 써서 반드시 비친다" 하니 도의 근본이 있음을 말함이니라.
인중천지일(人中天地一)
천지인일야(天地人一也)라 인중어천지지일(人中於天地之一)하여 이위삼재야(而爲三才也)하니 인능불실기본심지일(人能不失其本心之一)하면 칙천지만물(則天地萬物)하여 본오일체(本吾一體)하므로 소위립천하지대본자(所謂立天下之大本者)는 득지어차의(得之於此矣)니라.
한울과 땅과 사람은 하나이라. 사람은 한울과 땅의 하나에 맞추어 삼재(三才)가 되나니 사람이 능히 그 본심의 하나를 잃지 않으면, 천지만물의 근본이 나와 일체(一體)가 되므로 이른바 천하의 큰 근본을 세우는 이는 이에서 얻음이니라.
일종무종일(一終 終一)
도자(道者)란 일이이의(一而已矣)이라 고일위종이무종어일자야(故一爲終而 終於一者也)니라 공자왈오도일이관지(孔子曰吾道一以貫之)하고 석씨왈만법귀일(釋氏曰萬法歸一)하며 노자왈득기일만사필(老子曰得其一 萬事畢)하니 정미지론(精微之論)을 복하이가어차재(復何以加於此哉)하랴.
도란 하나일 따름이라. 그러므로 하나로 마치되 하나에서 마침이 없느니라. 공자(孔子)가 이르기를 "나의 도는 하나로써 뚫는다" 하였고, 석씨(釋氏=釋迦牟尼)는 이르기를 "만 가지 법이 하나로 돌아간다" 하였고, 노자(老子)는 "그 하나를 얻으면 만사가 끝난다" 하였으니 그 정밀하고 미묘함을 다시 어찌 이에서 더하랴! 노주 김영의 근주(蘆洲 金永毅 謹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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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부경(天符經)-구름,이경숙 해설[편집]
一始無始一 析三極無盡本 天一一 地一二 人一三 一積十鉅 無櫃化三 일시무시일 석삼극무진본 천일일 지일이 인일삼 일적십거 무궤화삼
天二三 地二三 人二三 大三合六 生七八九 運三四成環五七 一妙衍 萬往萬來 천이삼 지이삼 인이삼 대삼합육 생칠팔구 운삼사성 환오칠 일묘연 만왕만래
用變 不動本 本心 本太陽 昻明人中天地一 一終無終一 용변 부동본 본심 본태양 앙명인중천지일 일종무종일
천부경은 세계 최초의 경전으로서,동양의 경전이자,세계의 경전이다. 천부경,참전계경(을파소) ,삼일신고는 우리나라의 3대경전이다.
천부경은 환인시절부터 있다가 훗날 환웅에게 전해진 삼부인 세개 중 하나인 거울(용경)에 새겨졌던 것인데, 환웅천황이 백두산 기슭에 신시를 개국한 다음, 백두산 동쪽에 큰 비를 세우고 거기에 글로 새겨 훗날 통일신라시대까지 전해져 왔던 것이다.
비에 새겨진 천부경은 훈민정음의 모체가 된 가림다로 새겨진 것이어서 통일신라 해동공자 최치원이 백두산에서 비석에 새겨진 글을 한자 여든한 글자로 번역하여 전해내려온 것이다. 여든한(81)글자로 우주의 법칙를 압축해 담은 번역문을 볼때 최치원의 학식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진리는 어려운 것이 아니고 어렵다면 이미 진리가 아니다. 천부경은 가장 단순하고도 명확하게 설명해놓은 글이다. 추측이나 가설의 여지가 없는 글자의 뜻 그대로 정확하게 읽을 수 있는 경전이다. 옛 환인천제시대 사람들은 아침저녁으로 천부경을 계송하여 왔건만, 단락구분조차 틀리니 노래운률에 맞추어 읽을 수가 없는 것이다.
天符經 천부경
♣ 一始無始一(일시무시일) ♣
한자의 뜻 그대로 풀어보면 "일은 시작되지 않고 시작된 일이며"라는 뜻이다. 그런데,이 일(一)이 무엇인가는 다음 문장에 나와 있다. 즉,
天一一地一二人一三(천일일지일이인일삼)이라고 천부경에 있는 그대로 해석하면 된다. 이문장의 뜻은 글자 그대로 읽으면 된다. 황당무계한 학설을 동원할 필요가 없이,
"하늘(天)의 수는 일일(一一)이요, 땅(地)의 수는 일이(一二)요, 사람(人)의 수는 일삼(一三)이다."
일(一)은 하늘을 뜻하는 수이다. 천부경에서 사용된 모든 일(一)이란 수는 하늘이고 이(二)란 수는 땅이며 삼(三)이란 수는 인간을 지칭하는 대명사이다. 누구나 뜻을 알 수 있도록 써진 천부경이다.
"하늘은 시작됨이 없이 시작된 하늘이니."라는 뜻이다.
최치원이 번역할 때 멋을 조금 부린 데가 있다. 즉,한시 형태를 따서 시종대귀법을 사용했다. 첫장과 종장을 댓귀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그래서 해석을 위해서는 첫문장과 마지막 문장을 붙여서 읽어야 한다.
♣<일시무시일 일종무종일>♣>
하늘 즉,"우주는 시작됨이 없이 시작되고 끝남이 없이 끝나니라"하고 우주의 생성원리를 한마디로 짤라서 말하고 있다.
천부경의 첫문장은 우주란 무엇인가에 대한 정의이다. 시작이 없는 우주,끝이 없는 우주.이것이 고대의 우리 선인들이 이미 밝혀놓은 우주의 실체이다. 이 여섯글자가 동양 우주론의 핵심이고 골자다.
반야심경이나 법화경,화엄경같은 공덕높은 설법의 자리라야 참석하는 천신이 있는데, 이분이 바로 환인천제시다. 불경을 보면 부처님 설법자리에 납시어 지켜보는 환인천제를 확인할 수 있다. 불경에 왜 환인이 나오는가?
역대 환인 중의 석제임환인이 바로 석가모니 부처님의 전생공덕 중의 하나였다. 이때의 인연으로 석씨성을 가지고 마침내 해탈하여 우주궁극의 원력을 보이는 석가모니부처가 되셨음이다.
머나먼 남국 인도에서 하필이면 신라에 공주를 보내어 부처님의 사리를 전했겠는가? 부처님의 전생 인연에 의한 귀향이었다. 지구 위에서 신라의 유적에서 발견되는 물고기 문양이 오직 인도와 바이칼호 부근에서만 발견되겠는가? 천계와 한민족과 불교의 혈연을 보여주는 증거들이다. 석가모니의 혈통이 아리안이 아니고 동이족이었다. 모든 초상화의 특징이 그것을 보여준다. 천부경을 만든 환인천제의 인연이 그대로 불가로 전해졌음이다.
천부경은 불경보다 5천년전에 만들어진 것이다. 한민족이 자신의 뿌리를 찾는 날 개벽이 있으리로다.
♣ 析三極無盡本(석삼극 무진본) ♣
여기서 쓰인 삼(三)은 사람(人)의 상징이 아닌 석삼(三)의 뜻이다. 여기에서 세가지 극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서 밑의 문장을 먼저 해석하는 것이 이해하기 좋다.
♣ 天一一地一二人一三(천일일 지일이 인일삼) ♣
천부경이 사용할 수에 대한 정의다. 하늘을 일이라는 수로, 땅을 이라는 수로 사람을 삼이라는 수로 대치해서 설법하겠노라 하는 말이다. 댓귀법을 쓰고 있으므로 같은 형태의 두 문장을 찾아 한꺼번에 보지 않으면 뜻이 숨는다. 같은 형태 문장이 네번째에 있다.
天二三 地二三 人二三(천 이삼 지이삼 인이삼)이 그것이다. 天一一地一二人一三(천일일 지일이 인일삼) 天二三地二三人二三(천이삼 지이삼 인이삼)
같은 형태의 두 문장을 나란히 붙여 놓으면 무언가 보인다. 천지인에 각각 네개씩의 숫자가 있다. 그것을 모아보면 다음과 같다.
천(天)에 사용된 수 : 일일이삼, 땅(地)에 사용된 수 : 일이이삼 인(人)에 사용된 수 : 일이삼삼, 천지인은 각각 고유의 수를 두개씩 가지고 있다. 천은 일을 두개 가지고, 지는 이를 두개 가지고, 인은 삼을 두개 가지고 있다. 그러면서 천지인은 자신의 고유수 외에 나머지 둘의 고유수를 하나씩 가지고 있다. 즉.
하늘은 땅의 수 이와 인의 수 삼을 하나씩 가지고 있고, 땅은 하늘의 수 일과 사람의 수 삼을, 사람은 하늘의 수일과 땅의 수 이를 가지고 있다. 즉, 하늘과 땅과 사람은 각각 자신의 고유한 성질을 나타내고 있지만, 각각은 나머지의 성질을 부분적으로 다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즉,
하늘은 하늘이면서 땅이고 사람이요, 땅은 땅이면서 하늘이고 사람 이며, 사람은 사람이면서 하늘이요 땅이라는 말이다.
천부경에 숫자가 사용된 이유는 난해한 주문이거나 해석하기 어려운 난문이기 때문이 아니라 수백 수천의 단어로 설명해야할 것을 압축하기 위한 방법에서 나온 것이다. 하늘과 땅과 사람이 모습이 다르게 보여도 천지인은 동일한 본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설명하고자 하면 아마 수십페이지는 필요할 것을 단 두문장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석삼극무진본(析三極無盡本)으로 돌아가자. "세극을 나누어도 그 본은 다하지 않는다"라 는 뜻이다. 삼극은 천지인(天地人)의 삼신(三神)을 뜻한다. 이 "삼극"에서 한사상의 삼신사상이 나왔고, 하늘을 양, 땅을 음, 사람을 중으로 보는 음양사상이 나왔다. 무진본은 무진장과 같은 뜻이다. 엄청나게 많아서 결코 다함이 없다는 뜻이다. 하늘과 땅과 사람으로 나 뉘어도 궁극적인 근본은 변함없다는 뜻이다.
천지인과 음양중의 삼극이 비롯되는 이 다하지 않는 본(本)을 태극(太極)이라 부른다. 불가의 진아일여(眞我一如). 한사상의 삼신합일(三神合一)이 우주본래의 자리, 태극이다. 곧 무진본(無盡本)인 것이다.
♣ 一積十鉅無櫃化三(일적십거 무궤화삼) ♣
"일이 쌓여서 십이 되는데 상자가 없어서 삼으로 변한다"
일이란 하늘이다. 삼은 사람이다. 해석은, 하늘의 정기가 쌓이고 충만해지는데 그것을 담을 상자(궤)가 없으므로 사람으로 변한다는 것이다. 인간은 하늘이 모습을 바꾼 것이다. 동학의 인내천이 바로 천부경의 가르침에서 나온 말이다. 사람 섬기기를 하늘과 같이 하라 했던 유교의 인본주의사상이 여기서 발원되었다. 공자가 동이족이었다는 것이 우연한 일이겠는가?
불가의 자재불성, 중생이 곧 부처란 사상이 여기서 나왔다. 하늘이 있고, 사람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창조주와 피조물이 나뉘는 것이 아니라 하늘이 변한 것이 사람이니,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궁극의 가르침이다. 이것이 일만년전 고대인의 종교관이었다고 누가 믿을 것인가? 우리민족의 종교적차원은 태양신을 섬기거나 창조주를 찾던 타민족의 그것과는 하늘과 땅민큼 격차가 있다. 유불선을 포함한 동양사상을 단 하나로 압축하면 바로 "인간"이란 두글자가 된다. 하늘의 기가 쌓이고 충만한 과정을 거쳐 인간(혹은 생명)으로 화한다는 이말은,우주에서 생명이 모습을 드러내는 원리를 극명하게 표현한 것이다. 현대과학이 생명의 탄생을 밝히게 되는 날, 과학자들이 이 이상의 말로 표현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인간이란 하늘을 담아 놓은 그릇(상자)이다.> 그 그릇을 함부로 가벼이 대해서야 되겠는가? 모든 사람이 다 하늘이다.
서양이 신본주의라면 동양은 인본주의이다. 사람이 곧 하늘인데 어찌 사람 밖에서 신을 찾을 것인가? 마음 밖에 부처가 있겠는가? 천부경의 전체 문장은 그뜻이 애매하거나 모호한 것이 한귀절도 없다. 모든 것을 가장 명료하게 분명한 문장으로 말하고 있다.
♣ 大三合六生七八九(대삼합육 생칠팔구) ♣
큰 세개를 더하면 육이된다. 큰 세개란 천지인 삼극이다. 즉 천의 일, 지의 이, 인의 수 삼을 합하면 육이다. 하늘의 수가 일일이삼 네가지였다. 땅의 수는 일이이삼, 사람의 수는 일이삼삼, 여기에서 천지인이 가지고 있는 고유수 하나씩을 빼면 1+2+3은 모두 6으로 같다는 말이다.
즉, 천지인은 동본이상(同本異象)이라는 말이다. 하늘의 수도 6이요, 땅의 수도 6이요, 사람의 수도 6이다. 따라서 천지인의 삼극이 모여있는 합일된 상태인 태극의 수가 바로 <666>이다. 삼극이 한자리에 모인 대삼의 수인 것이다. 천부경 81글자를 3개의 숫자로 압축하면 <666>이란 수가 나온다.
대립되는 예언서 요한계시록과 정감록을 대조분석하면 미래세의 방향을 알 수 있다. 요한이 계시록에서 기독교의 최후의 적을 <666>으로 상징되는 동양의 정신으로 보았고, 그 화신인 짐승들로 보았는데, 그 짐승들은 누구이겠는가?
청의자남래(靑依者南來)하니 성청원창해(城靑猿滄海)하고 사승즉비승(似僧卽非僧)이라. 서양의 그릇된 문화와 문명으로부터 우리의 정신세계를 지켜나가는 것이 정도령의 할 일이다.
우리가 승리해서 동양정신이 세계정신이 되는 날 "개벽"이 있을 것이고, 서양정신이 세계정신이 되는 날 "말세"가 올 것이다. "개벽"이냐 "말세"냐가 인류의 두 적자인 유대민족과 한민족에 의해서 판가름날 것이다.
♣ 運三四成環五七(운삼사성 환오칠) ♣
한자 그대로 읽으면 "삼이 움직여 사를 이루고, 오와 칠을 덮는다" 이다. 삼이 움직인다는 것은 석삼극, 즉 천지인 또는 음양중의 3극으로 나누어 진 태극은 고정되어 제자리에 있는 것이 아니고 서로 상생상극하며 돌게 되는데, 이것은 천지의 운행이고 음양의 회전이다.
삼극은 움직인다 (運). 이 삼극의 움직임이 만들어내는(成) 것이 사(四)다. 이 사가 바로 기(氣)이다. 기의 부실함은 바로 삼극의 움직임이 바르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기가 오와 칠을 둘러싼다(環). 오(五)는 오행(五行) 즉 모든 물질과 제반현상이고, 칠(七)은 칠기(七氣) 즉, 칠정(七情)인 마음이다.
태극이 나뉘어 삼극(삼신)이 되고 이 삼극이 조화로 운행하면 기가 생기며, 이가 몸(물질)과 마음(정신)을 같이 둘러싼다고 하는 음양오행의 이론적 시원이 여기서 나왔다.
♣ 一妙衍萬往萬來(일묘행 만왕만래) ♣
하늘의 움직임은 묘하고도 묘하여라. 삼라만상이 가고 오는도다.
♣ 用變不動本(용변 부동본)♣ 쓰임이 변해도 근본은 바뀌지 않고, ♣ 本心本太陽(본심 본태양)♣ 마음이 본래 밝은 빛이니, ♣ 昻明人 中天地一(앙명인 중천지일)♣ 사람을 우르러 비추어라. 천지중에 으뜸이니라.
지구상에 이보다 더 인간을 존중하는 사상은 찾아볼 수 없다. 해서 석가는 "천상천하에 유아독존"이라 표효했다. 한 생명이 우주만큼 소중한 것이었다.
일종무종일(一終無終一) "우주는 끝남이 없이 끝나니라."
두 주인공은 유대민족과 한민족이다. 지구상 모든 민족은 두 민족으로부터 뻗어나간 방계가족들이다. 물론 상고시대에 두 민족은 지구의 지배자였다. 한쪽은 아프리카와 남미와 대서양을 지배했고, 한쪽은 아시아 전체의 지배자였다.
세계는 두 민족이 움직여 온 역사이다. 유대민족의 기독교가 지구의 절반역사를 결정지었고, 배달민족의 한사상이 나머지 절반을 유불선으로 움직였다. 두 민족의 정신이 세계를 움직인 두 축이었던 것이다.
양대민족은 종교적으로 "선민사상"이라는 신에게 선택된 민족이라는 공통의식을 가지고 있다. 그들의 신은 아브라함의 신이고 모세의 신인데, 우리의 신은 환인이요,환웅이며 단군으로 이어졌다. 그들의 땅은 가나안이요, 우리 환인(하늘님)이 지정해 준 땅은 신시로부터 발원한 한반도였다.
두 민족만이 상고시대부터 바꾸지 않는 유대사상과 한사상을 유지시켜 왔다. . 두 민족만이 고등한 이념과 교리의 경전을 가지고 있다. 바이블과 3대성서(천부경, 삼일신고, 참전계경)가 그것이다. 두 민족만이 세계에서 유일한 예언서를 가지고 있다. 그들은 구약과 모든 세기이며, 우리는 신지와 정감록이다. 두 민족만이 유일하게 인류사 마지막에 대한 철학적 토대를 가지고 있다. 말세와 개벽이다.
유대인들은 잃었던 땅을 찾았고, 우리는 잃었던 역사를 찾고 있다. <땅을 잃고 영혼만으로 대지를 방랑하는자가 땅으로 돌아가고, 영혼을 잃고 땅에 뿌리박혀 울던 자가 영혼을 찾으면 그것이 개벽의 시작이리라>고 한 신지의 예언이 적중하고 있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바야흐로 두 주인공이 역사의 무대에서 단둘이 마주설 날이 다가오고 있다. 어느 쪽이 정의이며, 어느 쪽이 불의일까? 다음 역사가 그것으로 결정되리라.
<자유와 평등>은 인류를 몰락으로 인도할 것이고, <조화와 질서>가 인류를 질곡에서 끌어내는 구원의 밧줄이 될 것이다. 다음 세기의 개벽은 인류를 <조화와 질서>의 세계로 인도하게 될것이다. "음이 양을 지배하여 둘로 가르면 후천개벽의 징조이다." 신지의 이 예언은 무엇을 말하는가?
"양이 음을 초극하여 하나가 될 때 새로운 하늘이 열리리라." 이 예언은 통일한국이 남쪽의 천민자본주의와 북쪽의 교조사회주의를 동시에 극복해 갈 것임을 암시하고 있다.
타골이 말한 동양의 횃불이 불확실한 인류의 미래를 밝히게 될 것이다. 이것이 정감록이 말하고 있는 "개벽"의 요체다. 우리가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세계가 우리를 따라오게 될 것이다. 다음 세기는 찬란한 동양정신, 한사상의 세기다. 한민족은 인류사의 주인공으로 찬란하게 복귀하게 될 것이다.
천부경이 종교적인 경전으로 생각하는데, 신에 대한 말은 한마디도 없다. 불교의 가르침도 신은 종속적인 걔념에 지나지 않는다. 내세에 대한 이야기도 없다. 구원의 희망도 말하지 않는다. 그저 인간은 하늘, 즉 우주 그 자체라 말하고 있고, 우주는 시작도 끝도 없다고 말한다.
인간은? 태어남과 죽음이 없이 영원하는 우주이다. 우리민족은 우상을 세우지 않았던 민족이다. 불교가 들어온 이후에 불상이 세워지기 시작했다. 하늘에 제사 지내는 신성한 장소인 소도는 그저 평평한 마당에 작대기 하나(솟대) 세워 놓은 것이었다. 그 제사의 성격은 신에게 봉행하는 자리가 아니라 하늘님을 모시고 산사람들이 먹고 마시는 잔치였다.
인간을 벌하는 신이란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다. 세계의 모든 민족은 신앞에 죄의식에 사로잡힌채 두려운 심정으로 나아갔다. 한민족은 원래 신앞에서 더욱 명랑한 민족이었다. 신을 공경했지(敬天), 두려워하지 않았다. 신에 대한 공경은 인간에 대한 사랑(愛人)의 다른 방법이었다. 敬天愛人의 밝은 마음이 우리민족의 종교관을 형성한 것은 환인천제시절부터 이어져 내려온 천부경에 뿌리를 두고 있다.
신은 혼자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삼신이 함께 있는 것이었다. 그것이 천지인 삼신사상이다. 삼일신고야 말로 종교적인 모든 경전의 윗자리에 놓일만 하다. 해설: 구름 이경숙 [펌] 다음,신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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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부경(天符經)
천부경(天符經)의 유래(遺來)
천부경(天符經)은 천제한국(天帝桓國)에서 말로만 전해지다 한웅(桓雄)이 하늘에서 내려온 뒤 신지(神誌) 혁덕(赫德)에게 명하여 녹도(鹿圖)의 글로써 이를 기록케 하였다.
천부경도설(圖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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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부인과 천부경의 비밀 카페[펌]
p 지금 천부경 하면 모두들 一始無始一 로 시작해서 一終無終一로 끝이 나는 고운 최치원의 81 자를 천부경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진짜 천부경은 대략 6천년 전 당시 바이칼호 부근에 사시던 북방계 몽골리안 일족인 환한 부족의 지도자 '한한님' 즉 하느님 말씀이다. 이 하느님말씀은 당시 문자가 없었으므로 구전되 오다가 하느님의 아드님 환웅의 신하 신지에 의하여 인류 최초의 문자 신지녹도전자 (神誌鹿圖篆字) 16자가 만들어지고 이를 바위에 새겨 놓았다.
이것이 하느님 말씀이 변질되거나 윤색되지 않은 진본 천부경 이다. 그러나 이 신지녹도문은 천부인의 원방각과 일상 사물그림을 조합하여 추상적으로 만든 글자이고 또 일반들이 쓰라고 만든 글자라기보다는 제천의식에나 쓰이는 특수문자 였기 때문에 신지는 유기(留記)에 나오는 신획(神劃) 을 다시 만들고 이것은 나중 3세 단군의 신하 삼낭을보륵에 의하여 원시한글인 가림토(加臨土)가 되며 이것이 다시 일본으로 거너가 신대문자(神代文字)가 되고 또 다른 편으로는 중동 수메르 쐐기문자의 어머니가 되는가 하면 이것이 다시 인도까지 가서 현재 구자라트 지방의 부라미문자가 된다.
한편 신지녹도전자는 신지의 제자 창힐에 의하여 현재 중국 산동성 백수현의 창성조적서비 에서 보듯 글자가 추가되었고 이것이 발전하여 원시한자인 금문(金文)이 만들어지며 이 금문은 은허갑골문으로 발달하다가 중국인들의 말에 맞추어 진시황때 소전 대전(小篆 大篆)이 되고 이것이 더욱 발전하여 현재의 한자가 되었다.
이 가림토가 우리에게는 한자에 밀리어 사라졌던 것이 세종에 의해서 복원(字倣古篆)된 것이 현재의 한글이다.
그러니까 인류 최초의 문자였던 신지녹도전자는 숲속에 파묻혀 아무도 돌보는 이가 없다가 4천여년이 흐른후 신라말 어문학의 대성자인 고원 최치원에 의해 발견되고 최치원은 이것을 보고 위에서 말한 81 자의 시첩(詩帖)을 만든다.(更復作帖)
그러면 이 신지녹도 전자가 하느님말씀이고 이것을 신지가 녹도전자로 기록했으며 고운 최치원이 이것으로 시첩을 만들었다는 기록부터 보자.
근거문헌 * 천부경은 천제 환국에서 말로만 전해지던 글인데 환웅 대성존께서 하늘에서 내려오신 뒤 신지(神誌)혁덕(赫德)에게 명하여 녹도(鹿圖)문자로 기록케 하셨고 최고운치원(崔孤雲致遠)이 역시 이 신지의 전자(篆字)를 옛 비석에서 보고 다시 시첩으로 복원하여 세상에 전하게 된 것이다. (소도경전 본훈) (天符經天帝桓國口傳之書也桓雄大聖尊天降後命神誌赫德以鹿圖文記之崔孤雲致遠亦嘗見神誌篆古碑更復作帖而傳於世者 - 蘇塗經典本訓)
* 단전요의 - 태백산에 단군전비(檀君篆碑1.)가 있는데 글뜻이 어려워 읽기가 힘드나 고운이 번역했다. 그 글에 가로되 ... 최치원 81자 생략, (檀典要義 - 太白山有檀君篆碑佶?難讀孤雲譯之其文曰 ...)
* 단군의 천부경 신지의 전자(篆字)를 옛 비문에서 발견하고 최창후 고운은 그 글자를 풀어 태백산에 새겼는데 지금 그 글을 더듬어 보니 간소하고 오묘하며 요약되고 정확하여 복희씨의 큰 주역의 이치와 더불어 모호한 것이 아닌게 아니나 개연히 깊이 생각해서 자세히 주해를 하려는 것이 이 뜻의 발로이다.
우선 신지녹도문은 16자이고 이것은 입과 입으로 전한다는 구전지서(口傳之書) 이다. 그러나 최치원의 한문 81자는 우선 입으로 외우기에는 글자가 너무 많고 당시에는 한자는 커녕 아무런 글자가 없었으니 이 한자를 우리말로 번역하면 백사람이 해봐도 각자 한권의 책이 되며 또 그중 어떤 한권을 보더라도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이 난해한 긴 말이 과연 입과 입으로 전했다는 천부경의 구전지서가 될 수 있을까?
또 최치원은 신지녹도전자를 그대로 번역했다 하더라도 과연 그것이 진본 천부경을 그대로 번역한 것인지? 아니면 최치원이 나름대로의 천부경을 썼는지 우리도 신지녹도전자천부경을 해독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만약 그 신지독도문은 최치원 같은이나 해독할 수 있고 우리는 할 수 없다면 그건 글자가 아니다. 즉 신지의 임금이었던 환웅이나 신지의 친구들은 물론 지금 우리도 해독할 수 있어야 그것이 글자이다. 그리고 최치원이 그걸 해독하는데 한달이 걸렸다면 우리는 일년, 최치원이 일년이 걸렸다면 우리는 십년이 걸려서라도 해독할 수 있어야 그것이 글자란 말이다.
필자는 오랜 세월동안 신지녹도 천부경과 최치원의 81자를 연구하여 졸저 '천부인과 천부경의 비밀'이란 책을 내었고 수많은 강의와 독자토론 등을 통하여 검증을 받았다.
1. 하느님의 역사
지금으로부터 대락 6~7천 년전 신석기문명이 끝이나고 청동기문명이 시작될 무렵 지금 바이칼호 부근에는 북방계 몽골리안 일족이 살고있었다는 유물이 나오고 그때는 지금과는 달리 온화한 날씨로 풀과 사슴과 맘모스 등 초식동물이 많았다. 그 맘모스 유해는 지금 출토되고 있다.
그들은 신선과 같이 이심전심으로 살았기 때문에 말도 몇마디 되지 않았으며 글자도 필요없었다. 이는 지금 우리말의 뿌리를 추적해보면 알 수 있다. 그 무리는 환한 햇빛을 숭상하였고 그 무리들 중에 성자 한분이 게셔 그 무리를 지도하셨으니 그를 '환한님' 이라 했는데 이 환하다는것은 햇빛뿐 아니라 하늘의 정신적 빛까지 말하는 것이었다. (天上之光 桓, 地上之光 檀)
그러니까 환한님은 그 정신적 빛까지 하늘과 일치하여 그야말로 하느님이셨는데 이는 지금 기독교인들이 예수는 하늘의 섭리와 같으니 그를 하나님이라 하는 것과 같다.
환한님이 하느님이 된 것은 桓은 옛날에는 '한' 발음이 되어 지금 韓과 같았고 또 옛날 우리말에는 검둥이, 감둥이가 같은 말이듯 모음이 혼동되니 '환'이 곧 '한 이다. 또 환한님은 > 환나님> 하나님> 하늘님> 한울님 > 하느님이 된 것이고 지금 여호아라는 하나님은 불과 100년전 기독교가 들어오면서 하늘에서 가장 위대한 우리 하느님의 이름을 빼앗아 쓰고 있는 것이다. 한편 이 환한님은 '환님'이라고도 했는데 이 환님이 한자로 기록되는 과정에서 환인(桓因)이 되기도 했다.
2. 환웅(桓雄)이란?
환웅의 우리말 이름은 '환숫'이다. 즉 환한 무리의 '숫'이란 말인데 지금 우리 상식으로는 환웅이 숫컷이라면 매우 불경스런것 같지만 고대에는 숫은 가장 위대한 것이었다. 즉 이 '숫'에서 슷응 > 스승, 슷님 >, 슷님 > 스님등의 말이 나왔기 때문이다.
환숫(桓雄)이 서자(庶子)라는 것은 첩의 아들이 아니다. 당시는 결혼풍습이 생기기 전이니 본처고 첩이고 있지도 않았을 때이다. 당시는 사람도 짐승처럼, 즉 사자나 코리등 동물들은 숫컷 새끼가 어느정도 크면 근친상간을 막기 위해서 무리 밖으로 내어쫓드시 사람도 아들이 어느정도 크면 사내들 마을로 보내 외적으로부터 여자들 보호 등 훈련을 시키고 또 씨놀음 연습도 하는데 이 사내들 마을을 '사내들 무리마을'이라 하였고 이는 한자로는 서자부(庶子部)라 했다. 그래서 환웅을 서자(庶子)라 하는 것이다. 당시 종족번식 행위는 씨놀음을 해서 이긴 자가 그 강인한 유전자를 후세에 전한다. 이 씨놀음이 지금 씨름이 되었다. 그러니까 환숫은 이런 여건 하에서 하느님으로부터 천부인과 천부경을 받아가지고 고조선 개국지로 내려 오셨는데 이 천부인과 천부경은 씨줄과 날줄 같은 하나이다. 즉 서로 떨어질 수 없는 사이이다. 다시 말하면 천부인을 몰라가지고서는 천부경이 무엇인지 모르고 천부경이 아니면 천부인이 성립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지금 천부인을 빼놓은 채 천부경만 해독한 글들은 말이 되질 않는다.
3.천부인(天符印) 이란?
차츰 인구가 늘자 용감한 환숫님은 영토를 넓히려고 여러 군데를 답사하다가 마치 짐승과 같은 곰족(雄族)과 호족(虎族)이 사는 고조선유적지를 발견하고 여기에 새나라를 세우려고 환한님께 청한다. 이에 환한님은 쾌히 승락하시며 새 나라를 세우는데 근간이 될 수 있는 천지인의 표상 원방각(圓方角-ㅇ ㅁ △ ) 보물 세개를 내리시는데 이것이 바로 청동으로 만든 천부인(天符印) 이다. 환웅은 이것으로 신하 신지를 시켜 후에 우리 글자의 원형을 만드는데 그 기록은 유기에 신획으로 남아있다. *.....유기(留記)에 이르되 신획(神劃)이 일찌기 태백산의 푸른 바위의 벽에 있는데 그 모양이 ‘ㄱ’ 과 같으니 세상사람들이 이르기를 신지선인이 전한 바라 하며 혹자는 ‘이것이 글자 만듦의 시초가 된다’ 라고 하는데 그 획은 직일(直一)과 곡이(曲二)의 형상이며 그 의의는 관리통제한 형상이 있고 그 형태와 그 소리 또한 계획된 뜻에서 나온 것 같다.1)... - (소도경전)
후에 삼시랑 을보륵은 이 신획으로 가림토를 만들고 이것이 발전되어 일본 신대문자나 . 인도 구자라트 지방의 부리미문자가 되었고 우리는 세종이 복원하여 훈민정음을 만들기 때문에 우리 한글의 ㄱ ㄴㄷ ...ㅎ 속에는 천지인의 뜻이 들어있고 한자나 영어등 다를 글자에 비하여 그 체계가 완전히 다르다.
4. 천부경(天符經)이란?
한편 환숫이 천부인 세개를 받을 때 새 나라와 민족을 세우는데 꼭 필요한 교훈도 받는다. 그러나 그 교훈은 당시 말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매우 간단했고 또 글자가 없었으니 입과 입으로 전할 수 밖에 없었다( 口傳之書) 환숫은 이 교훈을 잊지 않으려고 그 무리와 함께 아침 저녁으로 외웠고 또 그 후손들에게도 대대손손 아기가 태어나 말을 배우면 그것부터 외우게 하였는데 이렇게 자주 외우다 보니 이것이 우리의 숫자 "하나 둘 셋 ...열"이 되었다. 그래서 이 數는 천부경의 體가 되었고 이것으로 개수,무게,부피,길이 등 제정에 쓰이는 用도 되었다. 즉 전에는 무의식, 본능적으로 개수 길이... 등을 짐작하던 것이 그때부터 완전 수의 개념으로 바뀌었다. 그래서 우리는 6천년이 지난 지금도 아기가 말을 배우면 그것부터 가리치는 데는 이는 비단 숫자만 가리치는 이외 이렇게 깊은 뜻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말이란 언젠가는 변질되거나 왜곡될수 있기 때문에 환숫은 신하 신지에게 명하여 그 말을 보관하는 방법을 명했고 신지는 사냥을 나갔다가 사슴을 놓치자 그 발자욱을 보고 사슴이 도망간 곳을 짐작 하다가 말의 보관도 이렇게 하면 될것이라고 글자를 만든다.(규원사화) 그래서 신지녹도전자가 만들어지고 이것을 바위에 새겨놓는데 이것은 제천의식때 등 의식에 쓰는 글자이지 일반이 쓰는 글자가 아니기 때문에 다시 먼저 유기에서 말한 천부인으로 신획을 만든다.
이 신지녹도전자 천부경 진본은 그후 아무도 돌보는 이 없이 숲속에 파묻혀있다가 약 1200년전 어문학의 성자인 최치원에 의해 발견되고 그는 이것을 해독하고 81자의 시첩을 남기는데 이 시첩속에는 一二三四...十의 숫자가 다 들어있는 숫자놀음이다.
그래서 세상사람들은 이것이 천부경으로 알고 이 81자 한문을 풀어 보려고 하는데 이것이 잘 풀리지 안으니까 하느님 당시에는 있지도 않았던 음양오행설이나, 또 81자는 숫자 뿐이라 하여 복잡한 수리학적으로 풀려니 아직까지 백 사람이 풀었으나 백 사람 말이 다 다르고 또 풀었다는 사람도 그 뜻이나 아는지 모를 소리를 하고 있다.
그렇다면 최치원81자가 왜 그리 난해한가? 최치원은 이것이 우리 숫자 "하나 둘 셋 ...열" 임을 알았다. 그러나 이것을 그대로 한자로 번역해놓으면 "一二三四... 十" 밖에 되지 않는다. 그리고 당시에는 우리글자 가림토가 다 없어졌을 때이니 우리말로 설명할 길이 없고 " 하나 둘 셋 ...열"이 그저 우리 숫자 인줄만 아는 시대이니 이렇게 되면 그 " 하나 둘 셋 ... 열" 속에 들어있는 심오한 뜻을 모르게 되기 때문에 직접 번역은 하지않고 피눈물을 흘리며 그 진본 천부경의 예찬시나 쓴 것이 바로 81자이다. 또 재미난 것은 이 최치원의 81자는 한자로 써있다고 하여 한자로 풀면 절대로 풀릴 수 없게 써 놓았다. 즉 한자지만 반드시 우리말을 찾아 풀어야 풀리게 써 있다는 말이다.
이는 一은 하나뿐 아니라 '하늘'이고, 二는 둘뿐 아니라 '두르다'이며, 三은 셋뿐 아니라 '사내인 사람'이고, 四는 넷뿐 아니라 '계집'이며, 五는 다섯뿐 아니라 '땅 위에 세우다'이고, 六은 여섯뿐 아니라 어미이며, 七은 일곱뿐 아니라 '사내의 진로'이고, 八은 여덟뿐 아니라 '열매인 계집과 자식'이며, 九는 아홉뿐 아니라 '압인 씨족의 울타리이고, 十은 열뿐 아니라 '열고 나가라'이다. 그러니 一二三...十을 단순한 숫자로 아는 당시 선비들에게 과연 이런 이론이 통할 것 같은가?
이렇게 우리 글자를 다 없애어 하느님말씀을 제대로 전하지 못하자 최치원은 당시 선비들을 엿을 먹이느라고 반드시 우리말로 풀어야만 풀수 있는 81자를 써놓고 후에 누군가가 이것이 한자로는 도저히 풀수 없으면 우리말로 풀라고 이렇게 쓴 것으로 본다. 그리고 당시 그 세태에 피눈물을 흘리며 81자의 시첩이나 썼다. 이 증거는 이 81자를 쓰고나서 만대 후에 기림토(한글)가 살아나면 그때를 기다리며 쓴 추야우중(秋夜雨中) 이라는 시만 봐도 알 수 있다.
秋夜雨中
秋風唯苦吟 가을바람에 오르지 괴로움을 읊어봐도...
최치원은 그의 천부경 예찬시 81자중 一積十鉅無?化三만 보더라고 더할 수 없는 성자다. 그런이가 여자가 그리워 괴로워 했을리도 없고 또 당시 임금님이나 나라때문에 걱정할 시기도 아니다.
여기서 秋風이란 쓸쓸한 가을바람 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秋風落葉에 쓰여지듯이 시체말로 한물간 것을 말한다. 그러니까 최치원은 당시 한물 가서 거들떠보는 사람조차 없는 우리 가림토 등과 하느님교훈인 천부경을 우리말로 풀어 설명해봐도 이는 秋風과 같은 공허한 메아리였다는 이야기이다.
世路少知音 세상에는 내마음 아느니 적네
그러니까 세상에는 자기 마음을 알아 주는이가 참으로 적다는 이야기이다. 만약 여자를 그리워했다면 世路라는 말이 들어가지 않는다.
窓外三更雨 창밖에는 밤늦도록 비만 오는데
역시 당시 자기 것을 멸시하고 오직 중국의 글자와 풍습만을 숭상하는 시대상황의 괴로운 마음을 한밤중 가을비로 표현하고 있다.
燈前萬里心 등불 앞에는 머나먼 마음뿐
여기서 최치원의 괴로움이 여자가 아닌 '우리 문자가 없어져 천부경을 제대로 설명할 수 없어 괴롭다'는 증거가 바로 萬里心이다. 萬里心이란 거리가 아니고 먼 마음이니 머나먼 후대를 말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만대 후에 누가 " 왕년에 최치원이 애인과 헤여지고 괴로워서 이런 시를 ?㎟립?" 하길 기대하고 이런 시를 ?㎱? 것 같은가? 이는 여자문제가 아닌 민족문제 이다. 그렇다면 먼 후대에 누군가가 16자의 '신지녹도전자 천부경'을 해독해보고 자신이 고육지책으로 81자의 시첩을 쓸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기대해 보는 것이라고 생각해볼 필요가 있지 안을까?
그러니까 지금 최치원의 81자를 천부경인줄 알고 한자 뜻대로 푸는 사람은 완전 착각이다. 즉 하느님 시대에는 그런 컴퓨터로나 풀수있는 숫자도 없었고 또 수천년이 지나서야 음양오행설의 원조, 팔괘의 복히씨가 나오니 당장 개국을 하려는 아들에게 그런 수천년을 기다려야 풀수있는 교훈을 주었을 리도 없고 또 입으로 전한다는 구전지서가 그렇게 길 수도 없다.
즉 최치원의 81자만 해도 외우기 힘이 든데 그것은 한자이니 이것을 우리말로 해석하면 백사람이 해석 했어도 그 단 한사람의 해석도 한권의 책이 되고 그 해석했다는 것도 모두 다르다. 이것을 과연 6천년전 조상들이 입과 입으로 전하라는 구전지서가 될 수 있을까? 그러니까 최치원의 81자를 천부경으로 알고 그것을 음양오행서로 풀어서는 독자들만 착각에 빠지게 한다.
그러나 최치원도 힌트는 주었다, 즉 一二三 은 하늘과 땅과 사람이라 했다. 그러나 그 뒤 四五六 ...十은 아무 설명이 없고 국어사전 백과사전 다 찾아봐야 소용없다. 그렇다면 우리 조상이 숫자를 만들 때 하나 둘 셋 까지만 그렇게 중요한 뜻이 있는 것으로 만들고 넷부터는 아무 의미가 없는 말로 숫자를 채웠을 것 같은가?
이는 하느님 당시의 말이기 때문에 지금 우리는 모른다. 그래서 필자는 현재 20만 어휘가 넘는 국어사전에서 순수한 우리말만 뽑아 모으다 보니 ㄱ ㄴ ㄷ ...ㅎ 속에는 각자 독특한 뜻이 들어있다는 것을 밝혀내고 그것으로 우리 뿌리말을 찾아보니 미약한 우리 상고사는 물론 위 四五六七八九十의 뜻을 알게 되었고 따라서 최치원의 81자는 천부경이 아니라 천부경 예찬시라는 것을 알았으며 따라서 신지녹도전자를 해독할 수 있게 되었고 그래서 졸저 '천부경과 천부인의 비밀'을 내고 그 책의 독자를 위하여 지금까지 '신지녹도전문 천부경해독'을 최치원 81자의 뜻과 함께 풀이해보니 정확하게 그 뜻이 일치되기에 자신있게 카페에 올렸고 여기서는 이것을 간단히 요약한다.
신지녹도전자 천부경 진본. 이것은 1940년 북한 영변지에 발표된 것인데 편집상 글자를 뉘어 놓았다. 그러나 옛글자는 모두 세워 놓아야 하고 또 지금 북한 법수교 아래 고천문이나 현재 중국 산동성 백수현에 있는 창성 조적서 비가 세로로 써 있음으로 이 글자도 세워 놓고 해독한다. 그 세로 세워진 것은 필자 카페에 있다.
아래는 글자가 세워져 있는 중국 산동성 백수현에 있는 창성조적서 비와 북한 법수교 비 인데 만약 필자가 위 신지녹도 전자 해독을 잘못했다면 다음 아래 비석글자도 읽을 수 없다. 그러나 같은 방식으로 읽으니 쉽게 읽을 수 있다는 것은 바로 위 신지녹도문 해독이 잘못되지는 안았다는 증거다. 이들 해독문은 필자 카페에 있다.
이것을 해독해보면 (왜 이렇게 해독되는가는 필자 카페에 들어가 보시라!) 고대문자인 원시한자 금문이나 원시 가림토 등의 해독까지 하다보니 책 한권의 양이 된다.
신지녹도전자 천부경은 단순한 숫자가 아니다. 그 속에 엄청난 뜻이 들어있는 하느님이 한민족에게 내린 교훈이며 축복의 말씀이다. 자세한 설명은 필자 카페에 있고 여기서는 간단히 體 즉 줄거리만 쓴다. (필자 주: 원시 말이나 글자는 지금 한자처럼 토나 접미사가 없다. 즉 一石二鳥 는 한자 뜻대로 하면 " 한 돌 두 새이다. 이것을 말이 되게 읽으려면 하나의 돌에 두마리의 새를 잡는다.로 토와 접미사를 붙여야 하고 또 여기서 잡는다 라는 말도 없으니 우리가 만들어 붙이며 이해해야 한다. 이와 같이 신지전자나 가람토 해석도 토나 접미사를 만들어 붙여야 한다.)
하나. 하늘이고 정신인 '한'이 둘. 물질인 땅을 둘러서 (물질의 옷을 입고) 셋. 사내를 세( 사+이+ ㅅ)우고 넷. 너(女, 너+이+ ㅅ)을 세워서 다섯. 다(땅) 위에 세(섯= 서+이 + ㅅ)웠나니(정착 시켰으니) 여섯. 어슷(母, 번성)되거라 일곱. 사내는 일구어 나아 가 여??. 여들ㅂ(열매, 겨집,자식)이 되니 아홉 . 압 (鉅, 씨족의 울타리)이 되면 열. 열고 나아 가라!
* 이것을 좀 쉽게 말을 붙이면
하늘인 정신 '한' 이 땅인 물질에 둘 리어 사내를 만들고 계집을 만들어 땅 위에 세웠으니 번성하여라! 사내는 가정을 일구고 그 열매는 집이 되어 계집과 새끼가 되니 씨족의 울타리가 완성되면 열 고 나가라!
여기서 아홉, 열 이 바로 홍익인간이다. 즉 자기 씨족들 끼리만 살면 근친상간이 되여 결국 종족이 왜소해지거나 멸종되니 자기 씨족의 울타리를 열고나가 남의 종족과 피를 교환하란 말이고 그래서 환웅은 이민족인 곰족과 피를 섞어 우리 종족을 만든다. 즉 서양인들 같았으면 이미 그 땅에 살고있는 인디언을 모조리 학살하고 자기네 나라를 세웠지만 우리는 그 이민족과 동화하여 우리민족을 세웠다. 이것이 제 일차 홍익인간이 이 지상에 전개된 위대한 사건이다.
이번에는 이 최치원의 81자가 왜 이 우리숫자의 예찬문인지 해석해 보자. 그런데 이 풀이를 이해하려면 먼저 신지녹도전자 해독 하나에서 열까지 다 읽은 다음에야 완전히 이해가 가므로 먼저 필자의 카페에서 그 글들부터 읽으실 것을 권한다.
최치원의 천부경 원문 81자
天 符 經 一 始 無 始 一 析 三 極 無 盡 本 天 一 一 地 一 二 人 一 三 一 積 十 鉅 無 ? 化 三 天 二 三 地 二 三 人 二 三 大 三 合 六 生 七 八 九 運 三 四 成 環 五 七 一 妙 衍 萬 往 萬 來 用 變 不 動 本 本 心 本 太 陽 昻 明 人 中 天 地 一 一 終 無 終 一
이것의 우리말 해독이다. 한자라고 한자의 뜻대로 해석하면 절대로 말이 안되어 온갖 음양오행설 수리학적 이야기가 나와도 말이 안된다. 그러나 한자의 뜻을 우리말로 해석하면 쉽고 아름답게 술술 풀린다.
天符經 하느님 교훈
一始無始一 '한' 은 '한'의 시작이 없는 데서 시작되었고
먼저 '하나에서 일(一)은 숫자 하나가 아니라 밝고 크고 흰 태양 이며 하느님인 우리 한민족이라는 우리말 '한'을 표현한 것이라 하였다. 이 한 속에 20 여개의 뜻이 들어있으므로 다시 한번 필자의 카페에서 신지녹도전자 해독 "하나"를 참조 하실 것
析三極 無盡本 분석하면 삼극인데 근본은 다함은 없다.
이 '한'속에는 天地人 삼극이 들어있는데 분석한다고 한의 실체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란 말이다. 다른 분들의 해석과 대동소이하다.
天一一 하늘의 첫째(핵심)는 '한 이고
여기서 天一은 하늘의 하나가 아니고 天神인 하늘의 핵심 , 즉 하늘의 첫째로 보고 다음 일( 一)은 '한'으로 해석한다.
地一二 땅의 첫째는 두름(周)이며
여기서도 地一은 땅 하나가 아니고 땅의 地神인 땅의 핵심, 땅의 첫째로 보며 다음 이(二)는 숫자 둘뿐이 아니라 우리말 땅이면서'두르다' (周)로 본다. 이역시 필자 카페 신지전자 천부경해독 '둘'을 참고하실 것.
人一三 사람의 첫째는 사내이다. 여기서도 人一은 사람 하나가 아니라 人神이며 사람의 핵심, 사람의 첫째로 보고 다음 三은 역시 숫자 셋뿐이 아니라 우리말 사람인데 사람 중에 사내이다. 고대에는 사람이란 모두 사내로 보았기 때문에 영어 man도 사람이며 사내이다. 三이 왜 사내인가는 필자 카페에서 '셋'을 참고하실 것
一積十鉅 한을 쌓고 업(鉅, 福, 아홉)을 열면
여기서부터 한자 해석대로 풀면 말이 안되어 헤매는 부분이다. 여기의 ' 一 ' 역시 숫자 하나뿐 아니라 우리말 '한'이고 십(十)은 숫자 열뿐이 아니라 우리말 열다(開)이며 鉅는 크다가 아니고 우리말 울타리 안의 씨족인데 아홉과 같은 뜻이다. 그러니까 一積十鉅는 한자 뜻의 해석대로 "하나를 쌓아 열로 커지면..." 한다면 말이 않되고 우리말로 풀어 "한을 쌓고 씨족의 울타리가 완성되면 이를 열라! " 해야 말이 된다. 즉 鉅는 단순한 '크다' 가 아니고 쇠금변이 붙어있으니 구거(鉤鉅),즉 낙시의 미늘, 철조망과 같은 울타리로 보아야 하며 이 말은 통감 한기에도 있는 말이다.
無櫃化三 궤가 없는 사람으로 승화한다 (대 자유인이 된다)
無?는 다른 사람들의 해석처럼 궤짝(울타리)이 없으니 자유이고 化三은 한자 해석대로 "숫자 셋으로 화한다" 가 아니라 우리말로 셋이 사람이므로 "사람으로 승화한다" 이다. 그러므로 여기의 뜻은 "대 자유인으로 승화한다"이다. 여기서 一積十鉅無櫃化三을 鉅는 씨족의 울타리이고 ?는 그것이 궤짝처럼 부자유한 것을 말하니 최치원이 다른 글자를 쓰지 않고 하필 鉅櫃라는 글자를 택한 심중을 헤아려야 한다.
그런데 여기서는 두가지 뜻이 있다.즉 필자는 자기 씨족의 울타리를 열고 타 씨족과 동화하는 것만으로만 생각했었다. 그러나 최치원은 역시 성자이다. 자기 씨족의 울타리뿐 아니라 자신은 정신인 하늘을 물질인 몸으로 둘러서 태어난 존재이니 자신의 몸둥이는 물론 돈이나 권력까지도 ?라는 감옥이고 그래서 그 감옥을 없앤다면 바로 신선의 세계로 간다는 것까지 말하고 있는 것이다.
天二三 하늘은 둘로 세워지고
여기서 한자 뜻대로 "하늘 둘은 셋이고..." 한다면 이역시 말이 않된다. 하늘이 실은 낯과 밤 그리고 별인 물질과 허공들으로 이루어졌으니 둘로 보는 것은 다른이들의 해석과 같으나 나중의 三은 셋이 아니고 우리말 "세우다" 이다. 즉 'ㅅ' 속에는 사람, 서는 것, 세우는 뜻이 들어있으므로 여기서 셋은 세우는 것이다. 이 이론은 필지에 졸저'천부인과 천부의 비밀'에 상세히 설명됐다. 다음 하늘은 하늘 혼자 있는 게 아니라 땅과 사람과 함게 세워졌다. 즉 이루어졌다는 말도 된다. 그러니까 하늘 속에는 땅과 사람도 있다는 말이다.
地二三 땅도 둘로 세워지며
이 역시 땅은 물과 육지 등으로 이루어졌으니 둘로 보는 것은 좋은데 나머지 三은 위와 같이 "세우다"이다. 또 위와 같이 땅 혼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땅 성분속에는 하늘과 사람이 있다는 말이다.
人二三 사람도 둘로 세워 지나니
사람도 남녀가 있으니 둘인 것은 사실이나 나머지 三은 위와 같이 세워지다 이다. 또 위 하늘과 땅과 같이, 사람 속에도 하늘과 땅이 들어있다는 말이다.
大三合六 큰 셋이 합한 어슷(母)은
큰 셋은 위에서 말한 天地人으로 이것이 둘씩으로 이루어졌으니 여섯이라고 할 만하나 이 여섯의 우리말은 어슷이고 뜻은 어미(母)이다.(思母曲이 엇노리) 그러니까 " 큰셋이 합한 여섯은 ...." 할 게 아니라 " 큰셋이 합해진 어미는..." 해야 다음 말이 이어진다. 이 부분의 자세한 설명은 역시 필자카페의 "여섯" 참조
生七八九 사내와 겨집과 압(업)인 씨족을 낳는데.
한자 뜻대로 여섯이 일곱 여덟 아홉을 낳는다고 해석하면 여섯에서 다시 하나 둘 셋을 더하면 된다는 등 초등학생 수학공부가 된다. 우리말 '일곱'은 사내가 일구어 나가는것, 여덟은 열매열린 들 즉 사내가 일군 결과로 겨집의 집이 되며 ,아홉은 남근이며 그래서 씨족의 울타리가 된다. 그러므로 六生 七 八 九 는 어미(번성)는 일구는 사내와 결과인 겨집(겨집女)과 씨족을 낳는다. 해야 한다. 이부분 자세한 풀이도 카페에서 일곱 여덟 아홉 참조
運三四 사내와 겨집을 운용하여
運은 운영, 또는 운용으로 보고 三, 즉 '셋' 의 우리말은 먼저 말한 대로 사람이며 그 핵심인 사내이고 四, 즉 '넷' 은 우리말로 겨집(女)이다. 이부분 자세한 설명도 "넷"을 참조
成環五七 중심인 어슷(6)은 땅에 세운 다섯과 일구는 사내를 낳아 동아리는 이루니
한자의 해석대로 다섯과 일곱으로 고리,즉 원을 만든다 하니까 5+7= 12라 하여 하느님이나 최치원시대에 있지도 않았던 둥그런 시계와 그 시간인 12시를 말하는 이도 있고 그게 말이 않되니까 음양오행설의 오행과 7요일, 즉 최치원 당시에도 없었던 요일을 말하는데 참으로 뚱딴지 캐먹는 이야기이다.
다섯의 우리말은 "땅에 세우다" 이고 일곱은 " 일구는 사내의 진로"라 했다. 여기의 중심은 어슷(여섯)인 어미인데 먼저 사내와 겨집(三四)이 운용(運)되어 땅에 세워(五)진 어미(六)가 되어 사내(七)를 낳고 겨집을 낳고 씨족의 울타리를 낳고... 이다. 成環은 고리, 또는 "동그라미"가 아니고 '동아리', 시체 학생들 말로 써클을 만든다는 이야기이다. 그러니까 成環五七은 三四五 (六) 七八九에서 三四와 八九를 생략한 것이다.
" 六生七八九運三四成環五七"은 가장 난해한 문장이니 다시 상세히 풀어보면, 여섯인 어미는 하늘(하나)과 땅(둘)이 만든 인간 셋,넷과 그 인간을 세우는 다섯과 인간의 진로를 말하는 일곱 여덟 아홉"의 중앙에 있다.
또 셋,넷,다섯,여섯에는 각자 ㅅ이 4개 붙고 여섯,일곱,여덟,아홉(업)에는 각자 ㅇ 4개와 ㅂ 3개가 붙는다. 여기서 열까지 한다면 ㅇ 이 5개가 되나 열은 하늘과 같이 열고 나가라는 뜻이 있기 때문에 인간을 말할 때는 제외된다.
여기서 ㅇ은 하늘 천부인이니 하늘과 같은 뜻이 있고 ㅅ은 사람 천부인이니 사람 세우다 등의 뜻이 있으며 ㅂ은 땅 천부인 ㅁ에 덧붙여 만든 글자로 '받는다' '보전한다'는 뜻이 있으니 (책 참조) 어미가 일곱 여덟 아홉을 만드는 거기에나 쓰여져야지 셋 넷 다섯과 같이 세우는 데 쓰여져서는 안된다. 그러니까 여섯은 중간에 서서 ㅅ과 ㅇ을 양쪽으로 잡고있는 형국이다. 이건 여섯인 어미가 셋 넷 다섯, 일곱 여덟 아홉의 중심이 되어 양쪽을 다 잡고있다는 말이 된다.
그리고 최치원의 81자 속의 六은 정 중앙에 있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六은 그만큼 인간에게는 중요한 글자이다.
一妙衍 "한"은 신묘하기가
여기서부터가 하나 둘 셋 ...열인 하느님의 교훈 천부경의 핵심인 '한'의 예찬문이라는 것이다. 최치원은 위에서 하느님 교훈인 신지녹도 전자가 우리의 숫자 "하나 둘 셋 ...열" 임을 알고 그것을 번역하여 대략적인 우리 숫자의 뜻을 설명하고 이제부터는 본격적인 하느님 즉 '한'을 예찬하는 것이다.
萬往萬來用變不動本 만번 오가도 쓰임새는 변하나 근본은 움직이지 않는다.
위에서 '한'은 신묘하가 ...했는데 어떻게 신묘한가? 아무리 많이 왔다갔다 하여 쓰임새는 많아도 그 근본은 변하지 않은다는 말인데 이 부분부터는 좀 쉬어 지고 다른 이들의 해석과 대동소이하다.
本心本太陽昻明 본심은 태양을 근본으로 밝음을 우러름에 있으며
최치원은 신지녹도 문자를 해독하면서 필자 카페에서 설명하듯이 "하나"에 해당하는 빛을 받는 나무와 빛을 받는 대지를 보고 빛, 즉 태양을 '한' 이라고 보고 이 한이 숫자 하나가 되었다고 보았다고 했다. 그리고 필자도 ㄱ ㄴ ㄷ등 우리 글자 속에 들어있는 뜻까지 찾아 '한' 의 글자풀이를 하며 '한' 이 빛이며 태양이고 하느님이라 했다. 그런데 그것을 증명해주는 대목이 바로 여기이다. 즉 먼저 一妙衍부터는 '한'의 예찬문이라 했는데 그 예찬문의 핵심이 무엇인가 여기서 드러나는 것이다.
즉 '한'의 핵심은 바로 태앙이라는 것이다.(신지녹도 전자 해독 '하나' 참조) 한단고기를 번역하신 임승국님은 그의 책 166쪽 주에서 " 우리민족이 동식물처럼 빛이나 지향하는 그런 철학도 이념도 없는 민족이 아니라 천손민족(天孫民族)이다" 라고 하셨는데 그렇다면 이 대목을 어떻게 번역할 것인가? 최치원이 신지녹도전자를 잘못 번역한 것이라고 할 것인가? 그분은 바로 빛이 태양이고 이 태양이 하느님이라는 우리민족의 사상과 말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채 그런 번역을 하신 것 같다.
人中天地一 사람 가운데 천지의 '한' 이 있나니.
위에서 '한'을 분석하면 삼극이 되고 이는 天一 地一 人一 즉 하늘과 땅과 사람이라 하였고, 또 天二三 地二三 人二三에서 하늘은 땅과 사람을 포함하고 땅은 하늘과 사람을 포함하며 사람은 하늘과 땅을 포함한다 하였으니 사람 속에 하늘과 땅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므로 人乃天이 아니라 원론적으로 말하면 人乃天地 인 것이다.
一終無終一 "한"은 한의 마침이 없는 데서 "한"이 마친다.
참으로 위 시작한 一始無始一 글귀와 잘도 대응이 되는 詩귀이다. 먼저 '한'은 시작이 없는 데서 한이 시작되었으니 그 마침도 마침이 없는 데서 마쳐지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이것을 좀 쉽게 말을 붙이면, '한'은 '한의 시작이 없는 데서 시작 되었고, 분석하면 삼극인데 근본은 다함은 없네. 하늘의 핵심인 '한'이 땅의 핵심에 둘리어 사람의 핵심인 사내를 세운다. 한을 쌓고 씨족의 울타리를 열면 대 자유인으로 승화한다.
하늘은 둘로 세워지고 땅도 둘로 세워지며 사람도 둘로 세워 지나니, 큰 셋이 합한 어미는 일구는 사내와, 열매인 겨집과, '압' 이라는 씨족을 낳는데, 사내와 겨집을 운용하여 정착한 땅 ...다섯에 일구는 사내...와 동아리를 이루니, '한'은 신묘하게 퍼져나가기가 만번 오가도 쓰임새는 변하나 근본은 움직이지 않는다.
본심은 태양을 근본으로 밝음을 우러름에 있으며,사람 가운데 천지의 '한'이 있나니, '한'은 '한'의 마침이 없는 데서 '한'이 마친다.
이상이 최치원이 우리 숫자 하나 둘 셋 ...열을 보고 81자의 시첩으로 그 숫자를 설명하고 또 '한'을 예찬 했다는 예찬문이다. 먼저 천부경의 진본은 바로 신지녹도전자이고 이것은 바로 하나 둘 셋 ..열의 뜻이라는 것과 최치원은 이것을 해석하고 예찬했다는 필자의 말에 하나라도 모순이 있는가? 하나 둘 셋...열의 뜻과 최치원의 시첩이 완전 일치되지 않는가?
이 예찬시는 마치 한편의 시(詩)나 송가(誦歌)을 보는 것과 같이 아름다운 문장이고 특히 一始無始一로 시작하여 一終無終一로 끝내는 글솜씨는 그야말로 극찬할 정도이다. 이렇게 우리말로 풀면 아름답고 쉬운 시를 그간 갖은 음양설이나 수리학적으로 풀려고 그렇게 고생들을 한 것이다.
이것을 상세히 알려면 필자의 카페에 들어와 봐야 하는데 카페에 따라서 남의 카페의 주소가 뜨지 않는 수가 많고 또 글이 삭제되는 수가 많으니 직접 '에취 티티피: 슬랏 슬랏 카페점 다움점 net 슬랏 chunbuinnet ' 이나, 책의 싸이트 '에취 티티피: chunbuin 점 씨오 점 케이 알' 을 치고 직접 들어가 보시라! 만약 아래 필자의 카페주소가 올라가기 않거나 싫어할 카페에서는 아래 카페주소를 지워 주실것!
필자 카페 http://cafe.daum.net/chunbuinnet - 우리 - 원시조상이나 선악과를 따 먹기전에는 '나' 가 없었다. '나' 가 생긴것은 창조적 지성 때문이다. 인간이 동물과 다른 것은 " 인간은 창조지성의 자기표현체"이므로 창조적 인간한테만 창조적지성이 있다 했다. 이 창조적지성으로 만든 것이 '나'인 개체였고,그래서 인간한테만 생노병사,고민과 죽음이 있다.
원시조상은 물론,지금도 문명이 들어가지 않은 오지 원시족이나 동물한테는 '나'라는 개체가 없고 '우리' 뿐이니,따라서 고민도 죽음도 없다.
이 우리의 본체는 불가에서 말하는 무아(無我)하고는 다르다. 무아는 전연 헛개비지만 '참나'는 '나'만 내가 아니라 '저 사람도 나' 인 것이다. 즉 더불어 사는 '우리'인 것이다. '우리'는 '나'가 없고 '저사람도 나'인 더불어 사는 삶이다.
부처님의 인간에게는 고뇌만 윤회하니 태어나는 원인인 무명(無明)을 제거하여 아예 태어나지도 말자던 그 고통이,천부경 이론으로는 이를 오히려 환희로 승화시킬 수 있는것이다.
지금 나이깨나 드신 분들의 생각은 다 그렇다. 그러나 젊은이들은 이것을 모른다. 오직 '나'만 알다보니 부모님들만 짝사랑을 한다.
서양은 대부분 내가 주체이다. 오직 나만 위해서 살고 나한테 이롭지 안으면 애들이 울건 말건 이혼한다. 서양사람에게는 이런 말이 당연하니,즐겨 쓴다.
that's your business (그것은 너의 일이다), that's your problem (그것은 너의 문제다), I don't care (내가 상관할 바 아니다), 우리도,서양만 종주국으로 아는 소위 문화인들은 이 풍속을 닮아간다.
6.25 때만 해도 우리한테는 내가족이 '나'라는 생각이 있었고,세월을 거슬러 올라갈수록 이조때,고려때 해주가문, 청주가문 따지며,씨족이 바로 '나'였으며, 더 올라가면 단군,환웅때는 씨족의 울타리가 모두 '나'였다는 것은,우리의 뿌리말을 찾아보면 알 수 있다.
'나'와 '우리'는 서양말과 비교해 보면 안다. 서양은 나의 선생님(my teacher) , 나의 학교(my school), 나의 나라(my country), 그리고 형제들이 있어도 나의 부모(my parents)이고,식구들이 같이 살아도 나의 집(my home)이다. 그러나 우리는 " 우리선생님, 우리학교, 우리나라, 우리부모님. 우리집이며 심지어 마누라까지 우리마누라, 우리남편이다.
비단,말 뿐이 아니다. 말이 시작될 때 사상적 기반이 다르기 때문에 말까지 그렇게 된 것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맥도 모르고 서양문물에 미쳐서 우리말 속에 들어있는 그뜻을 모르고 말을 한다. 이것도 천부인과 천부경을 알아야 하는 이유이다. 즉 쥐뿔(제뿌리)부터 알아야 한다.
천부경에서는 '나'가 없다. 불경에서는 '나'가 무아로 헛개비가 되지만, 천부경에서는 '나'가 '우리'로 승화되어 결국은 전 세계인이 하나가 된다. 즉 일곱으로 일하는 방법은 '한'의 성자가 되는 천부경 수행의 길이다.
왜 이런 간단한 천부경 말 속에 그런 진리의 말씀이 있는가? 천부경이론은 바로 사람이 살아가는 이론이고 그 수행방법이기 때문이다.
결론
천부경은 물질문명으로 자신밖에 모르는 이기심으로 인성이 말살되가는 이 세계를 구할 수 있는 마지막 교훈이다.
그러나 필자는 문제를 제시하고 이정표나 세워놓았을 뿐이므로 진정한 연구는 독자들과 함께 해야 한다. 우리 다함께 천부인을 연구하여 한민족과 참나의 얼을 되찾자.
필자 카페 http://cafe.daum.net/chunbuinnet - 우리 -
삼극기 문양
우리민족의 표상인 삼극문양은 신라 이전부터 있었다. 그러나 지금의 태극문양(음양오행설) 등은 주역에서 나왔고, 주역은 우리의 조상(복희씨)이 창안하였으나,중국인이 연구 발전시켜 사용하였고,우리는 이조 초...성리학(주자)을 보강한 퇴계선생의 "성학십도"가 완성되고서 부터이니,우리 것이라 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진정한 우리의 정신적 표상은 태극이 아니라 삼태극이다.
천지인을 뜻하는 삼태극과 하블망원경으로 본 또 하나의 삼태극
쌍계사 금강문, 840년(신라 문성왕2년) 眞監禪師가 지은 문.
이 쌍계사를 지을 무렵만 해도 불교가 들어오면서 우리 토속종교를 없애지 않으려고 산신각 등을 만들어 놓았으며 특히 이 쌍계사에는 환웅과 단군을 예찬하는 난랑비가 있었다. 여기 삼태극은 천지인을 뜻하는 천부인을 뜻하고 위의 삼지창은 사람천부인이며 아래것 은 극이 반대로 도는 삼태극이다.
보물 제 635호 신라시대의 장식 보검(경주 미추왕릉지구 계림로 14호분 출토. 국립경주박물관)
우리민족이 사용하던 삼극무늬는 신라시절 기와장뿐 아니라 보검자루에도 있다.
거창향교,조선 태종 15년, 삼태극 대문
http://cafe.daum.net/chunbuinnet[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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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의 뿌리가 된 세계최초의 문자 녹도문
고대문명의 중요한 조건이 문자의 사용이다. 문자는 살아있는 유물이다.
왼쪽부터 낭하리 고각, 영변지에 실린 녹도문, 창힐문자, 요녕성 여대시 윤가촌에서 출토된 고조선 토기의 문자, 은나라의 갑골문(신지 전자의 초기모습)이 바로 위 그림 맨 왼쪽의 낭하리 암각화다.
자오지 환웅천황의 동방통일전쟁이 끝난 뒤에는 이전부터 개량돼오던 신지문자(녹도문)가 중원에도 전해졌는데 이것이 바로 창힐문자(倉?文字: 鳥跡書)다. 현재 창힐의 고향 백수현 사관촌(산동반도 지역)에서는 창힐문자가 발견되고 있다.
출처: http://www.historyworld.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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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중한 "천부경 원문" 보세요.
단군조선초기에 이미 신전 문자가 있었다. 이를 참글이라 하였다. 그리고 당시 정음38자가 만들어졌다. 이를 가림토라 한다. 우리에게는 이미 글과 소리가 있었다. 참글과 바른소리! 한자의 원류와 한글의 원류! 배달나라 초기에 이미 녹도문(사슴그림문자)이란 글이 있었다.
녹도문이 변하여 창힐의 조족문자가 되었고, 고대 전서체의 형태로 단군조선 시대에 와서 신전(神篆)이 되었고, 단군조선 후기에 부여사람 왕문에 의하여 부예(符隸)와 이두문이 만들어지고, 이 부예가 진나라 진시황 때 정막이라는 사람에 의하여 지금의 중국 한자로 변형되었다.
단군조선, 부여, 고구려, 신라, 백제 때 이미 이두문이 쓰여지고 있었다. 신라의 설총이 이두문을 체계화 시켰다. 위 정음38자는 조선시대 세종대왕 때 정음28자로 다시 재창출되었다. 김시습선샌은 이를 징심록추기에서 밝히고 있다.
조선시대 세종대왕의 한글 이전에 이미 대마도와 일본 땅에는 한글이 쓰여지고 있었다. 세종대왕 때의 표기법과 다르게 가로쓰기로 되어있다. 받침은 없이 쓰였다. 묘향산 석벽에 천부경이 새겨져 있다. 이를 신라 최치원선생이 글로 남겼다. 무극, 천지인 삼태극 사상이 담겨져 있다. 지금 우리가 쓰고 있는 소위 한자는 중국의 문자만이 아니라 원래 한국, 배달나라 단군조선의 문자였다!
일시무시일석삼극무 진본천일일지일이인 일삼일적십거무궤화 삼대삼합육생칠팔구 운삼사성환오칠일묘 연만왕만래용변부동 본본심본태양앙명인 중천지일일종무종일
하나(원래부터 존재함)부터 시작하고 무(없음,무극)에서 시작하나 하나(태극)이다. 나누면 삼극(삼태극, 음양중)이나 근본은 무궁무진하다. 하늘하나(천신)가 첫번째, 땅하나(지신)가 두번재, 사람하나(인신)가 세번재이다. 하나가 모여 열로 커져 한정이 없으나 삼으로 변한다.
큰 삼(천신,하늘)(지신,땅 지구)(인신,사람 육체)을 합하면 육이요, 칠 팔 구가 생긴다. 움직여서 삼, 사가 되고 고리를 이루어 오, 칠이 된다. 하나는 신묘해서 만번 오고 만번 가도 쓰여 변해도 근본은 움직이지 않는다. 원래의 마음은 원래의 큰 해(태양)이니 우러러 밝음을 보면 사람 속에 천지인(하늘,땅,사람)이 다 들어있다(사람=소우주). 하나로 끝나고 무에서 끝나나 하나이다.
천부경: 하늘의 이치를 나타낸 경전, 천부경 속에는 우주의 비밀이 들어있다. 무에서 하나, 하나에서 천지인 삼태극, 삼태극에서 무궁무진, 다시 원래 하나로 되돌아가는 무극, 태극의 철학이 들어있다. 우주만물의 생장소병몰고의 이치가 들어있다.
사람은 음양의 사람 사이에서 태어나 중성의 아기가 되고 자라서 음양이 되어 낳고 자라고 끊임없이 반복하되, 죽으면 원래대로 되돌아간다! 돌아가셨습니다! 이말은 사람으로 태어나 살다가 천지인 만물의 원천으로 되돌아가셨다는 의미인 것이다! 한국인의 말은 철학이 깃든 말이다! 천부경은 81자 글자로 우주의 이치를 숫자로 나타낸 철학경전이다!
[펌] 한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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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골문자 ‘천부경(天符經)’발견,<단군.환웅 실재성 높아>
농은유집(農隱遺集) 천부경(天符經) 민족이나 개인에게 있어서 역사(歷史)는 존재의 정체성과 더불어 과거와 미래를 자리매김하는 가장 분명한 증거의 하나이다. "농은유집 천부경"은 농은 민안부 문중에서 보관해오다 2000년초 문중인 민홍규씨가 송호수박사에게 처음 보여줌으로써 세상에 알려졌다. 민씨는 이같은 사실을 "뉴스피플"(2000년 1월17일) "민홍규의 우리문화일기 -나무에 뿌리가 없다" 는 글에서 “필자의 가문에는 목은,범세동 등과 함께 두문동 72현 가운데 한명인 농은 민안부 어른이 남긴 천부경이 전해진다. 그간 천부경은 고본(古本)이 존재하지 않고,그 출처가 명확하지 않으며, 그 난해성 때문에 강당사학계에 의해 위.개작(僞.改作)되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고 밝힌 바 있다. 민씨로부터 농은유집을 접한 송호수박사는 유집의 가치를 알아보고 자신의 저서 "한민족의 뿌리사상" 개정판에 영인본을 포함시켰다. 그러나 당시 송박사는 농은유집의 천부경문에 대한 해석은 하지 못하였다. 농은유집은 언어학자 박대종씨에 의해 비로서 가치를 발현하게 됐다. 이제 남은 과제는 민홍규씨가 소장해온 고본을 찾는 것이다. 민씨는 고본에 대해 일본 전문감정서로부터 감정을 받았다고 한다. 하루빨리 고본이 공개돼 농은유집 천부경문이 고증학적 절차를 거쳐 역사적, 민족사적인 가치를 담게되기를 기대해 본다. <일요시사 기사원문 >
갑골문과 천부경
갑골문이란 명칭은 그 문자가 주로 거북껍질(龜甲)이나 소의 어깨뼈 등에 칼로 새긴 것에서 유래된 것으로 1899년 중국 하남성 은허(殷墟)에서 처음 발견됐다. 갑골문은 은왕조(殷王朝, B.C 3400∼3100)때 도성의 유적지인 은허에서 출토되어 은허문자라고도 한다.
앞서 언급했듯 갑골문은 1899년 중국대륙에서 최초로 발견됐지만,고대 최고의 문자학서인 <설문해자(說文解字)>를 지은 후한(後漢, A.D25∼220)의 허신(許愼)조차도 갑골문을 몰랐었다. 중국에서 갑골문을 본 사람들은 많았지만 그것의 실체를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러던 중 청나라 말기인 광서 25년(1899) 금석학자이자 국립대총장인 왕의영에 의해 처음으로 연구되었다.
중국 갑골문의 한계 또한 환(環)에 대해 중국학자들은 미해독문자,또는 '그물견자'로 풀이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는 게 박대종씨의 설명이다. 금문(金文)에서도 농은유집 천부경문 내에 포함된 글자들중 숫자 五,六,七八,九를 제외한 41자중에서 11자(26.8%)가 발견되지 않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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