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매물건에 설정된 여러 권리 중에서도 가장 입찰을 꺼리게 만드는 것이 ‘적법한 유치권’이다.
일단 성립요건을 만족시킨 유치권은 채무가 변제되기 전까지 건물 점유를 법적으로 보장받는 것은 물론 타인의 출입도 통제할 수 있기 때문에 입찰자는 물론 낙찰자들에게도 두통유발 요인 중 1순위다. 그러나 적법함과 상관없이 경매개시결정 기입등기일에 따라 유치권을 배제할 수 있다는 점에서 경매가 지닌 무궁무진한 매력을 맛볼 수 있다. 오늘 소개할 판례는 이와 반대되는 케이스지만 이 판례가 오히려 유치권을 배제할 수 있는 상황을 선명하게 알려준다는 사실에서 시사점이 있어 소개한다. # A사는 2002년 7월 29일, B주식회사로부터 B사 소유 토지에 건축되어 있던 건물을 철거하고 새 건물을 올리는 내용의 공사를 대금 148억5000만원, 공사기간 2002. 8. 15 ~ 2003. 12. 15까지로 정해 도급받았다. 공사대금은 6차례에 걸쳐 나누어 지급받기로 약정했다. A사는 이후 공사를 계속 시공해 왔으나, B사의 자금난으로 인해 완공하지 못하고 2005년 2월 경 공정율 90% 이상의 상태에서 공사를 중단했다. 이 건물은 미완공·미사용승인·미등기 상태의 건물로 남아 있었으나 B사에 대한 채권자들의 가압류신청에 따른 법원의 촉탁으로 2005년 9월 B사 명의로 소유권보존등기가 경료됐다. 이에 B사는 2005년 8월 19일 A사와 사이에 공사잔금을 95억9150만원으로 정산하고 이를 2005년 9월 30일까지 지급하기로 약정하면서 이와 같은 내용이 담긴 공정증서를 작성해 줬고 A사는 같은 해 10월 위 공정증서 정본에 기해 B사의 부가가치세 환급금 중 6억6457만5000원에 대해 채권압류 및 전부명령을 받았다. 그러나 B사가 국세마저 체납함에 따라 A사는 그 일부가 국세에 충당된 후 잔액 2억6804만6480원만 지급받았고 이후 2006년 1월 804만1370원을 더 지급받았다. 결과적으로 A사는 2005년 10월을 기해 B사 건물에 대해 93억1541만2150원의 공사대금 채권을 가지게 됐다. 이와 별도로 B사는 2002년 5월 7일 C은행으로부터 토지와 이전에 세워져 있던 건물을 공동담보로 제공하고 대출을 받았다. B사는 각 부동산에 관해 채권 최고액 18억2000만원의 근저당권을 설정해 줬고, 같은 날 A사에게 위 각 토지에 관해 매매예약을 원인으로 한 소유권이전청구권가등기를 각 경료해 줬으며, 같은 해 10월에는 C은행에게 토지에 대해 지상권을 설정해 줬다. 이어 2002년 8월 30일에는 D저축은행으로부터 토지를 공동담보로 제공하고 대출받으면서 토지에 관해 채권최고액을 7억5000만원으로 하는 근저당권 및 지상권을 각각 설정해 줬고, 같은 날 A사에게 위 각 토지에 대하여 매매예약을 원인으로 한 소유권이전청구권가등기를 각각 경료해 주었다. 이 밖에도 B사는 E새마을금고로부터 토지를 공동담보로 금원을 대출받으면서 채권최고액 5억6000만원의 근저당권을 설정해 주었다. 이 과정에서 A사는 B사의 요청으로 C은행과 E새마을금고 명의의 근저당권이 설정되기 직전에 그 명의의 위 각 가등기를 말소해 주었다가, 위 지상권 및 근저당권이 설정된 후, 다시 그 명의로 매매예약을 원인으로 한 소유권이전청구권가등기를 경료했다. 그런데, B사가 C은행에 대한 대출원리금채무를 변제하지 못하면서 C은행이 2005년 4월 토지에 대한 임의경매를 신청, 경매절차가 진행됐다. 위 경매절차가 진행 중이던 같은 해 7월에는 D저축은행이 임의경매를, 같은 해 12월에는 A사가 토지 및 이 사건 신축건물에 관해 강제경매를 각각 신청했고 경매진행 결과 F사가 2007년 3월 토지 및 이 사건 신축건물을 낙찰받고 대금을 납부함으로써 소유권을 취득했다. 그런데 A사는 위 경매 절차가 진행 중이던 2006년 6월 15일, B사에 대한 위 공사대금채권을 피보전권리로 한 유치권에 기해 이 사건 신축건물을 점유하고 있다는 내용의 유치권 신고를 한 바 있다. 문제는 F사가 위 신축건물을 낙찰받아 그 소유권을 취득한 후에도 A사는 계속해서 위 신축건물을 점유하고 있었다는 점. 이에 경락인 F사는 건물명도 소송을 냈지만 패소했다. 원심을 맡은 울산지방법원은 F사가 주장한 유치권 부존재에 관한 주장을 기각하고 A사의 유치권은 적법하다고 판결했다. 상고법원에서도 마찬가지 결과였다. 상고심을 맡은 대법원은 "부동산에 가압류등기가 경료되어 있을 뿐 현실적인 매각절차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상황하에서는 채무자의 점유이전으로 인하여 제3자가 유치권을 취득하게 된다고 하더라도 이를 처분행위로 볼 수는 없다"고 판시했다. 본래는 부동산에 가압류등기가 경료되면 채무자가 당해 부동산에 관한 처분행위를 하더라도 이로써 가압류채권자에게 대항할 수 없게 되는데, 여기서 처분행위란 당해 부동산을 양도하거나 이에 대해 용익물권, 담보물권 등을 설정하는 행위를 말하고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점유의 이전과 같은 사실 행위는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 그러나 경매개시결정 기입등기가 경료돼 압류 효력이 발생한 후 부동산 점유자가 변경됨으로써 유치권이 발생하는 경우, 경매절차에서의 매수인이 매수가격 결정의 기초로 삼은 현황조사보고서나 매각물건명세서 등에서 드러나지 않는 유치권의 부담을 그대로 인수하게 된다는 문제가 있다. 이로 인해 경매절차의 공정성과 신뢰성 훼손이 불가피할 뿐더러 입찰자들이 위와 같은 유치권의 존재를 알게 되는 경우에는 매수가격의 즉각적인 하락이 초래되어 책임재산을 신속하고 적정하게 환가하여 채권자의 만족을 얻게 하려는 민사집행제도의 운영에 심각한 지장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위와 같은 상황에서의 점유 이전은 처분행위로 보는 것이, 즉 A사의 유치권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타당하다는 것이 법원의 법리적 판단이다.
하지만 이번 사건의 경우는 위의 설명과는 다른 케이스다. A사의 유치권 신고는 2006년 6월 15일 이뤄졌지만 실제 유치권 취득시기는 2005년 10월이었다. 경매개시결정 기입등기는 2005년 4월 22일이지만 이는 토지에 관한 경매개시결정 등기였을 뿐 건물은 2005년 A사가 유치권을 취득한 10월보다 2개월 늦은 12월에 강제 경매청구됐다. 즉 점유 이전이 처분행위에 해당하지 않는 경우로 판단됨에 따라 A사의 유치권이 성립된 것이다. 결국 낙찰자 F사는 A사에 잔여 공사대금을 지급하고 건물을 명도 받으라는 원심 판결을 바꿀 수 없었고 결과적으로 감정가 112억짜리 건물을 거의 그 가격에 매수한 셈이 됐다. 소송비용 부담비율이 50%에서 40%로 줄어든 것이 유일한 위안이었다. 오늘 판례가 시사하는 바는 유치권 발생일과 신고일을 유심히 살필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요즘 경매물건에서 보이는 유치권 중 상당수가 가짜라는 풍문이 떠돌고 있지만 정작 이를 규명할 수 있는 실력있는 개인이나 법인은 별로 없다. 그러나 태인 뉴스레터 독자들은 오늘 판례를 통해 경매개시결정 기입등기일에 따라 배제되는 유치권과 그렇지 않은 유치권을 구분할 수 있게 됐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다. 유치권이 걸린 물건은 대부분 덩치가 크기 때문에 개인이 접근해 낙찰받기는 녹록지 않다. 그러나 이 같은 권리관계 판단기준을 알고 접근하면 경매물건 보는 눈을 더욱 키울 수 있고 이런 방식으로 훈련된 독자들은 본인이 필요한 경매물건 입찰 시 어느새 깊어진 내공을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부동산태인 홍보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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