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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시골의사 박경철 4

대한유성 2009. 5. 27. 15:42

 

시골의사와 경영학

 

우리나라 대학의 사회과학 분야 교수는 미국에서 공부한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특히 경제, 경영 분야는 그 비중이 심각하다. 미국식 경영학은 지난 9월로 파국적 위기에 봉착했다. 미국 경영대학원(MBA)에서는 이번 사태를 설명할 책자가 없어 언론보도를 교재로 삼고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

요즘 우리나라에서 금융 위기의 원인과 그 전망을 설득력 있게 제시하는 이로는 ‘미네르바’라는 인터넷 논객과 ‘시골 의사’ 박경철씨가 손꼽힌다. 지난주, 텔레비전 아침 프로그램에서 박씨의 강연을 시청했다. 쉬운 용어와 일상 속의 비유를 통해 근래 세계경제의 흐름을 선명하게 보여주었다. 분석은 명쾌했고 또 전망은 신중했다. 전문 분석가에 진배없었다.

묘한 느낌이 들었다. 의사가 대중들 앞에서 경제를 저렇게 알아듣기 쉽도록 설명하는데, 본토(!)에서 배웠다는 수많은 경영전문가들은 다 무엇하고 있는가 싶어서다. 과문한 탓이겠지만 이 땅의 경영학자가 독창적이고 세계적인 이론을 내놓았다는 소식을 들은 적이 없고 보면, 짐작건대 미국식 이론들 대리점 노릇을 하고 있는 것일 테다.(이건 사회과학 전반이 대부분 그렇다.)

박씨 강의를 시청하고 울적한 심사에 빠져 있던 즈음일 것이다. 고려대 경영학과가 서울대 경영학과보다 낫다는 광고를 본 것이. 이어서 한쪽은 희희낙락하고 또 한쪽은 앙앙불락한다는 후일담도 신문에 실렸다. ‘광고 경영’은 잘한 것인지 몰라도, ‘시간 경영’은 낙제점이다 싶었다. 지금 본점에 불이 나서 몽땅 타고 있는 시점에, 대리점들은 한가하게 도토리 키재기나 하고 있는 꼴이 되었으니 …. 기업 경영에서 투자와 투기 사이가 종이 한 장이듯, ‘광고’와 ‘사기’의 차이도 종이 한 장이라는 생각이 겹쳐 들었다.

더 분했던 것은, 어쩌다가 대학이 이토록 뻔뻔스러워졌는가 하는 감상 때문이었다. 제 발밑이 무너지는데도 성찰은커녕 ‘우리가 저쪽보다 낫다’며 아이들이나 꼬드기고 있는 짓이라니. 학문의 성립 요건 가운데 하나는 ‘열쇠가 자물쇠보다 커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특히 사회과학이 그러하다. 한국의 경영학(열쇠)은 이 땅의 경제 문제(자물쇠)를 해결하거나 예측할 수 있어야만 한다. 가장 민족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는 말도 이쯤에 맞춤하다. 보편적이고 추상적이며 절대적인 경영학은 없다! 미국식 경영학이든 뭐든 배우는 거야 탓할 게 없지만 이 땅의 삶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열쇠라면 그것은 내다버려도 가하다. 열쇠 수집 마니아가 아닌 다음에야, 자물쇠보다 큰 열쇠는 무의미한 것이다.

이번 참에 나는 두 가지 사실을 알았다. 첫째는 경영학이 별것 아니라는 사실이다. 꿩 잡는 것이 매라고 했다. 의사든, 시골 사람이든, 현실과 부닥치며 배우면 전문가에 진배없다는 것이다. 내게 박씨의 강연 요지는 이렇게 들렸다. 이번 경제위기의 원인은 탐욕 곧 ‘과유불급’에 있고, 앞으로 전망은 ‘산이 높으면 골이 깊다’는 것. 한데 이건 우리에게 상식인 터다.

그리고 또 알았다. 자칫 경영학을 잘못 배우면 불이 났는데도 불 난 줄 모르는 멍텅구리가 되고 만다는 점도. 이 땅의 구체적 삶 위에 발을 딛지 못한 학문과 이론들은 거짓이요, 망상이라는 점을 다시 생각하게 된 것도 가외의 소득이다. 추측건대 미국의 이론가, 이른바 ‘경영의 현자’이며 ‘경영의 구루’들께서 이번 사태에 대한 비판과 반성문을 써서 내면, 머지않아 이 나라 대학들과 대학원에서는 그걸 또 교과서 삼아 암송하고 있을 테다.

“메아쿨파, 메아쿨파, 메아 막시마쿨파!”(내 탓이오, 내 탓이오. 내 큰 탓이로소이다!) 한겨레 세상읽기 2008. 12.26

출처 : nylon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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