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잠을 자고 일어났는데 문득 내 방에 있는 책들이 눈에 들어왔다. 내 방에는 꽤 많은 책이 있었다. 대부분
아버지가 사주신 책이었다. 아버지는 어릴 때부터 내가 책을 산다고 하면 언제든지 돈을 주셨다. 사실 책을 산다고 타낸 돈을 다른 용도로 사용한
적도 많았다. 그렇지만 실제로 책을 산 경우도 꽤 되었다. 나는 그 책들을 한 권씩 읽기
시작했다.
책을 읽고 있으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 전까지만 해도 책은 공부를 하거나 교양을
쌓기 위해서 읽는 것인 줄 알았다. 그런데 책도 위로가 될 수 있다는 걸 그때 알게 되었다. 그렇게 2개월이 지나자 내 방에 있던
책을 다 읽었다.
그러자 다시 할일이 없어지고 마음은 편하지가 않았다. 아침식사를 마치면 집에서 빈둥거리는 게 민망해서 무작정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가장 적은 돈으로 오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곳을 찾아다녔다. 마침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종로구 안국동에 정독도서관이
있었다.
나는 매일 정독도서관으로 출근을 했다. 자유열람실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7시까지 책을 볼 수 있었다. 나는 온종일
그곳에서 책을 읽으면서 보냈다.
그런데 책을 보려고 하니까 글자가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그리고 자꾸 눈물이 났다. 마음이 아프고 불안해서 책을
읽을 수가 없었다.
세상으로부터 철저하게 소외되었다는 생각 때문에 하루 하루가 너무나 힘들고 괴로웠다. 그래서 나는 읽는 데 부담이 없는
책부터 펼쳐들었다.
우선 복도에 있는 신문부터 읽기 시작했다. 다행히 신문은 눈에 잘 들어왔다. 먼저 동아일보를 끝까지 보는 데 2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중앙일보는 1시간 만에, 조선일보는 30분 만에 읽을 수 있었다. 그렇게 3시간 반이면 조중동 3개 신문을 다 읽었다. 대부분의
날을 신문을 읽으면서 보냈다. 나중에는 30분 만에 세 신문을 다 볼 수
있었다.
한참 뒤에 찾아 들어간 곳은 잡지열람실이었다. 글자가 눈에 잘 들어오지 않으니 그림이나 화보를 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림이나 화보가 많은 책은 잡지였는데 그 중 여성지가 눈에 띄었다. 여성지는 사진이 많이 실린 흥미 위주의 책이어서 잘
읽혔다.
글자에 조금 익숙해진 뒤에 고른 책은 동화책이었다. 동화책 읽기를 마친 뒤에는 화가의 일생이나 그림에 대한 평을
실어놓은 화집을 읽었다.
어느덧 나는 사회에 복구하는 데 필요한 책을 중점적으로 골라 읽고 있었다. 경제와 경영분야의 책을 섭렵했으며, 사기를
당하지 않고 사업을 하는 방법도 책을 통해서 배웠다. 마치 시험공부를 하듯 노트를 준비해서 메모를 하며 필요한 구절을 마음속에 새겨
넣었다.
그렇게 3년을 보냈다. 그동안 내가 도서관에서 읽은 책이 얼마나 되는지 세어보았더니 약 2,000권이었다. 나는 책을
통해서 우주를 여행했고 세계일주도 했고 사업계획을 짜기도 했다. 인간에 대해 알기 위해서 사주, 관상, 부적 등에 관한 책도
읽었다.
그렇게 수많은 책을 읽고 사색하면서 내 안에 보이지 않는 또 다른 세계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3년의 세월이 지나자 그동안 나를 짓누르고 있던 패배의식으로부터 한결 자유로워졌다. 유약해져 있던 정신도 어느새 강하게 바뀌어져 있었다. 아무도 나를 받아주지 않는다는 절망감과 아무 할 일이 없다는 좌절감은 사라지고, 무언가를 해보고 싶다는 욕망이 자라기 시작했다.
- 까페 ‘민들레영토’ CEO 지승룡이 36세때 이혼과 함께 목회 활동을 그만두고 슬럼프에 빠져있다가 책으로 탈출하는 이야기, '민들레영토 희망스토리'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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