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건축 이야기
정문수 경제보좌관
서울의 재건축 아파트 값이 다시 뛰고 있습니다.(조선일보, 2006.3.13일자)
재건축 아파트 값이 뛰면 주변 아파트 값이 덩달아 뛰고, 주변 아파트 시세가 오르면 그 시세에 따라 재건축 분양가격이 다시 올라갑니다. 재건축, 재개발, 용적률 등은 사실 건축분야 종사자들이 사용하는 전문용어입니다. 그런데 언론에서 하루가 멀다 하고 부동산 관련 기사가 나오다 보니, 이 같은 전문용어도 이제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상식이 되었습니다.
법률상 재건축이란 노후·불량주택을 철거하고 철거한 대지위에 새로운 주택을 건설하는 것을 말합니다.(도시및주거환경정비법 제2조) 그런데 문제는 재건축의 목적이 노후·불량주택의 개선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실은 ‘노후’하지도, ‘불량’하지도 않은 주택이 재건축 대상이 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낡을수록 값이 올라가는 아파트
법에 의하면 ‘노후’, ‘불량’하다는 의미는 건물이 훼손되어 붕괴 등 안전사고의 우려가 있거나,
구조적 결함으로 철거가 불가피한 상태, 즉 사람이 살 수 없을 정도로 낡고 위험한 상태를 말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지은 지 20년만 되면 자기가
사는 아파트에 문제가 있다고 자랑하면서 재건축을 위한 안전진단 신청을 서두릅니다. 안전진단 항목에 건물의 외관도 따지게 되어 있으니 페인트칠을
안 하는 것은 기본이고, 계단 난간이 삭아도 방치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우여곡절 끝에 안전진단에서 노후, 불량하다는 판정을 받으면 축하
현수막이 나붙는 등 동네잔치가 벌어집니다. 안전진단 판정과 동시에 집값이 폭등하기 때문이지요.
위험해서 도저히 살 수 없다는 판정을 받았는데도 집값이 뛰는 비상식적인 일이 벌어지다 보니 조금 과장해서 표현하자면 우리는 아직 멀쩡한 아파트를 하루라도 빨리 허물기 위해 서로 다투고 있는 셈입니다. 해당 구청이나 의회도 안전진단이 제대로 되었는지 따지기보다는 오히려 주민의 요구대로 안전진단 신청이 통과되도록 적극 지원할 뿐입니다. 지자체의원들의 경우 지역구에 재건축을 유치한 것이 커다란 업적이 되는 세상입니다.
묵은 생강이 맵고 술과 친구는 오래될수록 좋다고 하지만, 일반적으로 재화는 낡을수록 값이 떨어지는 법입니다. 자동차의 경우 3∼4년만 되면 값이 절반으로 떨어지고 단독주택은 몇 년만 지나면 건물 값은 아예 치지도 않게 됩니다. 그런데도 유독 어떤 아파트는 낡을수록 값이 올라가는 비정상적인 현상이 종종 발생하는 것은 시장이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고 왜곡되었기 때문입니다.
재건축시장의 도깨비 방망이 ‘용적률’
재건축시장이 이렇게 왜곡된 것은 우선 제도적인 문제 때문입니다. 앞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재건축사업은 노후주택을 헐고 새로 집을 짓는 것인데 여기서 ‘용적률’이라는 도깨비방망이가 등장합니다. 재건축을 하게 되면 통상 용적률이
증가하는데 이 과정에서 개발이익이 발생하고 이를 사유화함으로써 시장의 왜곡이 시작됩니다.
현재 아파트단지의 경우 1종, 2종, 3종으로 나뉘어 법상 각각 200%, 250%, 300%의 용적률 한도가 정해져 있고 서울시는 조례로 150%, 200%, 250%로 낮추어 적용하고 있습니다. 용적률 최고한도의 본래 취지는 그 한도 내에서 각 단지의 입지와 기반시설 여건을 고려하여 적절한 수준을 정하자는 것입니다. 그런데 용적률이 곧 막대한 이익이 되는 현실에서 모든 재건축 아파트는 기반시설 등에 대한 고려 없이 용적률을 높이는 데에 급급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경향신문(2006.2.16일자)의 보도를 보면 옛 도곡주공1차 아파트를 재건축한 도곡렉슬의 경우 재건축 과정에서 용적률이 4배 가까이 늘면서 가구당 3억, 평당 1천만원 가량의 개발이익이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세계적으로 볼 때 이런 식으로 개발이익이 발생하는 나라도 거의 없지만, 이를 100% 사유화하도록 내버려두는 나라는 더욱 없습니다. 도시계획은 본질적으로 주거환경 개선이라는 공공의 이익을 목적으로 하는 행정권의 일종이며, 이러한 행정권 행사에 따른 이익을 사유화하도록 방치하는 것은 제도적 잘못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물론, 재건축사업에 따른 개발이익을 환수하는 장치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임대주택 의무건립 등이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그러나 이 같은 장치로는 개발이익을 충분히 환수하기에는 미흡한 데다 지역별로 편차가 커서 효과적으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개발이익 환수수단을 이익에 비례하는 구조가 아닌 물리적 규제 중심으로 설계한 것이 두 번째 제도적 잘못이라 하겠습니다.
재건축 조합원의 부담을 일반분양에 전가시키는 문제
세 번째 제도적 문제는 재건축 조합원의 부담을 일반분양에 전가시킬 수 있는 구조입니다. 재건축
과정에서 늘어난 용적률에 따른 이익을 사유화하는 것도 문제지만, 분양가 자율화에 편승하여 조합원이 부담해야 할 비용을 일반분양에 전가함으로써
주변 집값까지 끌어올리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시공업체가 건설비 선금을 받기는커녕 수천억원에 이르는 전세자금을 조합원에 빌려줘
가면서 공사를 해주기도 합니다.
재건축 시장의 왜곡에는 제도적 문제점 외에도 절차적 문제가 가세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인 안전진단입니다. 안전진단은 그 자체로 보면 매우 중요한 판단을 내리는 절차입니다. 건축에 관한 전문지식이 없는 입주자 입장에서는 과연 자기 집이 안심하고 살 수 없을 정도로 낡고 위험한지 아닌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이 점에 관해서는 전문가의 판단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멀쩡한 집을 쓰러질 집으로 만들어 재건축사업을 추진토록 통과증을 주는 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재건축을 위한 안전진단 신청을 하면 95%가 노후·불량주택으로 판정받고 있어 안전진단이 유명무실한 요식행위에 그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안전진단을 담당하는 민간전문가들조차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식으로 심사하고 심지어 로비대상이 되기도 하는 실정입니다.
또한 재건축조합의 투명성이 낮은 것도 문제입니다. 주택조합, 재건축조합 등은 상법의 적용을 받는 법인이 아니기 때문에 총회소집권, 의견개진권, 회계장부와 서류의 열람 및 등사권 등 조합원의 기본적 권리가 법인에 비해 크게 제한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조합원이 공사업체를 어떻게 선정하는지, 비용과 이익을 어떻게 처리하는지 조차 알지 못하게 되어 있어 민주적 감시, 견제장치가 거의 작동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 결과 재건축을 둘러싼 고소, 고발사건이 끊이지 않고 조직폭력배 등 민생침해 사범이 끼어들 소지마저 있습니다.
재건축의 주택공급효과 5∼10%에 불과
이처럼 제도적, 절차적 문제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재건축이 지속되고 있는 것은 재건축 자체가 황금알을
낳는 거위이기도 하지만 “재건축사업이 주택공급효과가 있다”는 논리 때문입니다. 이미 서울시내 주택의 60% 정도를 아파트가 차지하고 있고,
신규택지 확보가 매우 어려운 상황에서 기존 주택을 개량하는 것만이 양질의 주택을 공급하는 길이라는 인식이 확산되어 있습니다.
재건축을 하더라도 실제 주택순증효과는 5∼10%에 불과하지만, 넓고 좋은 주택을 새로 공급한다는 효과 때문에 재건축의 가치가 인정되어 왔습니다. 부동산시장 안정을 위해서는 투기적 수요의 억제 못지않게 공급확대가 중요합니다. 강남과 같은 선호지역에서의 수요를 메울 수 있는 원활한 재건축 또한 중요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공급논리가 곧 재건축 로또현상을 정당화할 수는 없습니다.
말하자면 우리 사회 전체가 공급효과라는 환상에 볼모로 잡혀 문제가 빤히 보이는데도 불구하고 재건축 문제를 방치해 온 꼴입니다. 참여정부 들어서만 여섯 차례의 재건축 대책을 내놓았지만 모두 근본적인 대책이라기보다는 신규주택 공급효과를 훼손하지 않아야 한다는 전제 하에 접근하였다는 한계를 지니고 있습니다. 미봉책이었다는 비판을 들어도 사실 할 말이 없습니다. 이는 부동산정책의 새 틀을 짠다고 시작했던 8.31정책에서도 마찬가지로 문제의 핵심을 피해갔습니다.
개발이익 어떻게 효율적으로 환수할 것인가
재건축에 관한 정답은 재건축을 통한 주택공급을 늘리면서도
비합리적인 제도와 절차를 바로잡는 데 있습니다. 문제는 재건축을 로또로 만드는 주범인 개발이익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환수하는가인데
이것이 쉽지가 않습니다. 우선 개발이익을 정확히 측정하는 것 자체가 대단히 어렵습니다. 단순히 개발 후의 가치에서 개발 전의 가치를 빼면 되지
않느냐라고 할 수도 있지만, 언제를 개발이전으로 볼 것인지가 어려운 문제입니다. 사업승인 시점을 기준으로 하게 되면 집값이 이미 오를 대로 올라
개발이익이 과소평가되고 그렇다고 해서 기준시점을 무작정 앞당길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재건축사업이 법에서 정한 사업인 만큼 상식에 부합하는
개발이익 산정이 가능할 것으로 보입니다.
개발이익 환수를 강화하는 대신 규제를 단순화하고 절차를 투명화한다면 개발이익도 환수하고 공급도 유지하는 것이 가능할 것입니다. 이 같은 기본방향에 대해서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기 때문에 “어떻게 개발이익을 측정하고”, “그 중 얼마를 환수할 것인가”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통해 재건축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해야 하겠습니다.
재건축과 관련된 절차적 문제도 반드시 투명하게 보완되어야 합니다. 우선 안전진단이 원칙에 맞게 운영되어야 하겠습니다. 재건축의 기본목적은 노후·불량건축물이 밀집한 지역의 주거환경 개선에 있습니다. 그런데 일부 지역에서는 멀쩡한 집을 헐어서 돈을 버는 반면, 다른 지역에서는 개발비용이 없어 노후주택이 위험 속에 방치된 경우도 허다합니다.
집값이 오른다는 이유로 무조건 재건축을 시행한다면 이에 소요되는 자재비, 인건비 등은 고스란히 사회적 비용으로 전가될 따름입니다. 따라서 안전진단이 재건축의 기본목적에 부합될 수 있도록 객관적이고 합리적으로 운용되어야 하겠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재건축사업의 첫 출발을 결정하는 행정행위를 지역주민의 이해관계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기초자치단체에 맡겨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재검토할 필요가 있습니다. 재건축조합 설립·운영의 투명화, 민주화도 매우 시급한 과제입니다.
집값이 오르지 않는 구조를 만드는 게 중요
무엇보다도 도시와 주택을 보는 시각을 바꿔야 합니다. 집을 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사는
공간으로 본다면 도시의 적절한 밀도와 용적률이 어느 정도가 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가능할 것입니다. 이런 생각을 이야기하면 공급이
줄어드는 것이 아니냐는 걱정을 지레 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그렇다면 얼마나 많은 주택을 더 공급해야 공급부족에 대한 걱정이 해소될까요? 지난 8.31대책에는 송파지구에 5만호 건설 등 강남에 비견하는 공급정책이 들어가 있습니다. 그러나 주택보급률이 100%가 넘는데도 수요가 있다고 해서 무조건 더 지어야 할까요? 집값이 오르지 않는데도 이러한 수요가 지속될까요? 중요한 것은 집값이 오르지 않는 구조를 만드는 것입니다.
참여정부의 부동산정책은 강남의 집값을 타겟으로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재건축의 예와 같이 비합리적, 비상식적인 제도를 개선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고민을 담아 참여정부는 8.31 후속대책을 준비하고 있고 여기에는 보다 근본적이고 원칙적인 대책이 담겨지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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