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 비리에서 일각이 드러난 권력집단 내부의 비리 품앗이
닥치고 정권교체는 의미 없어… 야권마저 교체하는 교체 돼야
그럼에도 조국 부부만 탈탈 털렸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조국 지지자들에게는 그게 불만이었다. 조국에게 분노한 사람들에게도 사실 그게 불만이다. 예전에는 사회적으로 널리 퍼져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비리의 일각이 드러나면 그 밑의 빙산을 파헤쳤다. 문재인 대통령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오히려 조국에게 ‘마음의 빚’ 운운하며 막았다. 그로 인해 사회 전체가 조국 찬반으로 나뉘어 하지 않아도 될 싸움을 했고 좀 더 공정한 사회를 만들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
조국 가족의 비리는 좌파에도 우파에서처럼 똘똘 뭉친 권력 집단이 형성됐음을 보여준다는 심장(深長)한 의미를 갖고 있다. 서민들로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품앗이 조작이 일부 교수들끼리는, 혹은 일부 법조인들끼리는 공공연한 비밀이었던 것이다.
하나의 기득권이 아니라 두 기득권을 그려봐야 한다. 두 기득권 사이에서 핑퐁처럼 오가는 정권교체는 이 시대가 필요로 하는 정권교체가 아니다.
조선 영조 때 유수원이란 뛰어난 실학자가 있었다. 그에 따르면 조선은 본래 천민이 아닌 한 누구나 벼슬아치가 될 수 있는 사회였다. 15세기 건국 초만 해도 시골 ‘가붕개(가재 붕어 개구리)’에서 명신(名臣)이 나왔다. 그러나 16세기 후반 벼슬아치의 세습성이 높아지기 시작해 17세기에 이르러서는 그 구조를 깨기 힘들어졌다.
조국 사태는 정치적 색깔을 빼고 보면 부모의 권력 네트워크에 의해 자녀의 삶이 결정되는 사회로 접어들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대한민국의 사회적 이동성이 서서히 떨어지기 시작해 조선으로 치면 16세기 후반쯤에 와 있음을 보여준다. 이번 대선의 정권교체가 기득권 사이의 정권교체가 아니라 기득권을 타파하는 정권교체가 되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사이에 벌어지는 대선 경쟁이 진짜 대결이 아니다. 진짜 대결은 지난해 4월 재·보궐선거에서 국민의힘이 국민의힘 밖의 야권과 연대해 서울과 부산의 권력을 교체한 뒤 대선을 혼자 차지하려 하면서 시작됐다. 그 오만불손한 시도는 안철수를 향해 ‘건방지다’고 한 김종인에 의해 스핀오프(spin off)됐다.
김종인의 격세(隔世) 제자 이준석이 젊다는 이유만으로 ‘어쩌다 당 대표’가 돼서는 국민의힘 밖의 윤석열이라는 태풍을 당내로 끌어들여 가두리에 가둔 후 찻잔 속의 바람으로 소멸시키려 했다. 원희룡과의 통화에서 이준석이 ‘그것 곧 정리된다’고 한 말이 그 뜻이다. 그러나 그렇게 되지 않았다. 윤석열이 국민의힘에 남아있는 구태(舊態) 세력의 대표자인 홍준표와 구태 아버지들에 대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로 가득 찬 쇄신파의 대표자 유승민을 누르고 대통령 후보로 뽑혔다. 국민의힘에서 정치 신인이 기성 정치인을 제압한 것은 재·보선에 이은 가치 있는 두 번째 승리였다.
파리 떼들은 윤석열에 붙어서 권력을 장악하려 했지만 왕파리는 윤석열의 머리 꼭대기에서 ‘연기’나 시키려다 쫓겨났다. 그러나 어린 왕파리는 여전히 남아서 끝까지 국민의힘 단독으로 정권을 차지하겠다고 고집을 부리고 있다. 지금은 윤석열과 어린 왕파리가 휴전한 모양새이지만 국민의힘이 단독으로 정권을 잡으면 윤석열을 포위해 손발을 묶으려 할 것이다.
가치 있는 세 번째 승리는 재·보선의 연대정신을 되살려 정치 신인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된 것을 매개로 국민의힘 안팎이 다시 연대해 대선에서 이기는 것이다. 그래야 뫼비우스의 띠에 갇히지 않는 정권교체가 된다.
대의(大義)를 저버리고 소리(小利)에 집착해 안철수를 불러낸 사람들은 최소한 그에게 물러나라고 말해선 안 된다. 안철수 입장에서 계산하는 정치공학으로는 자진 철수든 단일화든 얻을 게 없다. 이 정치공학의 한계를 깨려면 얻을 게 있는 쪽이 적극적이어야 한다. 이준석이 주장하듯이 국민의힘만으로도 승리에 자신이 있다면 4자 대결로 가면 된다. 다만 높이 멀리 내다보는 국민들은 국민의힘으로의 정권교체에 절실해야 할 이유가 없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닥치고 정권교체는 의미 없어… 야권마저 교체하는 교체 돼야
송평인 논설위원
조국 부인 정경심 씨의 자녀 입시 서류 조작이 대법원에서 유죄로 확정됐다. 한 번 하고 마는 표절은 없다. 마찬가지로 한 번 하고 마는 서류 조작도 없다. 한 번 하면 반드시 다시 하게 돼 있는 게 표절이고 조작이다. 7가지 서류 조작이 최종적으로 확인됐다.그럼에도 조국 부부만 탈탈 털렸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조국 지지자들에게는 그게 불만이었다. 조국에게 분노한 사람들에게도 사실 그게 불만이다. 예전에는 사회적으로 널리 퍼져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비리의 일각이 드러나면 그 밑의 빙산을 파헤쳤다. 문재인 대통령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오히려 조국에게 ‘마음의 빚’ 운운하며 막았다. 그로 인해 사회 전체가 조국 찬반으로 나뉘어 하지 않아도 될 싸움을 했고 좀 더 공정한 사회를 만들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
조국 가족의 비리는 좌파에도 우파에서처럼 똘똘 뭉친 권력 집단이 형성됐음을 보여준다는 심장(深長)한 의미를 갖고 있다. 서민들로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품앗이 조작이 일부 교수들끼리는, 혹은 일부 법조인들끼리는 공공연한 비밀이었던 것이다.
조선 영조 때 유수원이란 뛰어난 실학자가 있었다. 그에 따르면 조선은 본래 천민이 아닌 한 누구나 벼슬아치가 될 수 있는 사회였다. 15세기 건국 초만 해도 시골 ‘가붕개(가재 붕어 개구리)’에서 명신(名臣)이 나왔다. 그러나 16세기 후반 벼슬아치의 세습성이 높아지기 시작해 17세기에 이르러서는 그 구조를 깨기 힘들어졌다.
조국 사태는 정치적 색깔을 빼고 보면 부모의 권력 네트워크에 의해 자녀의 삶이 결정되는 사회로 접어들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대한민국의 사회적 이동성이 서서히 떨어지기 시작해 조선으로 치면 16세기 후반쯤에 와 있음을 보여준다. 이번 대선의 정권교체가 기득권 사이의 정권교체가 아니라 기득권을 타파하는 정권교체가 되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다.
김종인의 격세(隔世) 제자 이준석이 젊다는 이유만으로 ‘어쩌다 당 대표’가 돼서는 국민의힘 밖의 윤석열이라는 태풍을 당내로 끌어들여 가두리에 가둔 후 찻잔 속의 바람으로 소멸시키려 했다. 원희룡과의 통화에서 이준석이 ‘그것 곧 정리된다’고 한 말이 그 뜻이다. 그러나 그렇게 되지 않았다. 윤석열이 국민의힘에 남아있는 구태(舊態) 세력의 대표자인 홍준표와 구태 아버지들에 대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로 가득 찬 쇄신파의 대표자 유승민을 누르고 대통령 후보로 뽑혔다. 국민의힘에서 정치 신인이 기성 정치인을 제압한 것은 재·보선에 이은 가치 있는 두 번째 승리였다.
파리 떼들은 윤석열에 붙어서 권력을 장악하려 했지만 왕파리는 윤석열의 머리 꼭대기에서 ‘연기’나 시키려다 쫓겨났다. 그러나 어린 왕파리는 여전히 남아서 끝까지 국민의힘 단독으로 정권을 차지하겠다고 고집을 부리고 있다. 지금은 윤석열과 어린 왕파리가 휴전한 모양새이지만 국민의힘이 단독으로 정권을 잡으면 윤석열을 포위해 손발을 묶으려 할 것이다.
가치 있는 세 번째 승리는 재·보선의 연대정신을 되살려 정치 신인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된 것을 매개로 국민의힘 안팎이 다시 연대해 대선에서 이기는 것이다. 그래야 뫼비우스의 띠에 갇히지 않는 정권교체가 된다.
대의(大義)를 저버리고 소리(小利)에 집착해 안철수를 불러낸 사람들은 최소한 그에게 물러나라고 말해선 안 된다. 안철수 입장에서 계산하는 정치공학으로는 자진 철수든 단일화든 얻을 게 없다. 이 정치공학의 한계를 깨려면 얻을 게 있는 쪽이 적극적이어야 한다. 이준석이 주장하듯이 국민의힘만으로도 승리에 자신이 있다면 4자 대결로 가면 된다. 다만 높이 멀리 내다보는 국민들은 국민의힘으로의 정권교체에 절실해야 할 이유가 없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