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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열 "이재명, 경기동부연합 계보뿐…한번도 이념 안밝혀"

대한유성 2022. 2. 7. 07:36

이문열 "이재명, 경기동부연합 계보뿐…한번도 이념 안밝혀"

중앙일보

입력 2022.02.07 05:00

소설가 이문열씨. 형형한 눈빛으로 문학과 글쓰기의 의미, 안타까웠던 작품, 다음달 대선에 관한 생각 등을 밝혔다. 출판사를 알에이치코리아로 옮긴 전집 출간 작업이 막바지 단계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작가 이문열, 소설과 인생, 대선 정치를 말하다

소설가 이문열의 삶과 문학에는 한국 현대사가 선명하게 녹아 있다. 남한 정부가 수립된 1948년에 태어난 그는 80~90년대 자타가 공인하는 최고의 작가였다. 젊은 거장 소리까지 들었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책 장례식이라는, 유례없는 사상의 탄압을 받기도 했다. 어느덧 만년(晩年)의 양식(樣式)을 모색해야 하는 시기. 그의 거처인 경기도 이천 부악문원을 최근 찾았다. 우리가 읽은 그의 대표작 대부분이 탄생한 곳이다. 오랫동안 정들었던 민음사를 떠나 옮겨간 새 출판사(알에이치코리아)에서 전집 출판 작업이 막바지 단계라고 했다.

-최근 작가 이력에서 또 하나의 매듭을 지으신 것 같습니다. 출판사를 옮겨서 작품 전권을 새로 내고, 오디오북도 출간한다는 얘기가 들립니다.

“전체가 70권 남짓인데 지난 2년 거의 다 교정보아 넘기고 지금은 3부작 『호모 액세쿠탄스』와 안중근 의사 전기 격인 『불멸』의 2권 마지막 교정을 보고 있습니다.”

-출판사를 바꾼다고 그렇게 교정을 봐야 합니까?

“이번이 내가 마지막으로 보는 교정입니다. 이제 다시 옛날 책 교정본다고 앉은 일이 없을 테니 말하자면 결정판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교정도 한 번만 본 게 아니라 두 번씩, 세 번씩 봤습니다. 그리고 어떤 경우에는 꽤 긴 문장이 삽입되기도 하고, 완전히 개작한 건 아니지만 약간의 첨삭이 생기기도 하고요.”

대표작인 장편 『사람의 아들』. 1979년 출간된 사실상 등단작이다. 당대 기독교의 타락상을 바탕에 깔고 종교와 정의의 문제를 깊이 있게 파고 들어 사랑받았다.

"소설 쓰며 작가인 나도 성장…문학은 도피처이자 휴식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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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적지 않게 걸렸겠네요.

“그래도 그렇게 많이 걸리지는 않습니다. 50년 가까이 쓴 작품들인 데다 대부분 20판, 30판씩 나가 그 판들이 다 깔려 있는데 함부로 바꿀 수는 없잖아요. 재작년 10월부터 교정 작업을 시작해 해를 넘기게 됐습니다. 또 개정판을 내면서 서문에 몇십 년의 소회 같은 걸 써넣는데, 『사람의 아들』 같은 경우는 처음 중편에서 장편이 되고, 장편이 된 뒤에도 쇄를 네 번이나 갈아 할 말이 제일 많더군요. 마지막 결정판(2020년 4월 RHK판) 서문은 200자 원고지로 45장이나 썼습니다."

-1979년 출간된 『사람의 아들』이 사실상 등단 작품이니까 햇수로 40년 넘게 작품 활동을 하셨는데, 지금까지 작가로서 보람 같은 걸 느끼는 작품이 있다면 어떤 건가요?

“작품은 흔히 작가의 감정이나 지식 또는 사색을 이야기로 가다듬은 거라고 하는데 나는 오히려 글을 쓰면서 감정도 가다듬고 아는 것도 늘어가고 문학성도 키워간 것 같습니다. 그냥 단순하게 내 안에 있던 걸 꺼내서 세상에 내놓은 것이 아니라 창작이라는 작업을 통해 내 안에 있던 뭔가를 꺼내놓는 과정, 그 과정의 복합성을 동시에 작가로서의 성장에 활용한 것 같은 그런 느낌이 들 때가 많아요. 그래서 작가가 되어서 그 전에 나하고 지금의 나하고는 달라졌다는 그런 기분을 갖습니다. 가령 서른 살 때와 마흔 살 때의 내가 그만큼 달라지지 않았나, 그런 생각이 들 때가 많습니다.”

-글쓰기가 과거와 다른 오늘의 이문열을 만들었다?

“물론 글쓰기의 시작 단계에서는 그전에 아무것도 모르고 읽고 배웠던 것들이 바탕이 됐겠지만 그런 작품은 몇 개 안 됩니다. 초기 중단편의 경우에는 그런 게 더러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대개 하나의 상황이고 한 토막의 얘기이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가 있었을 겁니다. 그런데 종합적인 방대한 장편 같은 경우에는 그렇게 압축시킬 수가 없어서 자꾸 고쳐 쓸 때마다 손을 조금씩 대게 됩니다. 나에 대해 얘기하는 데도 여러 방법이 있겠는데, 하나의 자료 또는 재원으로서의 지식 같은 것도 있겠지만 그런 것들을 조직하거나 확장하는 방법으로서 그 사고라는 것도 있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예를 들면, 50대 때 작품을 쓸 때만 해도 지금 나와 많이 달랐을 것 같은 느낌입니다. 그래서 등단할 때인 79년으로 돌아가 다시 만난다면 내가 그 청년을 알아보기나 할까 싶은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이문열씨는 "대선 후보들의 이념 성향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적어 이상하다"고 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장편 『아가』에 대한 페미니즘 비판 "윤리적 측면 고려했어야"

-그만큼 성숙하거나 시선이 깊어졌다는 뜻일까요?

“그걸 쉽게 말해 늙음의 신비, 시간의 신비라고 하겠는데, 그때는 흥에 겨워서 혹은 겉멋으로 한마디 했던 문장들에서 지금 와서 그 의미가 아주 새롭게 느껴질 때까지 있습니다. 표현이나 문장은 같다 하더라도 그 속에 들어있는 내 주관적인 심경은 그때하고 지금 하고 똑같은 것이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의 글도 틀림없이 내가 전에 본 책인데도 또 봐야 알 수 있겠다는 그런 기분이 든 적이 많습니다. 생각과 문장 사이에 묘한 간극이기도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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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히 애착이 가는 작품을 꼽는다면요?

"『걸리버 여행기』를 쓴 조너선 스위프트가 늙어서 자기 작품을 다시 읽다가 ‘어느 천재가 이런 글을 썼지?’ 했답니다. 내가 그렇게 내 작품들을 다시 살펴보면 어떤 때는 '그래. 그때 그 참 사랑스럽고 박수받던 이문열이 쓴 거야' 하는 그런 기분이 들 때도 있지만 어떤 것들은 또 '이건 참 괜찮은데, 왜 그런 대접밖에 못 받았지?' 싶어서 그 책을 읽어봤다는 사람에게 그때 어땠는가를 새삼 물어보는 경우도 있습니다.”

-어떤 작품이 그런 작품인가요?

“앞의 경우로는 『시인』, 뒤의 경우로는 『아가-노래 중의 노래』라는 장편입니다.”

-『시인』은 1991년 장편입니다. 제게는 2006년 판본이 있습니다.

"터키판까지 15개국에 번역 소개됐습니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운명이 기구해 91년 초판 38만부 이후 절판이 되었다가 여기저기 서너 개 출판사를 거친 뒤 2008년에야 민음사로 돌아가 비로소 내 전집에 끼게 되었지요. 진보문학 진영의 최원식 형은 시선이 다르지만, 그래도 『시인』을 지나칠 수 없었던 듯 어떤 잡지에 스쳐 가듯 서평을 썼는데, 살뜰하게 이해해 주었지만 한편으로는 내가 지나쳤던 점도 아프게 짚어 주었습니다. 홍경래 봉기의 대의를 뒷받침한 민중론자들이 실은 무지하고 헐벗은 민중을 알겨먹으려 한 적은 없었던가, 하는 문의(文意)에 대해서였습니다. '알겨먹다'는 책 속 표현을 민망하다 못해 참혹하게까지 여긴듯합니다."

조선 후기 방랑 시인 김삿갓을 소재로 한 장편 『시인』. 이문열씨의 소설적 자서전으로도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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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속에서 시인은 처음에는 홍경래의 사상에 경도된 듯 보입니다. 하지만 곧 ‘권세와 힘을 무엇보다 높이 여기고 그걸 움켜쥐기 위해서는 못 할 짓이 없다’며 부정적으로 돌아섭니다. 홍경래 세력은 당대 조선을 바꾸려 했다는 점에서, 시차가 있기는 해도 개혁을 부르짖는 21세기 한국의 좌파 집권 세력을 연상시키기도 하는 데요.

"『시인』에서 어떤 부분은 거기까지는 나갔던 것 같습니다."

-『아가』가 제대로 대접을 받지 못했다는 부분은 장애인 여성 비하를 이유로 페미니즘 진영으로부터 공격받았던 점을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책을 출간한 2000년 당시에는 이래저래 공격받은 기억밖에 없는데 나중에 스스로도 이 작품에 대한 인식을 달리하게 된 계기는 따로 있습니다. 2006년 버클리 대학에 방문학자(체류작가)로 있을 때 일인데, 한국의 한 사회학과 교수분이 『아가』를 원고지 100배 넘는 분량의 논문으로 분석을 했다며 나를 만나겠다고 내가 있는 서부까지 찾아온 일이 있습니다. 그래서 작품을 다시 봤는데, 그때는 쓴 지가 10년밖에 안 되었을 때인데도 정말 낯섭디다. 그러면서도 참 억울한 기분이었어요. 장애인 비하라고 하기도 하고 여성 문제로 비판하기도 했는데 사실 나는 소설의 여주인공을 그 이상 더 사랑할 길이 없는 방법으로 썼던 겁니다. 어릴 때 기억에 약간의 과장을 보태서 말이죠. 불행했던 여자를 그런대로 행복하게 살다가 죽은 여자로, 또 나중에는 어느 정도 자신을 파악하고 스스로를 공동체에서 치워야 할 존재라며 장애인 시설로 자청해서 가는 것으로, 그것도 여러 소설적인 장치 같은 것도 좀 활용해서 제법 멋도 부리고 했던 건데…."

-페미니즘 시각에서든 다른 어떤 시각에서든 작품을 지나치게 윤리적으로 읽는 것도 문제 아닐까요.

"요즘 다시 읽어보니 작가로서 작품의 윤리적인 측면을 충분히 고려했어야 하는 것은 맞는 것 같습니다. 페미니스트들의 정당성을 인정해줄 수 있다면 어떤 것들은 인정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런 거죠."

장애인 여성을 소재로 한 장편 『아가』. 이씨는 "그 이상 사랑할 길이 없는 방법으로 쓴 작품"이라고 했다.

-선생님에게 문학은 어떤 의미인가요.

"내가 인생의 어떤 목적지를 향해 걷다가 고단해서 쉬고 싶거나 유예를 얻고 싶을 때마다 가까이 있는 것이 문학이었습니다. 그게 어느 시기까지는 읽기였고, 이제 나도 읽을거리를 만들 수 있다, 쓸 수 있다는 기분이 들면서, 또 내 글을 보고 다른 사람들이 만족해하고 같이 즐겨주는 걸 보면서 문학이 뭐다 하는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소설이라고 하는 게 결국 사람의 이야기니까 먼저 산 사람들의 경험, 어떤 과학적 경험이나 수학적 경험과는 다른 미적인 혹은 철학적인 경험을 통해서 내가 나를 가다듬을 수도 있고 그 안에 쉴 수도 있는 도피처이기도 하고 휴식처이기도 하다고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요즘 어떤 책을 재미있게 보느냐고 묻자 이씨는 "소설은 잘 읽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집필실 벽에 걸린 편액의 문장을 소개했다.
"泰山不辭土壤 故 能成其大(태산불사토양 고 능성기대)/ 河海不擇細流 故 能就其深(하해불택세류 고 능취기심)".
진시황의 천하 통일을 도운 이사(李斯·BC 284~208년)의 문장으로 '태산은 흙덩이를 사양하지 않아 거대함을 이루고, 하해는 가는 물줄기를 사양하지 않아 깊음을 이룬다'는 뜻이다. 우수한 인재라면 출신을 가리지 않고 고루 중용해야 한다는 얘기니, 정치의 계절 의미심장한 문장이 아닐 수 없다.

-정치 이야기는 하지 않기로 했지만, 이번 대선을 어떻게 보시는지 궁금합니다.

"우리 사회가 갈수록 좌파 전체주의적 경향에 익숙해지는 것을 넘어 은근히 동조해가는 듯한 느낌까지 듭니다. 그런데도 알 수 없는 일은 이번 대선이 정치적 지향 또는 대선 후보의 이데올로기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을 드러내지 않은 것 같다는 점입니다. 후보들도 거기 대해 특별한 언급이 없습니다. 이제 남한의 최고 통치권자에게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다고 모두들 생각하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윤석열 후보는 자유민주주의라는 말과 시장경제라는 원론적인 지향을 내비치기는 했습니다. 그런데 이재명 후보의 경우에는 ‘경기 동부연합’이라는 아리송한 운동권 계보뿐, 한 번도 정색하고 이념적인 지향을 드러낸 적이 없습니다. 정권 교체, 특히 좌파정권 교체라는 구호를 퍼주기 식의 선심 공약 남발이나 화려한 경제 발전전략 도표와 예상수치의 잔치만으로 막아낼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진보 성향 문인 가운데 이재명 후보 지지 입장을 밝힌 경우는 더러 있습니다. 보수 진영에서는 아직 그런 분이 없는데요.

"이 자리를 빌려 내가 그걸 드러내려고 합니다. 나는 윤석열 후보가 대학생 시절 모의재판에서 전두환 전 대통령에게 사형선고를 내렸다는 소문을 들은 때부터 그 이름을 기억합니다. 박근혜 대통령 시절 국정원 댓글조작 사건 때 국정원 직원 두 사람을 구속시키고 고단한 처지에 빠졌던 것도 생각납니다. 국정원 직원을 한꺼번에 둘씩이나 구속한 검사를 나는 아직까지도 본 적이 없습니다. 대통령까지 빚을 졌다고 실토한 조국 일가를 윤 후보가 그렇게 엄격하게 수사한 것을 조금도 이상하게 생각한 적이 없고, 검찰총장직을 박차고 나올 때도 전혀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신준봉 기자 inform@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