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직필]트럼프현상과 팍스 아메리카나의 종언
입력 : 2020.11.18 03:00 수정 : 2020.11.18 03:03
미국 대선은 끝났지만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다. 트럼프는 불복하고 있고 공화당 내부는 심각하게 분열되어 있다. 선거인단 확보라는 면에서 보면 바이든이 이겼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상당히 불편한 승리였다. 이번 선거는 트럼프시대를 끝낼 것인가 연장할 것인가의 싸움이었는데, 여전히 7300만명이나 되는 미국 유권자는 트럼프를 지지했고 다수의 경합주에서 바이든은 아슬아슬하게 이겼다. 트럼프의 지지 기반이었던 저학력 백인 노동자들의 지지는 전보다 줄었지만 히스패닉과 저학력 유색인종의 트럼프 지지는 오히려 증가했다. 바이든으로의 정권이양이 순조롭게 진행되더라도 미국은 분열된 사회로 남아있을 것이고 저열한 음모론과 우익테러리즘도 당분간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이우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
무엇보다도 트럼프현상과 이번 선거의 결과는 팍스 아메리카나(미국 주도의 세계질서)의 종언을 의미하는 듯하다. 거의 70년간 미국은 역사상 그 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초강대국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해왔고, 이런 미국의 역할 속에서 좋든 싫든 세계는 (강요된) 평화를 유지해왔다. 국제통상이나 기후협약의 영역, 동맹국과의 관계에서 미국은 규칙을 만들어왔고 일단 제정된 규칙은 자신들도 준수하는 제스처를 취해왔다. 트럼프는 집권 4년 동안 이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다. 지난 4년간 미국은 자국 내의 규범과 가치뿐 아니라 세계 정치경제를 규율해온 규범과 가치도 무시하는 파괴적 행태를 보였다. 전 세계 국민들은 트럼프를 선출한 나라로서의 미국을 앞으로 수십년간 기억할 것이고 미국에 대한 신뢰는 쉽사리 회복되지 않을 것이다. 이는 팍스 아메리카나의 종언을 의미한다. 팍스 시니카(중국 주도의 세계질서)는 요원해 보이고 당분간 세계는 불안한 상황을 지속할 가능성이 높다.
트럼프 집권 4년은 저질 극우 정치인 한 명에 의한 해프닝이 아니라 미국 정치가 불평등과 양극화의 문제를 다루는 데 실패하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친공화당이면서 반트럼프적 성향의 선거분석가인 팀 밀러는 트럼프현상은 앞으로 수십년간 미국에 존재할 것이라고 단언한다. 왜냐하면 열렬한 공화당 유권자가 그걸 원하기 때문에.
불평등과 양극화는 공화당과 시카고학파가 밀어붙인 시장근본주의 정치경제의 산물인데 불평등과 양극화의 피해자들(소외된 백인 노동자들)이 오히려 트럼프에 열광하고 있다는 것은 하나의 아이러니이다. 프린스턴대학교 정치학 교수인 래리 바텔스는 <불평등한 민주주의>라는 저서에서 1945년 이후의 미국 정치경제를 분석하고 있는데 민주당 집권기에는 성장률도 높고 불평등도 낮은 반면, 공화당 집권기에는 성장률도 낮고 불평등이 올라갔음을 지적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의 근본 원인은 각 정당이 지향하는 정책의 차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공화당은 선거 때마다 ‘인종’이라는 카드를 교묘히 꺼내들었다. 백인 하층 노동자들의 어려운 상황은 자신들의 잘못된 정책 때문이 아니라 민주당의 친이민, 친흑인, 친여성, 친동성애자 정치 때문이라는 것이다. 버몬트 주지사를 8번이나 역임한 하워드 딘은 이를 공화당의 ‘분할통치’ 전략이라고 명명한 바 있다.
트럼프는 연초까지만 해도 선방했는데 이는 지난해 미국 경제실적의 호전 때문이다. 지난해 미국은 1945년 이후 최대 경제호황을 기록했고 트럼프 진영은 이를 ‘트럼프 호황’이라고 이름 붙여 발표했다. 지난해 12월 CNN의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76%가 ‘미국 경제가 좋다’고 대답했다. 트럼프는 탄핵소추안이나 우크라이나 게이트(트럼프가 우크라이나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바이든 가족 연루 기업에 대한 조사를 사실상 압박한 것)를 워싱턴 정치 내부의 문제로 가두는 데 성공하면서 ‘문제가 있어도 경제성과를 내는 대통령’이라는 이미지를 구축하는 데 성공했다. 여기에는 물론 저학력 백인 노동자의 지지와 폭스뉴스 같은 극우언론의 지원이 큰 역할을 하였다. 하지만 코로나19가 확산되면서 상황은 반전되었다. 방역실패가 장기화하면서 경제는 곧바로 곤두박질쳤고 올해 1분기 국민총생산은 73년 만의 최악을 기록했다. 트럼프 진영은 V자 반등(불황이 호황으로 전환되는 상황)을 이야기했지만 많은 경제학자들은 회복되더라도 그것은 K자 반등(상층소득은 상승하는 반면, 중하층 아래는 실업과 부채의 악순환에 시달리는 양극화된 회복)이 될 것으로 예측한다.
트럼프가 가더라도 트럼프현상은 당분간 지속될 것이다. 북서유럽에도 극우파는 득세하고 있다. 트럼프현상은 무엇보다 거대 정당들의 정책 어젠다가 소유와 불평등 문제를 효과적으로 다루지 못한 반작용 중 가장 현저한 사례이다. 트럼프현상은 지난 30년간 불평등과 양극화가 계속 진행형인 한국의 정치와 경제가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대상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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