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샘 417호 - 1, 2면 (행복한 선물)
그는 왜 일사각오의 길을 선택했는가?
일사각오(一死覺悟) 주기철 2015년 12월 25일, KBS 1TV는 성탄특집으로 다큐멘터리 “일사각오 주기철”을 방영하였습니다. 이 시대에 기독교 신앙인의 진실한 믿음이 무엇인지를 깨우쳐준 “일사각오 주기철”은 방영과 동시에 국내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1위를 차지했으며 종교 인물을 다룬 프로그램으로서는 이례적으로 전국 9.7% 시청률을 기록하며 “다큐1” 최고 시청률을 경신했다고 동아닷컴이 보도했습니다. 그리고 연출한 권혁만PD의 색다른 구성과 완성도 높은 작품성으로 호평을 받았습니다.
연출자인 권혁만 PD는 제작의도에 대해 “우리는 주기철을 어떻게 기억해왔을까요? 일본에 저항해 순교의 길을 걸은 그의 강인함 뒤엔 평범한 인간으로서 죽음을 두려워했고 한 가정의 아버지로서 가족들과의 이별을 슬퍼했던 모습이 있었습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믿음과 신념에 대한 살아있는 대답으로서, 주기철의 삶을 다시 보셨으면 합니다.”라고 밝혔습니다. 2016년 주기철 목사의 삶과 죽음은 다시 영화로 확대 보완되어 지금 전국 영화관에서 상영되고 있는데 그 내용은 이렇게 전개되고 있습니다.
여기 한 아버지와 아들이 있었습니다. 일제의 탄압이 극에 달했던 1930년대, 아버지는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가족을 돌볼 수 없었습니다. 가족을 뒤로 한 채 아버지는 신사참배 반대라는 일사각오의 길로 오롯이 걸어갔습니다. 당시 13살이었던 그의 아들 주광조 장로는 그런 아버지를 원망했습니다. 그리고 신에게 분노했습니다. 가족을 희생시키고, 자신의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아버지가 지키려 했던 신념의 길을 이해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왜 아버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힘겨운 삶을 남겨두고, 자신조차 그렇게 어려운 가시밭길 같은 고난의 길을 외롭게 걸어가야만 했던 것일까? 내 젊은 시절엔 이러한 질문과 방황이 끝없이 계속 되었습니다.”
여기 또 하나의 아버지와 아들이 있습니다. 아버지 스미요시 목사(63)는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가족을 버리고 후쿠시마로 떠났습니다. 당시 사춘기를 겪고 있던 아들은 아버지의 보호를 받을 수 없었습니다. 아들은 아버지가 원망스러웠습니다. 신에게 묻고 싶었습니다. 무엇이 가족을 버리면서까지 아버지를 쓰나미가 덮친 후쿠시마로 향하게 한 것일까? 아버지의 인생을 변화시킨 사람은 70여 년 전 일제에 저항했던 한국인 주기철 목사라고 했습니다. 과연 주기철은 누구일까? 아들 스미요시 겐(30)은 가혹한 식민지 정책을 펼쳤던 침략의 땅 일본에서 주기철의 삶을 추적하기 위해 한국으로 옵니다. 그를 통해 ‘과거’와 ‘현재’, ‘한국’과 ‘일본’, ‘침략의 역사’와 ‘저항의 역사’가 드라마틱하게 교차하며 역사적 진실이 드러나게 됩니다. 결국 아들 스미요시 겐은 주기철 목사가 남긴 일사각오라는 유산을 만나면서, 그의 아버지 스미요시 목사를 서서히 이해하게 됩니다.
1930년대로 들어서면서 일제의 탄압은 극에 달했습니다. 황국신민화 정책을 내세운 일본은 천황이 사는 곳을 향해 절하는 궁성요배와 신사참배를 강요했습니다. 우리 민족을 정신적·종교적으로 일본 국민으로 만들기 위한 강압 정책이었습니다. 1939년 마침내 조선예수교장로회는 신사참배를 결의하기에 이르렇고 한국 교회사에 씻을 수 없는 오점과 치욕의 역사를 남긴 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모두가 신념을 버리고 침략자의 거대한 권력 앞에 무릎을 꿇던 시대에, 홀로 저항의 길을 걸어간 작은 개인 주기철, 그는 “신사는 아마테라스 오미카미(일본 신화의 최고 신)를 숭배하는 곳입니다. 우리는 신사에 참배할 수 없습니다.”라고 고백하며 일사각오의 길을 선택하고 7년간의 모진 고문속에서 순교를 당했습니다.
한국교회사에서 가장 존경받는 믿음의 선배 주기철 목사. 광복 70년인 오늘날, 주기철 목사가 흘린 피와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은 신념을 잊고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해주는 것일까요? 그리고 그가 그토록 반대했던 우상숭배,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우상숭배 무엇이 문제인가? 성경 출애굽기 20장 4절에서 6절에 보면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속에 있는 것의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네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왜 하나님은 우상숭배를 금지했을까요? 왜 하나님이 삼사대까지 망할 것이라고 했을까요? 무엇 때문에 하나님은 질투한다고 하십니까?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원래인간은 우상숭배가 필요없는 하나님과 함께 하는 영적인 존재였습니다. 그래서 우상숭배로 말미암아 불행한 인생이 되지 말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상숭배는 사탄이 가져다 준 인간 멸망의 전략이요, 귀신의 역사가 임하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우상 신전을 만들고 우상 숭배를 강요했던 강대국들은 역사속에서 다 멸망 받았습니다. 지금 우상 숭배하는 가정의 자녀들, 특히 무속인의 자녀들을 봐도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우상 숭배는 당연히 하나님을 섬겨야 하는 만물의 영장인 인간이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오히려 만물을 섬기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짐승을 섬기거나 돌을 섬기거나 물건을 섬기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탄의 손에 잡히는 완벽한 방법입니다.
그래서 성경에만 우상 숭배를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대부분 사람들은 이것도 모르고 기독교인들은 왜 그리 옹졸하냐고 말합니다. 성경은 분명히 “너를 위하여 우상을 만들어 섬기거나 절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우상숭배라고 하는 것은 거꾸로 된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만물을 다스려야 하는데 만물을 섬기는 것이 우상숭배입니다. 거기서 심각한 문제가 옵니다. 심지어 소가 하나님인 나라가 있습니다. 소를 잡아먹으면 되는데 소를 안 잡아먹고 소들이 활개를 치고 다닙니다. 소들이 와서 다 뜯어먹습니다. 하나님이 식사하시니까 그냥 두는 것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을 만나야 존재인데 못 만나니까 엉뚱한 짓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땅에는 형상을 만들어 섬기는 종교가 그렇게도 많은 것입니다. 그것만이 아니라 잘못된 사상이나 탐심도 우상숭배라고 성경은 증거합니다.(골로새서3:5-6)
하나님의 소원은 인간의 참된 행복과 참된 성공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친히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사 하나님 만나는 길을 여시고, 모든 죄와 저주에서 해방되는 길을 여시고, 사탄의 권세를 꺾고 승리하는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당신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당장 이 사탄의 역사는 떠나가고 우상숭배의 속임수에서 해방받게 됩니다. 그래서 주기철 목사는 후대가 망하고 나라가 망하는 재앙을 막기 위해 생명을 걸고 믿음을 선택한 것입니다. 오늘 우리를 있게한 주기철 목사의 생애를 다시한번 만나보십시오.
“예수를 따르는 길은 자기의 생명을 아끼고는 따라갈 수 없는 길입니다. 고금을 막론하고 예수를 따라 갈 자는 ‘일사를 각오’해야만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영접 기도문 하나님 아버지, 저는 죄인입니다. 저는 지금까지 내가 원하는 대로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지금 예수님이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돌아가셔서 부활하신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믿습니다. 내 마음의 문을 열고 예수님을 나의 구주, 나의 그리스도로 영접합니다. 내 마음에 오셔서 영원히 나를 인도해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하나님 자녀의 매일 기도 하나님 아버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늘 나와 함께 계시고, 인도해 주심을 감사 드립니다. 오늘도 모든 삶 속에서 하나님의 자녀된 축복을 누리도록 성령 충만함을 주옵소서. 나의 가정과 현장과 가는 걸음마다 복음을 방해하고 괴롭히는 모든 사탄의 세력을 권세있는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결박하여 주옵소서. 어떤 일, 어떤 문제든지 해결자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 맡기고, 그 속에서 하나님의 더 좋은 계획을 발견하며, 성령의 인도받는 삶이 되게 하옵소서. 그래서 나의 삶을 통해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이 증거되게 하시고, 나의 현장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게 하옵소서. 날마다 나의 삶속에서 하나님의 소원인 세계복음화의 언약을 붙잡고 승리하게 하옵소서. 지금도 나와 함께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깊은샘 417호- 3면 (The Leader's Time)
후대를 위한 에세이 59 “21가지 삶⑤-절대 헌신”
(일심, 전심, 지속)
단 한번뿐인 인생에 문제와 고난이 찾아올 때 우리는 무엇부터 확인해야 합니까? “내가 가진 인생의 해답이 과연 이 문제와 고난을 이길 수 있는가? 내가 가는 이 방향과 목표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맞는가?”를 늘 확인해 보아야 합니다. 내가 가진 해답과 인생의 방향과 목표가 맞고 결과를 안다면 세가지 자세를 갖추어야 합니다.
■일심(一心)→ 일심이란 최고의 가치인 그리스도를 발견하고 본 사람의 삶을 말합니다. 그리스도로 충분하고, 그리스도는 완전하고, 그리스도가 모든 것임을 알기에 다른 것이 필요없고 오직 그리스도로 일심하는 사람을 말합니다.(빌립보서3:1-21) 다시말해서 사탄의 역사를 알고 그 답을 가진 사람입니다. 멸망의 위기 시대에 분명한 답을 가진 사람입니다. 앞으로 다가올 재앙 시대를 막을 답을 가진 사람입니다.
■전심(全心)→ 전심이란 생명 걸 가치를 발견하고, 생명 건 사람의 삶입니다. 나의 현장에, 나의 만남 속에, 나의 가는 걸음속에 하나님 나라의 축복이 임하면 다 되기 때문에 그 일에 나의 것을 다 드려도 괜찮습니다. 오직 나의 자세는 나는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도록 전심으로 헌신하는 것입니다. 다시말해 생명 걸 이유를 발견한 사람입니다. 살리는 내용을 알고 있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생명 걸 방법을 알고 있는 사람입니다. 복음을 회복하고, 복음을 누리고, 복음을 전달하는 것이 최고의 방법입니다.
■지속(持續)→ 지속이란 흑암세력을 꺾고 미래 살릴 남을 자의 축복을 찾아 준비하는 사람의 삶입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아무도 막을 수 없습니다. 지속될 밖에 없는 것을 붙잡고 지속될 수밖에 없는 속에 내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준비해 놓으신 터미널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남은 자, 남는 자, 남을 자, 남길 자의 비밀을 준비해야 합니다.
참된 성공자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하나님이 원하시는 시간에, 하나님이 원하시는 곳에서 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바울은 “오직 믿음”으로 일심, 전심, 지속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빌립보서 3장에서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그리스도는 내 인생의 최고의 지식이요(8절), 최고의 응답이요(9절), 최고의 계획이요(12절), 최고의 상급이요(14절), 최고의 배경(20절)이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사람을 세계복음화에 쓰시겠습니까? “오직 그리스도”로 일심, 전심, 지속하는 “오직 믿음”의 사람입이다.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느니라”(히브리서11:38)
오늘부터 이 세가지 비밀을 붙잡고 기도해보세요.
① 일심- 오직 그리스도로 충분하고 오직 그리스도의 완전하심과 그리스도 안에 모든 것이 있음을 일심으로 누리는 믿음의 증인이 되게 하옵소서!
② 전심-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축복속에 나의 생명과 나의 모든 것을 드려도 될만한 가치를 발견하고 오직 전도에 올인하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③ 지속- 그 어떤 것도 막을 수 없는 하나님의 역사 속에서 하나님이 준비하신 결론과 다가올 결과를 알고 오늘 최고의 영적 축복을 누리며 지속하게 하옵소서!
깊은샘 417호- 4면 (깊은샘 Story)
코무덤(鼻塚)의 진실을 찾아서
전쟁은 어느 시대 어느 민족에게나 무지막지한 고통을 준다. 그래서 전쟁을 막아보려고 애를 쓰는 것이다. 일본 교토시 히가시야마구에는 임진왜란의 원흉 토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를 받드는 토요쿠니신사(豊国神社)가 있고 여기에서 100여m 떨어진 곳에 조선인의 코무덤이 있다. 어떻게 코의 무덤이 있다는 말인지 역사를 들여다 보아야 한다.
임진왜란 때 조선을 침략한 토요토미 히데요시는 왜군들에게 전공의 표식으로 무겁고 부피가 큰 머리를 베는 대신에 조선 군민의 코와 귀를 베어 소금에 절여 일본으로 가지고 돌아오게 했다. 당시 왜군의 전공품으로 희생된 조선 군민의 수는 무려 12만 6000여 명에 이른다. 풍신수길은 노획한 코의 무덤을 만들고 조선인의 원혼을 누르기 위하여 석탑을 조성하였다. 일본에서도 이곳을 원래는 코무덤이라 불렀으나, 에도시대 초기의 유학자 하야시 라잔이 그 명칭이 지나치게 야만적이라 하여 귀무덤이라 부르자고 한 뒤로 귀무덤으로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교토시는 이곳을 이총공원(耳塚公園)으로 조성하였으며 이총과 비총을 병기하고 있다. 어제나 오늘이나 확실한 과거를 감추어보려는 국가의 비열한 의도가 엿보인다.
우리 민족에게는 슬프고 억울한 과거 역사이기에 들추어보기 싫은 대목이지만 ‘과거를 잊으면 애꾸가 되고 과거에 집착하면 맹인이 된다’는 말처럼 드러난 사건에 대한 진실을 찾는 것이 역사를 이루어가는 마땅한 일이라고 본다. 전쟁의 증표가 필요했겠지만 왜 하필 코와 귀를 베어간다는 말인가? 그런데 이런 역사적 사건 배후에는 반드시 이유 있는 일들이 있었고 그 일은 결과적으로 주어졌다.
원래 한국민족은 단군이래로 제천의식을 통해 하늘에 계신 창조주 하나님을 섬기는 민족이었다. 그런데 국가의 권력을 따라 종교가 대두되므로 어쩔 수 없이 형상을 만들어 절하는 민족이 되었다. 역사의 현실을 판단하는 잣대는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나라마다 위기를 겪을 때는 거기에 맞는 상황이 존재했다. 종교사적으로 볼 때 고려시대는 불교가 왕성했고 조선시대에는 유교가 왕성했다. 종교적 입장에서 숭배의 대상은 달라도 숭배의 모양은 똑같은데 그 행위의 근본은 절이었다. 사람의 수공으로 무엇을 만들어 절하는 행위는 정성스러워 보인다. 창조주 하나님은 인간의 존재가 인격 앞에서의 절은 필요하지만 무인격의 존재를 두고 절하는 것을 엄격히 경계하고 있다. 절은 절을 받는 대상 앞에 코를 박고 머리를 조아리는 인간최고의 예의로운 모습이다.
이런 형태의 절에 대해 성경은 엄중히 경고한다. “내가 너를 향하여 질투하리니 그들이 분내어 네 코와 귀를 깎아 버리고 남은 자를 칼로 엎드려 뜨리며 네 자녀를 빼앗고 그 남은 자를 불에 사르며, 네가 이같이 당한 것은 네가 음란하게 이방을 따르고 그 우상들로 더럽혔기 때문이로다”(겔23:25,30). 창조주 하나님은 우상 앞에 절하는 것을 싫어하신다. 결국 어느 나라에게나 하나님의 말씀은 그대로 성취되므로 우리 민족에도 예외가 없었던 것이 역사적으로 증명된다. 왜? 라고 하기 전에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중요하다.
오늘도 하나님은 구원을 두고 당신을 부르신다. 왜? 라고 하지만 말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보라. 내가 너를 사랑하노라!
정현국(복음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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