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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양궁 지도자에게서 진정한 '코칭coaching'을 배워라!
흔들리지 않는 고목처럼 우뚝 서서 과녁을 겨냥한다. 남겨진 시간 10초. 하늘을 올라 포물선을 그리며 돌듯 날아서 노란 동그라미에 꽂힌다. 관중은 함성을 지르고 상대편은 한숨을 짓지만, 당연하다는 듯 무표정한 모습으로 다시 활을 꺼내든다. 또 한 발의 명중을 위해...
지난 2008년 북경 올림픽때 그 어느 때보다 박진감 넘치는 경기가 바로 '양궁'이었다. 25년 정상을 지켜온 우리나라를 끌어내리려 경기운영방식을 또 다시 바꿔 한 발을 쏘는데, 1분의 시간만을 허락하고 모두 열두 발만 쏘게 했고, 이번엔 승리를 가져올 요량으로 적진 북경의 응원단은 선수의 조준시간에도 야유를 서슴지 않고 보냈다. 비바람이 치는 변덕스러운 날씨는 또 하나의 변수가 되어 한 발의 실수라도 생기면 패배를 해야 하는 절체절명의 시간들이었다. 하지만 남, 녀 단체전 모두 석권하고, 개인전은 남, 녀가 은메달을 차지하는 쾌거를 이룩했다. 경기를 지켜보는 내내 '저들을 저렇게 오래 정상으로 이끄는 힘은 무엇일까?'궁금했다.
전 국가대표이면서 금메달 수상자였던 각 방송국의 해설자들은 '지도자와 선수의 단합 덕분'이라는 '짜놓은 각본'같은 말만 대신했다. 그리고 한 마디 더 했다. '정말 뼈를 깎고 피나는 훈련을 했던 덕분'이라고 했다. 한편으로는 '에이~ 또 저 소리.' 하면서도 '도대체 얼마나 훈련을 열심히 했고, 지도자와 선수들의 단합이 잘 되었기에 감히 저들이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으며, 저렇게 훌륭한 성적을 거두는 것인가?' 다시 의문하지 않을 수 없었다. 모든 답이 한 권의 책에서 풀어졌다. (양궁경기를 더욱 실감나게 보기 위해) 좀 더 일찍 나왔더라면 더 좋았을 법하지만 얄밉게도 올림픽 직후 출간된 책, 한국양궁의 1등 신화를 이끌어낸 장본인이며, 현재는 대한양궁협회의 전무이사로 있는 서거원의 [따뜻한 독종]이다.
이 책은 대한민국 양궁이 양궁 종주국도 아닌 우리나라가 40년의 짧은 양궁역사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지난 25년간 세계 양궁을 석권하고 있는 비결을 이야기한 책이다. 국내 스포츠 종목 중 훈련 프로그램과 기본 사법 심지어 스포츠 종목 용품까지 한국화 되어 역수출되는 유일한 종목으로 자리잡을 수 있었던 그 힘은 어디에 있는지, 이른바 '한국 양궁의 저력은 무엇'인지에 대해 산증인이라 할 수 있는 저자가 설명해준 책이다. 올림픽 금메달 효자종목이면서도 자주 접할 기회가 없어 -내가 찾질 않으니 '비인기종목'이라는 말은 창피해서 못쓰겠다 - 세계대회 때만 되면 늘 궁금해 하던 의문들의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 오히려 그 대답들이 너무나 솔직해서 '외국의 양궁관계자들에게 번역되어 읽혀지면 어떻게 하나?' 걱정스러울 만큼 솔직담백한 이야기들로 가득했다.
저자는 제일 먼저 '화랑의 후예이기 때문에 활을 잘 쏘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니냐?'는 국민들의 자랑스러운 우문愚問 에 손사레를 친다. 세상에 마땅히 그러한 것은 없다. 우리나라 양궁선수들이 국가대표선발전에서 국가대표로 선발된 후 인터뷰를 하면 모두 이렇게 대답한다. "대한민국 국가대표가 되는 것 자체가 대회의 메달권 진입한 것과 다름 없다. 선발전에는 수 백명의 치열한 경쟁을 뚫어야 한다." 국가대표가 되기 위해 보이지 않게 피땀 흘린 우리의 궁사들이 있었기 때문에 좋은 성적을 내는 것이지, 화랑의 후예였기 때문에 그들이 그렇게 성적을 낼 수 있는 것은 절대 아니다. 저자는 힘주어 이렇게 말한다.
"그 선수는 원래부터 대단한 카리스마를 타고나서 아무렇지 않게 10점을 꽂을 수 있었던 게 아니었다. 머릿속이 새하얗게 되는 그 순간의 순간적 집중력과 승부근성, 목표를 꼭 이루겠다고 하는 열정, 그것은 순전히 후천적인 노력이 맺은 결실이었고, 노력하고 또 노력한 끝에 나온 결과일 뿐이다. 후천적으로 만들어진 노력과 열정이 그 죽을 것 같은 순간에 담담하게 집중해서 활을 쏠 수 있게 한 것이다. 태극전사들이라고 해서 무서움을 모르고 긴장도 하지 않는 초인들이 결코 아니다. 인간적인 공포와 긴장을 이기기 위해 4년 내내 피땀을 흘린 평범한 젊은이 들이다." (p77)
또한 한국양궁의 성공에는 남들이 아무도 생각하지 못한 것을 스포츠에 접목시키는 혁신적 개발의 역사, 역발상의 역사였다고 저자는 말한다. 우리나라 최초로 스포츠에 과학을 접목시키고, 스포츠 심리학을 적용하였으며, 등산, 수영, 해병대 훈련, 북파 공작원 훈련, 번지점프, 무박 3일 행군 등과 같은 아무도 생각하지 못한 기상천외한 훈련방법을 끊임없이 개발해 훈련했다고 말한다. 예전에는 없었지만 최근 자국민의 성적을 위해 고성이나 소음을 일으키는 관중 - 지난 북경 올림픽 때 우리가 목격한 것과 같은 - 들을 고려해 올림픽 공원에서 양궁연습을 하는가 하면 미사리에 있는 경정경기장에서 관중들을 옆에 두고 그들의 함성과 소음을 견뎌가며 활시위를 당기는 연습을 했다. 극한의 공포를 위해 11미터 높이의 다이빙을 시켰고, 뱀을 옷 안에 넣어 바지 밑으로 꺼내는 담력테스트도 했다고 한다. 저자는 번지점프 중에 정말 뛰어내리지 못하겠다고 버티던 어느 선수와의 에피소드를 들어 이렇게 말했다.
"감독이 뛰어내린 다음 다시 올라와서 한 30분 동안 선수를 설득하고, 그래도 안 되자 감독이 또 뛰어내리고, 다시 올라와서 선수 붙들고 설득하다가 도저히 못 뛰겠다고 하니 또 뛰어내리고...그렇게 하기를 무려 9번! 여자팀 감독이 무려 9번을 뛰어내린 것이다....(중략)..."꺄~악!"
감독들이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니 그 선수가 사라지고 없었다. 이미 번지점프대에서 뛰어내린 후였다. 너무나도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감독들 모두 입을 쩍 벌렸다. 다리에 밧줄을 매고 뛰어내린 게 천만다행이었다. ... 충주호에서 그 일이 있고 나서 한 달 후 그 선수는 세계대회에서 가장 우수한 성적을 거뒀다." (p122)
하지만 이같은 타고난 실력, 기상천외한 훈련도 한국양궁을 이끈 지도자들의 노력 앞에선 맥을 추지 못할 것이다. 오늘의 한국양궁이 있기 까지는 ‘하나된 팀’을 만들어낸 지도자들이 있었다. 국가대표선수들이 몸담고 있는 실업팀이 해산되자 졸지에 직업을 잃은 선수들과 고통을 함께 하기 위해 자신의 국가대표감독직을 사직한 후 기약 없는 '백수'생활을 함께 했고, 선수들이 활동할 '새로운 실업팀 창단'을 위해 발 벗고 뛴 가족 같은 지도자가 있었다. 선수들의 흔들림과 슬럼프에서도 그들을 믿고 끝까지 함께 하며 기다려주고, 모든 훈련을 함께 하며 선수와 지도자는 늘 함께 한다는 동반자적인 관계를 진솔하게 표현한 대목은 울컥하게 했다.
책을 읽으며 저자의 문재文財가 예사롭지 않음을 느꼈다. 스포츠 지도자가 쓴 책이라 해서 글 솜씨에 대해 선입견이 없잖았는데, 소설 같은 감동과 재미를 느끼게 하고, 책을 놓을 수 없게 만드는 흡인력이 있는 글이어서 놀랐다. 그리고 곧 그런 힘은 저자의 '독서'에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의 기발한 훈련방식이나 탁월한 리더십 또한 그의 '독서'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까?
이 책의 곳곳에 들어 있는 ‘서거원의 Winning Secret’은 저자의 독서량과 범위를 가늠케 했고, 책을 통해 이해한 것을 어떻게 훈련에 활용했는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도 '거스 히딩크' 버금가는 책 좋아하는 '멋진 지도자'가 있다는 데에 반가웠고, 독서가 선수들의 심신훈련에 미치는 정도까지 파악하고 있어 놀라웠다. 조직의 리더 혹은 CEO라는 관점으로 이 책을 읽는다면, 자신의 지도자관 또는 선수들을 이끌어가는 리더십을 지켜보면서 ‘서번트 리더십’, ‘감성마케팅’, ‘블루오션의 전략’ 등이 실제로 적용된 사례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선수들은 제품을 만드는 사람(직원)들이 아니다. 세계의 정상을 차지할 수 있을 만큼 선수 한 명, 한 명을 읽어내어 그들의 몸과 마음을 최대한을 활용할 수 있도록 이끌어내는 지도자라면 그 어떤 일을 맡기더라도 최고의 리더가 될 것 같았다. 책을 통해 구성원들을 말 그대로 '가족처럼' 대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배우게 되었다.
다시 북경올림픽 양궁경기장으로 돌아가보자.
세찬 비바람이 불고, 관중이 야유를 하고 있는 가운데 선수들은 한 발 한 발 정상을 위해 다가간다. 그들이 긴장되거나 혹은 한 발을 쏜 후 만족스럽지 못해 안타까워할 때 그들은 뒤를 돌아보았다. 그곳에는 같은 관중의 야유를 듣고, 비바람을 맞으면서도, 과녁의 점수에 상관없이 조용한 미소를 짓고 끄덕이며 '잘했어, 잘했어' 작은 박수를 보내는 '큰 나무'들이 있었다. 그들이 다음 활시위를 위해 마음을 고치며 임할 수 있었던 것은 그 '큰 나무'가 있었기 때문이다. 직원이 즐겁게 자신의 일에 임하고 그들이 100% 기량을 발휘할 수 있게 한 것은 리더의 '조용한 미소와 작은 박수'가 아닐까?
이 책을 통해 진정한 ‘코칭coaching’이란 무엇인가 배울 수 있었다. 한국양궁의 성공은 비즈니스를 경영하는 리더가 조직을 훌륭한 성과를 거두기 위해서 구성원들을 어떻게 대해야하는 지를 알려준다. 아무리 위대한 지도자라 할지라도 실전에서 성과를 내는 사람은 구성원(사원)인 것이다. 구성원들이 최고의 실력을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고 뒤에서 무한한 신뢰와 아낌없는 응원을 던지는 것이 진정한 리더가 아닐까? 세찬 비바람에 맞서 한 발 한 발 시위를 당기는 선수 뒤에서 활이 젖을까, 수건이 젖을까 우산으로 보호하며 잔잔한 표정으로 묵묵히 그들과 함께하는 코치의 마음은 이럴 것이다. ‘넌 혼자가 아니다. 네 뒤에 내가 있다. 걱정하지 말아라.’ 이것이 우리가 가져야 할 리더의 마음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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