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십 4가지 유형
영웅은 위기에서 빛나기 마련이다.
위기를 맞아 남다른 리더십을 발휘한 CEO들의 성공 사례를 분석해 본다.
- ▲ 박성훈 베인앤컴퍼니 부사장
위기의 순간, CEO의 역할은 절대적이다. 호황기에는 상대적으로 경쟁력이 약한 회사들도 어느 정도 성장을 달성할 수 있다. 하지만 불황기는 다르다. 수요가 급감하고, 고객이 구매업체를 바꾸는 등 경영 환경이 급변한다. 이를 어떻게 극복하느냐에 따라 광풍(狂風)이 잦아든 후 기업의 위치는 완전히 달라지게 된다.
그렇다면 글로벌 금융위기의 쓰나미가 휘몰아치는 지금, 한국의 CEO들은 어떠한 리더십을 발휘해야 할까? 리더십의 정답은 단 한 가지가 아니다. 기업이 처한 상황에 따라 필요한 리더십도 다를 수밖에 없다. 기업의 재무적 지위와 전략적 지위에 따라 요구되는 4가지 리더십 유형과 사례들을 베인앤컴퍼니와 함께 검토해 본다.
위기에 직면한 기업은 두 가지 변수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 재무적 지위와 전략적 지위가 그것이다.
재무적 지위란 회사의 재무적 상황(손익과 보유 현금, 부채 등)에 의해 좌우된다. 전략적 지위는 시장 점유율과 원가 경쟁력, 고객 충성도, 브랜드 파워 등에 좌우된다. 기업이 처한 상황은 이 두 가지 변수의 강약(强弱)에 따라 4가지로 나눌 수 있다. 각 상황에 맞는 리더십 유형을 살펴보자.
①장수형 리더십
강한 전략적 지위, 약한 재무적 지위→장수(將帥·commander)형 리더십= 군살을 빼라
시장에서 우월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지만, 재무 건전성이 취약하다. 따라서 불황을 맞아 매출과 이익이 줄고 자금 조달마저 어려워지면 파산할 수도 있다. 이런 유형의 기업에는 '장수(將帥·commander)형 리더십'이 필요하다. 과감한 구조조정을 통해 비(非)핵심 부분을 줄여나가는 한편, 조직 슬림화와 재무구조 개선을 통해 재무적 유연성을 확보해야 한다. 하지만 무리한 다이어트로 근육(핵심 역량)까지 해쳐서는 안 된다. 예컨대, 핵심 고객들이 이탈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하며, R&D에 대한 투자를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
- ▲ 정만원 SK텔레콤 사장(전 SK네트웍스 사장)
장수(將帥)형 CEO
정만원 사장, 사소한 약속도 지키자 직원들 신뢰는 저절로…
'병든 공룡을 살려내라.'
2003년 정만원 전 SK네트웍스 사장(현 SK텔레콤 사장)이 새로운 CEO로 급파되면서 받은 특명이다. SK네트웍스의 전신인 당시 SK글로벌은 1조 5000억원이 넘는 분식회계를 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워크아웃에 들어가게 됐다. 외형상 업계에서 선두권에 있었지만, 재무 건전성은 지극히 취약했다.
많은 사람이 병든 공룡을 살려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고 여겼다. 부실은 물론이고, 주력인 수출입 사업은 성장이 한계에 이르렀고, 실추된 기업 이미지 등 문제가 한둘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취임 직후 정 사장은 패배의식에 빠져 있던 직원들에게 다음과 같은 약속을 했다. "1년에 책을 100권 읽겠습니다. 아침마다 나와서 기(氣) 체조를 하겠습니다." 직원들의 시큰둥한 반응을 뒤로하고 정 사장은 약속을 실행에 옮겼다. 매달 자신이 읽은 책의 목록을 직원들에게 공개했다. 얼핏 사소해 보이는 약속이지만, 이를 계기로 직원들은 새로운 야전 사령관에게 신뢰를 보내기 시작했다.
그는 이어 본격적인 구조조정에 착수했다. 40여개의 해외 법인을 절반 이상 줄이고, 부실사업은 과감히 정리했다. 동시에 신규 사업에도 적극적으로 투자했다. 중고차 매매 및 자동차 정비사업에 뛰어들었고, 해외 광물자원 개발사업을 추진해 지금까지 약 6조원의 광물자원을 확보했다. 휴대폰 판매 사업을 중국시장으로 확대해 성공을 거두었다.
어찌 보면 정신없이 사업을 벌인 것으로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핵심 사업별 인접 사업 확대'라는 성공 공식을 적용했음을 발견할 수 있다. 그동안 주력해 온 에너지와 정보통신, 무역, 패션 등 4가지 핵심 사업을 부문별 인접 사업으로 확장한 것이다. 그 결과 이 회사는 핵심 사업 영역이 다양하면서도 각각 분야 내 사업간 시너지 효과를 낳고 있어 불황에도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사업구조를 갖춘 회사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정 사장은 올 1월 SK텔레콤 CEO로 자리를 옮겼다. SK네트웍스와는 전략적, 재무적 포지션이 전혀 다른 회사에서 그가 또 어떤 리더십을 발휘할지 주목된다.
②활력자형 리더십
강한 전략적 지위, 강한 재무적 지위→활력자(revitalizer)형 리더십=격차를 벌려라
이런 유형의 기업들에 불황은 절호의 기회이다. 반면에 소극적으로 대처할 경우 자칫 경쟁사에 역전의 빌미를 제공할 우려도 크다.
이런 기업에는 '활력자(revitalizer)형 리더십'이 필요하다. 불황기에도 공격적인 마케팅과 가격 정책을 펼치는 것을 고려해야 하며, 경쟁사의 매력적인 고객들을 적극적으로 확보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 이런 기업은 현재의 성공적 지위에 안주하려는 경향이 나타나기 쉽다. 따라서 조직이 정체되지 않도록 새로운 동기 부여로 조직에 지속적으로 활력을 불어 넣어야 한다. CEO는 M&A 전담팀을 구성하여 매력적인 M&A 기회를 선점해야 한다.
- ▲ 서경배 아모레퍼시픽 사장
활력자형 CEO
서경배 사장, 설화수 등 韓方 화장품으로 고가 시장에 돌풍
서경배 아모레퍼시픽 사장은 1위에 안주하지 않고 혁신적 경영으로 기업을 한 단계 도약시킨 CEO로 평가받고 있다. 그는 1993년 태평양그룹 기획조정실 사장이 됐다. 당시는 기업들이 경쟁적으로 계열사를 늘리던 때였다. 하지만 그는 거꾸로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태평양증권, 태평양경제연구소, 야구단 태평양돌핀스, 태평양패션 등 화장품과 관계없는 계열사들을 정리했다. 멀쩡한 기업체를 정리하는 것에 대해 주변의 반대도 심했다. 하지만 서 사장의 판단은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진가를 발휘했다.
그룹의 선제적인 구조조정에 성공한 그는 1997년 아모레퍼시픽 사장 자리에 오른 뒤 닥친 IMF 위기를 오히려 기회로 바꾸어 나갔다. 당시는 외국계 유명 브랜드가 국내 시장을 공략하며 시장 점유율을 높이고 있었다. 다른 국내 기업들은 외국 브랜드를 피해 중저가 화장품에 주력하고 있었다. 그러나 서 사장은 '헤라'와 '설화수' 등 고가 브랜드를 출시하며 정면 승부를 걸었다. 특히 '설화수'는 한방(韓方) 화장품이라는 차별화 전략이 성공하며 백화점에서 수입 브랜드를 밀어내고 고가 화장품 시장에 돌풍을 일으켰다.
- ▲ 이구택 전 포스코 회장
이구택 포스코 전 회장(현 포스코 상임고문) 역시 2003년 취임 당시와 비교하면 회사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가 취임한 2003년 당시, 국내 철강 수요는 뚜렷한 둔화세에 접어들었고, 신흥국을 중심으로 해외 철강 수요는 급격히 늘어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그는 끊임없는 투자와 혁신을 주도했다. 프로세스 혁신을 통해 지속적으로 원가 경쟁력을 높였고, 제품 혁신을 통해 고급강 비중을 늘렸다.
또 직원들이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전진하도록 했다. 6시그마 등 핵심 혁신 활동을 통해 초기 4년 간 무려 1만4300건의 개선 프로젝트를 수행, 2006년부터 매년 1조원가량의 비용을 절감했다. 그의 재임 5년간 포스코의 순 이익률은 20.2%로 직전 5년간 평균인 13.2%보다 50% 이상 높았고, 이는 전 세계 어느 철강사보다도 높은 수준이었다.
그는 특히 실수를 두려워하지 않는 열린 조직 문화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프로젝트의 결과에 대해 책임을 묻기보다는 잘못된 프로젝트를 그대로 놔둔 책임을 묻겠다"면서 직원들이 자진 신고한 예전의 실패와 잘못에 대해 '대사면'을 선언하기도 했다. 그는 또한 영업 및 생산 현장을 두루 경험한 CEO답게 현장 경영을 중요시했다. 그러나 아르셀로미탈을 비롯한 세계의 메이저 철강회사들이 적극적인 M&A로 시장점유율을 높여가는 가운데 그가 좋은 기회를 여러 차례 놓쳤다는 비판도 받고 있다. 대신 포스코는 인도와 베트남에 신규 제철소를 짓는 전략을 취했는데, 현지 주민의 반대 등에 부딪혀 아직 착공도 하지 못한 상태다.
③해결사형 리더십
약한 전략적 지위, 약한 재무적 지위→해결사(surgeon)형 리더십=응급 수술을 시행하라
이러한 기업에 불황은 재앙이다. 생존을 위한 모든 수단을 강구하여야 하며, 응급 수술을 통해 재무적 안정성을 확보하는 것이 시급하다. 따라서 강한 실행력과 과감한 결단력을 겸비한 '해결사(surgeon)형 리더십'이 필요하다.
진정한 핵심 역량 유지를 위해 필수적인 것들을 제외하고는 과감히 처분해야 한다. 이와 함께 회사의 생존과 발전을 위한 새로운 청사진을 명확하게 제시하여야 한다. 이것이 없다면 투자자나 채권단을 설득하는 것은 물론, 임직원을 리드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 ▲ 정태영 현대카드 사장
해결사형 CEO
정태영 사장, 원칙에 충실한 내실 경영으로 '카드 대란' 극복
만약 당신이 대규모 적자를 기록하고 있고, 부실은 늘어만 가며, 시장은 이미 선두 업체들이 장악하고 있는 기업의 신임 CEO가 되었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현대카드의 정태영 사장의 모습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현대카드는 2001년 말 다이너스카드 인수를 통해 신용카드업에 진출했는데 당시 시장점유율이 1.8%에 불과했다. 정 사장이 취임한 2003년엔 신용카드 대란(大亂)으로 6000억원이 넘는 적자를 기록한 최악의 상황이었다. 그해 10월 취임한 정태영 사장은 응급 수술에 착수했다. 그가 꺼내든 메스의 이름은 '원칙'이었다. "신용카드는 대출카드가 아니다"라고 외치며 현금서비스와 카드론 비중을 대폭 줄였다. 동시에 부실 고객들을 과감히 정리하고 카드 발급 기준을 강화하며, 조달 자금과 대출 자금의 만기 불일치를 줄이는 등 위험 관리를 통한 내실 위주 경영을 펼쳐 나아갔다.
흔히들 현대카드의 성공 요인을 뛰어난 마케팅이라고 이야기하지만, 그 이면에 존재하는 정 사장의 전략적 통찰력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취임 직후 재정적 압박 속에서도 공격적인 마케팅에 나서는 한편, 과학적인 고객 분석으로 우리나라에 VVIP(초우량고객) 시장을 개척했다. 이는 CEO가 경쟁사와의 차별화를 통한 경쟁력 확보라는 명확한 전략 방향성을 가지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 ▲ 이태용 아주그룹 부회장(전 대우인터내셔널 사장)
이태용 전 대우인터내셔널 사장(현 아주그룹 부회장)도 기업의 군살을 도려내고 체질을 완전히 바꾸는 파격적인 경영 전략으로 회사를 회생시켰다. 2000년 12월 취임 당시 대우인터내셔널은 워크아웃 상태였다. 회사 빚은 1조원이 넘었고, 부채비율은 940%에 달했다. 종합상사라는 업종 자체도 사양길이었다. 이 사장은 구조조정과 함께 영업력 강화에 나섰다. 190곳에 달하던 해외 지사와 법인을 절반 이상 줄였다. 대신 채권단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회사의 핵심 역량인 주요 해외 네트워크를 살려달라고 설득했다.
그는 본업이던 수출입 사업 대신 에너지 자원 개발에 역량을 집중했다. 자원 개발은 막대한 투자비가 들어가는 대신 실패 확률이 높다. 하지만 기업 생존을 위해 과감한 변신을 선택한 것이다. 그는 2001년 미얀마 천연가스전(田) 개발권을 획득해 대형 가스전을 발견하는 등 큰 성과를 거두었다. 기업의 체질을 완전히 바꾸는 그의 전략은 2003년 회사를 워크아웃에서 탈출시킴으로써 결실을 보았다.
④혁신가형 리더십
약한 전략적 지위, 강한 재무적 지위→혁신가(innovator)형 리더십=근육을 강화하라
호황기에는 선도 기업을 따라가는 'me-too(모방) 방식'으로도 성장이 가능하지만 불황기에는 다르다. 수요 급감과 가격 하락, 고객 이탈이라는 물이 점점 차오르면, 특별히 내세울 것 없이 선도기업을 따라만 해온 기업(follower)은 감당할 수 없다.
따라서 이런 기업에는 '혁신가(innovator)형 CEO'가 필요하다. 경쟁사와는 완전히 다른 전략을 실행하고, 핵심 역량을 키워야 한다. 구매 방식의 전면적 재조정이나 생산 프로세스의 개혁을 통한 '원가 혁신', 새로운 기술이나 디자인을 통한 '제품 혁신', 또 타깃 고객 군(群)을 재설정하고 이들의 니즈를 충족시켜 나아가는 '고객 혁신'을 고려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조직 전체가 변화와 창의성이라는 테마 아래 끊임없는 혁신을 추구해 나아갈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되어야 하며, 직원들에 대한 동기 부여가 확실해야 한다.
- ▲ 스티브 잡스 美 애플社 CEO
혁신가형 CEO
스티브 잡스, 아이팟·아이튠스 출시 '병든 애플' 단숨에 살려내
혁신가형 CEO로서 세계를 대표하는 인물은 스티브 잡스(Jobs)라는 데 별 이견이 없을 것이다. 1990년대 중반 이후, 애플은 IBM에 PC시장을 완전히 내주며 향후 성장성에 의문이 제기됐다. 비록 노트북PC '아이맥'의 선전(善戰)으로 한숨은 돌렸으나 그것만으로는 결코 미래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잡스는 IT 버블이 꺼지던 2001년 MP3플레이어 '아이팟'과 온라인 음악채널인 '아이튠스'를 출시하여 기력을 잃어 가던 애플을 단숨에 살려냈다. 현재 아이팟은 전 세계 MP3 플레이어 시장의 50% 이상을 점유하고 있다.
스티브 잡스는 "미칠 정도로 멋진 제품을 생산하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하며 끊임없이 혁신적 제품을 추구했다. 먼저 MP3 플레이어 시장에 뛰어든 경쟁사들이 복잡한 기능 추가에 매달릴 때, 그는 군더더기를 없앤 콤팩트한 디자인과 사용 편의성으로 승부를 걸어 큰 성공을 거두었다. 또 단순히 기계 제조에만 매달린 것이 아니라 음원(音源) 회사들과의 제휴를 통해 대규모의 콘텐츠를 확보, 소비자들이 쉽게 음악을 다운로드받을 수 있게 함으로써 경쟁의 패러다임을 바꿨다. 그는 열정을 강조하는 창조적 카리스마를 보여주고 있다. "즐기면서 일하라"는 구호를 외치며 직원들이 열정을 가지고 창의적으로 생각하도록 끊임없이 독려한다. 혁신과 창의성을 중시하는 애플의 기업 문화는 스티브 잡스가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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