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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소설]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

대한유성 2006. 2. 12. 09:53


 

인디언 소년 작은 나무의 이야기는 따뜻하고 아름답고 슬펐다.
자연과 교감하며 자란 작은 나무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을 떠올려 보았다.
살면서 순간 순간 내 영혼을 밝히는 이야기들이 있었지만 타임머신이 있다면 다시 돌아가고픈 시절은 땅을 밟고 햇살을 받으며 뛰놀았던 예닐곱 살 때이다.

 

동네 공터에 오징어가이상을 그려 놓고...
우리 동네에서 가장 부자였던 할아버지 집 앞에는 넓은 공터가 있었다.
그 공터는 우리 동네 아이들의 놀이터였다.
어린 아이부터 학교에 다니는 언니 오빠들까지 우리는 모두 놀이 친구였다.
그 당시 우리가 가장 좋아하던 놀이는 오징어 모양의 선을 그어 놓고 두 편으로 나누어 놀았던 오징어가이상이었다.
매일 선을 그리는 것이 귀찮았던 우리는 어느 날 삽으로 공터에 큰 오징어가이상 선을 팠다.
이제는 선을 그리던 시간만큼 더 많이 놀 수 있게 되었지만 학교에 간 언니 오빠들이 돌아오는 시간까지 기다리는 것은 정말 지루했다.
하루종일 놀지 못하게 하는 학교라는 곳이 나쁜 곳이라는 것을 그 때 알게 되었다.

 

영아야, 꼽추 되면 안돼...
내가 일곱 살 때 태어난 막내 동생 영아는 내게는 방해꾼이었다.
엄마가 집안 일을 하시는 동안에는 밖에 나가서 놀 생각뿐인 내게 영아를 돌보라고 하셨다.
친구들하고 복숭아 과수원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는데, 엄마는 밖에 못 나가게 하시고.
그렇다면 밖에 나갈 수 있는 방법은 영아를 업고 나가는 방법뿐이다.
엄마에게 영아를 등에 업어 달라고 했더니 포대기를 꽁꽁 묶으시면서 아기 업고 뛰면 아기 등이 꺾여 꼽추가 되니 절대 뛰지 말라고 주의를 주신다.
마음이 급한 나는 엄마 말씀은 이미 잊고 친구들이 있는 곳으로 뛰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영아가 뒤로 넘어가는 것이 느껴져 급하게 팔을 뒤로 받쳤지만 덜컥 겁이 났다.
이러다 영아가 꼽추되면 어쩌지?
엄마에게 야단 맞을 것이 겁나 말도 못 꺼내고 그 후 몇 년 동안 영아가 꼽추가 되나 안 되나 몰래 지켜보았다.

 

얘들아, 메뚜기 잡으러 가자...
메뚜기 볶음은 우리들의 훌륭한 간식이었다.
똥똥하게 살찐 메뚜기를 볶아서 먹으면 정말 고소했기에 가을이면 메뚜기 잡는 날을 정해 온 동네 아이들이 모였다.
사이다를 먹을 수 있는 형편이 되는 아이들은 사이다병을 들고 나와 메뚜기를 잡아 넣었고, 그런 형편이 안 되는 아이들은 강아지 풀을 뜯어 잡은 메뚜기 머리를 꿰어 넣었다.
이렇게 잡은 메뚜기를 모아 한 아이 집으로 몰려가면 그 집 어머니께서 맛있는 메뚜기 볶음을 만들어 주셨다.
삼삼오오 모여 앉아 먹었던 메뚜기 볶음을 먹는 우리들에게선 쉼 없이 웃음이 쏟아져 나왔다.

 

실지렁아, 나 학교 가기 싫어...
학교에 다니는 언니 오빠들은 불쌍했다.
오전에는 학교에 간다고 놀지 못하고, 집에 돌아오면 숙제라는 것을 하느라 또 놀지 못했다.
게다가 학교는 다니면 다닐수록 집에 오는 시간이 늦어지고 숙제도 많아지는 무서운 곳이었다.
그런데 엄마가 나도 내년이면 학교라는 곳을 가야 한단다.
나는 친구들과 노는 게 제일 좋은데 엄마는 학교에 가니 좋겠다고 하신다.
집 옆의 하수구에는 실지렁이가 많이 살았다.
물결에 따라 자유롭게 춤을 추는 실지렁이는 학교에 안 가도 되니 얼마나 좋을까.
실지렁아, 나 정말 학교 가기 싫어, 시간이 이대로 멈춰서 학교에 안 갔으면 좋겠어.
실지렁이에게 이렇게 하소연하였지만 시간은 흘러 다음 해 나는 손수건을 가슴에 달고 학교에 갔다.

 

이렇게 지난 시간을 다시 떠올리니 나도 인디언 소년 작은 나무만큼이나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는 생각이 든다.


 

 
출처 : 블로그 > 산너머의 성공예감 | 글쓴이 : 산너머 [원문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