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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새로운 희망을 노래하는 “까치와 호랑이”

대한유성 2006. 1. 27. 21:42

 

며칠 있으면 새해입니다.

신정이 지났지만 언제나 '설'이 되어서야 새해가 되는 느낌입니다. 신정때는 차례나 제사를 지내지 않지만 '설'때에는 차례를 지내고 그러기위해 가족이나 친지가 한자리에 모입니다. 이런 모습들은 아마 오랫동안 내려왔던 풍속의 영향일것입니다.

 

옛날에도 정월이 되면 전국 어디에서나 자주 볼 수 있는 풍속이 하나 있는데 “까치와 호랑이” 즉 호작도(虎鵲圖)를 대문에 붙이는 풍속이 그것입니다.  보통 정월 한달동안 붙여 놓다가 2월이 되면 다른 그림이나 글씨로 대체되었습니다. 호작도는 이렇게 민가에서 수요가 대중화된 그림이다보니 자주 그려지고 많은 사람들이 눈썰미로 그리는 경우가 많아 민화가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정월에 이러한 그림을 많이 그리고 붙여놓았을까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고 있는 사실부터 말씀드리면 전지전능한 신인 서낭신의 사자인 까치가 서낭신의 명령을 수행하는 심부름꾼인 호랑이에게 신의 계시를 전달하는 뜻이 가장 많이 알려져 있는 내용입니다. 여기서 중요한건 까치는 희조(喜鳥)로써 좋은 소식을 전달할 것이란 믿음이 있기에 새해에 좋은 소식이 많이 왔으면 좋겠다는 의미로 해석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런 해석은 호랑이가 액운을 막아주는 벽사의 의미로 받아들였던 우리 정서와 정월이 호랑이달 즉 인달(寅月)이란 점과 맞물려 매우 그럴듯하게 들립니다.  참 듣기만 해도 기분좋은 그림이지 않습니까?  하지만 뜻이 좋다고 해서 해서 그림을 해석하는 방식도 맞는건 아니겠지요?


일단 몇가지 의문을 제기해 보면 왜 꼭 이런 그림은 수많은 나무중 유독 소나무만 같이 그렸는가? 하는 점과 호랑이를 그릴때 이상하게 점박이 무늬가 많다는 점입니다. 또 왜 호랑이의 얼굴을 우스꽝스럽게 그렸는가 하는 점입니다.


소나무를 꼭 그려넣었던 문제를 먼저 살펴보면 우리 옛어른들이 소나무를 유독 좋아해서가 아닐것입니다. 그림 이란 창작입니다. 더구나 수많은 사람들이 반복해서 그렸는데 잣나무나 매화나무, 버드나무가 나오지 않을 까닭이 없는거지요. 하지만 그 어떤 그림에도 반듯이 소나무가 그려져 있습니다. 이러한 점으로 소나무가 무엇인가 말해주고 있다는걸 알 수 있습니다. 즉 소나무가 없으면 안될 이유가 있는것이지요.


원래 동양화에서 소나무는 보통은 절개(세한도)나 장수(백령도)의 의미로 그립니다. 특히 붉은 소나무(적송)은 적송자(赤松子)라는 신선과 결부하여 장수의 뜻을 한층 강조하기 위해서입니다. 특이한 경우지만 하늘과 땅을 연결해주는 솟대의 의미로 그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대표적인 작품이 조선 군왕의 뒤에 반듯이 그려져 있는 <일월오봉도>입니다.

 

하지만 소나무가 까치나 불로초와 함께 그리면 그 뜻이 신년(新年) 즉 새해란 뜻으로 해석됩니다. 그런 이유는 아마 소나무 송(松)이 보낼 송(送)과 발음이 같기에 희조인 까치와 결합하여 나쁜 것을 보내고 기쁨소식이 오는 새해 즉 정월이란 의미로 발전한 것으로 추측됩니다. 불로초와 같이 그린 이유도 물질중심의 서양과 달리 오래사는 것을 소원하였던 옛어른들이 눍지 않음(不老)을 얻는 것이 소원성취(여의如意)하는 것으로 생각했기에 ‘신년여의’란 뜻으로 해석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새해에 그리는 그림에 소나무가 빠질수 없는 이유가 소나무가 바로 새해란 뜻이기 때문입니다.

    

다음으로 호랑이를 살펴보겠습니다.

점박이 무늬는 오래된것일수록 많이 있고 나중에 그린것일수록 호랑이 무늬로 바뀌어 갑니다. 즉 점박이 무늬의 비중이 처음에는 많았다가 점점 엷어진 것이죠.  점박이 무늬로 덮여있는 동물을 상상해 보십시요. 호랑이 보다는 표범에 가까운 모습이지 않습니까? 

바로 이 그림의 원형은 표범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표범을 “개호랑이”이라 불렀는데 왜 새해의 좋은 소식을 전하는 성스런 그림에 “참호랑이”가 아니라 “개호랑이”를 그렸을까요?

 

 

이 그림의 원형이 호랑이가 아니라 표범인 이유는 표범의 표(豹)와 고할 보(報)와 중국식 발음이 [풰~]로 같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표범은 ‘알리다’ 란 뜻으로 그린것인데 문제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표범을 제대로 본적이 없기 때문에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나라가 신성시 했던 호랑이로 변천 되었던것입니다. 얼굴을 우스꽝스럽게 그린 이유는 좋은 소식이 오는데 사나운 표정을 하면 오던 복도  도망갈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그렇게 표정을 희화화 시켜나갔던 것으로 추측됩니다. 나중에는 어리숙한 얼굴 때문에 조선 후기의 종이호랑이, 즉 어리석은 양반을 풍자했던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고 처음에는 한 마리였던 까치도 나중에 두 마리(기쁨두배)로 그려지기도 했습니다.  

 

 


자 그러면 그림을 정리해 보면 소나무=신년, 표범=알린다, 까치=기쁜소식  즉 신년보희(新年報喜) ‘새해를 맞아 기쁜소식이 오다’란 뜻인것입니다. 처음 뜻과 비슷하지만 해석하는 방법은 전혀 다르지요?  이처럼 동양화에서는 뜻을 알아야 제대로된 그림 감상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보는 그림이 아니라 읽는 그림입니다. 따라서 화가와 작품을 따로 생각할 수 없고 그림의 목적이 분명하게 있습니다.


비록 중국의 희보도에서 유래됐지만 “까치와 호랑이”는 지주 양반들과 백성의 고혈을 쥐어짜는 관료로부터 이중의 고통을 당하는 고단한 현실속에서 새해에 새로운 기쁜 소식을 갈망하던 조선 민중의 아름다운 희망이 서려있는 그림이기에 비록 전문 화가들이 그린 그림이 아니라도 그 어떤 그림보다 아름답게 보일 수 있는것입니다.


구정 풍습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처럼 풍속은 아주 오래동안 우리의 생각과 생활에 영향을 줍니다.  따라서  “까치와 호랑이”는 오늘날 우리의 모습을 배우고 따라할 훗날의 우리 후손들을 생각할 때 현시기 우리의 마음과 생활을 어떤 빛깔로 그려나가야 하는지 모두가 생각해보게 하는 우리들의 회초리 같은 그림인것입니다. 

 

 

 

                                                       2005 . 1 . 24

 

                                             금강안金剛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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