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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신사임당의 <초충도 草蟲圖>중 [수박과 들쥐]

대한유성 2006. 1. 27. 21:39
 

<초충도 草蟲圖> 는 풀과 벌레를 소재로 한 그림을 말합니다. 하지만 엄격하게 풀과 벌레만으로 구성된 예는 드물고 대개 채소·과일·꽃·새와 함께 그려지므로 영모화(翎毛畵)·소과화(蔬果畵)·화훼화(花卉畵)의 범주에서 이해되기도 합니다. 우리나라에서 초충도 하면 대표적인 화가가 신사임당입니다.


조선이 남성중심이 아니였으면 정말 더욱 불세출의 예술가가 되었을것인데 그 시대적 한계로 말미암아 우리를 아쉽게 만들는 여성을 꼽으라면 단연 신사임당과, 허난설헌 입니다.  그래도 불행한 결혼 생활을 전전하다가 27세의 꽃다운 나이로 숨을 거둔 허난설헌에 비하여 신사임당은  율곡 이이 라는 조선 성리학 최고의 학자이자 관료를 길러냈다는 점에서 조금은 행복한 편일 것입니다.


하지만 신사임당을 이야기 할때 어느 불세출 학자의 어머니로만 이야기 해선 안될 것입니다.  그것은 신사임당 그 자체의 뛰어난 예술적 재능에 대한 무지이자, 그녀의 사물과 인간에 대한 따뜻함에 대한 의도적 외면입니다. 또한 여성을 어머니와 아내로만 이해하는 협소한 생각입니다.


이러한 여성의 역할에 대한 협소한 시각은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고 우리 생활 곳곳에도 스며있습니다.

지금 현재도 결혼을 하고 아기를 낳으면 자신의 이름은 없어지고 누구의 엄마로 불려집니다. 저도 아이를 낳은 후 처갓집에 가서 아내의 이름을 그냥 불렀다가 장인 어른한테 이제는 아이의 엄마이니 이름을 부르지 말라는 이야기를 듣고 한참 고민했었습니다.  


왜 여성은 결혼 후 자신의 이름을 잊어야 하는지...  누구의 엄마, 누구의 아내로 불려지는 것이 왜 주체성의 훼손인지를 말해주는 가장 전형적인 여성인 신사임당.

문장과 글씨 또한 훌륭하지만 화가로써 보여준 재능에 비할바는 아닙니다. 그 여러 작품중 가장 대표적인 작품 <초충8곡병풍>의 8점의 그림중 [수박과 들쥐]를  소개 할까 합니다.

 

 여러 작품중 이 작품을 먼저 소개하는 이유는 이 작품이 앞으로 새롭게 도안되는 5천원 권에 삽입될 작품 이기 때문입니다. 

 

 

 

              

 

[수박과 들쥐] 종이에 채색 28.3 x 34 Cm, 국립중앙 박물관
 

 

그림 가운데 수박이 ‘와하하’ 웃고 있습니다. 쥐 두 마리가 수박을 야금야금 갉아먹어 수박의 빨간 입이 드러났습니다. 나비도 수박 냄새를 맡고 날아 듭니다. 그 옆에는 빨갛게 핀 패랭이 꽃이 있습니다. 수박이 줄기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쭉 휘어져 있습니다. 신사임당 특유의 색채가 곱게 나타난 아름다운 그림입니다.


수박에 일단 주목해 보십시요. 우선 서양적 기법이라면 빛을 많이 받는 수박 꼭지 부분을 밝게 그리고 아랫부분을 진하게 그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임당은 수박 본래의 모습 그대로 그렸습니다. 그리고 표피가 베껴져 있는 모습. 줄기에 또 다른 가는 줄기가 감고 있는 모습 등 수박을 철저히 관찰 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처럼 초충도는 섬세한 관찰이 필수적 요건입니다.


먼저 오른쪽 패랭이 꽃을 보십시요..  패랭이 꽃은 꽃말이 '청춘' 입니다.  청춘의 기상처럼 꼳꼳하게 그렸습니다. 

하늘 거리는 나비를 보십시요.   나비는 조선 화가의 주요 소재입니다. 나비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나비 접(蝶) 자는  80을 상징하는 노인 질(耋) 과 중국식 발음이 같다고 합니다.  ‘띠에’ 라고 발음하지요. 따라서 우리 옛그림에서 나비가 나오면 일단 장수를 비는 의미라고 생각하시면 대부분 맞습니다.  두 마리의 나비가 있군요. 색깔로 보니 암,수 한쌍인 것 같습니다. 부부가 해로하는 의미인 것 같습니다. 

 

들쥐가 두 마리 있군요. 원래 쥐는 우리 옛그림에서는 재물을 상징합니다. 하지만 이 그림에서는 재물보다는 두 마리의 쥐가 갈아먹는 모습. 낮과 밤이 번갈아 가는, 즉 세월이 흘러가는걸 말하는 것 같습니다. 쥐가 수박에 비해 상대적으로 작게 그려져 있습니다. 쥐가 이 수박을 다 먹으려면 얼마나 오래걸릴까요. 그러는 동안 조그마한 수박은 다시 크게 자라겠지요. 그래서 쥐가 수박을 갉아 먹는 모습은 지금껏 먹은 것 보다 먹을게 더 많이 남은 창창한 젊은이를 의미하는건 아닐까요?

 

좌하에서 올라와 중앙을 가로질러 우측으로 휘어져 있는 수박 줄기를 보십시요. 이런식의 줄기를 표현하는 기법을 여의(如意) 라 하는데 ‘뜻대로 된다’ 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종합해 보면 이렇습니다.

아직 앞길이 구만리 같은 젊은이가 청춘의 꼳꼳한 기상을 가지고 80 노인이 될 때까지 부부가 해로하며 마음먹은 대로 모든것이 잘 되길 바란다.


아마 신사임당이 아들 내외나 딸과 사위를 생각하며 그렸을 것입니다. 자녀에 대한 사랑이 묻어나오는 그림. 정말 사랑스런 그림이지 않습니까?


신사임당은 1504년 10월 29일 강릉 오죽헌 태어났습니다. 어릴적 이름은 인선(어질인 착할선) 이고 4살 때 글공부 시작했고 어릴적 부터 아버지 신명화가 좋은 그림을 빌려와 보여주고 했습니다.  6살 때 안견의 산수도를 거의 비슷하게 모사하여 어른들을 크게 놀라게 했습니다.

 

또 중국 지나라 공주로 태어나 태교와 교육을 잘하여 아들을 주나라 시조인 문왕으로 키운 ‘태임’을 본받기 위해 스승 사, 태임 임, 부인 당, 이란 사임당의 아호를 스스로 지어 율곡처럼 훌륭한 아들을 길러낼 것을 다짐합니다.


사임당으로 하여금 절묘한 경지의 예술세계에 머물게 한 중요한 동기로 내세울 수 있는 것은 환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사임당 자체의 천부적 재능은 두말 할것 없겠지만요..


첫째는 현철한 어머니의 훈조를 마음껏 받을 수 있는 환경을 가졌다는 점을 들 수 입니다. 신사임당도 무남독녀지만 그녀의 어머니 이씨도 무남독녀로써 외가에서 살았습니다. 다시말해 오죽헌은 그녀의 집이기도 하지만 외가 이기도 합니다.

 

그녀의 어머니는 무남독녀로 부모의 깊은 사랑을 받으면서 학문을 배웠고, 출가 뒤에도 부모와 함께 친정에서 살았기 때문에 일반 여성들이 겪는 시가에서의 정신적 고통이나 육체적 분주함이 없었습니다. 따라서, 비교적 자유롭게 소신껏 일상생활과 자녀교육을 행할 수 있었던거죠. 이러한 어머니에게 훈도를 받은 명석한 그녀는 천부적 재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었습니다.


둘째는 완폭하고 자기주장적인 유교사회의 전형적인 남성 우위의 허세를 부리는 그러한 남편을 만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그녀의 남편은 자질을 인정해주고 아내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도량 넓은 사나이였다는 점입니다.  

 

남성들이여.. 지적이고 우아하고 현명한 아내를 원하십니까?

만약 그렇다면 아내의 육체적, 정신적 노동을 최대한 덜어주고, 본인 스스로가 남성 중심의 문화를 가정에서 일소하여 부부가 모든 일을 상의하고 아내의 의견을 최대한 존중하는 남편인지 먼저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현시기 심사임당이 남, 여 사이에서 '이해와 존중' 이 얼마나 중요한지 말해주고 있는것입니다.

 

 

                                                    2005.  9 .  11

 

 



 
출처 : 블로그 > 우회전금지 | 글쓴이 : 금강안金剛眼 [원문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