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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 "최고의 회담" 끊어준 '한·미동맹 어음'…우크라 청구서 됐다[뉴스원샷]

대한유성 2022. 2. 26. 14:11

文 "최고의 회담" 끊어준 '한·미동맹 어음'…우크라 청구서 됐다[뉴스원샷]

중앙일보

입력 2022.02.26 05:00

업데이트 2022.02.26 13:13

 

브라질에 거주 중인 우크라이나 이민자의 후손들의 24일(현지시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반대하는 시위를 벌였다. 로이터=연합뉴스

유지혜 외교안보팀장의 픽 : 정부의 우크라이나 사태 대응

지난해 5월 방미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첫 정상회담을 한 뒤 문재인 대통령은 귀국길에 “최고의 회담”이었다고 자평했다. 방미 뒤 청와대와 외교부의 기류를 종합해보면 핵심은 북한 문제에서 미국의 적극적 협력 확보였다.

5‧21 정상회담 뒤 채택한 공동성명은 2018년 북‧미 간 싱가포르 공동성명뿐 아니라 남북 간 판문점 선언에 대한 존중을 포함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남북 대화와 관여, 협력에 대해 지지를 표명했다”고도 명시했다.

남북관계 개선에 외교의 최우선순위를 두고 있는 문 정부로서는 반색할 수밖에 없었다. 정부 당국자들은 그 뒤로도 한참 동안 공동성명에 나온 “(한‧미 간)대북 접근법의 완전한 일치”를 염불처럼 외고 다녔다.

문재인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5월 21일 정상회담 뒤 백악관 이스트룸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스1

문 정부가 준 것도 명확했다. 대만 해협, 남중국해 문제는 물론 미‧중이 첨예하게 맞붙는 신기술 분야에서도 전략적 무게추를 대폭 미국 쪽으로 옮겼다. “한‧미 동맹이 국제적 역할을 확대함으로써 중대한 도전에 대처한다”고 덜컥 ‘동맹 업그레이드’까지 약속했다.

이때만 해도 문 정부는 현금을 받고, 미국에는 어음을 끊어줬다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미국의 지지는 당장 북한을 대화로 끌어내는 데 바로 쓸 수 있지만, 미국과 중국이 정면충돌하거나 ‘동맹의 국제적 역할’을 확대해야 하는 상황은 장기적으로 상정할 문제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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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어음의 만기가 예상보다 빨리 도래했다. 그것도 생각지도 못한 우크라이나발이었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러시아의 침공에 맞서는 바이든의 승부수는 동맹 및 우방과 함께 하는 단합된 대응이다. 그 핵심에는 전면적이고 강력한 대러 제재가 있다. 어차피 러시아가 상임이사국으로 있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차원의 제재는 불가능하고, 각국이 각기 독자 제재를 마련해 한꺼번에 러시아를 때림으로써 효과를 극대화하는 게 바이든의 구상이다.

미국은 “한‧미 동맹의 국제적 역할을 확대하자”고 흔쾌히 어음을 끊어준 한국에도 일찌감치 협력을 요청했다. 하지만 ‘어음 결제’가 예상처럼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는 분위기다.

24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외곽 지역을 비행 중인 러시아 군용 헬리콥터. AP=연합뉴스

한국은 러시아의 전면 침공이 이뤄진 24일 오후 “국제사회의 제재에 동참하겠다”고 입장을 정했으나, 그러면서도 “독자 제재는 하지 않겠다”고 확실히 선을 그었다. 이날 정부 결정이 이뤄진 일련의 과정을 살펴보면 어딘가 톱니바퀴도 맞지 않는다.

전날만 해도 “(대러 제재는)현실적으로 어려울 것 같다”(외교부 당국자)더니→하루만인 이날 오전 “러시아가 전면전을 감행하면 제재에 동참할 수밖에 없다”(외교부)고 입장을 선회했고→점심 무렵 러시아가 실제 전면적 침공을 감행했는데→“(전면전인지 아닌지)예단해서 말하는 것은 삼가겠다”(외교부 대변인)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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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제재의 기준을 전면전으로 정해놓고선, 전면전이 벌어졌는데 이를 전면전으로 부르지는 않겠다는 식이었다.

러시아의 침공이 이뤄진 24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의 지하철역 방공호로 대피한 시민들. EPA=연합뉴스

국제사회의 제재에 동참하면서도 독자 제재는 하지 않는다는 입장 역시 앞뒤가 맞지 않는다. 독자 제재라는 형식을 택하지는 않으면서 실제로는 미국 주도의 대러 수출통제 등을 한국도 이행하겠다는 취지로 읽히지만, 이는 결국 한‧미 동맹과 한‧러 관계 사이에서 끝까지 균형을 찾아보겠다는 부질없는 발상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

실제 정부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영토에 군사력 전개 명령을 내린 지 사흘이나 지나서, 실제 전면 침공이 벌어지고 반나절이나 지나서야 겨우 “러시아를 강력 규탄한다”는 입장을 냈다.

24일(현지시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반대하는 시위 중 우크라이나에 대한 연대의 의미로 독일 브란덴부르크 문에 우크라이나 국기 색의 조명을 비추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원래 제재의 기본은 상대방의 뼈를 끊어버리기 위해 자신의 살을 내어주는 ‘육참골단(肉斬骨斷)’이다. 그런데 아무것도 내어주기 싫다며 대러 제재에 어설프게 한쪽 발만 걸치다가는 결국 피 흘리는 건 한‧미 동맹이 될 수밖에 없고, 바이든은 지난해 5월 받은 게 ‘부도 어음’은 아니었는지 의심하게 될 수 있다. 또 한국이 그렇게 균형감을 유지한다고 해서 러시아가 아주 크게 감사하며 은혜를 갚을 리도 없다.

무엇보다도 유엔 헌장과 국제법을 위반한 무력 침공에 보이는 국가적 태도는 양자 관계를 넘어 ‘한국은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일원으로서 행동하려는 나라인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마틴 키마니 유엔 주재 케냐 대사가 21일(현지시간) 아프리카의 제국주의 침탈 피해와 극복의 역사를 들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비판했다. 유엔웹티비 캡처

이에 대한 대답은 21일(현지시간) 유엔 안보리에서 러시아의 무력 사용을 조목조목 비판해 큰 주목을 받은 마틴 키마니 유엔 주재 케냐 대사의 명연설 중 일부 발췌로 대신한다.

“케냐와 대부분 아프리카 국가들은 제국의 종식과 함께 탄생했다. 우리의 국경은 우리가 아니라 식민 지배국들의 수도에서 그렸다. 만약 우리가 독립하면서 (이에 불복해)종족이나 인종에 기반을 둔 국민국가 수립을 추구했다면, 아직도 피 흘리는 전쟁을 하고 있을 것이다.
대신 우리는 우리가 물려받은 국경에서 출발하기로 했다. 어떤 나라나 국민도 보지 못한 위대함을 기대하기로 선택했다. 우리가 유엔 헌장의 규칙을 따르기로 한 것은 지금의 국경에 만족해서가 아니라, 평화가 일궈낼 수 있는 더 위대한 것을 원했기 때문이다.
케냐는 형제가 하나 되려는 열망을 잘 알지만, 이를 무력을 써서 추구하는 것에 반대한다. 우리는 멸망한 제국의 자취로부터 완전히 회복해야 하지만, 새로운 형태의 지배와 억압에 다시금 내몰려서는 안 된다.”

 
유지혜 기자 wisepe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