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 좋으라고 사표 내나” 좌천·굴욕 견디는 검사들
[기자의 시각]
입력 2021.07.04 21:25
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6월 23일 오전 정부과천청사 법무부로 출근하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뉴시스
지난달 검찰 인사에서 추미애 전 법무장관 아들의 군 휴가 미복귀 의혹을 무혐의 처리했던 김관정 서울동부지검장은 수원고검장으로 승진했다. 전국 일선에 6명 있는 고검장은 검찰총장을 제외한 검찰 내 최고위직이다. 김관정 고검장 휘하에 송경호 여주지청장이 수원고검 검사로 발령 났다. 고검 검사는 수사를 하지 않는 한직이다. 송 지청장은 서울중앙지검 3차장 시절 조국 전 장관 일가 비리 수사를 책임졌던 인물이다. 검사들은 이를 두고 “가학적 인사”라고 했다.
지난해 법무부의 윤석열 전 검찰총장 징계에 공개 반대했던 구본선 광주고검장과 강남일 대전고검장은 역시 한직인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으로 나란히 발령 났다. 법무연수원장에는 두 사람보다 후배인 조남관 대검차장이 임명됐다. 선배를 후배 밑으로 보낸 치욕적인 인사였다. 이번 검찰 인사는 정권 비리 수사 검사, 정권에 비판적이었던 검사들에 대해 사표를 내라는 법무부의 노골적인 메시지가 가득했지만 이 검사들은 모두 검찰에 남았다.
박범계 법무장관은 지난 25일 역대 최대 규모인 662명의 검찰 중간 간부 인사를 실시했지만, 부임일인 2일까지 사표를 낸 검사는 8명에 불과하다. 통상 이보다 적은 규모의 검찰 인사가 이뤄져도 승진에서 탈락하거나 좌천된 검사들이 20~40여명씩 ‘줄사표’를 내던 기존 관례와 비교하면 이례적이다. 검사들 사이에서는 “9개월 남은 문재인 정권이 끝날 때까지 버틴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4차례 연속 좌천 인사를 당한 한동훈 검사장을 비롯해 전국 지방 검찰청을 2년째 떠돌고 있는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 개입 사건 수사 검사, 조국 일가 비리 수사 검사들 모두 반복되는 굴욕적인 인사를 습관처럼 견디고 있다. 이들은 혹여 주변에 누군가 사표를 내려고 해도 “누구 좋으라고 사표를 내나” “검찰이 정상화될 때까지 남은 정권 임기를 버티자”며 서로를 격려하고 있다.
이번 인사에서 정권 관련 수사를 하다 한직으로 좌천된 한 검사는 “9개월 뒤 정권이 바뀔 때까지 버티면 제자리를 찾아가지 않겠느냐”며 “이전처럼 좌천됐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검사 생활이 끝났다기보다는 잠시 쉬어간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 일선의 한 검사장도 “해도 해도 너무한 인사다 보니 이제는 검찰 구성원 아무도 승복을 안 한다”고 했다.
친정권 성향으로 알려진 김오수 검찰총장조차 최근 백운규 전 산업부 장관과 이광철 청와대 민정비서관에 대한 수사팀의 기소 결재를 결국 승인했다. 그도 검사인 이상 드러난 증거와 명백한 법리를 후배들 앞에서 무턱대고 무시할 수만은 없었을 것이다. 내년 3월 대선까지 임기가 9개월 남은 문재인 정권만 연이은 학살 인사와 집요한 편 가르기 검찰 인사로 각종 정권 비리를 뭉갤 수 있다고 여전히 착각하고 있다.
박국희 기자
사회부 법조팀에서 검찰 이슈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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