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대놓고 "식량 없다"···한·미·중에 '손 벌릴 일' 밑자락 까나
[중앙일보] 입력 2021.07.05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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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연일 매체를 통해 대놓고 식량난을 외치고 있다. 북한에 식량이 부족한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만, 올해 들어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직접 나서 심각성을 강조하고 간부들을 질타했을 정도로 상황이 심각하다. 민심 수습에 더해 향후 외부에 손을 벌릴 경우까지 염두에 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식량 투쟁" 내건 北...김정은도 나서
북한 노동신문은 3일 '식량을 위한 투쟁은 조국을 위한 투쟁'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쌀이 많아야 국가가 자존한다"고 강조했다. 앞서 김 위원장은 지난달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인민들의 식량 형편이 긴장해지고 있다", "현 난국을 반드시 헤쳐나가겠다"며 스스로 식량난을 인정했다.
"식량 투쟁은 조국 위한 투쟁"
코로나 봉쇄ㆍ재해 겹치며 생산량↓
"대내 결속, 외부 인도 지원도 고려"
지난 4월 당 세포비서 대회에선 이례적으로 '고난의 행군'도 언급했다. 김 위원장이 최근 체중을 감량한 것도 식량난과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 나올 정도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최근 건강과 식량난을 의식해 다이어트(북한 말 '살까기')한 것이라는 추측이 나왔다. 왼쪽부터 2012년 2월 열병식, 2017년 10월 노동당 전원회의, 지난해 11월 노동당 정치국 확대회의, 지난달 17일 북한 노동당 전원회의 때의 김 위원장.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얼마나 어렵길래?
북한은 지난 1일 유엔에 제출한 보고서를 통해 지난해 곡물 생산량이 552만t이라고 밝혔다. 전년(657만t) 대비 약 100만t 줄었다. 특히 지난해 초부터 코로나19 방역을 위한 국경 봉쇄로 식량과 비료 수입이 중단됐고, 태풍과 홍수 등 재해까지 겹쳐 식량 수급 상황이 더 나빠진 것으로 정부는 파악하고 있다.
북한 경제 전문가인 김병연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장은 "북한 국내적으로 식량 생산이 줄어든 측면도 있지만, 수입이 막힌 게 더 큰 문제"라며 "북한이 보고한 수치를 그대로 받아들일 순 없지만 식량 사정이 어렵다는 걸 어느 정도 인정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또 "현재 북한 주민들은 1990년대 '고난의 행군' 당시와는 달라졌기 때문에, 당국이 민심 수습에 더 큰 부담을 느낄 것"이라고 분석했다. 북한이 이례적으로 식량 부족을 인정하는 데 대해 안팎의 요인 모두 작용했다는 것이다.
북한이 지난 1일 유엔에 제출한 지속가능발전 목표(SDGs)에 대한 자발적 국가보고서(VNR). 지속가능발전 국가 태스크포스( TF ) 의장인 박정근 부총리 겸 국가계획위원장 명의로 제출됐다. 북한의 곡물 생산량(cereal production)은 2018년 495만톤 수준이었다가, 2019년 657만톤으로 늘고, 지난해 552만톤으로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2021 북한 자발적 국가보고서 캡쳐]
대놓고 '우는 소리' 이유는?
특히 이는 단순한 민심의 문제가 아니라 통치의 안정성과도 직결되는 문제라는 분석이다. 김 위원장이 강조하는 '자력갱생'을 위해 필수적인 내부 결속 차원에서도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북한 체제 위기론 중 그나마 가장 유력하게 다뤄지는 시나리오가 식량난과 전염병이 겹치는 상황인데, 지금 북한이 맞닥뜨린 현실과 유사하다"며 "북한 당국이 상당히 긴장하고 있고, 주민들의 경각심을 일깨워 식량난 극복 노력을 최대한 끌어올리겠다는 전략"이라고 분석했다.
식량난 '커밍아웃'은 책임자 처벌 및 인사 혁신을 위한 포석이란 분석도 있다. 전성훈 전 통일연구원장은 "김정은 위원장 집권 10년을 보면 의외로 솔직한 스타일"이라며 "악화된 현실을 그대로 인정하되, 간부들을 희생양으로 삼고 대대적인 물갈이에 나설 것"이라고 전망했다.
지난달 29일 열린 북한 노동당 제8기 제2차 정치국 확대회의에서 이병철 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붉은 원)이 고개를 떨군 모습. 이 회의에서 김정은 위원장은 책임 간부들이 국가비상방역전에 대한 당의 중요 결정을 태업했다고 비판했다. 조선중앙TV. 연합뉴스.
외부 지원 염두 '밑밥 깔기'?
대외적으로는 중국의 대규모 식량 지원 혹은 한국을 비롯한 국제사회로부터의 인도적 지원을 염두에 뒀을 수 있다. 신범철 경제사회연구원 외교안보센터장은 "(북한의 식량난 인정은) 1차적으로는 내부 결속용이지만, 2차적으로는 대외 지원을 받기 위한 명분 쌓기"라며 "북한이 '자력갱생'을 외치면서도 유일하게 중국과 우호ㆍ협력은 내세우는 만큼 중국으로부터 우선적으로 식량 지원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다만 북한은 최근 코로나19 백신 전달 작업을 위한 국제기구 직원의 입국을 막은 것으로 전해지는 등 당장은 문을 걸어 잠근 모양새다.
이와 관련, 향후 식량난을 계기로 대북 지원 논의가 본격화할 경우 미국이 인도적 분야에서 대북 제재의 예외를 어디까지 둘지도 관건이다. 제재 예외에 대한 바이든 행정부의 기준과 범위 등이 자연스레 드러나는 셈이다.
트럼프 행정부 시절엔 인도적 목적의 남북 간 사업의 경우 한ㆍ미 워킹그룹을 통해 제재 면제를 논의했지만 지난달 이 협의체는 사실상 종료됐다.
성 김 대북특별대표는 방한 중이던 지난달 22일 국내 외교안보 전문가들과 만나 "워킹그룹은 종료가 아닌 '재조정'될 것"이라며 "비핵화 전 제재 완화는 있을 수 없지만, 대화용 인센티브가 아닌 순수한 목적의 인도적 지원은 가능하다"는 취지를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박현주 기자 park.hyunju@joongang.co.kr
[출처: 중앙일보] 北 대놓고 "식량 없다"···한·미·중에 '손 벌릴 일' 밑자락 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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