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의 봄’ 미몽은 2018년으로 충분하다[동아시론/안드레이 란코프]
안드레이 란코프 국민대 교수
입력 2021-04-24 03:00
수정 2021-04-24 03:10
재·보선 보수 압승으로 北 태세 전환 주목
정상회담 등 상징적 ‘외교 쇼’ 참여 가능성
대화 긍정적이지만 ‘北 비핵화’ 헛된 꿈 버려야
안드레이 란코프 국민대 교수
4월 7일 재·보선에서 보수 야당은 압승을 거두었다. 얼마 전까지 아무 희망이 없는 것처럼 보였던 야당은 2022년에 청와대에 입성할 전망이 다시 생긴 것처럼 보인다. 서울의 새로운 상황은 남북관계에 많은 영향을 미칠 것이다.
얼마 전까지 남북관계의 모습은 꽤 이상했다. 문재인 정부는 소규모 대북 지원 및 문화·인적 교류 등의 공동 행사를 많이 제안했다. 그러나 북한 측은 무시 또는 거부로 일관했으며, 심지어 대북 지원에 대한 열망을 많이 보여주는 문재인 정부를 모욕하거나 도발하기도 했다. 작년의 남북연락사무소 폭파는 북한의 대남 접근법의 특성을 잘 보여주었다.
북한의 태도는 터무니없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충분한 논리 및 정치적 계산에 기반을 둔 전략이다. 청와대는 남북관계 개선을 원하지만, 대북 제재를 위반하지 못할 뿐 아니라 미국의 불만을 유발할 생각이 없다. 그래서 남한 측은 유엔 제재에 어긋나지 않고, 미국도 반대하지 않을 남북 교류 행사만 계속 제안하고 있다.
그러나 북한 엘리트는 문화·인적 교류에 대한 관심이 아예 없다. 그들에게 한국은 무엇일까? 원조 혹은 무역으로 위장한 지원을 통해, 재정적·물질적 이익을 얻을 수 있는 젖소나 현금자동입출금기(ATM)일 뿐이다. 공동 올림픽 또는 이산가족 상봉과 같이 청와대가 추진하는 공동 행사들은 남한에는 가치가 있지만, 북한에는 알맹이 없는 상징뿐이다. 청와대는 이러한 행사로 국내의 지지를 높이고, 권력 기반을 강화하고, 다음 선거의 승리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 하지만 북한 엘리트가 얻을 이익은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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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북한의 기본 희망은 남한 측이 상징적인 행사를 제안하는 것 대신에, 외교수단으로 미국을 설득하고 제재 완화를 가져오도록 하는 것이다. 물론 남한 진보파 역시 북한과 같은 희망을 분명히 가지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5월 말로 예정된 한미 정상회담 때 조 바이든 대통령을 설득하기 위해 노력할 것임을 뉴욕타임스와의 회견에서 이미 알려주었다. 그런데 미국의 분위기를 보면 이 노력이 성공할 확률은 거의 없어 보인다.
북한 입장에서는 남한이 미국을 설득해서, 혹은 미국과 유엔 제재를 무시하고 대규모 대북 지원을 시작하지 않는다면, 남한과의 협력은 아무 의미가 없다. 그러나 이번 보수파의 압승은 북한의 대남 전략을 바꿀 변수가 될 수도 있다. 북한은 미국과 유엔 제재에 도전할 생각이 없는 남한 진보 정부에 불만이 있지만, 보수파를 훨씬 더 싫어하기 때문이다.
남한 진보파는 외교 수단을 동원해서 대북 제재의 완화를 추진하며 북한을 지원할 방법을 찾고 있지만, 보수파는 전혀 그렇지 않다. 원래 보수파의 대북 정책은 유연성이 없지 않았지만, 최근에 그들의 대북관은 많이 엄격해지고 굳어졌다. 보수파는 북한이 의미 있는 양보를 하지 않는다면, 북한을 관리할 방법은 제재와 압박이라고 보고 있다. 물론 북한은 보수파가 희망하는 양보를 할 생각이 전혀 없다. 따라서 보수파가 집권할 경우 남한은 북한을 무시할 가능성이 크며, 미국의 강경노선을 열심히 지지할 것이다.
그 때문에 북한은 남한에서의 보수파 부활의 가능성을 가로막고 2022년 대선에서 진보파의 재집권을 도와줄 상황에 처했다. 청와대는 남북 공동 문화 행사나 체육 경기를 함으로써 동북아 분위기에 영향을 미칠 의도도 있는데, 보다 더 중요한 목적은 국내에 외교 능력을 보여주고 지지를 높이는 것이다. 현 단계에서 북한은 남한 진보파의 지지율 향상을 원할 이유가 생겼고, 남북한 상징 외교 쇼에 참여할 가능성이 생겼다. 물론 오늘날 남한 유권자들은 북한에 대한 관심이 별로 없다. 그러나 접전이 벌어질 것 같은 대선 때, 민심의 작은 변화도 큰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가장 좋은 방법은 정상회담이다. 남북한 지도자 모두 2018년 봄의 ‘비핵화 쇼’의 성공을 잘 기억하고 있기 때문에, 다시 비슷한 시도를 할 가능성이 있다. 코로나 때문에 2022년 봄까지 대면 회담이 가능할지 의심스럽지만, 비대면 회담도 괜찮은 정치 쇼가 될 수 있다. 통일부가 올해 초부터 영상회의실을 구축하고 있는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정상회담이 어렵다면, 다른 공동 행사를 추진할 수도 있다. 남한 국내 정치적 측면을 제외하고 볼 때, 남북한의 상징적인 접촉이 다시 활발해지는 것 자체는 나쁜 일이 아니다. 그러나 주로 국내를 겨냥하는 이러한 상징적 행사에 별 희망을 가지지 말아야 한다. ‘김정은의 비핵화 의지’나 ‘한반도의 봄’과 같은 기적에 대한 미몽(迷夢)은 2018년 봄의 경험으로 충분하다.
안드레이 란코프 국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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