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향 사후150년 후에..
조선 영조 때의 문인 월암 이광려(月巖 李匡呂)는 두향 사후 150년이
지나 묘 앞을 지나면서 두향을 흠모하는 시를 남겼다.
一點孤墳是杜秋(일점고분시두추)
외로운 무덤 하나 그 이름 두향
降仙臺下楚江頭(강선대하초강두)
강 언덕 강선대 그 아래 있네
芳魂償得風流價(방혼상득풍류가)
미인이 멋있게 놀던 상으로
絶勝眞娘葬虎丘(절승진낭장호구)
경치도 좋은 곳에 묻어 주었네
- 퇴계 이황이 두향에게 보낸 시-
黃卷中間對聖賢(황권중간대성현)
누렇게 바랜 옛 책 속에서 성현을 대하며
虛明一室坐超然(허명일실좌초연)
비어 있는 방안에 초연히 앉았노라
梅窓又見春消息(매창우견춘소식)
매화 핀 창가에서 봄소식을 다시 보니
莫向瑤琴嘆絶絃(막향요금탄절현)
거문고 마주 앉아 줄 끊겼다 한탄을 말라
퇴계(退溪) 이황(李滉) 선생은 매화(梅花)를 끔찍이도 사랑했답니다.
그래서 매화를 노래한 시가 1백수가 넘는다고 합니다.
이렇게 놀랄 만큼 큰 집념으로 매화를 사랑한데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바로 단양군수 시절에 만났던 관기(官妓) 두향(杜香) 때문이었답니다.
퇴계 선생이 단양군수로 부임한 것은 48세 때였고
두향이는 18살 때였다고 합니다.
두향은 첫눈에 퇴계 선생에게 반했지만
처신이 풀 먹인 안동포처럼 빳빳했던 퇴계 선생은
당시 부인과 아들을 잇달아 잃고 홀로 부임하였으니
그 빈 가슴에 한 떨기 설중매(雪中梅) 같았던 두향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답니다.
두향은 시(詩)와 서(書)와 가야금에 능했고 특히 매화를 좋아했었답니다.
두 사람의 깊은 사랑은 그러나 겨우 9개월 만에 끝나게 되었습니다.
퇴계 선생이 경상도 풍기 군수로 옮겨가야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짧은 인연 뒤에 찾아온 갑작스런 이별은 두향이 에겐
견딜 수 없는 충격이었고 슬픔이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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