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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Why] 벚꽃 아래서 알았네 , 죽음이 삶을 증언한다는 걸

대한유성 2018. 12. 24. 13:25

[Why] 벚꽃 아래서 알았네 , 죽음이 삶을 증언한다는 걸

  • 백영옥·소설가


    입력 : 2015.12.05 03:00

    [그 작품 그 도시] 영화 '사랑 후에 남겨진 것들'―도쿄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일본의 한 호숫가.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일본의 한 호숫가. 도리스 되리 감독의 영화 ‘사랑 후에 남겨진
    것들’은 아내가 갑작스럽게 죽은 후에야 아내가 언제나 가고 싶어했던 도쿄로 떠난 한
    남자의 이야기다. 그는 벚꽃이 핀 도쿄의 공원에서 그림자 춤을 추는 한 소녀를 보고
    그녀에게서 아내의 잃어버린 꿈을 발견한다. /픽사베이

    남편과 함께 일본 후지산에 가보고 싶었다는 아내의 독백으로 시작하는 영화 '사랑 후에 남겨진
    것들'은 죽음에 대한 이야기다. 아내는 의사로부터 "남편의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부부가
    여행이라도 다녀오라"는 말을 듣는다. 아내는 남편에게 비밀을 말하지 못한 채, 막내아들의 직장
    이 있는 일본 도쿄에 다녀오자고 말한다. 하루에 사과 한 알 먹으면 의사가 필요 없다(An apple
    a day keeps doctors away)라고 믿는 남편은 마을 밖으로 도무지 나가려 들지 않는 규칙적인
    사람이지만, 아내의 간곡한 부탁을 마다할 수 없어 일본 대신 남매가 사는 베를린행을 택한다.

    하지만 자식들은 연락 없이 찾아온 부모님이 영 마땅치 않은 얼굴이다. 낌새를 눈치 챈 아내는
    그간의 사정을 자식들에게 입도 뻥긋하지 못한 채 남편에게 말한다. "여보, 우리 발트해에 가는
    건 어때요"라고. 그리고 그곳에서 뜻밖의 사건이 벌어진다. 죽음을 선고받았던 남편보다 아내가
    세상을 먼저 뜬 것이다.

    사실 이 영화의 초반부는 오즈 야스지로의 영화 '동경 이야기'의 독일판처럼 읽힌다. 생판 모르는
    자식의 친구가 먼 곳에서 온 부부를 위해 자신의 시간을 가장 많이, 기꺼이 내 준 사람이란 설정도
    그렇고, 피치 못하게 부모님을 떠안게 된 자식들이 서로의 갈등을 드러내는 방식 역시 그렇다.
    하지만 이 영화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아내가 갑자기 죽고 난 이후에 일어나는 남편의 내면 풍경
    이다.

    일찍이 일본의 춤 '부토(그림자 춤)'에 관심이 많았던 아내는 언제나 도쿄에 가고 싶어 했었다.
    하지만 남편은 그녀의 소망을 차일피일 미루었고, 결국 아내가 죽고 난 후에야 도쿄에 간다.
    아내가 죽는 순간 마지막으로 입고 있던 스웨터와 치마를 자신의 트렁크 가장 깊은 곳에 넣은
    채로 말이다.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의 소피아 코폴라 감독과 마찬가지로 이 영화를 만든 도리스 되리 감독
    에게서도 일본 문화에 대한 동경이 영화에 가득 엿보인다. 특히 벚꽃이 필 무렵 도쿄 공원이나
    사원 풍경이 그렇고, 엄청나게 큰 돗자리에 사람들 수십명이 둘러앉아 벚꽃 밑에서 온종일 도시
    락을 먹거나 맥주를 마시는 풍경이 그렇다. 영화를 보고 난 후 감독 인터뷰를 읽다가 나는 이런
    문장들을 발견했다.

    "결국 사랑 역시 덧없는 것이다. 우리는 사랑이 가장 큰 고통과 힘 속에서 스스로를 드러낼 수
    있도록 기회를 주어야 한다. 그 때문에 일본인들은 벚꽃 아래에 앉아 있는 것이다. 벚꽃이 피는
    동안에는 너무나 아름답기 때문에. 하지만 동시에 꽃이 피어 있는 시간이 너무 짧다는 사실에서
    오는 고통 또한 클 수밖에 없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사랑에 대해서도 사람들은 열성을 다
    해야 하고, 피어날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하며, 피어났을 때는 그것을 음미할 수 있도록 그 자
    리를 지켜주어야 한다. 벚꽃처럼 사랑 역시 피어날 수 있는 기회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식물
    이건 동물이건 각각의 존재가 진정으로 꽃피고 자신을 드러내는 순간이 주어졌다는 것, 이것이
    매우 중요한 것이다. 하지만 때로 우리는, 루디(남편)가 그랬던 것처럼 그런 순간들을 억누르고
    만 있다. 우리의 진정한 자아와 아름다움이 스스로 드러날 수 있도록 벚나무처럼 꽃을 피우도록
    허락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결국 이 영화가 묻고자 하는 것은 죽음을 앞에 두고 현재를 만끽하는 것이 가능한가이다. 무엇이
    우리를 꽃피게 하고 무엇이 우리를 시들게 하는지에 대한 것들 말이다. 남편은 벚꽃이 핀 도쿄의
    공원에서 부토 춤을 추는 한 소녀를 발견하고, 그녀에게서 아내의 잃어버린 꿈을 발견한다.
    꽃처럼 피어나고 있는 아름다운 소녀의 얼굴에서 피어나지 못한 채 죽어버린 아내의 어린 희망
    을 엿보게 되는 것이다.

    남편은 아내의 스웨터와 치마를 입고 공원에 갔을 때에야 비로소 살아 있을 때 차마 하지 못했던
    대화를 죽은 아내와 나누기 시작한다. 죽은 자와의 대화가 가능해지려면 전제되어야 할 조건이
    있다. 그것이 진짜 사랑이어야 하고 그 사랑은 한 사람의 생애를 통해 입증되어야 하는 종류의 것
    이다. 그는 아내를 떠나보내고 난 후에야 자신이 했던 사랑이 무엇이었고 그것이 어떤 의미였는
    지를 깨닫는다. 그런 의미에서 세상의 모든 사랑은 사후적이다. 너무나 슬프게도 사랑이 끝나고
    나서야, 그것이 시작된 지점을 비로소 들여다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일본 동화작가 사노 요코의 에세이집 '죽는 게 뭐라고'에서 가장 인상적인 건 죽음이 아니라 삶에
    대한 소소한 이야기였다.

    "제가 의사한테 남은 날이 1년이라는 말을 들은 뒤로는 남편이 절대로 저한테 고함치지 않기로
    약속했어요. 성질이 급한 사람이었거든요. 그런데 저한테 가장 기쁜 순간은 제가 아프다는 걸 잊
    어버린 채 남편이 또 고함을 칠 때예요. 그건 제 병을 남편도 까먹고 있다는 거잖아요? 그게 가장
    기뻐요."

    제아무리 죽음을 당연한 것이라 받아들여도 인간은 별수 없이 늘 삶 쪽을 향해 서 있게 된다.
    살아남는 것이 우리 유전자의 본능인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사랑하는 친구나 애완견이 죽고 나
    서야 비로소 죽음에 대해 생각한다. 죽음은 도처에 깔려 있지만 그 검은 그림자를 우리는 너무
    쉽게 지나친다. 죽음이 삶의 교훈으로 스며들기에 우리의 문화는 죽음에 대해 얘기하는 것을
    지나치게 터부시한다.

    영화 사랑 후에 남겨진 것들 포스터

    '침묵의 수도'로 유명한 트리피스 수도원에서 단 한 가지 허용되는 말은 "형제여, 죽음을 기억합
    시다"이다. 왜일까? 지금 문화에서 죽음은 늘 닥치거나 선고되거나 벌어지게 마련이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말하듯 죽음을 선고받은 사람 앞에 서 있는 건 사실 죽음이 아니라 삶이다. 죽으면 모든
    게 끝나지만 죽음의 과정은 삶 속에서 우리가 감당하고 겪어야 하는 현실이기 때문이다. 결국 죽
    음은 동전의 양면처럼 삶을 증언한다. 극렬한 통증이 살아 있음의 증거인 것처럼 죽을 준비, 혹은
    가족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 역시 삶의 가장 강렬한 풍경이기 때문이다.

    컴퓨터 자판에서 '사람'이라는 단어를 빠르게 쳐넣으려다 오타가 되면 종종 '삶'이 된다는 걸 아시
    는지. 21세기 가장 유명한 암환자였던 스티브 잡스가 죽음을 '삶의 최고의 발명품'이라 말한 아이
    러니는 이렇게 이해해야 마땅하다.

    ●사랑 후에 남겨진 것들― 도리스 되리 감독 영화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출처 : YMC무재해컨설팅
    글쓴이 : mujaehae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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