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양오행 기초이해>
그러면 오행 중 토(土)는 무엇일까요? 수레바퀴에 비유하면, 바퀴 한가운데에 있는 축과 같은 것이 토(土)입니다.
가운데의 축이 없으면 수레바퀴가 굴러갈 수 없죠. 마찬가지로 토(土)가 아니면 목화금수의 순환도, 춘하추동 사계절의 순환도 결코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다시 말하면, 우주만유가 현실세계에서 목화금수(木火金水)의 변화운동을 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바로 토(土)라는 겁니다.
토(土)의 겉모습이 목화금수(木火金水)라면, 목화금수의 속모습이 토(土)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토(土)가 현실에 작용할 때는 둘로 나뉩니다. 첫째는 분열을 주재하는 양토(陽土)가 있고, 둘째는 통일을 주재하는 음토(陰土)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양토는 봄[木]에서 여름[火]으로 넘어갈 때 작용하고, 음토는 여름[火]에서 가을[金]로 넘어갈 때 작용합니다.
여름의 화(火)는 분열기운이고 가을의 금(金)은 통일기운입니다. 때문에 그 성질이 정반대이므로 화(火)와 금(金)은 대립[克]하며 서로 싸우는데, 이 금과 화의 다툼을 조절하는 토가 바로 음토(陰土)입니다.
이를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실제로 토(土)는 각 변화단계에 모두 작용합니다. 목화금수(木火金水)의 기운은 사실상 각기 다르기 때문에, ‘수→목, 목→화, 화→금, 금→수’의 각 변화 단계마다 모두 토의 중재가 필요한 것입니다.
정리하면, 오행 중 목화금수(木火金水)는 겉으로 드러난 변화의 현상이며, 토(土)는 이 세상에 변화가 일어나게 하는 이면의 원동력인 것입니다.
음과 양은 상대적인 두 개의 힘으로 이 세상의 삼라만상 어디에나 존재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음양이 최초로 탄생되는 것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렇지만 그 상황을 유추해 볼 수 있는 방법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
바로 소우주(小宇宙)를 통해 대우주의 실상을 엿보는 것입니다.그리고 경전이나 신화(神話), 전설 등을 통해 추론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먼저 구약성서의 창세기 1장을 잠시 봅시다.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빛이 생겨라'하시니,
빛이 생겼다.
그 빛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다.
하나님이 빛과 어둠을 나누셔서,
빛을 낮이라 하시고, 어둠을 밤이라 하셨다.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하루가 지났다." |
음양이 어떻게 탄생되는지 보입니까? 우리는 구약성서를 통해서 하느님이 천지창조 첫째날 태극(太極)과 음양을 만드시는 것을 엿볼 수 있습니다.
자! 이번에는 소우주인 언덕을 통해 이 상황을 좀더 상세하게 관찰해 봅시다. 음(陰)과 양(陽)이라는 말의 본뜻은 언덕에 생긴 응달과 양달이라는 말입니다.
응달과 양달이 어떻게 생기나 잘 살펴봅시다.
하루해가 지고 밤이 되면 천지가 어둡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물론 편의상, 별빛과 달빛도 없다고 가정합시다.)
이런 상태에서는 존재함과 존재하지 않음에 대한 아무런 판단이 설 수 없습니다. 없는 것 같기도 한데 역시 없는 것도 아니며 적막무짐(寂寞無朕)한 상태로 어둠 속에 묻혀 있습니다. 이런 상태를 무극(無極)이라 합니다.
영원한 변함이 없을 것 같던 어둠 속에서도 시간은 흘러 동쪽에서 해가 솟아오르는 순간, 텅 비어 있던 천지가 밝은 햇빛 아래 갑자기 드러나게 됩니다.
태초에 빛이 생겨 밝음과 어둠이 나뉘어지던 상황이 어렴풋이 그려지지 않습니까? 밝음과 어둠은 순간적으로 나뉘어지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의 깊게 볼 것은 태양이 떠올라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언덕입니다.
빛이 비치자마자 언덕에는 양달과 응달이 동시에 생겨났습니다. 양달이 먼저다 응달이 먼저다 할 수 없을 정도로 음양은 순식간에 함께 태어난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바가 큽니다. 음이 있는 곳은 항상 양이 따라가게 됩니다. 거꾸로 양이 있는 곳은 언제나 음이 따라가게 됩니다. 음과 양이 태어나는 순간부터 함께 할 수밖에 없는 운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유행가 가사처럼 '빛과 그리고 그림자'입니다. 음(陰)과 양(陽)이라는 말뜻이 좁게는 응달과 양달이지만, 위와 같은 특성 때문에 동양의 자연주의 사유 방법의 기초 개념으로 광범위하게 사용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음이 생길 때 동시에 양이 존재하게 되는 음양의 특성을 '음양(陰陽)의 상대성'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언덕을 주시해 봅시다.
언덕이 빛에 의해 세상에 드러난 후 응달인 음과 양달인 양이 뚜렷하게 나뉘어진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의 시각을 한번 바꾸어 언덕의 입장에서 생각해 봅시다.
비록 음양의 작용에 의해 밝은 쪽과 어두운 쪽으로 나뉘어졌지만 언덕은 둘입니까? 하나입니까?
양달과 응달의 나뉘어짐과 관계없이 음양이 실현되는 장(場)인 언덕은 하나라는 것입니다. 그 하나가 바로 태극이며 음양은 하나 속에 들어 있는 둘입니다.
이러한 음양(陰陽)의 특성을 '음양(陰陽)의 일원성'이라 합니다.
그런데 위의 두 그림에서 차이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언덕은 응달과 양달이 직선으로 나뉘었는데 태극은 응달과 양달이 곡선으로 나뉘어져 있네요?!
여기에는 매우 중요한 개념이 숨어 있습니다. 바로 시간입니다.
해는 동에서 떠서 시간의 흐름에 따라 일정하게 서쪽으로 넘어가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언덕에 비치는 응달과 양달의 비율은 한쪽이 많아지면 다른 한쪽이 적어지고, 또한 반대편이 많아지면 다른 반대편이 적어지는 현상이 일어나게 됩니다.
그 결과 음양은 (A)의 도형이 아니고 (B)의 도형이 이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음과 양을 나누는 선이 곡선을 이루는 것은 시간이 직선이 아닌 곡선 운동을 하고 있음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언덕에 시간의 개념이 들어서면서 드디어 음양은 생명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응달과 양달이 균등하게 고정되어 있지 않고 시간의 흐름에 따라 세력권의 판도가 달라지고 음양의 투쟁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시간은 태양을 동(東)에서 서(西)로 움직이게 하고 태양 빛은 언덕을 비추면서 시간에 따라 응달과 양달의 세력 변화를 일으킵니다. 변화가 일어나고 움직인다는 것은, 곧 살아 있다는 것입니다. 시간이 개입되면서 드디어 음양은 생명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시간에 의해 부여된 음양의 이러한 특성을 '음양의 역동성(力動性)'이라 합니다.
태극도 이면에 시간의 흐름을 뜻하는 곡선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음양은 항상 변화가 일어나고 또 살아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출처 : sanatana
글쓴이 : i1iru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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