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암 정성규가 지난 5년간 『자연의소리』를 개발하며 겪은 경험담을 진솔하게 엮은 『전원생활 부자들』의 발췌본(전체의 약 20%)을 eBook의 형태로 무료로 보실 수 있습니다.
단순 이론서가 아닌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하고 있어 내용이 생생하게 살아있으며 개발 전체가 있어 어떻게 해야 되나?하는 막연한 불안감을 가지신 분들에게 좋은 지침서가 될 것입니다.
구글플레이에서 '풍암' 혹은 '전원생활 부자들'을 검색하시면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본 e-Book은 북씽크출판사에서 발간한 풍암 정성규의 ‘전원생활 부자들’중 전체의 20%정도를 발췌하여 구성하였습니다. |
읽어보시고 궁금한 점은 Daum 카페 ‘자연의소리(http://cafe.daum.net/son-house) 혹은 Naver카페 ‘자연의소리(http://cafe.naver.com/sonhouse)’에서 문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본 무료 배포본보다 더 많은 내용은 위의 카페에서 보실 수 있으며, 완성 내용은 전국 서점(온라인 포함)에서 구입(15,800원)하실 수 있습니다. |
풍암 정성규는 가난한 집의 7남매중 막내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본인의 힘으로 지금의 위치까지 오른 노력형 자수성가자이다. |
‘자연의소리(이하 자소)’는 거창군 가야산국립공원 자락에 위치하고 있으며 풍암 정성규가 개인의 힘으로 일군 자연생태공원, 펜션, 테마촌(공사중), 자연농원 등 종합자연휴식공간이다. |
‘전원생활 부자들’은 풍암 정성규 지난 5년간 임야를 개발하며 겪고 공부했던 경험(실패담)을 바탕으로 임야개발에 대한 모든 것을 정리해 놓은 임야개발 실천서이다. |
전원생활 부자들은 이러한 목차로 구성되어있으며
이론이 아닌 시행착오를 통한 경험을 바탕으로 작성되어진 책이다
아래는 eBook에 올려진 글 그대로 입니다.
< 목 차 >
프롤로그 - 자연의 소리
part1 · 전원생활의 시작, 땅 구하기
1. 전원생활의 목적성을 뚜렷이 하자
2. 어디서 전원생활을 할 것인가?
3. 전원생활, 누구와 어울려 살 것인가?
4. 몇 평을, 얼마에 사야 하는가?
5. 부동산을 통한 땅 구하기
6. 경매로 전원주택지 찾기
7. 땅은 겨울에 사라.
8. 왜 사람들은 숲에서 살려 하는가?
9. 산 좋고 물 좋고 정자 좋은 곳에서 살아라.
part2 · 돈 버는 전원생활을 하자
1. 테마펜션과 전원생활을 그려보자
2. 전원생활을 위한 인터넷으로 공부하기
3. 현장으로 배움의 여행을 떠나자
4. 전원주택건축을 위한 허가와 비용
5. 이젠 시작이다, 토목공사
6. 내 땅과 정 붙이며 잠시 쉬어가자
part3 · 1억으로 돈 버는 전원주택 짓기
1. 설계의 중요성을 알자
2. 나만의 전원주택 어떻게 지을까?
3. 전원주택, 언제 얼마에 짓는 게 좋을까?
4. 하자 없는 전원주택 잘 짓기
5. 집이 작아야 근심이 사라진다.
6. 집 한 채 값 1억 2천만 원으로 테마를 만들자
part4 · 조경이 곧 즐거움이자 테마펜션이다
1. 펜션여행의 변화, 스토리가 있어야한다
2. 캠핑장 우리도 해볼까??
3. 자연이 연출한 야생화단지
4. 조각품이 곧 포토존이다.
5. 자연의 소리는 상생의 프랜차이즈를 꿈꾼다.
part5 · 이런 임야를 사면 10억을 벌 수 있다
1. 부동산 투자를 배우자 - 초보편 -
2. 땅은 대한민국 재테크의 중심이다 - 중급편 -
3. 임야가 왜 투자의 블루오션인가 ? - 고수편 -
4. 돈 안들이고 임야를 개발하라 - 전문가편 -
5. 5천만 원으로 전원생활에 도전하자 - 실전편 -
part6 · 카페 <자연의 소리> 회원과의 Q&A
1. 밭 2570평에 집을 지어야하는데 막막하네요?
2. 임업용 산지에 농막이나 주택을 지을 수 있는지 궁금해요?
3. 도로확보를 통한 개발 허가가 궁금합니다? (영레코드)
4. 제가 분묘에 대한 고민이 있어서 문의드립니다?
5. 부부가 귀촌해서 생활하려면 한 달에 얼마나 들까요?
6. 밭에 물이 안 빠지는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7. 흙집벽 방수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에필로그
책 속의 부록
1. 경남 각 지자체의 귀농귀촌지원책
2. 다양한 전원주택 시공의 모든 것
프롤로그 - 자연의 소리
2008년 11월.
가야산에도 겨울이 막 시작되고 있었다.
직원들과 산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낙엽을 떨어뜨린 앙상한 나뭇가지 사이로 짧은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갔다.
노을로 붉게 물든 하늘 아래 널찍이 펼쳐진 산세가 시선을 잡았다. ‘찌릿’ 무언가 머리를 강타했다.
순간 심장이 잠시 멈추더니, 쿵쾅쿵쾅 뛰기 시작했다.
첫눈에 홀린 듯 한참 그렇게 서있었다.
아주 오래 전부터 알고 지낸 것처럼, 마치 낯익은 어머니 품 같은 그 산에 안겨보고 싶었다.
그리고.... 혼자서 중얼거렸다.
‘언젠가 이 산에 꼭 나의 둥지를 틀리라’
그 후 시간이 날 때마다 산을 찾았다.
말없는 산이지만 눈도장을 찍고, 발자국을 찍고, 숨소리를 남기고 싶었다.
얼마 후 지인들에게 산을 보여줄 기회도 왔다.
“여기에 테마가 있는 휴양지도 만들고, 맘 맞는 사람들과 함께 사는 집도 짓고...
노후를 그렇게 보내면 좋을 것 같아요.” 지인들의 반응은 한결같았다.
“무슨 이런 첩첩산중에 집을 지어요? 이보다 더 좋은 위치에도 땅이 얼마나 많은데...
괜한 짓 하지 말고, 다른 데 찾아보세요.”
어쩌면 당연한 소리였다. 당시, 산은 말 그대로 원시의 자연이었다.
사방이 한눈에 들어와 시야가 뻥 뚫린 평야도 아니고, 사람이 다니게끔 길이 나있지도 않았다.
하루에 서너 번 군내 버스가 다닐 정도의 산골 중에 산골이었다.
야생동물과 야생식물의 천국, 해발 850m의 산!!
그곳에 나만의 천국을 만들기로 결심했다.
어머님과 7남매가 어울려 지낼 수 있는 집.
일상에 지친 도시인들이 찾아와 여유를 찾는 쉼터.
울창한 산림을 이용한 휴양림과 전원을 주제로 한 테마공원.
머릿속에는 이미 <자연의 소리>가 착착 그려지고 있었다.
2009년 5월 10일 아침 9시. 꿈을 향한 첫 발을 내디뎠다.
간벌팀15명 / 포클레인 3대 / 덤프트럭 2대 / 집 건축팀5명 / 기타 인부 10명
먼저 산에 길을 내고, 집 2채를 짓기 위해 모였다.
생전 처음 해보는 일이지만, 같은 마음으로 모인 정예요원인 만큼 든든했다.
성공은 따 놓은 당상 같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변해가는 산의 모습에 우린 신기했다.
나무와 잡초, 돌로 뒤덮였던 곳에 시원스레 길이 뚫리고, 반석 위에 집터가 만들어졌다.
아침 6시에 현장으로 출근해서 읍내숙소로 돌아오면 밤 8시.
인근 식당에서 삼겹살과 소주를 기울이며 다음날 일정을 회의하고 나면,
밤 12시가 다돼서 잠을 들 수 있었다.
그러나 누구 한 사람 피곤하다거나 지친 내색이 없었다.
머잖아 눈앞에 펼쳐질 꿈의 동산에 들떠있었다.
문제는 뜻밖에서 터졌다.
공사시작 여섯 달이 지난 어느 날.
다음 날 있을 공사대금을 맞추기 위해 통장을 꺼내보았다.
그리고는 눈앞에 캄캄해졌다. 2년 계획으로 넣어두었던 잔고가 거의 바닥나고 있었다.
승용차가 겨우 다닐 수 있는 800m 길과 계곡, 11평짜리 흙집 한 채 값치고는 과해도 너무 과했다.
등산을 왔다가 공사 현장을 보고 염려 반 격려 반으로 해주던 사람들의 말이 떠올랐다.
“이렇게 하면 밑 빠진 독이 물 붓기에요.”
“전체적인 마스터플랜은 짜고 일하십니까?”
부랴부랴 공사를 마무리하고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관리인 1명을 현장 흙집에 남겨두고서....
실패의 이유는 간단했다.
無知!!
전략 없는 열정이 원인이었다.
우선 내가 아는 것이 급선무였다. 건축, 조경, 도로, 계곡 등과 관련된 인터넷 카페에 가입해
눈동냥을 시작했다. 그 다음 카페에서 본 현장을 직접 찾아다녔다.
주인을 직접 만나 이것저것 궁금한 것을 묻고 내 실수와 비교했다.
사람은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던가? 알아갈수록 나의 실수가 무언지 정확히 짚어졌다.
6개월간의 인터넷 카페 공부와 현장학습을 마쳤다.
원인 파악과 함께 탄탄한 기초공부까지... 가슴이 또 설레기 시작했다.
2010년 3월.
눈이 녹기를 기다렸다가 산을 찾았다.
우선 작년 공사로 어수선해진 도로를 재정비한 다음, 계곡과 주택을 지을 계획을 세웠다.
초반 공사는 역시 순조로웠다. 큰돈을 주고 얻은 학습효과가 더 이상의 시행착오를 줄여주었다.
하지만, 안도도 잠시!
이번에는 다른 해보다 일찍 찾아온 장마가 화근이었다. 밤새 폭우가 쏟아지던 다음날 산은 처참했다.
600m 계곡은 무너져 내렸고, 800m의 진입로는 포클레인도 다니지 못할 만큼 움푹 파여 버렸다.
말 그대로, 흙투성이 쑥대밭이었다.
“이렇게 하면 밑 빠진 독이 물 붓기에요.”
“전체적인 마스터플랜은 짜고 일하십니까?”
전체 도면 대신 주먹구구식 공사와 자연재해를 대비하지 못한 것도 나의 무지였다.
마냥 주저앉아 절망할 수가 없었다. 더 많은 카페에 가입해 공부하면서 도움이 될 만한 곳이면
국내외 어디든 찾아다녔다.
그리고 2012년 가을.
둘레길과 작은 테마들, '다이아몬드집'과 '나무위의 집'을 만들었다.
인터넷 카페에 <<거창 자연의 소리>>를 개설했다.
세상에 나의 꿈 <자연의 소리>를 조심스럽게 내놓은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실패도 공유하면 성공의 열쇠가 되는 법이다.
전략 없이 열정만으로 뛰어든 나의 시행착오가 전원생활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나는 고수도 달인도 아니다. 지금도 확신은 있지만, 결과는 장담하지 못한다.
그래도 나는 나의 길을 걸을 것이다.
나의 꿈 <자연의 소리>가 우리 모두의 행복이 됐으면 하고 바랄 뿐이다.
part1 · 전원생활의 시작, 땅 구하기
1. 전원생활의 목적성을 뚜렷하게 하자.
나는 어려서 농사를 시작했다.
내 고향 경남 김해 진영.
단감으로 유명한 고장이다.
감꽃 필 무렵부터 나의 농사일(?)은 바빠졌다.
학교를 파하고 해가 저물 무렵이면, 보리와 감자 수확을 마친 옆집 아제를 찾아갔다.
“아제예, 어데 밭을 주우면 됩니꺼?"
“성구 왔나? 오늘은 고랑 옆 밭이래이. 많이 주으래이”
그렇게 시작한 이삭줍기는 11살짜리 사내아이에게 꽤 짭짤한 수입원이었다.
저녁 7시부터 시작한 나의 농사일은 밤이 어두워질 때까지 이어졌다.
보통 농사철에 보리이삭은 한두 가마니는 주울 수 있었다.
보리농사가 끝나면 다음은 감자농사였다. 감자를 팔 때는 방법이 두 가지다.
깊은 곳에 있는 감자는 삽을 푹 찔러서 파야 나왔지만, 얕은 곳은 호미로 흙을 살살 건드려도 쉬 나왔다.
밤이 깊어 사방이 캄캄했지만, 자루에 가득 담긴 감자를 자전거에 싣고 달릴 때의 뿌듯함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한 달 동안 5가마니 정도 감자를 주웠는데,
형들과 누나들이 씨알 좋은 것을 골라서 장에 내다 팔았다.
초여름 보리수확부터 시작한 나의 농사는 감자, 벼, 고구마까지... 사계절 내내 계속됐다.
운이 좋으면 투잡(?)을 할 때도 있었다.
일손이 부족한 친구네 과수원에서 신문지로 과일 봉지 씌우기는 일도 거들었다.
또, 복숭아와 단감 수확철에는 꼭대기에 달린 과일을 따기도 했다.
가끔은 손이 닿는 곳의 과일도 따지 않을 때가 있었는데, 나중에 모두 내 몫이 됐다.
농토가 없었던 우리 집의 농사(?)를 어린 내가 책임지고 있었다.
전원에서 무엇을 하면서 살아야 할까?
귀농귀촌진흥회가 전국 8개 대도시 거주자 1천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전체 응답자의 51.6 %가 귀농이나 귀촌을 희망하고 있다고 답했다.
농·어촌으로 이주를 희망하는 이유로는
<도시지역을 벗어난 전원생활 (56.3%)>을 꼽은 사람이 가장 많았다.
이 수치는 점점 늘어갈 것이다.
절반 이상이 원하는 전원생활!
무엇보다 나에게 맞는 전원생활을 정확히 알고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
농사를 지으며 흙에서 보람을 느낄 것인가? 경치 좋은 자연에서 자유인으로 살아갈 것인가?
친구들을 초대해 한 잔 술과 인생을 이야기하며 여유롭게 살 것인가?
공기 좋고, 물 좋은 곳에서의 전원생활!! 상상만으로 가슴을 설레는 말이다.
하지만 탈도시만을 꿈꾸고 무작정 전원생활을 하려는 착각은 버려야 한다.
도시에서의 삭막함과 스트레스는 벗어날 수 있을지 몰라도,
무료함과 경제적 어려움은 도시와 다른 걱정거리를 안겨다 줄 것이다.
이제 나에게 맞는 전원생활을 찾아볼 차례다.
우리나라에서 전원생활의 형태는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첫째, 귀농이다.
농촌에 들어가 농산물, 임산물 등 특용작물을 재배하며 사는 것이다.
귀농은 전원생활을 선택하는 사람의 62%가 선택할 만큼 인기 있는 아이템이다.
또, 정부의 농촌 인구 늘리기 정책이기도 하다. 지금도 수많은 인터넷 카페나 뉴스에서
귀농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고 지원한다. 기사만 보면, ‘나도 조금만 노력하면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감도 생긴다. 억대 부농의 성공담에 귀가 솔깃해지기도 한다.
하지만 억대 농부가 단기간에 이뤄질 수 없다는 사실은 간과해서는 안된다.
농작물은 태생적으로 위험성을 갖고 있다. 예상치 못한 병충해에 늘 노출돼 있고,
지구의 이상 기온변화에 의해 생장환경이 언제 어느 때 변할 지도 예측하기 힘들다.
수요와 공급이라는 시장원리, FTA 등 외국산 농산물의 유입도 귀농인들이 대비해야할 일이다.
2년 전에 만났던 산청의 귀농인 부부
부부는 2009년 귀농해서 김장배추와 오미자 등을 특용작물로 정해 농사지었다.
귀농 계획 후, 농사 공부는 물론이고 현장을 찾아 직접 체험도 많이 했다.
어느 정도 자신감이 붙자 귀농해서 배추농사를 시작했다. 그런데 현실은 암담했다.
2010년, 농사는 잘 지었는데 공급과잉으로 배추가격이 폭락했다.
수확을 해봐야 인건비도 건지지 못할 판국에 이르자, 배추를 뒤엎었다.
2011년, 봄에 냉해를 입어 작품이 거의 자라지 못했다.
그리고 2012년, 이번에는 태풍이 말썽이었다.
여느 해보다 빈번한 태풍으로 귀농의 장밋빛 청사진은 산산조각 났다.
귀농을 생각했다면, 먼저 해당 지역의 농촌기술센터를 찾아서 상담을 받아보길 바란다.
그 지역의 기후와 토질에 맞는 특용작품 및 농사 기술, 자금 지원을 상담 받을 수 있다.
귀농 1번지를 꿈꾸는 거창군의 경우, 카페 ‘산천수’ ‘거창귀농학교’를 개설해 놓고
농사 경험이 풍부한 이웃이나 귀농 선배들의 모임을 주선하고 있다.
기존 이웃과의 원만한 관계는 귀농 성공의 열쇠다.
옆집에 누가 사는지 모르는 도시의 아파트 생활과 달리
시골은 누구네 집에 숟가락이 몇 개인지 알 정도로 가깝다. 즉, 시골에 살려면 무엇보다
'함께'라는 말에 익숙해져야 한다. 마을회관을 방문해서 어르신들께 먼저 인사를 드리고,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들의 손발이 돼주는 것도 필요하다.
성공과 실패에 대한 정확한 대안을 갖고 귀농하기를 바란다.
둘째, 귀촌이다.
귀촌은 지자체가 주도하는전원마을사업과 주택업체가 조성 중인 단지형 전원마을에 입주하는
방식이 많다. 부동산 관련 인터넷 카페에 들어가면, ‘00지역 전원주택 분양’ 등
광고 문구를 심심찮게 접할 수 있다.
전원생활 관련 인터넷 카페에는 멋진 집과 조경 사진들이 많다.
회원들은 ‘나도 저렇게 살고 싶다’는 막연한 동경을 가질 것이다.
대개 귀촌을 꿈꾸는 사람들은 150평~ 250평 정도의 땅에 집을 짓고,
여러 가구가 모여 사는 전원주택 단지형을 원한다.
잔디가 깔린 마당에 조경수를 심고, 작은 텃밭을 일구며 사는 생활....멋진 삶이다.
하지만, 그런 귀촌생활도 몇 년을 못 넘기고 힘든 경우가 발생할 것이다.
반복되는 일상에서 오는 무료함과 경제적 문제 때문이다.
그 대안으로 나온 것이 주말농장이다.
주말농장 수요가 증가하면서 전국에 500여개의 주말농장, 7만여 명의 회원이 있다.
처음엔 정부에서 주말농장제도를 시작했었다. 도시근교 작은 텃밭 5평을 1구좌로 만들어서
도시민들에게 임대했었다. 처음엔 인기가 좋았지만 차츰 시들해져갔다.
농장일을 하며 땡볕이나 비를 피할 만한 여유 공간을 마련하지 못한 게 이유였다.
주말농장은 노동만 있고 전원의 즐거움은 없는 형태였다.
경제적 여유만 있다면
5일은 도시에서 생활하고 2일을 전원에서 즐기는 5都 2村을 권하고 싶다.
독일의 클라인가르텐(작은정원)은 국민 90%가 참여할 정도로 일상이 됐다.
러시아의 다차, 영국의 얼랏먼트 가든, 일본의 시민농원 등 세컨드하우스 형태는
도시민의 여가선용에 보편적 가치로 자리 잡았다.
2012년 경기도 여주에서 주말농장 약 10평과 텃밭 20평 정도로 세컨드 하우스를 임대하였다.
가격은 2000만원! 신청률이 100대 1이나 될 만큼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세컨드 하우스 꼭 추천하고 싶다. 미리 전원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고,
문제점을 미리 파악하여 보완할 수도 있을 것이다.
새로운 형태의 신개념 전원생활
셋째, 테마형 펜션과 함께 즐기는 전원생활이다.
전국의 수많은 전원생활지를 찾아다니면서 보고, 느끼고, 깨우친 것이 있다.
500평의 작은 부지에 테마 관광지를 만들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았다.
가족이 살아갈 작은 집 하나와 손님을 맞이할 6평 정도의 집 2~3채만 있으면 가능하다.
거기에 나만의 인테리어와 소담한 이야기가 있는 정원이 있으면 금상첨화다.
전원주택 30여 평 규모를 짓는 돈이면,
일정 정도 수익이 나는 테마형 전원관광지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주 5일근무제가 시작되면서 전국의 유명 관광지 주변에는 펜션이 넘쳐난다.
몇 해 전부터 유럽의 펜션 바람이 우리나라에도 밀려왔다.
유럽의 건축을 흉내 낸 고풍스런 외형에서 지중해풍의 깔끔한 모습,
실내 장식에만도 어머어마한 돈을 쏟아 부은 것 같은 펜션단지가 많다.
대부분 금융권의 대출을 받아 지은 펜션단지들이다. 이런 펜션을 따라하라는 것이 절대 아니다.
이미 전국의 펜션은 포화상태다.
향후 수년 이내에 수많은 펜션들이 큰 시련을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
볼거리, 즐길 거리, 먹을거리 등 테마가 있는 펜션이면 여행객의 발길을 잡을 수 있을 것이다.
테마형 전원관광지는 위치가 가장 중요하다.
전국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논밭과 밋밋한 평지는 곤란하다.
지역의 특성과 주변 자연경관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숲이나 바닷가 인근을 선택하면 효과적이다.
농업인, 임업인, 어업인의 자격조건 Tip
1) 농업인
. 1,000㎡ 이상의 농지를 경작하거나 연중 90일 이상 농업에 종사
. 농지에 330제곱미터 이상의 농업생산 시설을 설치하여 경작 또는 재배
. 가축(꿀벌)을 사육하거나 연간 120일 이상 축산업에 종사
. 농업을 통한 농산물의 판매액이 연간120만 원 이상(농지법)
. 대가축 2두, 중가축 10두, 소가축 100두, 가금 1,000수 또는 꿀벌 10군 이상을 사육하거나
1년 중 120일 이상을 축산업에 종사하는 자
2) 임업인
. 3헥타르(3만㎡) 이상의 산림에서 임업을 경영
. 연간 90일 이상 임업에 종사
. 임업경영를 통한 임산물 판매액이 연간120만 원 이상
. 산림조합법(제18조)에 의한 조합원으로서 임업 경영(임업진흥촉진법, 국토계획법)
3) 어업인
. 어업경영을 통한 수산물 판매액이 연간 120만 원이상
. 연중 60일 이상 어업에 종사(농어촌발전 특별조치법)
. 영어조합법인이나 어업회사법인의 수산물 유통, 가공, 판매활동에 1년 이상 계속하여 고용된 사람
농업인의 혜택 Tip
농지원부를 발급받으려면 거주지역의 읍면동사무소에서 농지소재지 및 지번, 면적 등을 신청하면 된다.
농지의 자경여부를 확인한 후 발급하여 주는데, 농지를 임차했더라도 농지원부를 발급받을 수 있다.
이런 경우는 임대차계약서와 임대인의 인감증명서를 첨부하여 신청하면 된다.
1. 규모가 아주 작은 농지를 구입하는데 용이하다.
농지를 새로 취득하면 면적이 1,000㎡이상이어야 하나 농업인은 그 이하의 농지도 살 수 있다.
2. 농지의 취득 및 등록세 감면과 주택채권 매입의무가 면제된다.
농지원부에 등재한 후 2년이 경과하면 취득세·등록세는 50% 감면되고 주택채권 매입의무는 없어진다.
3. 농업인 주택이나 농업용 시설로 농지를 전용하면 농지보전부담금이 면제된다.
4. 농지 취득자격증명을 받지 않고 다른 지방의 농지를 살 수 있고,
토지거래허가구역에서도 20킬로미터 이내에 있는 다른 시군구의 농지를 구입할 수 있다.
part2 · 돈 버는 전원생활을 하자
1. 테마펜션과 전원생활을 그려보자
나만의 성(城)을 그려보자.
故노무현대통령의 사저가 있는 김해 봉하마을 바로 옆 동네!!
길가 양 옆으로 다닥다닥 집들이 붙어 있는 진영읍 여래리는 내가 나고 자란 고향이다.
도랑을 사이에 기와와 슬레이트 지붕이 진을 친 옛 동네와 양옥이 즐비하던
새 동네로 나눠져 있었다.
반짝반짝 빛이 나던 새 동네 양옥집은 옛 동네에 살던 아이들에게 꿈의 동산이었다.
양옥집에 구경 갈 때면 ‘이 담에 나도 이런 집에서 살아야지’ 부러웠던 기억이 있다.
우리 집은 당연히 옛 동네에 있었다.
큰 비만 오면 가재도구를 다락에 올려놓거나 천정에 매달아 놓고 학교로 피난을 가야했던 우리 집.
정확히 말하면 23평의 헛간이었다. 친구 할아버지께서 딱한 우리 집 사정을 알고
아버지한테 고쳐서 살아보라고 주셨다고 들었다.
아버지는 나무로 칸막이를 만들어 공간을 나누고, 합판 위에 슬레이트를 덮어 지붕을 만드셨다.
방 두 개와 부엌이 있던 위채에서는 부모님과 누나들이 지냈고, 형들과 나는 아래채에 살았다.
임시방편으로 지은 집이었지만, 한 울타리 안에서 가족이 모여살 수 있는 보금자리였다.
그런데 아버지는 왜 그렇게 아래채 지붕을 낮게 만드셨을까?
드나들 때마다 형들과 나는 머리를 ‘쿵쿵’ 찧어서 혹을 달고 살았다.
무엇보다 얇은 슬레이트 사이로 고스란히 전해지는 바깥 날씨는 우리 형제들에게 고통이었다.
여름에는 방안이 푹푹 쪄서 옷을 벗고 살아야 했고, 겨울에는 입김이 날 정도로 냉골이었다.
찬바람이 숭숭 들어오는 겨울밤, 서로의 온기를 나누기 위해 삼형제는 꼭 껴안고 자곤 했다.
양옥집에서 살고 싶다던 소년의 꿈을 <자연의 소리>에서 이뤘다.
어머님과 형제들이 추위와 더위를 피할 수도 있고,
남의 눈치 보지 않고 두 발을 쭉 펴고 잘 수도 있다.
양옥집보다 몇 백배는 넓은 정원도 있고, 훨씬 멋진 목조주택도 있고, 흙집도 있다.
세상에서 하나뿐이라는 다이아몬드집이나 나무위의 집도 가족을 위해 열려 있다.
하지만, 처음부터 지금의 모습이 갖춰진 것은 아니었다.
어떤 집이 좋을지 몰라서 건축 관련 책을 보고, 인터넷을 뒤졌다.
마음에 드는 전원주택은 직접 찾아가 보기도 하고, 전국의 유명 건축박람회도 찾아다녔다.
200평에 집 두 채를 짓고 나머지는 정원으로 꾸미자.
먼저, 19평짜리 목조주택과 11평짜리 흙집에 대한 허가를 받았다.
목조주택은 대구 건축박람회에서 만난 업체에 전적으로 맡기기로 했다.
업체측에서 설계도를 보여주며 설명해줬지만, 무슨 말인지 도통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냥 겉모습이 좋다 싶어서 그대로 지어달라고 했다.
흙집의 구들과 황토벽돌 쌓기는 동네 주민의 소개를 받아 그 방면에 일가견이 있다는 분을 수소문했다.
방 7평, 화장실 4평짜리 단순한 설계도가 나왔다. 집과 정원을 포함한 전체적인 마스터플랜보다는
집주인의 감과 업체측의 주도로 공사가 시작됐다.
2개월 만에 집이 완성됐다. 겉으로 보기에는 어디 하나 흠잡을 데가 없었다.
처음으로 완성한 나만의 城이 신기해서 지인들을 초청해 집들이도 했다.
놀러온 사람들은 드넓은 자연에 한번 반하고, 숲 속 동화 같은 흙집에 두 번 반했다며 부러워했다.
지난날의 숱한 고생이 봄눈 녹듯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그런데 문제점이 하나둘씩 드러나기 시작했다.
보통 보일러나 창고를 뒷마당에 설치하면 거기로 통하는 뒷문을 만든다.
그런데 목조주택에는 뒷문이 없었다. 그래서 보일러에 땔감이라도 때려면 정문으로 나와
건물을 빙 돌아서 뒷마당으로 가야 했다. 집안에 다용도실도 달랑 하나 뿐이어서
청소기나 가재도구를 둘 수납공간이 부족했다.
또, 소품을 놓을 만한 인테리어 구조물도 미처 만들지 않았다.
그래서 못을 벽에 받아 그림을 거는 것이 집의 유일한 인테리어였다.
흙집의 문제점도 속속 나타나기 시작했다.
우선, 외관이 흙집 특유의 정겨움보다는 덩그러니 집 한 채 올린 것처럼 보였다.
화장실을 쓸데없이 크게 만들어서 본 용도보다는 창고용이라는 느낌이었다.
더군다나 겨울에는 물이 얼어서 변기를 사용하지도 못했다. 구들 사이의 틈을 제대로 막지 않은 것은
최악의 하자였다. 틈 사이로 가스가 새어나와서 큰 사고가 날 뻔도 했다.
결국, 구들 틈새가 벌어지면서 6개월 만에 털썩 내려앉아 버렸다.
정원은 2단으로 나눈 게 실수였다.
허가부지 200평 전체를 평평하게 만들어서 집을 짓고,
나머지는 정원으로 만들었더라면 아기자기한 동선을 살린 집이 완성됐을 것이다.
그런데 초보의 주먹구구식 설계가 허점을 낳았다.
4m 높이로 돌을 쌓고 100평씩 2단으로 분리해 각 단에 목조주택과 흙집을 지었다.
돌을 쌓은 부분에 들어간 땅만 30평! 정원을 만들 공간이 돌쌓기에 다 들어가 버린 셈이다.
어쩔 수 없이 前주인이 10년 전에 밭으로 개간한 땅을 정원으로 사용하고 있다.
정원을 만든 후에도 재공사를 5번이나 했다.
정화조를 묻지 않아서 조경해 놓은 돌을 다 뜯어내는가하면,
수도관의 위치를 몰라서 포클레인 공사를 하다 물바다가 되기도 했다.
지금도 전기선이 어디에 묻혔는지 몰라 누전이 되면 임시방편으로 처리하곤 한다.
전체적인 마스터플랜 없이 지은 집은 지금도 보수공사 중이다.
흙집은 3년 동안 창고로 사용하다가 올해 김동구님이 새로 고쳐주었다.
자연정원은 야생화와 산나물을 심기 위해 흙을 다시 부어야 했다.
그러고 보니, 6번째 포클레인 작업이다.
2013 봄 흙을 부어서 만든 야생화 정원이 너무 답답하여 가을에 다시 뜯었다.
공사 뒤 이어지는 재공사는 제 아무리 화수분도 당해낼 재간이 있겠나... 싶다.
시행착오를 줄이기 위해 공부를 한다고 했는데도 여전히 실수투성이다.
‘조금만 더 공사부분에 대해 배워서 알았더라면, 누군가 옆에서 하나라도 제대로 가르쳐줬더라면,
최소한 종이에 전체적인 구상이라도 그려봤더라면...‘ 아쉬움만 크다.
이제 나만의 성을 그리기 위한 실질적인 정보로 들어가 보자.
100평이든 1000평이든 땅을 샀다면, 자주 찾아가 땅과 교감을 하라고 이미 말했다.
왜 그럴까? 만약 누군가 1000평의 임야를 구입했다면,
나무와 풀이 무성하고 돌이 뒹구는 땅을 어떻게 만들어야할 지 막막할 것이다.
어느 곳에 집을 지으면 좋을지 부터
무슨 나무를 간벌하고 어떤 나무를 심어야 하는지도 감이 안 온다.
조상들은 집 안의 모든 나무는 지붕보다 낮은 걸로 심었다.
나무가 지붕보다 높으면 생기가 들어오는 것을 막아 복이 들어오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정원에 멋진 연못을 그려 넣자.
한 가지 팁을 주자면, 연못의 위치는 풍수상 집을 기준으로 가로로 만드는 게 이롭다.
풍수에서 물이 위에서 아래로 수직으로 흐르면 가족 간의 화목과 재물이 빠져 나간다고 한다.
하여, 물이 흐르다 잠시 집 앞 정원에 쉬어가게 만드는 것이다.
연못은 유속을 줄여 수해예방의 기능도 있다.
누차 얘기하지만, 돈 버는 전원생활을 위해
자연과 어우러진 펜션, 캠핑장을 함께 지어라고 권하고 싶다.
그렇다면 펜션 및 캠핑장의 위치도 고려해야 한다.
대개 손님들은 주인집이나 게스트하우스끼리 붙어있어서
독립성이 보장되지 않으면 꺼려할 것이다.
연습장 한 권 값이면 마스터플랜이 완성된다.
처음부터 토지 경계측량을 하면 돈이 들어간다.
위성지도를 보고 노끈을 사서 내 땅의 경계를 둘러보면
어느 정도 내 토지의 경계가 눈에 들어올 것이다.
그 다음, 노트 한 권에 내가 만들고 싶은 주택, 조경 등을 마음대로 그려본다.
기왕이면 많이 그리는 게 좋다. 명확하지 않아도 된다.
시간이 지나면 배운 만큼 또 수정하게 된다.
초보인 내가 글을 쓰는 것처럼, 벌써 몇 번째 글을 수정하는지 모를 정도다
주택, 펜션, 연못, 폭포, 야생화단지, 조각길, 막담길, 텃밭 등등...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것을 그려보고 내 땅에 맞는 것을 선택하면 된다.
그림을 그리고 나면 자신이 전문가가 된 것처럼 우쭐해지기도 하고,
장밋빛 미래가 보이는 것 같아 기분도 부풀게 된다.
그것은 곧 힐링이자 즐거움의 시작이다.
자연경관을 활용하는 것도 구상해보자.
앞에서 말했듯, 작은 땅이라도 주변경관을 잘만 활용하면
소소한 이야기꺼리가 있는 펜션(관광지)이 될 수 있다.
또 내가 산 땅 주변에 국유지나 다른 사유지가 있다면,
허가를 받지 않아도 되는 시설물과 약초 재배 등을 넣는 것도 좋다.
토지에 건축을 하지 않는 단순 땅 임대는 아주 싸다.
땅 주인의 입장에서는 사용하지 않고 버려둔 땅이 관리가 되면서
공돈이 들어온다고 생각되니 나쁠 것도 없다.
또, 훗날 내 땅 주변에 누군가 들어와 집을 지으면
가치도 상승할 것이기 때문에 꿩 먹고 알 먹고다.
만약, 여유자금이 있다면 당장 구매하는 것도 좋다.
주인 입장에서는 못 쓰고 버려둔 땅이기 때문에 평당 5천원에도 팔려고 할지 모른다.
그 땅에서 전원생활을 하며 주변이 좋아진다면, 땅값의 가격 상승은 두말 할 필요가 없다.
건축허가 행위 없이 할 수 있는 시설물 Tip
하나만 언급해보면, 지붕과 벽체가 있으면 해당 관청에서 허가를 받아야 지을 수 있다.
원두막이 이에 해당된다.
이에 반해 평상이나 자연석 의자, 포토존, 조각 전시장, 약초, 야생화 재배지 등은
허가 없이도 가능하다. 이런 구조물들은 내 비싼 땅이 아닌,
임대한 땅이나 국유지에 하면 일조이조의 효과를 얻을 수 있다.
경남 산청에서 500평의 토지를 사서 전원생활을 하고 있는 P씨.
처음 산청에 들어간 것은 펜션사업을 할 생각이었다. 주변에 국유지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는
싼 값에 임대해 표고버섯과 산양삼, 산도라지, 더덕 등 씨를 뿌렸다.
임차한 토지에 나무평상과 의자 돌로 쉼터도 만들었다.
그동안 특산물 재배로 수익을 얻다가 최근에는 주말과 휴일이면 체험장으로 활용하고 있다.
P씨는 펜션과 체험농장으로 도시에서보다 더 풍족한 생활을 하고 있다.
결국, 전원생활에도 아는 것이 힘이다. 정확히 알고 잘만 활용하면
적은 돈으로 나만의 성을 근사하고 멋지게 지을 수 있다.
5. 이젠 시작이다, 토목공사
전원생활, 꿈의 집짓기
친구네 헛간을 개조해 살았던 우리 집은 마당이 거의 없었다.
부모님과 누나들이 살던 안채, 형들과 내가 살던 아래채, 부엌까지 세 칸을 나누면
거의 딱 떨어지는 크기였다. 빈 땅 한 평이라도 아쉬웠던 아버지는
틈새 공간에 손바닥한만 장독대를 만드셨다.
화장실은 대문 밖 골목길에 있었다. 아침이면 집안은 말 그대로 전쟁통이었다.
새벽같이 일어나 장사를 나가시는 부모님은 그렇다 치고,
일곱 명이나 되는 형제들이 세수하고 볼 일을 보려면 순서를 정해야만 했다.
사람 댓 명이 서면 꽉 찰 것 같은 좁은 마당에서
발을 동동 구르며 지각하겠다며 재촉하던
형들과 누나들이 이제는 황혼이 돼서 그 시절 이야기를 한다.
나에게는 가족이 사는 좁은 마당 외에 아지트가 있었다.
우리 집 앞에는 꽤 큰 개울이 흘렀다.
한 여름, 동네 아낙들에게 빨래터이자, 개구쟁이들에게 물장구치며 헤엄치는 놀이터였다.
하지만 가을부터는 사정이 좀 달랐다.
지난 밤 누가 버렸는지 모를 연탄재가 개울가에 수북했다.
그렇게 쌓이고 쌓인 연탄재가 겨울이 되면 그럴싸한 땅으로 변했다.
3평 남짓한 공터는 내게 금싸라기 땅이었다.
초등학교 4학년, 내 나이 11살.
매일 아침 신문 23부를 배달해서 받은 돈이 한 달에 2200원 정도.
1년을 모으자 제법 큰돈이 됐다. 생전 처음 만원 단위가 넘어가는 돈의 주인의 된 것이다.
“이 돈을 불릴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어린 나이에도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리고는 친구들을 불러 모았다.
“내 새끼오리랑 염소랑 사가 키울라카는데, 집이 없다 아이가?
오늘부터 오리집하고 염소집 하고 맹글라카니까, 내 좀 도와도.
내 오리랑 염소랑 키워서 장에 내다 팔끼다.”
순간, 녀석들의 눈빛은 나를 존경하는 것 같았다. 그 순간을 놓칠 내가 아니었다.
“내 공짜로 해달라는 것 아이다. 돈 벌믄 느그들 짜장면 사줄게.”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녀석들은 흩어져서 돌멩이를 주워오고, 논에서 진흙을 퍼왔다.
연탄재로 만들어진 땅에 돌을 쌓아 축대를 만들고, 쌓은 돌에 진흙을 단단하게 붙였다.
그리고 나무와 철사를 주워와 가축우리를 지어나갔다.
손으로 철사를 일일이 꼬아서 철장을 만들고, 사이사이에 나무를 박아 넣었다.
손이 찢겨서 피가 나고, 갈라져도 아픈 줄을 몰랐다.
머릿속은 이미 오리와 염소를 키워서
목돈을 만들어 엄마아빠를 기쁘게 해드리는 상상으로 가득 차있었다.
꼬박 닷새를 공들인 끝에 그럴싸한 가축우리가 완성됐다.
나의 첫 번째 토목공사였다.
토목공사, 이제 시작이다
지금까지는 집을 짓기 위한 정보수집과 허가로 조금 지루했는가?
그 지루함을 잘 견뎠다면 이제는 최소한의 돈으로 최고로 멋진 나만의 성을 만들 차례다.
자! 이제부터는 실전이다.
사람들은 허가를 마치면 먼저 집부터 짓기 시작한다.
전체적인 토목, 조경에 대한 구상 없이 주택을 지어서 곧바로 꿈꾸던 전원생활로 이어질 것이라
생각한다. 도시락 싸들고 다니면서라도 말리고 싶다. 모든 일에는 순서가 있다.
절대 서둘러서는 안 된다.
먼저, 내 노트를 적극 활용하자!
그동안 카페 활동으로 모아두었던 주택과 조경 사진들,
현장에 다니며 눈으로 배웠던 인테리어 사진들,
그리고 카페를 통해 알게 된 전문가들에게 배운 지식을 총동원할 때다.
포클레인 기사와 공사 담당자를 불러다 전체적인 밑그림을 어떻게 그릴지 공유하는 것이 중요하다.
내 구상을 그들이 훤히 알고 있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마스터플랜’이다.
노트는 아무래도 현장감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현장에서 노끈으로 줄을 쳐가며 위치와 동선 등을 만들며 전체적인 조화를 생각하는 것이 좋다.
이 과정을 부부와 자녀가 함께 한다면 정말 재밌고 유익한 놀이가 될 것이다.
토목허가서 대로 공사를 하지 마라
토목공사가 처음인 경우, 허가를 어기면 위법인 줄 알고 정확하게 시공을 하려 한다.
대개 660㎡(200평)의 땅에 허가를 받으면
정확히 그곳만 사용하려고 토지 둘레에 측량 깃대를 꽂아서 공사한다.
이론상으로는 맞다.
그러나 공사를 하다보면 현실적으로 일이 더 어려워지고 기간도 늘어난다.
공사를 하다보면 땅 밑에 큰 돌이 나와 허가부지에서 벗어나야 할 때도 있고,
허가가 난 곳보다 더 좋은 자리라고 생각되는 땅이 있을 수 있다.
또 측량 깃대를 꽂아서 공사를 하면
허가가 난 터의 형태에 얽매여 전원주택의 터를 아름답게 만들기도 어렵다.
법을 어기라는 것이 아니다.
허가서와 실제 공사를 한 곳의 위치가 달라지거나
660㎡를 허가를 받아 공사를 하다가 면적이 줄거나 늘어난 경우도 토목변경이 가능하다.
모든 공사를 마친 후 토목설계사에게 변경을 요구하면 처리해준다.
물론, 설계사무사에서는 귀찮아할 것이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삼겹살에 소주 한잔하면서 사정을 얘기하면 깔끔하게 처리해줄 것이다.
그들도 프로니까....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내 그림대로 공사를 진행해야 한다는 점이다.
땅 밑 공사를 잊지 말자
전원주택을 지을 땅에는 보이지 않는 돈이 들어갈 곳이 의외로 많다.
집이 들어설 자리에 기초공사 전에 지하수, 정화조, 오폐수 관로를 묻어야 하고,
조경공사 현장에는 가로등, 외부용 전기선, 정원관리용 수도 등도 미리 묻어야 한다.
주택의 기초공사와 정원에 잔디를 다 깐 다음에 ‘아차, 실수였구나’ 해도 소용없다.
잊어버리기 전에 내 노트에「땅 밑 공사」를 반드시 적어놓자.
특급 포클레인기사를 모셔라.
토목공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집터의 조경석 쌓기다.
내가 그린 토목과 조경이 그대로 재현되기를 바라는가? 그렇다면 특급 포클레인 기사를 모셔라.
포클레인 기사의 실력에 따라 전체 조경 연출과 비용이 좌우될 수 있다.
무너지거나 흉해서 다시 해야 하는 재공사를 방지하고,
조경전문가가 하는 일인 돌을 척척 쌓는 것도 가능하다.
일반 기사가 3일에 할 일을 전문 포클레인 기사는 하루에 마칠 수 있을 만큼 실력 차이가 크다.
그래서 포클레인 기사는 공사 전부터 지역에서 소문난 특급을 찾는 게 좋다.
참고로 포클레인은 02, 06, 08, 10의 장비가 있으며 순서대로 크기가 다르다.
가령, 02(공투)는 아주 작은 일에 쓰이고,
10(공텐)은 억세거나 큰 돌이 많은 척박한 땅에서 주로 사용된다.
보통 집터를 만들 때는 06 정도의 포글레인을 사용한다.
흙으로 된 평지에서는 타이어 장비를 사용하면 이동속도가 좋고
돌이 많거나 경사진 곳에서는 궤도로 된 장비를 사용하는게 일반적이다
터를 분리할 때 곡선(마운딩기법)의 아름다움을 살려라.
집터와 정원, 텃밭, 유실수터, 연못, 쉼터....
멋지게 꾸미고 싶은 곳이 한두 곳이 아니다. 아름다운 조경은 곡선에서 연출된다.
이 때 찾아오는 손님이나 소비자의 동선도 미리 고려하는 게 좋다.
테마펜션을 하든, 가족이 사는 전원주택을 만들든, 사람들이 찾아올 것이다.
조경을 이용해 손님을 위한 독립 공간을 확보하는 방법도 생각해봄직하다.
우리나라의 전원주택을 방문해 보면,
95%가 허가 받은 부지(약 660㎡)를 평평하게 작업했다.
이유를 물어보면, ‘땅을 넓게 사용하기 위해서’와 ‘조경방법을 모르기 때문’이라고 대답한다.
하지만 실제 어떤 방식의 조경을 하든지 땅 크기가 달라지지 않는다.
주변 산과의 조화, 바다와의 어울림을 생각하고 곡선을 기억하자.
평평한 조경기법은 자연과 부조화이고 밋밋하다.
나머지 5%의 전원주택지에 보고 느낀 점을 생각하면, 곡선과 직선의 차이를 극명하게 알 것이다.
한 가지 팁을 더 주자면, 보광토 블럭이나 막쌓기를 하면 직선으로 올라가서
땅은 넓게 사용할 수 있지만 아름다움이 없다
그래서 대개 조경석 쌓기를 한다. 하지만 조경석 쌓기는 땅을 많이 잡아먹는다는 단점이 있다.
이 때 돌과 돌 사이의 좁은 틈에 야생화를 심으면 멋진 야생화단지가 된다.
지금 나의 노트에 「곡선의 아름다움」이라고 적어놓자.
자연의 소리에서 맛본 포클레인의 진수 Tip
<자연의 소리> 첫 번째 작품인 흙집을 지을 때다.
돌 쌓는 일에 포클레인 기사, 전문 조경인(석공), 조수 등 3명이 투입됐다.
일반적인으로 조경하는데 필요한 인력이라며 추천을 받았다.
하루 인건비가 석공 25만원, 조수 8만원이었다.
포클레인은 종류에 따라 차이가 있기 때문에 정확한 금액이라 할 수 없지만,
평균 장비 10(공텐)을 쓸 경우 일당 80~90만원 선이다.
당시 포클레인 기사의 실력이 서툴러서 작업의 속도를 낼 수가 없었다.
하루하루 돈을 들어가고... 한 달 반이나 계속되는 공사로 초기 비용이 예상을 훨씬 초과했다.
문제는 그 뒤였다. 이듬해 일찍 찾아온 장마로 폭우가 쏟아져 모두 무너져버렸다.
간신히 무너지지 않은 돌 조경은 조경공부를 할수록 보기가 싫어서 그대로 둘 수가 없었다.
돌의 크기가 천차만별이고, 정교함도 없었다.
한마디로 조경 점수 빵점이었다.
아예 포클레인 한 대를 사서 공사를 하면,
돈이 절약된다는 소리를 듣고 작은 포클레인(02)를 중고로 산적도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6개월 만에 반값 받고 팔아버렸다.
포클레인(02)이 6개월간 한 일은 고작 흙 몇 번 나르기가 전부였다.
포클레인이 좋다고 일이 잘 되는 건 아니었다.
포클레인 운전대를 누가 잡느냐? 기술자의 손에 따라 조경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그 후 2011년부터는 포클레인 기사와 조수를 1명씩 고용했다.
포클레인 기사의 실력이 뛰어나서 석공을 따로 둘 필요가 없었다.
그래도 태풍에 무너지거나 보기 흉한 조경이 없다.
이 모든 게 특급 기사의 실력 덕분이다.
"연못의 돌은 누가 쌓았습니까? 정말 멋지게 돌을 쌓았네요."
사람들의 찬사가 나를 흥분시킨다.
2014년 봄부터 둘레길을 만들 때의 절토면 보완공사를 할 것이다.
절토면의 낮은 부분은 작은 돌을 주워와 막담을 쌓을 것이며
높은 부분엔 조경석 쌓기를 할 것이다. 재해예방의 차원이 될 것이며
세월이 지나 돌 위에 핀 온갖 꽃들이 우릴 반갑게 맞이해줄 것이다.
자연의 소리에는 완성도 높은 조경이 된 곳이 없다.
아이들의 체험학습을 위해 아기자기한 이야기 길을 만들 것이다
길 주변에는 토끼 닭, 풍력발전 체험장, 태양광에너지의 체험장이 될 수 있게 만들 계획이다.
내가 구상한 바를 일주일에 한 번씩은 포클레인 기사와 협의한다.
노트에 그린 그림을 현장에서 맞추어본다.
물과 돌과 나무의 조화!!
내가 꿈꾸는 <자연의 소리> 토목공사다.
part3 · 1억으로 돈 버는 전원주택 짓기
6. 집 한 채 값 1억 2천만 원으로 테마를 만들자
나에게 외갓집은 추억이다.
외갓집은 고향 진영에서 그리 멀지 않는 곳에 있었다.
일찍 세상을 떠서 한 번도 뵌 적 없는 외할아버지.
남편이 남긴 방앗간을 혼자 운영하는 외할머니.
그리고 주위에 농사를 짓는 외삼촌 부부와 외사촌들...
외갓집은 늘 먹을거리로 넘쳐났다.
방앗간에서 나오는 떡이며 고물.
외삼촌의 밭에서 나던 오이, 가지, 옥수수 같은 채소며 참외, 수박 같은 과일.
외손자에게 뭐라도 먹이고 싶으셨던 외할머니의 쌈짓돈으로 산 과자들....
그래서 방학이 시작되기 무섭게 나는 보따리를 싸서 외갓집을 찾곤 했다.
외사촌들과 밤늦도록 수다를 떨 때는 삶은 감자와 옥수수가 밤참으로 나왔고,
늦잠을 자고 부스스 일어나면 외할머니가 정성껏 차려놓은 밥상이 기다리고 있었다.
게 눈 감추듯 아침밥을 먹고, 들로 산으로 나가면 또 먹을 것이 지천이었다.
개구리나 참새는 잡아서 우리끼리 구워먹고,
사냥으로 수확한 토끼는 외할머니께 갖다 주었다.
그러면 외할머니는 대추나 약재를 넣어 토끼탕도 끓이고, 쫄깃한 수육도 만들어 주셨다.
설이나 추석 같은 명절이나 아버지 생신 때나 먹던 고깃국을
외할머니 집에서는 원 없이 먹을 수 있었다.
먹을 것이 많다는 이유만으로도 외갓집이 좋았던 그 시절,
외할머니의 벽장은 진짜 보물창고였다.
“할매, 저 왔심니더. 성구왔심더~~”
“우리 강새이 왔나? 성구야, 이리 가까이 와 보그래이~”
외할머니의 주름진 손에 이끌려 간 그 곳.
벽장문을 열면 그 곳에는 꿀단지와 장날 사다 숨겨뒀다는 십리사탕이 있었다.
외할머니가 떠주시던 꿀 한 숟가락과
입안에 넣고 십리는 가야 녹는다는 십리사탕은 어린 나에게 최고로 맛있는 단맛이었다.
그 때 내겐 너무나 신기한 비밀 창고였던 그 벽장.
서른 즈음 외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그 비밀창고를 열어보았다.
눈에 익은 꿀단지와 십리사탕, 동전 한 뭉치와 꼬깃꼬깃한 지폐 몇 장,
그리고 콧물이 쏙 빠진 까까머리 소년 사진이 그 안에 있었다.
돌아가시기 전까지 가난한 손자를 생각하신 외할머니 생각에
코끝이 시큰거리고 눈물이 핑 돌았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신 지 15년이 지났다.
외할머니의 벽장은 나에게 잊히지 않는 소중한 추억이다.
펜션여행도 추억이 대세다.
요즘 펜션은 ‘더 크게, 더 멋지게, 더 화려하게’ 형태로 변해가고 있다.
자연히 펜션운영으로 전원생활을 하려는 사람들은
‘얼마나 많이 투자하느냐’에 따라 성공의 열쇠가 달려있다는 말이 나온다.
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이런 숙박 개념의 펜션은 ‘더 이상 주목받는 시대가 지났다’고 생각한다.
소소한 테마와 추억이 있는 인테리어로 손님들에게
‘얼마나 깊은 인상과 감동을 주느냐’가 관건이라고 말하고 싶다.
어린 시절, 할머니의 꿀단지를 보관하던 벽장은 분명 추억의 이야기가 있다.
달 밝은 밤, 흙집의 봉창 앞에서 책을 읽던 기억을 가진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 시절 그 추억을 내 자녀와 함께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호롱불 앞 화롯불에 밤이나 고구마를 구워먹으며
엄마아빠의 어릴 적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도
자녀에게는 잊지 못할 추억이 될 것이다.
인터넷이나 매스컴을 통해 오지흙집에 관광객이 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한 적이 있다.
아련한 추억이 주는 감동을 찾아 떠나는 사람들이다.
집 한 채 값 1억 2천만 원으로 4채의 테마펜션을 만들어보자
전원생활!
도시민의 절반 이상이 원하는 웰빙과 힐링의 삶이다.
하지만, 누구나 쉽게 실행에 옮기지는 못하는 게 현실이다.
이유는? 간단한다. 경제적인 문제 때문이다.
만약, 내가 꿈꾸는 전원생활을 하면서 수익까지 생긴다면?
지금 도시에서 받는 월급의 80%만 보장된다면?
우리의 꿈인 전원생활이 당장 이루어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 글이 이해된다면 여러분은 당장 시골로 가서 즐기며 살아도 된다.
5년간의 시행착오를 만회하기 위해 소박하면서 멋진 집, 아름다운 조경 등
국내외 200여 곳을 견학했다.
그 때 전원생활을 하는 사람, 펜션을 운영하는 사람,
관광지를 만들어 경영을 하는 사람들을 만났다.
그 중 "수익성 있는 전원생활을 하는 분들에게 보고, 듣고, 배운 것을 적고.“
"자연의 소리에서 배운 것을 토대로 집을 지었고 그 느낌을 적어본다."
1억 2천만 원으로 30평짜리 집 한 채를 지어 전원생활만 할 것인가?
1억 2천만 원으로 4채를 지어 월 200만 원 정도의 수익성 있는 전원생활을 할 것인가?
부부의 생활공간이 30평! 글쎄?
집이 작아야 한다는 것은 단지 주택의 규모만을 이야기 하는 게 아니다.
집은 남에게 보이기 위한 과시용이나 거추장스러운 탐욕이 아닌,
가족의 편안한 보금자리여야 한다.
현재 가장 많이 선호하는 전원주택의 평수와 비용은 30평짜리 목조주택!
평당 400만원으로 건축비용만 1억 2천만 원 정도 들어간다.
내가 꿈꾸는 테마가 있는 전원생활
부부가 단 둘이 살 집은 15평 정도면 충분하다.
그리고, 5평 남짓한 이야기꺼리가 있는 집을 3채 지어보면 어떨까?
각기 다른 콘셉트와 구조로 짓는 것이 좋겠다.
초가집 5평, 황토집 4평, 목조주택 6평정도....
물론 데크나 툇마루를 제외한 실거주 평수이다
<내가 살 공간, 안채 15평 >
먼저, 부부가 살 집으로 전용면적 15평과 데크 10평이면 훌륭하다.
15평이면 생활에 필요한 침실 1개, 거실, 주방, 욕실, 수납실 등 공간 확보가 가능하다.
경험상 설계만 잘 한다면 평당 350만원으로
목조주택, 조적조주택, 흙집 등을 지을 수 있다.
① 주택 15평 × 350만원 (평당 금액) = 5,250만원
데크 10평 × 50만원 (평당 금액) = 500만원
5,750만원
<테마펜션 3채 15평>
손님을 위한 펜션과 게스트하우스는 하룻밤 추억이 남을 수 있다면 좋다.
작을수록 좋다는 뜻이다.
5평짜리 흙집과 2평짜리 툇마루로 3채를 지을 경우 흙집 15평, 툇마루 6평이 된다.
② 흙집 15평 × 350만원 = 5,250만원
※ 막걸리 몇 통에 흙집 짓는 분이 툇마루는 서비스해 줄 것이다.
이렇게 지으면, ① + ② =110,000,000원
나머지 10,000,000원은 가로등, 조경, 인테리어 소품 등을 사는데 추가비용으로 남겨둔다.
3채의 펜션으로 얻을 수 있는 수익 구조를 알아보자.
펜션 3채로 얼마를 벌 수 있을까?
시골생활은 도시보다 생활비가 훨씬 적게 든다.
텃밭에서 나는 채소로 부식비를 해결하고, 주변 관광지로 여행을 떠나면 문화생활비가 절감된다.
교육비나 병원비 등 목돈이 들어갈 일이 아니라면 돈 때문에 갖는 걱정은 줄어들 것이다.
소담한 집의 펜션 가격은
비수기에 약 10만 원선, 성수기에 약 13만 원정도가 적당하다.
펜션 예약률을 월 30%라고 치고 평균 10만원으로 계산해 보자.
펜션 3채 × 10만원 × 30일 × 30% = 월 평균 수익 270만원
현재 펜션이 잘 되는 곳은 년 예약률 70% 정도다.
펜션 예약률을 30%에 그치느냐 70%까지 끌어올리느냐
이야기꺼리를 채우는 것은 주인의 몫이다.
작은 펜션 3채 정도는 부부의 소일거리로 크게 힘들지 않을 것이다.
만약 70%까지 올릴 수만 있다면 말 그대로 대박이지 않을까?
펜션 3채 × 10만원 × 30일 × 70% = 월 평균 수익이 630만원
4채의 집이 있다면, 내 친척과 지인들이 방문하더라도 각각의 방에서 편하게 쉴 수 있을 것이다.
물론, 테마가 있는 펜션으로 사용해도 손색이 없다.
가족단위나 연인끼리의 펜션손님도 크고 휑한 공간보다는
이야기꺼리가 있는 소담한 공간에서 추억과 낭만이 클 것이다.
몇 년 후를 생각해도 나쁘지 않다. 훗날 사정이 생겨 주택을 판매하더라도
어떤 게 더 높은 가치에 팔 수 있을지 생각해 보라.
자연의 소리에서 지은 생태흙집으로 풀어보자
자연의 소리에서도 ‘집은 작아야 한다’를 실행했다.
결과는 대만족이다. 이미 6채의 집을 지어보았지만 이처럼 내 마음이 가는 집은 처음이다 .
보고 듣고 배우기를 2년 정도!
반드시 흙집을 지어봐야겠다는 생각으로 흙집 전문가를 온오프라인을 망라하면서 쫓아다녔다.
인터넷 카페를 통해 흙집만 10년 넘게 짓고 있는 소우 김동구님을 만날 수 있었다.
"소담한 흙집을 원합니다. 이왕이면 3개의 흙집이 다른 콘셉트였으면 좋겠습니다."
"평소 원하는 디자인이 있습니까?"
"전 흙집에 대해 잘 모릅니다. 소우님이 디자인을 해주세요 "
며칠 뒤 디자인이 나왔다. 정자흙집, 태극문양흙집, 초가집이었다.
디자인은 대만족이었다. 주저할 이유가 없었다.
해발 900m 깊은 산속에 200평의 터를 닦아 작은 집 3채를 지어나갔다.
100년 전 조상들이 사용하던 옛 방식 그대로 고집했다.
기둥과 보는 동해의 산림조합에서 구입했고, 서까래와 지붕 개판은 장흥의 편백나무를 사왔다.
흙은 자연의 소리에서 판 황토에 장흥의 편백 톱밥을 섞어 보온효과를 높였다.
기왕이면 손님들이 호롱불을 사용하고, 아궁이 가마솥에 밥을 해먹으면 좋겠다.
물론 전깃불과 가스레인지, 화장실, 싱크대 등 있을 건 다 있지만 말이다.
자연의 소리 생태흙집의 특징
- 정자와 흙집이 하나인 너와집 -
4평의 황토방에 2.4평의 정자를 붙여서 지었다. 지붕은 장흥에서 구입한 편백나무 피죽 즉,
너와로 올린다. 화장실과 싱크대는 둥근 동선에 방해되어서 밖으로 냈다.
방 입구에 정자를 놓아 겨울을 제외한 계절에는 바깥 생활을 유도했다.
이야기가 있는 인테리어 소품도 있다.
40년 전 양문을 여는 브라운관의 TV를 아는가?
추억의 TV가 장식장이 될 것이고, 벽에 벽체를 파서 호롱불을 밝힐 수 있는 내부를 만들었다.
방에 군밤이나 고구마를 구워 먹을 수 있는 화로를 비치하고,
정자에 다듬이돌과 요강, 교자상 위에 청자주병과 놋그릇을 올렸다.
작고 소담한 그 자체로 지어 소품만 두었더니 감탄에 감탄을 자아낸다.
- 툇마루가 이야기인 태극문양집 -
태극문양의 빨간색 윗부분 즉, 태양을 상징하는 곳이 5평의 방이 된다.
파란색 아랫부분, 바다를 상징하는 곳은 5평의 툇마루가 됐다.
지붕은 전북 장수에서 토기와를 구입해 잘게 부숴 붙였고,
남는 기와에 그림을 그려 마당 조경에 사용했다.
방안에 선반을 놓아 이불장과 호롱불 놓는 곳을 만들었다.
벽은 조롱박과 주운 돌로 장식했고, 벽 앞에 8폭 병풍을 세워 한국의 미를 연출했다.
툇마루에 앉아 달과 별을 보며 이런저런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곳이
한국에 몇 곳이나 될까?
- 민속품 전시실이 있는 8평의 초가집 -
4평의 초가집 방, 2평의 부엌, 2평의 헛간, 정겨운 지붕은 인조초가를 이어 엮었다.
아궁이에 군불을 때서 지은 가마솥 밥을 방으로 건네주는 쪽문도 만들었다.
실수로 가마솥 밥을 태우면 누룽지도 먹을 수도 있다.
헛간은 헛간일 뿐이다.
돈을 많이 들이지 않았다. 벽돌로 벽체를 만들고, 황토 색깔 퍼티(페인트접합제)를 칠했다.
간벌한 소나무를 주워와 옆에 덧대어 나무집의 멋을 연출했다.
그 곳에는 농기구, 함지박, 소쿠리 등.... 지금은 사라진 외갓집 헛간에나 있을 법한
민속품을 전시했다. 손님들이 민속품을 보고 추억에 잠길 것을 상상해본다.
초가집 6평 / 태극문양집 5평 / 정자집 4평.
이렇게 15평으로 테마펜션을 지었지만 사용 가능한 평수는
정자집 6.4평 / 태극문양집 10평 / 초갓집 8평.
모두 24평이나 된다.
평당 건축비가 300만 원 선.
각종 서비스 면적을 포함하면 평당 300만원도 채 되지 않는다.
물론 김동구님의 넓은 아량으로 건축비를 줄일 수 있었지만,
어쨌든 육천만 원으로 펜션 3채를 가지게 되었다.
헛간으로 사용하는 초가집 2평은 서비스로 해주었고,
정자며 툇마루는 기둥과 서까래만 있으면 된다며 서비스해 주었다.
- 마당의 소담한 조경 -
토목공사를 하던 중 물이 솟는 곳이 있어서 수질검사를 맡겼다.
청정지역 깊은 곳에서 맛볼 수 있는 생명수란다. 그래서 수도관을 설치해 우물을 만들기로 했다.
마당 한켠에는 강돌 한 차(13만원)를 실어와 작은 샘도 만들었다.
사시사철 맑고 깨끗한 물을 공짜로 마실 수 있게 됐다.
남은 강돌은 장독대 인테리어에 사용했다.
산에서 캐온 누운 단풍나무가 고즈넉한 마당을 바라보고 있다
정문은 산에 지천인 싸리나무를 엮어 울타리를 만들 계획이어서 이 또한 공짜다.
집 바로 옆 산속에 텃밭도 만들어 유기농 채소를 키워볼 생각이다.
가로등은 생태흙집의 자랑거리다. 간벌로 나온 소나무 두 개를 주워 껍질을 벗기고,
그라인드 샌딩 작업을 했더니 멋진 가로등이 됐다.
나무를 타고 올라가는 전기선은 전기공사업체에서 애자를 얻어와 연결했다.
글로브등 1개 구입 가격이 2만 8천 원.
개 당 50만 원이 넘는 시제품과는 비교할 수조차 없는 아름다움이 있는 가로등이다.
지붕에 얹고 남은 토기와 150개를 돌담 뒤에 쌓았더니, 운치가 그만이다.
조경에 사용한 기와 구입비용은 장당 천원(암수 토기와). 모두 15만 원이 들었다.
그리고는 아무런 조경을 하지 않았다.
연세 지긋한 손님들은 젊은 시절 고향집을 떠올릴 것이고,
젊은 친구는 부모 세대의 아련한 향수에 젖을지 모른다.
흙집이 부모와 자녀의 소통창구가 되기를 희망한다.
그 옛날, 호롱불 아래 부모와 자녀들이 도란도란 앉아 이야기 나눴던 것처럼...
이것이 테마다.
part4 · 조경이 곧 즐거움이자 테마펜션이다
1. 펜션여행의 변화, 스토리가 있어야한다
그 시절, 추억여행이 나를 설레게 한다.
고등학교 2학년 여름방학.
보충수업을 마치고 교실에 남아 책과 씨름하고 있었다.
가만히 있어도 송글송글 땀이 맺히는 삼복더위에 공부가 될 리 없었다.
그 날도 책상에 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는데, 친구 한 놈이 오더니 어깨를 툭 치는 것이다.
"일마 공부도 못하는기 조는 꼴 좀 보그라. 검은 것은 글씨고 흰 것은 종이제? 퍼뜩 인나라"
녀석이 끌고 간 곳에는 촌티 줄줄 나는 시커먼 친구놈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방학도 얼마 안 남았는데, 이 뜨거운 청춘을 교실에서 썩히면 되긋나?
개학하면 입시 준비로 얼굴도 못 볼 긴데...."
말인 즉슨, 바캉스를 가자는 거였다. 여행이라곤 소풍 말고는 가본 적이 없던 나는
바캉스라는 말이 주는 묘한 호기심에 한껏 들떴던 것 같다.
날짜와 장소를 정하고, 준비물은 각자 분담했다.
텐트, 코펠과 버너, 카세트플레이어, 쌀과 라면, 김치, 파 마늘 같은 양념류, 등등....
예상 외로 준비물이 많았지만, 돈을 아끼기 위해서는 집에 있는 것을 가져가는 것이 상책이었다.
모두가 가난했던 그 시절, 다들 준비물을 제대로 가져올 수 있을까도 걱정이었다.
드디어 금요일 아침, 진영 버스터미널에 친구들이 모였다.
그런데, 가관도 그런 가관이 없었다.
어디서 주워왔는지 10년도 넘은 천막형 텐트를 갖고 온 영도,
집에서 쓰는 곤로와 석유 1말을 통째 들고 온 기원,
식구들 먹을 쌀 3말과 라면 1박스를 몽땅 가지고 온 진우,
배추김치, 파김치, 무김치를 플라스틱 통에 싸서 온 나,
작은 워크맨이나 마이마이 대신 컴퓨터 본체만한 카세트플레이어 겸용 라디오를 들고 온 혁세,
어이가 없어서 한참을 서로 웃고 말았지만, 촌놈들의 첫 여행은 피난을 연상케 했다.
거기다 그것도 여행이랍시고 다들 때 빼고 광까지 내고 나타났는데...,
칼바지라고 불릴 만큼 양복바지를 다려 입고 온 기원,
배꼽까지 올려오는 백바지 뒷주머니에 빗을 꼽고 온 영도,
꽃무늬 긴팔 셔츠를 민소매로 싹둑 잘라서 입고 온 진우,
필시 영화 속에서 금방 튀어나온 모습이었다.
나라고 잘 차려입었을까? 어머니의 몸빼바지(일바지)를 빌려 입고 갔으니,
내 옷차림이 가장 꼴불견이었을 것 같다.
‘개그콘서트에서 촌놈으로 뜬 양상국’이 고향 진영 출신이다.
양상국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촌스런(?) 얼굴이 그 시절 우리들과 묘하게 매치되는 것 같다.
최종 목적지는 거제 구조라 해수욕장.
우린 용감한 촌놈들이었다. 해변 한가운데 천막 같은 텐트를 쳤는데, 치는 시간만 2시간이 넘게 걸렸다.
그리고는 수영복(?)으로 변신!!
반바지에 고무신, 슬리퍼, 울긋불긋한 런닝셔츠 차림으로 패션의 리더였다.
곤로에 라면을 끓이는데 마침 바닷바람이 불어서 1시간이 넘도록 물이 끊지 않았다.
어쩔 수 없어서 미지근한 물에 라면 10개를 넣고 막대기로 저어서 불려 먹었다.
반찬이라 봐야 김치에 풋고추, 고추장이 전부!
그래도 그 맛은 일품이었다.
반닫이만한 카세트테이프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에 흥겨워하며 늦은 점심을 즐기고 있는데,
지나가는 사람들이 우리를 자꾸 쳐다보며 씨익 웃었다.
그 눈길을 의식하면서 우린 서로에게 속삭였다.
"야~ 저 봐라. 사람들이 다 쳐다본다. 우리가 잘 생겼나배.“
그때 4살 위인 고향 형이 우리 앞을 지나갔다. 우린 반가워서 "행님~~ 행님~~ "하고 불렀지만,
그 형은 못 본채하고 지나치는 것이다. 우리는 반가운 마음에 형을 따라가서 붙들었다.
"행님 피서 왔어예?"
"야, 일마들! 내 아는 체 하지마라. 쪽팔려 죽겠다 ~~ 그라고 저 쪽 구석딩에 텐트 좀 치면 안되겄나?"
비로소 우리 텐트와 거기 서있던 우리들의 모습이 어떤 지 깨달았다.
그리고 말없이 텐트를 걷고 해변에서 멀찍이 떨어진 바위 밑에 자리를 잡았다.
아직 어두워지기에는 이른 저녁 7시.
우리는 카세트플레이어를 틀어놓고 정말 미친 듯이 춤추며 놀았다.
그런데 갑자기 음악이 끊기면서 프로야구중계가 나오기 시작했다.
MBC청룡 광팬인 혁세가 말도 없이 프로야구를 듣겠다며 라디오로 바꾼 것이다.
"한창 필 받았는데, 이놈이 미친 거 아이가?"
우린 장난이었으지만 혁세는 진담이었을까? 녀석이 씩씩거리며 집에 가겠다는 바람에
달래고 말리느라 우리의 1차 축제는 어영부영 끝이 났다.
해수욕장에서의 밤은 길고도 길었다.
밤 11시가 넘도록 '의형제를 맺자, 평생을 함께 가자'며 시덥잖은 장난을 치고 있는데
낮에 만났던 동네 형들이 찾아왔다. 그것도 여자 친구들까지 대동하고서~
"아까 낮에는 미안했다. 느그들도 그기 뭐꼬? 아무리 진영 촌놈이라 해도
그기 텐트가? 또 곤로는 뭐꼬? 고무신에 몸빼하고... .“
"아, 행님아! 그래도 우린 신난다. 뭐가 상관이고?"
"낮에 미안해서 느그들 좋은데 델꼬 갈 게. 일마들아 ~~"
우리 촌놈들은 형들을 따라 해변가에 천막으로 임시 설치된 디스코텍을 갔다.
처음으로 경험한 밤문화?? 형님들이 천사같이 보였다.
나는 마시지도 못하는 맥주를 2병이나 마셨고, 온 세상이 붕붕 떠다니는 것 같았다.
음악에 몸을 맡기고 안 되는 춤이지만 한껏 폼을 내며 췄던 것 같다.
해변에서의 로맨스를 바랐지만, 우리 같은 촌놈들에게 그런 기회는 오지 않았다.
여자들이 겉만 보고 남자를 판단하는 것은 그 때나 지금이나 비슷한 것 같다.
30년이 지난 지금도 그 친구들과 계모임을 한다.
그 때마다 우리의 단골 이야기는 구조라 해수욕장에서의 추억이다.
30년 동안 우리들의 에피소드가 그것만 있는 것은 아닐 건데,
우리는 만났다하면 그 시절을 회상하며 웃고 또 웃는다.
내 첫 번 째 여행이 안겨준 진한 추억!
지금도 18살 촌놈들이 함께했던 구조라 해수욕장의 풍경이 눈에 선하다.
펜션 여행의 변화
펜션(pension)의 의미는 연금·은금이라는 뜻으로
유럽의 노인들이 연금과 민박경영으로 여생을 보내는 뜻에서 유래되었다.
서양의 간이숙소영업은 프랑스의 팡숀(PenSion)을 들 수 있는데,
팡숀은 이태리어로는 팽쇼네, 독일어로는 펜죤이라 발음된다.
경제 용어 사전에서도 펜션(pension)에 나오는 펜션은
호텔정도의 시설을 갖추고 가족적인 분위기를 살린 소규모 숙박시설이다.
요금이 싸고, 가정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소규모 숙박시설을 말하는데
개인별장 같은 아늑함과 가족적인 분위기가 있는 레저용 숙박시설이다.
주로 자연경관이 아름다운 숲이나 호수가, 바닷가에 위치하고 있다.
초창기 노후대책으로 시작된 펜션운영이 이제 은퇴자들의 전유물인 시대는 지났다.
젊은층에서도 펜션사업에 뛰어들어 자연 속에서 자녀를 키우면서
건강하고 자유로운 생활을 누리려는 사람들이 많다.
한국의 도시민들, 직장인들은 늘 피곤하다.
과중한 업무와 스트레스, 직장 상사의 눈치, 경제 불황과 물가상승, 자녀 양육까지...
갈수록 생활은 팍팍해지고 있다. 하루하루 쌓이는 삶의 무게에 짓눌려 자신을 돌아볼 여유는
꿈조차 꾸지 못한다. ‘힐링’이 우리 사회 화두가 된 이유가 이를 반증하는 건 아닐까?
펜션, 전원 속 숙박시설은 이제 세대를 불문하고 선호하는 여행의 아이콘이다.
일상을 벗어나 자연에서의 여유로운 휴식... 여행의 비수기 성수기가 따로 없다.
봄꽃놀이 - 겨우내 움츠렸던 심신을 활짝 펴기 위해 단체여행
여름휴가 - 숲이나 바다 등 피서지에서 재충전
가을단풍구경 - 독서의 계절의 또 다른 이름 단풍구경과 산행
겨울눈꽃여행 - 얼음낚시, 눈축제 등 색다른 다른 이벤트로 제 2의 성수기
이 모든 여행의 중심에 펜션이 자리 잡고 있다.
80년대 여행지의 숙박시설은 민박이었다.
90년대 들어 젊은 층을 주축으로 여행이 확산되더니 좀더 안락한 시설을 찾기 시작했다.
유럽에서 들어온 펜션은 그 때부터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유럽의 프로방스 주택이나 북미의 목조주택은 주소비층인 젊은층의 성향과도 어울렸다.
지금도 여행을 계획하면 숙소는 어디에 정할까? 펜션부터 찾게 된다.
펜션을 구하다 안 되면 호텔, 모텔 순으로 정하는 것 같다.
사람들이 펜션을 찾는 이유는 무엇일까?
추억!
그렇다. 추억이 여행의 중심에 자리 잡아가고 있다.
여행은 단순히 보고, 마시고, 즐기는 것을 넘어 가족, 연인, 친구와의 추억 만들기다.
호텔 식당에서 와인을 곁들인 근사한 식사를 마치고, 가벼운 산책 뒤 호텔방에서 잠자는 것으로
만족하는 사람들이 줄고 있다는 얘기다. 대신, 펜션이나 게스트하우스에서 자연풍광을 즐기고
내가 준비해 간 삼겹살에 소주 한 잔을 기울이며 공감과 소통으로 추억을 만들려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이것이 곧, 달라진 여행의 추세다.
펜션의 패러다임은 바뀌고 있다.
현재 전국적으로 약 2만여 개의 펜션이 성업 중이다.
그 중에서 잘 되는 펜션은 아마 10%도 되지 않을 것이다.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서 점점 화려해지고 그에 따른 비용도 만만찮게 들어간다.
내외부 기본 인테리어는 말 그래도 돈 잔치가 되는 경우도 많다.
멋진 수영장, 화려한 욕조, 레스토랑, 잔디밭, 마트, 규격화된 바비큐장...
월풀 같은 화려한 욕조가 없는 펜션은 외면 받고,
여름에는 한철 사용하는 수영장을 갖춘 펜션에만 사람들이 넘쳐난다.
가을부터 봄까지 썰렁한 구조물로 방치될 지라도
업주들은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시설을 갖춰야만 한다.
처음에는 추억으로 밥을 해서 먹던 사람들도 이제는 펜션 안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한다.
잘 정돈된 잔디밭을 손님들에게 보이기 위해서는
한 여름 땡볕에서 예초기를 돌리고, 끊임없는 관리가 필수다.
이런 펜션을 만들고 유지하려면 최소 수억 원의 건축 비용과 5명 이상의 관리인을 두는
그야말로 사업인 것이다.
펜션이 고급 숙박으로 탈바꿈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여름 한철 장사로 1년을 먹고 살아야 하는 대부분 펜션들이
적자를 면할 수 없게 됐다. '펜션 전성기'면서 '불황기'인 것이다.
지금도 전국 유명 관광지에는 크고 화려한 펜션들이 즐비하다.
<남해의 하이클래스 풀빌라 펜션>, <양평의 생각속의 집>, <모모의 다락방>, <모리의 숲> 등
프렌차이즈로 운영하고 있는 펜션들도 있다.
최소 10억 이상의 자금 확보가 가능하고,
전원생활 보다는 오직 사업으로 펜션을 접근한다면 말리고 싶지 않다.
여행객들이 펜션을 찾는 곳은 인터넷이다.
휴가철이 다가오면 펜션업계는 비상이 걸린다.
자기 펜션을 인터넷에 노출하키기 위해 키워드 검색비나 사이트 보수비 등
월 100만원~ 5백만 원 이상의 홍보비를 지불하는 곳도 많다.
"그 누가 인터넷으로 낚시를 한다 했던가?"
실제 보다 더 좋게 보이게 하는 것은 애교다.
사이트 관리업체는 손님을 끌기 위해서는 홈페이지를 좀 더 멋지고 화려하게 만들라고 주문할 것이다.
"에이. 사진에 낚였다"
관리업체의 말대로 포장을 했다가는
한번 찾은 손님을 영원히 잃게 되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점을 잊지 말자.
돈 버는 전원생활은 이야기꺼리가 있는 펜션이다.
전원생활을 떠올리면 누구나 이야기한다.
"우리 펜션도 같이 해 볼까?"
정말 좋은 계획이다. 하지만 어디서 어떤 펜션을 할지부터 구상하자.
추억여행으로의 펜션
요즘은 휴양림, 야영장, 비박 등 자연에 더 가까이 가려는 경향의 여행을 선호한다.
잠만 자는 숙박업소 같은 펜션보다 여행과 치유를 동시에 할 수 있는 쪽으로 바뀌었다.
추억이 있는 여행으로의 펜션, 소소한 이야기꺼리가 있는 펜션,
체험과 공감, 소통이 어우러진 펜션으로 나아가고 있다.
숙박만을 위한 호화로운 집이 아닌, 작은 오두막에서 하룻밤이라면 어떠한가?
산속 오지의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펜션이라면 두고두고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그 곳에서 가족 연인과 군불을 때서 가마솥에 밥을 해먹으면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시커먼 연기에 얼굴이 그을려도 마주보며 웃을 것이고, 3층 밥을 만들어도 꿀맛일 것이다.
지금은 거의 사라진 외갓집의 향수를 불러 일으킬 초가집,
봉창의 달빛에 손을 잡고 도란도란 이야기할 수 있는 오두막집,
마당에서 모깃불을 펴고 밤하늘의 별을 셀 수 있는 흙집,
낮은 울타리 밑 화단에 채송화, 봉숭아 같은 우리네 꽃이 수줍은 듯 펴있는 귀틀집,
상상만으로 입가에 미소가 떠오르고 마음이 편안해지는 추억의 집들이 많다.
어느 펜션으로 여행을 갈 것인가 ?
단언컨대, 여행은 편리가 아닌 추억이다.
홍보도 잘 안 되었고 이름도 알려지지 않았지만 소담한 이야기가 있는 펜션들도 많다.
펜션, 소프트웨어의 중요성을 알아야 한다
'와! 이 정도 건축미와 조경은 어디다 내놔도 빠지지 않나.‘
펜션업주라면 누구나 같은 생각일 것이다.
손님에게는 “정말 멋지네요. 이곳은 특별합니다.”라는 말을 듣기 원할 것이다.
그러나 손님은 냉정하다. 돈을 주고 사용하는데 굳이 아부를 하거나 마음에 없는 말을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마음에 안 들면 두 번 다시 찾지 않으면 그만이다.
그냥 돌아서는 손님에게 주인은
"이렇게 멋있는 건물과 조경을 볼 줄 모르다니... 눈이 낮네.“ 자신을 위로 할 것이다.
여기서 주인이 놓치고 있는 것이 뭐라고 생각하는가? 손님들의 니즈가 무엇일까?
장사가 안 되면 수영장, 잔디밭, 월풀 욕조, 레스토랑 등을 갖춰간다.
여유자금이 없는 펜션이라면, 십중팔구 대출을 받을 것이다.
이렇게 바꾼다고 금방 찾는 손님이 늘어날까?
더 이상 이런 몇 가지의 변화가 호객의 수단이 될 거라는 환상에서 깨어나야 한다.
왜냐하면, 장사가 되지 않는 수많은 펜션이 똑같은 시도를 하기 때문이다.
추억과 체험!
그것을 갖추어야 한다. 강원도 화천의 얼음낚시를 가본 적이 있는가?
겨울 한철에만 백만 명의 관광객이 찾는다. 한 번의 여행이 평생 추억으로 간직될 수 있는
그런 펜션을 만들어야 한다. 그것이 소프트웨어다.
자연의소리에서도 소프트웨어 개발이 필요하다.
처음에 홍보를 목적으로 "수정궁전, 나무위의 집"을 지었다
이름만 들어도 멋지지 않는가? 아주 멋있게 광고 문구까지 만들었다.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집>
TV에도 여러 번 소개가 되었다. 그러나 그것뿐이었다.
손님 입장에서는 그냥 그렇고 그런 집, 한번 보면 더 이상 흥미를 느끼지 못 하는 집이었다.
몇 날 며칠을 생각하고 또 고민했다. 어떻게 하면 손님들의 호응을 이끌 수 있을까?
자연의 소리를 찾는 손님들은 어떤 집에서 머물고 싶어 할까?
궁리 끝에 하나씩 분석해나갔다.
‘여행은 누구랑 무엇을 위해서 다니는 걸까?’
이 문제를 골똘히 생각해보니 답이 나왔다. 여행의 동반자는 주로 가족과 연인이다.
가족 간의 여행
대개 사춘기에 접어든 자녀는 부모보다는 친구를 좋아한다.
여행이라도 가자고 하면, 학교나 공부 핑계를 대면서 남으려한다.
그런 관계가 3~4년 지속되다보면, 부모 자식 사이라도 살갑지만은 않은 서먹한 관계가 된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이 추억이 있는 소담한 여행이다. 세상 어떤 부모가 자식과
친구처럼 지내고 싶은 않지 않겠는가? 세상 어떤 자식이 부모와의 관계 복원을 원하지 않겠는가?
다소 멀어진 거리와 높아진 벽을 여행으로 풀어보라고 권한다.
집에서는 학교 다녀오면 자기 방으로 들어가기 바쁜 자식도
낯선 여행지에서는 하늘과 바람, 꽃과 나무를 보려할 것이다.
다양한 체험놀이를 통해 자연스럽게 스킨십을 하게 되고, 부모와 자식은 동심으로 돌아갈 것이다.
추억이라는 소중한 공감이 형성되는 순간이다.
가족여행=부모님의 마음!!
이것이 가족여행의 목적이다.
커플여행
연인사이의 여행도 마찬가지다.
이제 막 사랑을 시작한 연인이나 몇 년을 연애해서 권태기가 오는 커플이 있다 치자.
여행의 방향은 다를 수 있지만 목적은 같을 것이다. 일상에서 느끼지 못한 감정을
새로운 장소에서 확인하고 싶은 마음, 서로를 조금 더 알고 가까워지고 싶은 마음,
가까워진 만큼 상대를 이해하고 믿고 싶은 마음, 커플 여행의 목적에서도 답을 찾을 수 있었다.
자연의 소리에서 시행하거나 계획 중인 프로그램
1. 해발 850m의 첩첩산중, 일급수 어종인 버들치낚시와 요리
2. 직접 재배한 표고버섯 채취
3. 당나귀를 타고 둘레길 드라이브
4. 간벌한 소나무로 목침과 솟대 만들기
5. 헤먹에 누워 만화책 보기
6. 캐리커쳐 그리기
7. 왕보리수, 단풍나무, 돌배나무 등 나무심기 이벤트
8. 둘레길 산책 후 발마사지 받기
9. 고랭지 배추로 김장 담그기
초가집에서 민속품을 보면서 자녀에게 아빠 어릴 적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도 좋을 것이다.
팔공산의 갓바위나 탑돌이처럼 백제장군의 기백이 서린 바위에 소원을 빌면
재물과 명예를 가져다준다는 전설이 코끼리 바위로도 스토리텔링을 준비했다.
전원주택이나 펜션에서 필요한 것은 조경소품이다.
그런 소품 즉, 민속품과 골동품을 필요한 사람들에게 저렴한 가격에 판매할 계획도 있다.
전원생활을 원하는 천만 명의 소비자가 생기지 않을까?
조각이나 미술학과 대학생들의 졸업 작품 경시대회 및 상설 전시장도 열 것이다.
프로를 꿈꾸는 학생들의 작품이 누군가에게는 값진 보물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대자연 숲인 하드웨어 속에서 수많은 소프트웨어가
쉼과 힐링이 있는 <자연의 소리>를 완성시킬 것이다.
자연의 소리에 가면, 내 아들이 태어난 날을 기념한 나무가 자라고 있다.
자연의 소리에 가면 당신과 결혼기념일에 쌓은 톨탑이 있다.
그 곳에 가면, 소프트웨어 - 체험과 추억이 있다.
part5 · 이런 임야를 사면 10억을 벌 수 있다
4. 돈 안들이고 임야를 개발하라 - 전문가편
몇 해 전, 대학에서 ‘실전투자’에 대해 강의한 적이 있다.
물론 나는 강의를 할 실력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교수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부동산에 관한 이론을 공부한 적도 없었다.
어려서부터 가졌던 땅에 대한 막연한 환상 때문이었을까?
20대 후반부터 사업으로 번 돈을 부동산에 재투자했고,
차츰 상가, 토지, 경매, 임야 등으로 투자 대상도 넓어졌다.
이런 게 강의를 의뢰하신 교수님의 눈에 조금 특별하게 보였던 모양이다.
강의 날,
청바지에 티셔츠, 스니커즈를 신고 강의실에 들어갔다.
수업을 듣는 학생들(?)은 정장차림으로 근엄하게 앉아 있고...
강사와 학생이 바뀐 분위기였다. (참고로 평생교육원 수업이었다.)
학생들의 눈빛은 무슨 날라리 같은 사람이 들어왔냐는 듯한 ..ㅋㅋ
보통 3시간 강의는 90분 수업, 휴식, 나머지 수업으로 이어진다.
그런데 그날 그분(?)이 오셨는지, 3시간 내리 실전 모의 투자를 떠들었다.
주제는 < 임야를 개발하여 돈을 벌어라 > !!
강의가 끝난 뒤, 학생들의 박수소리가 아직도 귀에 생생하다
수업 특성상 사업가, 직장인, 공무원 등
이미 부동산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받고 있는 사람들이 많아서
강의내용을 잘 이해해 준 것 같다.
그 박수는 내가 강의를 잘해서라기보다,
이론이 아닌 실전투자여서 학생들에게 더 와 닿았을 것이다.
그 뒤, 특강이 아닌 한 학기 동안 한 분야를 맡아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하지만 정중히 거절했다.
이유는 두 가지였다.
첫째, 나는 강의를 할 만큼 부동산에 관련한 지식이 많지 않다.
둘째, 나는 야전의 실전스타일이지, 이론으로 말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었다.
나의 투자 스타일은
기획을 하고 성공여부에 대한 90% 이상 확률이 있을 땐 밀어 붙이는, 돌직구형이다.
하지만 강의실에서는 살아있는 현장의 느낌을 그대로 전달하기 어려웠다.
그런데, 지금 글로 투자의 꽃인 ‘임야 개발’을 설명하려니.... 더더욱 어렵다.
그날 수업을 회상하면서 ‘임야개발’에 대한 글을 풀까 한다.
나: 여러분들은 여기에 왜 앉아 계십니까?
학생 (반백의 신사): 부동산 투자를 배워 돈 벌려고 앉아있습니다.
나: 맞습니다. 그럼 부동산 투자란 무엇입니까?
학생: 부동산을 사서 오르면 팔아서 돈 버는 것 아닌가요?
나: 그것도 맞습니다.
제 경험상 투자란, 투자금액 회수시기와 수익률을 미리 예측해서
현실화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생각해도 어떻게 그런 말을 했는지.... ㅎㅎ
부동산 투자란 돈 버는 것이다.
처음 땅을 구입하려는 목적,
무엇으로 개발할 것인지에 대한 기획,
언제까지 판매할 것인지에 대한 투자 계획,
그리고 수익은 몇 프로가 될 것인지에 대한 예측,
이런 것이 투자를 위해 배워야 할 과정이다.
기업의 절대적 목적은 이윤의 극대화에 있는 것이고,
개인의 투자도 수익 창출에 있는 것이다.
때문에, 이 파트에서는 기업의 도덕적 가치 및 윤리는 잡시 접고 말하도록 한다.
임야 투자는 고수들의 전용 놀이터라고 한다.
논밭은 평균 1000평 내외의 크기이므로 한 눈에 들여다볼 수 있을뿐더러,
투자 목적도 집을 지어서 가치를 높이느냐?
공장을 지을 수 있게 허가를 내느냐?
그냥 가지고 있다 팔아서 시세 차익을 누리느냐하는 단순한 것이다.
하지만 임야는 다르다.
정확한 법률 해석으로 땅에 맞는 적용은 기본이고,
큰 그림을 그릴 줄 아는 지혜와 지식은 필수다.
사회, 경제, 정치의 흐름도 알아야 한다.
거기에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이 또 있다.
돈을 안 들이고 임야를 개발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로또를 왜 사는가?
5천원을 들여 수십억원의 당첨금을 받으려는 마음에서다.
이건 투자가 아니라 요행이다.
임야투자란, 평당 5천원에 구입해서 평당 10만원을 버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려면 엄청난 공부와 노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5천원짜리 로또를 사는데 따로 공부가 필요한가?
1만평이상의 임야를 개발하려면 무척 많은 돈이 들어갈 것이다.
이것은 누구나 생각하는 상식(?)이다.
그런데 ‘돈을 들이지 않고 개발한다’??
과연 가능할까?
OK~~~당연히 가능하다.
단, 반드시 배워야만 가능한 일이다.
산지관리법, 임야에 관련된 법률, 정부지원책 ...
모든 것을 배우고 익히면 단언컨대 가능하다
토지이용 계획확인원, 임야도, 보전관리와 임업용산지,
간벌, 작업로, 수종갱신, 야계공사, 소방연, 임산물 등등...
말만으로도 입이 쩍 벌어지게 어려운 관련 법령과 임야에 관한 것들도
실전을 통해 배우면 쉽게 익힐 수 있다.
자연의 소리에는 소문을 듣고 찾아온 손님들이 왕왕 있다.
그 때 가장 많이 듣던 말이 있다.
"임야에 집이 지어집니까? "
그런 질문을 하면 딱 한마디 답한다.
"네~지을 수 있습니다 "
더 이상의 답변이 필요치 않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가장 기본적인 산지관리법을 모르는 사람에게 일일이 설명을 해 본들
무슨 도움이 될까?
인터넷 카페 <자연의 소리>에도
‘부동산과 임야개발’에 대해 쪽지나 전화로 많은 질문을 한다.
그 중 닉네님 전원총각님의 사연을 소개한다.
- 전원총각님의 질문 -
그동안 풍암님께서 올려주시는 임야개발의 글, 감사하게 잘 보고 있습니다.
우선 저는 35세이며, 개인사업을 하고있습니다.
경남 산청에 20,000평 정도의 임야를 이미 마련을 했습니다.
평당 1만원, 합계 2억을 주고 샀습니다.
보전관리지역이 1만평이며, 임업용산지가 1만평입니다
수종은 소나무와 낙엽송 참나무로 이루어졌고,
땅 중간에 수량은 많지 않지만 작은 계곡이 있는데 푹 파여 있습니다.
펜션과 체험을 할 수 있는 테마공원을 만들어 전원생활을 하고자합니다
미개발된 땅을 건들려고 하니 경험이 없어 막막하네요.
어떻게 시작하면 좋을지 조언을 구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돈이 많이 없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좋은 하루되시길...
- 상기 질의에 대한 답변 -
전원총각님 안녕하세요.
우선 축하드립니다.
35세에 20,000평 토지의 주인이 되신 것은 대단한 일이네요.
평당 30만원하는 논밭을 사셨다면
2억 원으로 700평 남짓 밖에 살 수 없었을 텐데....
약 30배 넘는 임야를 구입하셨네요. 선견지명이 있으십니다. ㅋㅋ
이젠 평당 30만원 하는 임야(토지)로 만들기만 하면 되네요.
임야 개발은 배우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지만,
돈을 얼마나 적게 들여서 하느냐가 중요합니다.
어려운 질문을 하셨네요 ^^
제가 아는 만큼만 답을 적도록 하겠습니다.
질문의 요지를 정리하자면.
1. 경남 산청의 임야 2만평으로 관광지를 만들어 살고 싶다.
2. 평당 1만원 전체 금액 2억 원으로 매입완료
3. 보전관리지역 1만평, 임업용산지 1만평
4. 소나무 낙엽송 참나무 등이 혼재
5. 쇄골현상이 있는 계곡이 토지 중간으로 흐른다.
6. 돈을 안 들이고 만들어 가고 싶다
임야의 개발은 현장에서 경관에 의해 이루어져야한다.
답변을 드리려니 토지에 대한 기본 자료가 없네요 .
땅, 특히 임야는 현장을 직접 봐야 주어진 자연환경을 활용하는 개발 방향이 정해집니다.
전원총각님이 현장에서 직접 체크해야 할 상황들입니다.
첫째, 토지의 방향, 계곡의 형태 및 수량, 수종, 토질, 해발, 경사, 주변경관 등을
확인하고 어떤 종류의 개발과 건축물의 위치 선정,
그 임야에 어떤 체험 프로그램이 맞는지 연구해야 됩니다.
임야는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사람을 만났을 때 첫 인상처럼 토지의 느낌입니다.
전체적으로 느낌을 알 수 있어야겠죠..
둘째. 어떤 테마로 체험프로그램을 운영할지에 목적성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가령 청소년 인성 프로그램, 귀농귀촌교육 프로그램, 야영장, 펜션 등이 되겠죠?
소유하신 임야의 장점을 살린 프로그램이라면 더욱 좋겠죠?
상기의 내용에서 명확히 답변을 드리기가 어려운 이유를 아시겠죠?
돈 안 들이는 임야 개발은 배워야 가능하다
돈 안들이고 임야를 개발하여 수익을 창출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임야를 개발하는 방법, 수순, 정책자금.
이 세 가지는 반드시 배워야 합니다.
인터넷으로 기본 정보를 익히고 행정관청에 질의를 해 보는 과정에서
지식은 더욱 충만해질 겁니다.
어디에 목적을 두느냐에 따라 개발의 방법이 달라져야겠지요.
바둑을 두는 것처럼 임야개발은 수순대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산림청의 정책에 맞는 구상을 하고 그에 따른 보조자금을 받아야 돈이 절약됩니다.
이제 수순에 의해 개발에 들어갑니다.
반드시 이 수순에 따를 필요는 없겠지만.
제가 경험한 바에 따르면, 가장 돈을 안 들이는 임야 개발의 수순이라 생각합니다.
1. 우선 숲가꾸기사업(간벌)을 하세요.
간벌은 우리가 미용실에 가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덥수룩한 머리카락을 커트하면 그 사람이 한층 멋지게 보이는 것처럼,
산도 조밀하게 심겨진 나무나 어수선한 하층식물을 제거하면 깔끔하게 변합니다.
간벌이란?
산림자원의 조성 및 관리에 관한 법률의 입목벌채중 솎아베기를 말하는 것으로
숲가꾸기(간벌)를 위한 벌채를 말합니다.
따라서 솎아베기(간벌)는 나무가 서로 밀집돼 있는 것을 일부 베어내어
나머지 나무들이 잘 자라게 하는 것입니다
매년 각 지역 지자체 산림과에 간벌 신청을 받습니다.
산림조합에 신청해도 됩니다.
간벌지로 채택되면, 적당한(익년 3월~) 시기에 간벌을 지자체에서 무료로 줍니다.
간벌을 하면 벌목된 나무가 산 전체에 어지럽게 산재합니다..
이런 어수선하게 널부러진 간벌한 나무를 산물이라 하는데,
숲가꾸기사업 신청시 산물수집도 같이 해달라고 해야만 간벌한 나무를
한곳에 모아줍니다
그래야만 간벌한 산이 깨끗하겠죠.
또한 산물수집(간벌목)한 나무를 목재용 또는 펄프용으로 팔아서 돈을 벌 수도
있습니다.
수종이 좋은 나무나 수형이 멋진 나무는 반드시 살려야 합니다.
그 나무가 전원총각님이 하려는 관광지의 멋진 수목관광 자원이니까요.
멋진 나무 한 그루를 옮겨 심는 비용이 약 2천만 원 정도 하니깐,
이런 나무만으로도 훌륭한 조경이 될 것입니다.
간벌은 전체 나무의 약 30% 정도로만 하시면 됩니다.
간벌의 중요한 장점은 개발을 할 때 입목축적도를 낮출 수 있다는 겁니다.
지역에 따라 다르지만 임야개발에서는 입목이 얼마나 많으냐에 따라
허가가 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나무가 너무 울창하면 산림보존을 위해 집이나 펜션 등 개발가가 나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간벌이 많은 나무 때문에 허가가 나지 않는 문제도 해결하겠죠?
간벌 비용은 제로, 또는 약간의 돈을 벌 수 있습니다. (간벌목 팔아서 번 돈 ㅋㅋ)
톤당 8만 원 정도에 간벌목을 펄프용도로도 팔 수 있습니다.
겨울에 10자 (1자는 30cm)로 간벌을 하면 톤당 12만 원 정도 받습니다.
겨울 간목이 비싼 이유는 나무가 겨울을 나기 위해 봄부터 가을까지 지니고 있던 물을 내뿜습니다. 물을 내리 난 나무는 좀이 먹지 않거나, 단단한 목질을 가지게 되어 건축자재로 사용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간벌을 하기 전, 나무를 사가는 사람과 합의하면
구입자가 직접 간벌을 감독하고 가져가기 때문에 노동력이 줄어 들 수도 있답니다
2만평에서 200톤 정도를 간벌했다면 펄프용으로 팔아도 1600백만 원의 수익이 생기죠.
1-1. 수종갱신 신청을 하세요.
수종갱신이란, 현재 심겨진 나무가 불량이거나 활잡목 관목류 혹은 솔잎혹파리 등
산림 피해임지로 기 나무로는 산림경영의 실효를 거둘 수 없다고 인정되는 임야에
기존 나무를 베어내고 수익성이 높은 른 수종으로 교체해 심는 것을 말한다.
교체 수종으로는 밤나무나 고로쇠나무 잣나무 낙엽송 등이다.
실전에서는 수종갱신의 목적에 맞게 활용을 하면 된다.
소유하신 임야에서 개발이 안되는 높은 경사지 부분이나 임업용 산지 중에서도
건축물 계획이 없는 곳에 임산물(호두나무, 은행나무, 잣나무, 고로쇠나무)생 목적이나
편백나무, 소나무 등 우수한 품종으로 수종갱신을 하시면 5년 후 멋진 곳으로 변할 겁니다.
신토불이라고 요즘 국내산 임산물은 비싸게 거래되고, 수확철에 임산물 체험프로그램을 만들어
수과 수익을 동시에 얻을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밀양에 12,000평을 가진 분이 고로쇠나무를 심고 싶었는데
마침 지인의 소개로
산림조합을 통해 전벌(산 전체의 나무를 베는 것)후, 우산고로쇠나무를 심었습니다.
비용이 1억 원이나 들었으나 정부 보조금을 9천만 원을 받아서
자기 부담금은 겨우 10% 정도 밖에 들지 않았습니다.
이 나무를 가꾸기 위해 산림조합에서는 3년 동안 주변의 잡초 제거 및 관리를 해 준답니다.
진짜 대박이지 않나요?
5년 후에는 고로쇠 물을 수확으로 판매까지 하게 되었고요.
※ 산나물 재배시, 산짐승들로부터 피해를 막기 위한 울타리 비용도 신청해보세요.
수종갱신 또한 산림조합에서 신청을 하면 되는 것으로
허가신청 비용은 약 50만 원 정도 듭니다.
림조합에는 미리 조합원으로 가입해 두시는 것이 좋은데요. 조합원 가입비는 약 10만원 내외입니다.
산림조합의 산림기술자가 친절하게 무료상담해 준다는 것도 잊지 마세요.
과수목을 심으려면 수종경신이 아니라 개간 허가를 아서 지목을 과수원으로 바꿔야 합니다.
이 때 비용은 전원주택 허가를 내는 것만큼 많이 들어갑니다.
그리고 과수목은 과도한 노동력과 관리 문제 때문에 전원총각님의 목적에 맞지 않을 것입니다.
2. 개발로 들어가 볼까요?
<작업로를 개설하세요.>
작업로란 ?
산림경영을 하기 위한 도로, 산림을 가꾸기 위한 도로, 산불예방을 위한 도로를 말한다.
작업로는 률상 도로 폭이 2m만 가능하다.
하지만, 교행로 급경사 등에 따라 작업로 폭이 3m가 되어도 가능하다.
그 정도 넓이의 작업로라면 이것이 곧, 체험프로그램에서는 둘레길이 되겠죠?
산림청에서 요즘 권장하는 것도 작업로 임도를 활용한 체육 프로그램입니다.
산악자전거, 산악 마라톤 걷기대회, 오프로드 경주... 다양한 프로그램을 할 수 있겠죠.
작업로 공사시, 중간 중간에 큰 돌이 나오면 보기 좋게 평상으로 사용하세요.
또는, 돌탑을 쌓으셔도 좋습니다 ~~~!
간벌한 나무를 평상으로 만들어 배치해 보세요.
그것은 곧, 쉼터가 될 것입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관광지의 형태가 돌과 나무로 된 쉼터입니다.
돌이 없는 땅에서는 데크및 벤치를 만들어서 설치해야 하지만.
넓은 돌이나 큰 돌이 많다면,
운치있는 표석과 쉼터를 만들 수도 있을 겁니다.
또 돌에도 스토리를 만들면 지구상에 하나밖에 없는 테마가 되겠죠?
작업로 설계는 산림조합에서 하세요.
설계비용은 1km에 약 50만 원 정도 듭니다.
일반 설계사무실에서는 1km에 약 200만 원 정도 비용이 듭니다.
어디서 해야 하는지 아시겠죠?
작업로의 공사비용은 돌산이냐? 흙으로 된 산이냐?
토질에 따라 비용이 다릅니다.
그래도 꼭 작업로 개설에 드는 비용을 물으신다면
포클레인 임대 및 인부 1명 정도의 임금입니다.
포클레인이 하루에 50m정도를 개설한다면,
100m를 내는 데는 이틀이 걸리니까 200백만 원이 들겠네요.
인부 1명은 주변 정리를 깔끔하게 하는데 필요하답니다.
2만평이면 1,000m의 둘레길(작업로)만 있어도 운치있는 산책로가 되겠네요 ^^
관광지 개발에 2천만원 정도의 금액으로 둘레길이 생긴다면 괜찮으시겠죠?
3. 씨앗을 파종하자
<야생화와 산나물이 우리를 반긴다!>
2만평에 야생화 군락지와 산나물 재배를 해보세요.
간벌로 하층식물이 제거되었다면 큰 나무 밑엔 깔끔한 토양과 풀만 있을 겁니다.
작업로까지 개설했다면 산지를 한눈에 볼 수 있어서 개발계획을 수립하는데
훨씬 쉽겠죠.
펜션 및 건축물이 들어설 자리 외에
곰취, 도라지, 산양삼, 돼지감자 등 임산물과
코스모스, 금낭화, 구절초, 해바라기 등 야생화 씨앗을 뿌리세요.
노트에 스스로 마스터플랜을 그려 보고,
계획대로 파종한다면 2만평의 땅에는 계절마다 산나물과 꽃들로 만발할 겁니다.
그곳이 곧 임산물 체험프로그램과 야생화 단지가 되지 않을까요?
단, 씨를 뿌릴 때 개발할 곳은 그대로 둬야 하옵니다^^
그 다음, 1년 정도는 정자 하나 지어놓고 노시면 됩니다.
쉬는 동안 지인들을 초청해서 내가 가진 산을 자랑하세요.
지인들과의 대화로 무엇을 해야 할지에 대한 답이 나오고,
어느 정도 홍보도 되지 않을까요?
4. 자연재해 예방을 위한 계곡공사는 정부 자금으로!
구거(계곡)가 있다고 했죠?
금싸라기 땅을 구입하셨군요.
산에 물이 있다는 것은 참 좋은 일입니다.
연못, 계곡, 폭포... 어떤 것도 만들 수 있는 재료죠.
산에서 내려오는 물을 막아 소방연을 만들면 운치있는 연못이 되고,
그 연못의 활용도를 높이면 됩니다.
낚시터, 수영장, 생태연못, 썰매장 등... 다양하게 사용이 가능합니다.
계곡이 집중호우에 의해 유실이 되거나 쇄골현상이 많이 나타난다면
지자체의 산림과에 먼저 신고하세요.
산림청은 임야 피해를 막기 위해 야계공사(계곡정비공사)를 해줍니다.
야계사방공사
산간이 산록에 접한 계곡이나 하천으로 평상시에는 유량이 적으나 비가 오면 범람하여
도로 및 농경지가 유실되는 등 피해가 심한 황발성 계류(荒廢性 溪流, Wild torrent)에
계상(溪床) 및 계안(溪岸) 공작물을 설치하여 계천의 종횡침식을 방지하고 산각(山脚)을
고정하여 계류의 안전유출을 기하는 것을 말한다.
야계공사에 선정되면 돈을 들이지 않고 멋진 계곡을 만들 수 있습니다.
야계공사시 중간 중간에 물막이 공사를 해주세요.
공사팀과 협의해서 낙차공법을 이용한 물놀이 장소를 만들면 좋습니다.
직접 만들려면 몇 억 원이 들지 모르는 공사기법입니다
5. 분할을 아시나요?
지인들이 내 땅이 좋다며 팔기를 권할지 모릅니다.
그럴 때는 분할을 하세요.
분할! 정말 중요한 대목입니다.
“큰 땅은 쪼개서 팔아라”
무슨 말인지 아시겠죠?
전원총각님은 2만평의 큰 땅을 가지고 있습니다.
간벌로 차분한 숲을 만들었고, 둘레길(작업로)도 생겼습니다.
지인들에게 약 500평씩 관리지역을 분할해서 전원주택이나 펜션 용도로 판매해도 좋습니다.
수려한 경관이 있다면 평당 15만원은 받으실 수 있을 겁니다.
2천 평을 4개로 분할을 해서 팔아도 3억 원의 수익을 올릴 수 있습니다.
임야 구입비용 2억 원 본전을 빼면 1억 원이 남았네요.
이 돈으로 집도 짓고, 개발비용을 내도 무려 1만 8천 평이나 남았네요.
축하드립니다. ㅎㅎㅎ
6. 기타의 개발 방법입니다.
펜션 및 건축물에 대해서는 토지개별법에 따라 해야 합니다.
2만평 중 1만평의 보전관리지역에는 펜션 및 주택을 짓고,
임업용산지 1만평엔 청소년 수련시설, 농산물 판매시설, 관광농원을 하셔도됩니다.
관리지역 및 임업용산지에 대해선 다음 파트에서 배우기로 하겠습니다.
이것마저 다 적으려니 손가락이 아파서 그만 두렵니다.
다음에는 전화로 질문을 하시면 좋겠습니다.
글로 다 전달할 수는 없으니 제 경험을 말씀해 드릴게요.
전원총각님, 지금까지 글을 모두 이해하셨나요?
간단히 요약해보겠습니다.
간벌은 내가 가진 땅을 어떻게 개발할 수 있을지 파악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건축물이 들어설 자리가 아닌 곳에는
나무 종류를 바꿔 아름다운 치유의 숲으로 만들면 좋습니다.
작업로를 개설하여 둘레길, 산악자전거 도로 등 레포츠에 필요한 길을 만드세요.
임산물, 야생화 등을 자생하게 만들면 생산과 수익을 줄 것이며,
계곡정비로 물놀이장과 낚시터 활용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만들어 놓은 다음,
여유가 생길 때 펜션, 집, 체험장 등을 지으시면 됩니다.
이만하면 돈을 들이지 않는 멋진 관광지가 되지 않을까요?
. 10,000평 미만의 관상수 재배
. 3,000평 미만의 버섯 재배사, 온실, 임산물창고 집하장, 유기질비료 제조시설
. 3,000평 미만의 농어촌 관광휴양단지 및 관광농원, 수목원, 청소년수련교육시설, 병원
. 200평 미만의 농림어업인의 주택 (자기소유산지에 포함) -> 공익용 산지에서도 가능
. 산지를 전으로 지목변경 가능
. 60평 미만의 산림경영관리사 -> 타인 소유 산지에서도 동의 받아 가능
. 임산물 재배 품목 27개에서 57개로 확대 (복분자 등 30개 품목 추가)
. 산림을 임의로 벌채할 수 있는 산림규모 - 개인은 5㎥에서 10㎥로 확대
. 임업후계자 경우 벌채할 수 있는 규모 – 50㎥에서 80㎥로 확대
에필로그
필리핀 민다나오(mindanao) 섬을 아십니까?
《필리핀에서 두 번째로 큰 민다나오섬은 국토 최남단의 1/3 지점에 위치한다.
아직 개발이 되지 않은 지역이 많아 천혜의 자연환경을 자랑하지만,
농업과 어업이 주 소득원으로 주민들 삶이 넉넉지 않다.
특히, 국교인 가톨릭에 반해 독립을 주장하는 무슬림이
폭탄테러 등 반군 활동을 해서 여행객들의 주의가 필요한 지역이다.》
40대 초반, 사업이 자리를 잡기 시작하면서 새로운 아이템을 찾기 위해
민다나오섬에 출장간 적이 있다.
모든 일정을 무사히 마치고, 현지인 집에 초대를 받아 갔다.
어부인 직접 잡은 해산물과 필리핀 전통음식이 올라온 간소한 밥상이었지만,
식사시간 내내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방문한 손님의 안부를 묻고, 가족들의 소소한 이야기가 전부인 시간....
구김 없이 편안한 얼굴에서 ‘행복에도 얼굴이 있다면 저런 모습이겠구나!!’ 생각했다.
출장에서 돌아온 후, 눈코 뜰 새 없이 바삐 일하면서도
민다나오 어부 가족들의 얼굴이 지워지지 않았다.
일에 치이고 사람에 지치고.... 그럴 때면 두 시간 남짓했던 그 시간이 그립기까지 했다.
그리고 ‘나는 무엇 때문에 숨이 차도록 뛰고 있는가?’ 스스로에게 물었다.
주위에서는 나를 ‘자수성가의 모델’처럼 이야기한다.
가난한 집안의 7남매 중 막내로 태어나 고등학교 졸업 후 곧바로 사회에 뛰어들었다.
20~30대에는 돈이 되는 일이면 무엇이든 했던 것 같다. 쓰디쓴 실패도 몇 차례 맛봤고,
죽을 고비도 한두 번 넘겼다. 덕분에 경제적으로 부족함 없이 살만큼 여유도 생겼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통장에 잔고가 쌓일수록 마음은 허전해졌다.
더 늦기 전에 내가 진짜 원하는 삶을 살아보고 싶어졌다. 그동안 앞만 보고 뛴 나에게
‘특별 보너스’를 주고 싶었다.
그것이 <자연의 소리>의 시작이었다.
어릴 적 신문배달과 고물 줍는 일,
늦은 나이에 꿈을 위한 대학 진학,
그리고 사업과 투자, 끊임없는 도전.
지난날을 돌이켜보면, 내 자신을 편안하게 둔 적이 거의 없었던 것 같다.
밥을 먹으면서도, 잠자리에 누워서도, 심지어 꿈에서도 일을 했다.
맨 손으로 시작하는 사람들은 으레 그렇게 사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다 불혹에 민다나오의 한 가정에서 뒤통수를 얻어맞았다.
"앞으로도 이렇게 살아야 하는가?"
스스로에게 묻고 또 물었다.
그리고 마흔 넷에 <자연의 소리>에 첫 삽을 들었다.
물론, 그 때도 꿈이 있었다.
가야산 국립공원 자락 해발 850m 청정지역!
자연을 훼손하지 않는 테마가 있는 공원!
추억과 심신을 치유할 수 있는 자연휴양림형 치유의 숲!!
문화와 예술, 사람과 자연이 더불어 숨 쉬는 오지마을!!!
이제 내 나이 마흔 아홉.
<자연의 소리>를 시작한 지 5년이 흘렀다.
만감이 교차하는 시간이었다. 후회도 많았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노가다를 하고 있는 내 자신을 보면서,
사춘기에 접어든 아이들과 휴일 한번 제대로 즐길 수 없는 현실 앞에서,
집중호우와 태풍으로 땀과 노고가 한 순간에 무너지고 휩쓸려갈 때...
그럴 때 마다 채찍으로 일으켜 세우는 수밖에 방법이 없었다.
‘이렇게 포기하는 건 풍암 스타일이 아니야’
쓰러지고 오뚝이처럼 일어서기를 반복하면서 깨달았다.
無知가 곧 자연의 훼손이라는 것을....
토목, 건축, 설계... 이런 것에 대해 경험도 없는
내가 혼자 진행해 나가기엔 한계가 투성이었다.
그래서 인터넷 다음카페 <자연의 소리>를 개설했다.
전원주택에 대한 실패의 공유 목적도 있었지만,
나를 도와줄 지인과 인맥을 구성해야겠다는 ‘사심’도 있었다.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많은 사람들이 <자연의 소리>를 다녀갔다.
많은 사람들이 <자연의 소리>를 도왔다.
4KM의 자연 둘레길
33곳의 작은 테마공원
85%의 천연 자연공원
30개의 조각 작품
20곳의 나무와 돌의 쉼터
10개의 컨셉별 연못과 폭포
다양한 14동의 게스트하우스
앞만 보고 달린 나에게 ‘특별한 보너스’를 주고자 시작했던 <자연의 소리>는
멈춤이 아닌 또 다른 도전이었다.
대신, 많은 사람들의 전원과 자연에의 꿈을 담아냈다.
전원생활!
경제성과 안전성을 갖춘 전원생활은 현대인들의 로망이다.
많은 돈을 들이지 않고 시작하는 귀농귀촌을 바라는가?
처음 <자연의 소리>를 시작할 때 느꼈던 막막함과 어려움을 여러분도 갖고 있지 않은가?
이 글은 자연의 소리 5년간의 시행착오와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
전국을 다니며 배운 것을 토대로 작성했다.
이 글이 전원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에게 등대가 돼주길 바란다.
여러분들의 또 다른 <자연의 소리>가 이루어질 수 있기를 진심으로 응원한다.
우리에게 진정한 감동을 주는 것은 자연이다.
2014년 3월 어느 날 흙집에서 별을 헤아리며...
풍암 정성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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