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한 여고동창회에서 완경을 자축하는 파 티를 열어 눈길을 끌었다. 또 여성으로서 생명이 다했다는 부정적인 어감의 '폐경' 대신 완전한 성숙을 의미하는 '완경'이란 표현을 사용하자는 움직임도 일고 있다. 이제 더 이상 완경은 여성들의 불안한 미래가 아니다. 50대가 되기 전에 몸과 마음의 준비를 마친다면 더욱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완경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준비로 즐겁게 제2의 인생을 반기자.
한 여고 동창생들의 모임. 50세 전후 중년 여성들의 수다가 시작되었다. 기억력이 떨어진 탓에 동창 이름이 입에서 맴돌아 애매한 미소만 짓는다거나 휴대폰인 줄 알고 들고 나왔는데 리모컨이더라는 둥 실수담이 만발한다. 친구네 결혼식에 가려고 미장원에 들렀다가 깜빡하고 파마를 늘어지게 하는 바람에 불참한 이야기에선 박장대소 후에 서로 쓴웃음만 짓는다. 얼굴에 열은 왜 그리 잘 오르는지, 잠자리는 왜 귀찮기만 한지, 오싹거리다 후루룩 진땀이 나고 더웠다 추웠다하고 화도 잘 나고 섭섭한 것도 많단다.
슈퍼에 들러 반찬거리를 사들고 허둥대며 나오다가 힘이 빠지고 슬퍼져서 눈물을 흘렸다는 얘기도 들린다. 이 모든 게 다 여성호르몬이 안 나와서 생긴 완경 탓이라고? 겨우 밀가루 한 알갱이만한 여성호르몬과 매달 흘리는 월경혈에 의해서 존재 가치가 결정되는 건 절대 아니다. 자동차를 한 50년 타서 여기저기 부딪히고 긁히고 떨어져 나가고 가끔씩 고장나서 정비 공장을 들락거리는 건 당연하지 않은가.
그동안 열심히 일하느라 부려먹은 몸이 이제는 살핌과 돌봄이 필요하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다 끝장난 것처럼 한숨짓기는커녕 이제부터 윤활유도 듬뿍 넣고 재충전해서 달려야 할 날들이 자그마치 30년이나 남았다.
CHAPTER 1
완경에 대한 올바른 이해
'폐경'보다 '완경'이란 표현이 적합
여성은 인생에서 필연적으로 두 번의 변화를 겪는다. 초경과 폐경. 한 의학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여성의 초경연령은 평균 16.5세이고 완경은 만 50세라고 한다. 반면, 지난해 우리나라 여성의 평균수명은 80세. 완경 후 또다시 한 세대 인생이 남아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완경 이후 삶이 얼마나 신체적, 정신적으로 건강한 상태에서 지속될 수 있는지가 관심의 초점이 되어야 한다.
따라서 최근에는 폐경(閉經)에서 완경(完經)으로 용어도 변하고 있다. 폐경(menopause)이라는 단어는 달(month)과 멈춤(cease)을 의미하는 두 개의 희랍어에서 유래한 것으로 월경의 멈춤, 또는 마지막 월경이라는 뜻을 가진, 갱년기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생리를 더는 하지 않는다고 해서 폐물이 되는 것이 아니라 비로소 하나의 완성된 여성이 된다는 의미에서 닫히고 끝났다는 의미의 폐경이란 단어 대신 임무의 완수라는 의미에서 완경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이다.
일생 월경을 함으로써 인류의 존속과 발전을 위한 모성의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한 여성들이 50세 전후로 월경을 멈추게 되는 것은 임신으로부터 해방된 여성의 제2 인생의 출발점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이렇듯 여성에게 있어서 완경기란 자연스럽고 정상적인 변화이지만 신체와 정신, 그리고 사회적 상황으로 볼 때 사춘기같이 아주 큰 변화의 시기인 것은 분명하다. 열심히 젊은 날을 보낸 덕분에 남편과 자식도 확실한 영역을 구축하고 나의 일에서도 목소리를 높일 수 있는 지위를 갖게 되었으니, 이제 자신의 시간을 보낼 차례다. 몸과 마음과 영혼의 지혜를 즐길 때이다.
완경은 왜 일어날까?
완경이란 여성에서 난소의 기능이 소실됨에 따라 월경이 영구히 사라지는 현상을 의미한다. 규칙적이던 월경이 불규칙해지다가 점차 없어지기 때문에 예측할 수도 있지만 비교적 여성자신이 느끼지 못하게 순간적으로 일어난다. 따라서 이에 따른 신체적, 생리적, 정신적인 변화를 받아들여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인생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가질 수도 있다.
하지만 반대로 적극적이고 의욕에 찬 새로운 인생의 계획을 세울 수도 있다. 여성에게는 생식을 위해 난자를 만들어내고 여성호르몬인 에스트로겐을 분비하는 난소라는 기관이 있다. 이러한 난소는 여성이 태어나기 전에 이미 모체의 뱃속에서 만들어진다. 오른쪽에 1개, 왼쪽에 1개 총 2개의 난소를 가지고 태어나는데 각각 100만 개씩의 난자를 갖게 된다. 여성이 초경을 시작하는 사춘기가 될 때까지 총 200만 개의 난자는 서서히 퇴화되어 4만 개 정도만이 남게 되는데, 이중 400개 정도의 난자만이 배란이 되고, 나머지는 퇴화되어 없어진다. 난소가 난자를 다 사용해 더 이상 배란시킬 난자가 없게 되면 그 난소는 기능을 잃게 된다.
여성은 배란이 일어나야 여성호르몬이 분비되고 생리가 나오는 것인데, 난자가 모두 소모되면 배란이 일어날 수 없으므로 여성호르몬도 분비되지 않고 월경이 나오지 않게 되는 것이다. 현재까지 현대의학으로 완경의 시기를 늦출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완경은 여성이면 누구나 거의 비슷한 연령의 시기에 겪게 되는 자연의 이치이므로 충분한 지식을 가지고 슬기롭게 대처해 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딸들의 초경을 부모와 가족이 축하해주는 것처럼 완경을 맞은 아내·어머니를 남편과 자녀들이 격려하고 감싸줌으로써 함께 극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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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2
완경기 증상과 관리
호르몬 치료 외에 운동과 식생활 관리 필요
완경기가 다가오면 몸이 많이 아프고 뼈마디가 쑤시는 등 쇠약해지기 쉽다. 생리의 불규칙 혹은 정지 이외에 얼굴이 쉽게 달아오르기도 하는데, 건강한 사람은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마른 사람이나 심리적으로 수치심을 잘 느끼거나 열등감을 가진 사람들이 열이 훨씬 많이 난다. 또한 호르몬 분비가 적어져 질과 그 주변 요도부가 위축되어 성교통이나 노인성 요도염 등이 생길 수 있다. 그리고 동맥경화증이나 심혈관계 질환이 잘 발생하고 노인성 골절 때문에 가장 문제가 되는 골다공증이 오게 된다. 그 외에도 피로, 무력감, 현기증, 불안, 집중력 저하, 우울증 등 여러 증상 등이 올 수 있다.
□부정자궁출혈
대개 피임약 등으로 조절하지만 피임약을 사용하기엔 호르몬 양이 높으므로 완전히 생리가 정지하는 완경 상태가 되면 낮은 양의 경구용 난포호르몬과 황체호르몬으로 바꾸는 것이 좋다. 난포호르몬만 사용하는 경우는 생리는 다시 재개되지 않지만 자궁내막을 계속 자라게 해 자궁내막암을 일으킬 수도 있으므로 자궁절제술로 자궁이 없는 사람이 아닌 한 꼭 황체호르몬을 함께 투여해야 한다.
□안면홍조
일상생활에 지장을 주거나 고통을 느낄 정도가 되면 적은 양의 경구용 호르몬 대체요법을 시작한다. 위축성 질염, 위축성 요도염 등이나 성교통 등에는 경구용 호르몬 대체 요법보다는 난포호르몬 질정이나 난포호르몬 연고가 더 낫다고 한다.
□골다공증
완경기에 가장 문제가 되는 골다공증은 병원에 가면 여러 검사들이 있으므로 쉽게 진단할 수 있다. 골다공증은 초기부터 호르몬 대체요법을 시행하는 것이 좋으며 아울러 칼슘 제제 투입과 적당한 운동도 치료에 도움이 된다. 그리고 식사에서도 칼슘 섭취가 되도록 식단을 짜는 것이 좋다.
□동맥경화증
동맥경화증에 대한 치료는 아직 뚜렷한 지침이 확립되어 있지 않으나 동맥경화가 잘 오는 가족력이나 과도한 흡연, 음주나 질환 등으로 인해 동맥경화증이 올 가능성이 높은 사람은 대체요법을 시행하는 것이 좋다.
호르몬 치료는 매우 주의해야 하며 정확한 처방 없이 함부로 복용시는 자궁내막암 등이나 부정자궁출혈 등 여러 부작용이 있을 수 있으니 꼭 부인과 전문의의 처방을 받도록 한다.
여성호르몬 저하와 관계가 있는 것으로 알려진 갱년기 두통과 신경통·근육통을 없애고 골다공증 위험을 막는 데 여성호르몬(에스트로겐) 복용이 대체요법으로 많이 쓰이고 있다. 하지만 일부에서 부작용을 겪기도 하면서 호르몬 치료 외에 수영·등산·마라톤 등 40대엔 아이들 키우고, 남편 뒷바라지하느라 생각도 못했던 운동으로 자기 몸을 단련하려는 이들도 늘고 있다.
실제로 의학계에서는 특별히 치료를 요할 만큼 증상이 심한 경우는 많지 않은 것으로 보고 있으며, 식물성 단백질과 비타민이 고루 포함된 식생활을 하고, 등산·자전거 타기·수영 등의 운동을 꾸준히 하라고 권한다.
CHAPTER 3
한의사 이유명호의 이색 제안
우리 농산물로 완경 지키기
한의사 이유명호 씨는 우리나라 사람의 체질에 맞지도 않고 경고문까지 붙은 수입산 여성호르몬 대신 우리 농산물을 이용해 완경을 지켜내자고 주장한다. 그녀가 제안하는 방법에 따라 완경을 슬기롭게 받아들이자.
□잠을 푹 많이 자야 한다
집안 살림살이 모두 오래되어 지킬 것도 없다. 밥 차려달라고 보채는 영감님들에게 이제 같이 장보고 밥하는 법도 가르치자. 그리고 남는 시간에 운동하고 잠을 깊이 잘 자면 피로회복과 원기를 채워주는 호르몬과 단백질 합성이 밤사이에 충분히 일어난다.
□사랑을 주고 또 받아라
인생을 통해 기뻤던 추억과 순간들을 자주 기억하는 것이 좋다. 이제는 감정의 갈등을 풀고 용서하자. 웃음과 즐거움을 주는 사람을 많이 만나고, 기쁨과 행복을 주는 프로그램도 자꾸 만드는 것이 좋다. 성관계도 귀찮아하지 말고 계속해야 한다. 자신의 욕망을 무시하고 나중으로 미뤄두지 말자. 스스로를 세상에서 가장 귀한 사람으로 대접해줘야 할 시간이다.
□춤추고 운동하라
나이가 들수록 뼈의 힘과 근력이 필요한데 젊어서 내 몸을 돌보지 않고 쓰기만 하다가 골탕에 골절이 되기 쉽다. 미국 터프스 대학의 한 심리학자가 연구를 위해 70대, 80대, 90대의 요양원 여성들에게 운동을 하게 했더니 4개월 만에 근육은 10% 늘어나고 힘은 2~3배로 늘었다고 한다.
운동으로는 걷기가 좋고, 근력을 키우려면 50g짜리 모래주머니 두 쌍을 사서 양 손목과 양 발목에 차고 걸으면 역기운동과 마찬가지 효과를 볼 수 있다. 지하철 계단을 헬스장이려니 생각하고 천천히 오르내리는 것도 좋다.
□몸에 좋은 자연식품을 골고루 꾸준히 먹어라
가격이 적당한 종합비타민제는 하루 한 알 정도 먹어라. 생명력이 농축된 콩과 청국장은 말할 것도 없고 마른새우, 뱅어포는 칼슘덩어리다. 바다의 우유인 생굴과 골뱅이에는 칼슘은 물론 뼛속에 스며서 진을 만들어주는 성분과 호르몬도 잔뜩 들어 있다. 생선을 싱겁게 조려서 식히면 우무처럼 엉기는데 바로 이것이 연골과 뼈에 흡수가 잘되는 칼시토닌이다.
구이 대신 뼈째 푹푹 조려서 국물까지 마시면 훌륭한 뼈 보약이 된다. 표고, 양송이, 두유, 들깨, 잣, 호두, 김, 연밥, 연근, 수박씨, 해바라기씨 등 둘러보면 약보다 좋은 음식이 널려 있다. 체질과 취미에 따라 연근차, 감국차, 연밥차, 산조인차, 대추차, 인삼차, 오갈피차, 결명자차 등을 바꿔가면서 즐겨보자.
미리 준비하는 완경
여성이라면 누구나 50대가 되면 완경을 맞이한다. 누구나 겪는 자연스런 현상이지만 어느 정도 준비가 선행되면 완경기를 더욱 슬기롭게 보낼 수 있다. 긍정적인 마음으로 새로운 인생을 받아들일지 여부는 자신에게 달렸다. 한의사 이유명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보자.
□건강도 저축이 필요하다
완경을 미리 준비하는 것은 자신의 건강을 다시 한번 챙기는 노력에서 시작된다. 여성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게 골다공증. 저금으로 노후자금을 쓰듯이 뼈도 저축이 필요하다. 젊고 건강할 때 저축해야 한다. 꾸준한 운동과 음식섭취를 통해 뼈의 밀도를 높이는 것이 좋다. 힘이 가해져야 뼈의 밀도가 좋아지므로, 칼슘 제제에만 의존하지 말고 운동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호르몬이 안 나온다고 해서 갑자기 노화할 정도로 사람의 몸이 허술하진 않다. 그리고 치아를 보면 뼈대가 튼튼한지 아닌지를 알 수 있다. 치아건강에도 신경 쓰자.
□타인이 해주길 바라지 마라
완경기가 되면 여기저기 아픈 곳이 많은데, 그 이유는 임신, 출산, 유산 때문에 몸이 약해진 것이 여러 증상으로 한꺼번에 오기 때문이다. 미리 자기 몸을 보살펴야 한다. 하지만 그것을 가족들이 도와주지 않는다고 불평하지 말고 자기 몸은 자기가 챙겨라. 가정 내에서 자기 건강이 선행되지 않고는 가족들도 챙길 수 없다. 여성들의 수동적인 태도가 문제다. 타인이 해주길 바라는 태도로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적극적으로 자기 몸을 챙겨야 한다.
□자식들을 노후보험으로 생각하지 말라
그동안 누군가를 돌봐주고 책임져줬으니 이젠 자신의 차례라는 생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러한 생각 때문에 자식들에게 쉽게 서운해지고 불평하게 된다. 그러면 자식들이 불편하지 않은가. 자식들을 자신의 노후보험으로 생각하지 말자.
□생각의 전환이 필요하다
완경을 받아들이는 데 있어서 '남은 여생'이라는 생각은 틀렸다. 본게임은 이제 시작이다. 아이들을 키우고, 시부모님을 챙기는 등 다른 일에서 벗어날 기간이 완경 후의 시간이다. 정말 자신을 위해서 원하던 일을 할 수 있는 시간이 온 것이다. 그동안 해보지 못했던 것들을 하면서 사는 날까지 즐겨야 한다.
남편이 함께 지켜야 할 5계명
1 사춘기를 인정하라 사춘기 자녀들이 폭발적으로 화를 내거나 턱없는 감정 변화를 보일 때 당신은 어떻게 하는가. 같이 화를 내지는 않을 것이다. 아내도 똑같은 신체적 변화를 겪고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자.
2 가끔 아내만의 시간을 줘라 저녁 시간이나 주말에 가끔 아내만의 시간을 주자. 이 나이에도 매일 퇴근하는 남편을 집에서 지켜야 하나? 친구 만나서 저녁 늦게까지 웃으며 엔도르핀이 나오게 놀고 나면 며칠이 행복하다. 주말여행도 마찬가지.
3 외식을 계획하라 회사 앞 밥집의 4,000원짜리 김치찌개라도 좋다. 남편이 하루를 보내는 '바깥 생활'을 아내와 공유한다는 게 더 중요하다.
4 병원에 함께 가준다 마누라 아프단 소리가 제일 듣기 싫다는 대한민국 남편들. 그러나 갱년기 클리닉에 한 번이라도 가봤는가? '질 높은 삶'을 만드는 데 동참하자.
5 잔소리 좀 하지 말자 셔츠가 닳았네, 집안이 어지럽네, 욕실 거울이 얼룩졌네, 그런 소리를 한번 멈춰보자. 부인 눈에도 다 보이는데 꼼짝하기 싫어서 그냥 뒀을 뿐, 기분이 솟으면 다 해결될 것이다.
글 윤민영 기자 일러스트 이영원 도움말 이유명호(한의사) 참고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자궁'(이유명호 지음·웅진닷컴 펴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