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서 안나가니 내보낼 방법이… 당청, 윤석열 소송戰 고민
알아서 안나가니 내보낼 방법이… 당청, 윤석열 소송戰 고민
[윤석열 징계 파문] 秋사의를 발판삼아 ‘나가라’ 압박했지만, 尹은 버티기
사퇴시키려면 文이 직접 나서야 하지만 정치적 부담 커
與일각 “공수처 출범하면 尹수사 본격적으로 해야”
입력 2020.12.18 03:00
문재인 대통령이 16일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한 ‘정직 2개월’ 징계를 재가하자 여권(與圈)에선 윤 총장을 향해 “거취를 결단하라”며 사퇴를 요구하고 나왔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문 대통령에게 사의를 표명한 것도 윤 총장 사퇴를 압박하려는 차원으로 분석된다. 윤 총장이 알아서 사퇴해주면 좋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윤 총장은 17일 서울행정법원에 “징계가 부당하다”며 집행정지 신청 등을 내며 물러날 생각이 없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인사권자인 문 대통령이 직접 윤 총장 거취 문제 수습에 나설 수 있지만, 이럴 경우 문 대통령의 법적·정치적 부담이 커진다. 문 대통령과 윤 총장의 대립 구도는 여권이 바라지 않는 상황이다. 윤 총장을 징계해놓고도 여권의 고민은 완전히 가시지 않은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8일 오후 청와대에서 열린 반부패정책협의회에서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다. /연힙뉴스
더불어민주당 지도부 인사들은 17일 윤 총장 사퇴를 직접 거론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친문(親文) 의원 등은 “이제 결단해야 한다”며 사실상 윤 총장 퇴진을 요구했다. 대통령이 징계 처분을 재가한 만큼, 불신임 의사를 나타낸 것이니 윤 총장이 알아서 물러나라는 것이다.
여권이 윤 총장 사퇴를 압박하는 것은 그가 직(職)을 유지하는 일 자체가 정권에 부담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청와대와 민주당 핵심부에선 일찌감치 ‘윤 총장 징계 후 추 장관 사퇴’를 통해 윤 총장 자진 사퇴를 압박하는 방안을 검토해왔다. 여권의 이런 구상은 지난 1일 서울행정법원이 추 장관의 윤 총장 직무 배제 조치에 대해 취소 결정을 내린 이후 본격화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권 관계자는 “추 장관과 윤 총장이 정면 대치하고 있어 두 사람을 모두 물리는 방안 외엔 마땅한 해결책이 없다는 판단이 많았다”고 했다. 민주당의 한 의원도 “추 장관이 윤 총장을 직무 배제할 때만 해도 ‘판사 사찰 문건’ 의혹으로 윤 총장을 감옥에 보낼 수 있다고 판단했는데 이후 전개 과정을 보면 문제가 더 꼬였다”고 했다. 정세균 국무총리가 지난달 말 문 대통령에게 추 장관과 윤 총장의 순차 사퇴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낸 것도 윤 총장 사퇴를 당장 관철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추 장관 거취부터 정리하자는 차원이었다. 하지만 여권의 이런 구상은 윤 총장이 징계 불복 소송에 나서면서 실현되기 어려워졌다.
더불어민주당 김태년 원내대표가 17일 국회에서 열린 당 회의 도중에 물을 마시고 있다. 김 원내대표는 이날 추미애 법무장관의 사의 표명에 대해 “결단에 경의를 표한다”며 “검찰도 새롭게 출발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뉴시스
여권 인사들은 윤 총장 사퇴를 이끌어낼 가장 확실한 방법은 문 대통령이 윤 총장에 대한 불신임 의사를 밝히거나 해임 조치를 하는 것이라 보고 있다. 윤 총장도 지난 10월 국회 국정감사에서 “지난 총선 직후 문 대통령이 메신저를 통해 임기를 지키라는 메시지를 보내왔다”고 맞섰다. 한 법조인은 “윤 총장의 이 말은 ‘대통령이 그만두라면 그렇게 하겠다’는 뜻”이라고 했다.
그러나 문 대통령은 전날 윤 총장 징계를 재가하면서도 그의 거취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청와대 관계자도 이날 윤 총장이 징계에 대한 행정소송을 낸 데 대해 “피고는 대통령이 아니라 법무장관”이라며 “청와대는 입장을 낼 필요가 없다고 본다”고 했다. 현 정부 청와대 정무수석을 지낸 강기정 전 의원도 이날 라디오에서 “(대통령의) 징계 재가가 자진 사퇴 요구는 아닐 것”이라고 했다. 문 대통령과 청와대의 이런 태도는 살아있는 권력 수사를 했다는 이유로 임기제 검찰총장을 찍어냈다는 정치적 부담을 피하려는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문 대통령이 윤 총장을 해임했다가 나중에 법원에서 윤 총장에 대한 징계가 위법·부당하다는 결정을 내릴 경우 퇴임 후 직권남용 등 형사적 논란에 휘말릴 수 있다는 점을 감안했을 것이란 관측도 있다.
이 때문에 문 대통령은 뒤로 빠진 가운데 여권 인사들이 윤 총장을 ‘검찰 개혁에 저항하는 검찰주의자’로 몰아가는 여론전에 나설 공산이 크다는 관측이 나온다. 한 여권 관계자는 “추 장관과 윤 총장의 대치가 정국을 집어삼키면서 현 정권이 추진한 ‘검찰 개혁’ 의제가 실종된 측면이 있다”며 “결국 ‘개혁 대(對) 반개혁’ 구도로 윤 총장을 압박하는 게 현실적 방법”이라고 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를 연초 출범시켜 윤 총장 징계 혐의 등에 대한 수사를 본격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윤 총장이 정권에 맞서 버티는 힘은 대선 지지도”라며 “윤 총장이 소송전에 나설 경우 대중의 피로감이 커지면서 지지도가 가라앉을 수도 있다”고 했다.
최경운 기자 조선일보 정치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