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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천석 칼럼] 文 대통령, ‘내려오는 정치’ 해야 한다

대한유성 2020. 12. 5. 16:13

[강천석 칼럼] 文 대통령, ‘내려오는 정치’ 해야 한다

대통령이 제 뜻 제 발로 청와대 걸어 나오는 데만 40년 걸려
退任 안전책은 ‘適法한 국정 운영’과 ‘관용의 前例’ 쌓는 것뿐

강천석 논설고문

입력 2020.12.05 03:20

 

 

 

 

 

 

 

문재인 대통령은 앞으로 1년 5개월 후 자리에서 무사히 내려올 수 있을까. 또 내려오고 나서도 안전하게 퇴임 대통령의 삶을 누릴 수 있을까. 야박하고 거친 질문 같지만 위법(違法)과 무법(無法)이 뒤엉켜 굴러가는 현재의 국정 마비(痲痹) 사태는 직간접적으로 이 두 질문과 연관돼 있다.

2017년 5월 10일 문재인 대통령이 국회에서 열린 대통령 취임식에서 취임 선서를 하고 있다./이덕훈 기자

퇴임 대통령의 신변 불안 문제는 미국을 제외한 모든 대통령중심제 권력 구조를 가진 국가가 앓고 있는 일종의 기저(基底) 질환이다. 한국은 그 병이 급성(急性)이고 악성(惡性)이다. 문 대통령은 더 심하게 앓는 듯하다. 퇴임 대통령의 안전 여부는 주로 두 가지 요인에 달려 있다. 하나는 재임 중의 ‘적법(適法)한 국정 운영’이고 다른 하나는 후임자가 쉽게 허물기 힘든 ‘관용(寬容)의 전례(前例)’를 쌓는 것이다.

적법한 국정 운영을 위해서는 우선 대통령이 자신의 말 하나 행동 하나가 불러올 파급 효과를 가늠할 줄 알아야 한다. 대통령의 말과 행동은 일파만파(一波萬波)를 불러온다. 대통령이 판단을 그르칠 경우 대통령의 잘못된 생각을 돌리게 하는 보좌진의 기능이 작동(作動)해야 한다. 대통령 취임을 왕위에 즉위(卽位)한 것으로 착각하는 보좌진에겐 이런 기능을 기대할 수 없다.

원전 조기 폐쇄를 위한 경제성 평가 조작·청와대의 울산 지방선거 집단 개입·검찰총장 찍어내리기·공수처 신설 상륙(上陸) 작전·만질 때마다 오르는 부동산 대책·도쿄올림픽까지 남북 관계에 활용해 보겠다는 허망한 집착에선 이런 제동(制動) 장치가 하나도 듣지 않았다.

3권분립은 대통령이 마음대로 권력을 휘두르는 것을 억제함으로써 결과적으론 대통령이 퇴임 후 파국적(破局的) 사태를 맞는 것을 예방해준다. 집권당이 대통령의 돌격대 노릇만 하면 대통령의 과속 운전 방지 턱을 없애버린다. 집권당이 승자독식(勝者獨食)으로 국회를 무력화하는 것은 달리는 차량의 바퀴를 빼버리는 꼴이다.

사법부는 물론이고 검찰·감사원·중앙선관위도 헌법 체계 안에서 심판 기능을 맡고 있다. 심판을 내 편 일색(一色)으로 욱여넣으면 유리할 듯싶지만 신호를 무시하고 달리는 차량은 충돌하거나 추락하거나 뒤집어져야만 멈출 수 있다. 헌법과 법률이 대통령에게 부여한 권한은 그 권한을 100% 사용하라는 말이 아니다. 절제를 알아야 대통령의 퇴임 후가 안전해진다. 현 정권은 이런 제도적 안전장치를 제 손으로 해체해버렸다.

 

 

관용은 상대에게 베푸는 것이어도 그 혜택은 본인에게 돌아간다. ‘자신에겐 가을 서릿발처럼, 상대를 대할 때는 봄바람처럼’이란 말은 도덕적 교훈이 아니라 대통령을 위한 실용(實用) 지침이다. 재임 중에 후임자가 허물지 못하게 ‘관용의 전례'를 튼튼하게 쌓는 것이 ‘퇴임 후의 갑옷'이 된다. 전임자의 불법에 눈을 감으라는 것이 아니다. 죄(罪)와 벌(罰) 사이의 균형을 깨뜨려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신폐(新弊)의 높이가 적폐의 높이보다 더 높아졌는데도 아직도 각 부처마다 적폐 청산의 깃발을 게양(揭揚)하고 있다. 이것은 상대에 대한 일망타진(一網打盡)이고 소탕이다.

2009년 1월 7일 미국대통령 집무실인 오벌 오피스에서 포즈를 취한 5 명의 미국 대통령 들. 왼쪽부터, 조지 H.W.부시 전 대통령, 버락 오바마 당시 대통령 당선인, 조지 W. 부시 대통령, 빌 클린턴 전 대통령, 지미 카터 전 대통령. /게티이미지 코리아

제대로 된 나라는 대통령이 전임 대통령들을 초대해 함께 식사하는 관례가 있다. 미국에선 트럼프 대통령만 예외(例外)였다. 한국에도 자기에게 사형을 선고한 전임자를 청와대에 초대하고 함께 정원을 산책하던 대통령이 있었다. 문 대통령은 전임자들을 청와대에 초대한 적이 없다. 정확히는 초대할 수 없었다. 그들의 현주소가 초대를 받아들일 수 없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1948년 정부 수립 이후 대통령이 자기 뜻으로 제 발로 청와대를 걸어 나오는 데만 40년이 걸렸다. 살아서 나온 대통령도 있지만 죽어서야 나온 대통령도 있었다. 그 후로도 무사한 퇴임 대통령이 한 명도 없었다. 대비책을 세우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다.

헌법에 자기 지위(국가원로자문회의 의장)를 새기기도 하고, 열광적(熱狂的) 지지층을 규합하기도 하고, 국회와 수사기관에 심복들을 대량으로 꽂기도 하고, 후계자를 대통령 자리에 앉히는 정권 재창출에 성공하기도 했지만 그 누구도 자신의 안전은 지키지 못했다. 후계자들은 전임자와의 차별화(差別化)에 더 몸 달아 했다.

한국 대통령에겐 ‘적법한 국정 운영’과 ‘관용의 전례’를 쌓는 방법 이외의 안전책이 없다. 대통령은 ‘내려오는 정치’를 해야 한다. 늦어도 너무 많이 늦었다. 집권당은 지금 국민 앞에서 벌이는 행태가 대통령을 나무 위로 올려 보내고 사다리를 걷어차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대통령은 올라가기보다 내려오기가 몇 십 배 어렵다.

 

강천석 논설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