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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왕의 남자" 다시보기

대한유성 2006. 3. 21. 06:16
 

“왕의 남자” 다시 보기


이 영화는 우리 영화사상 최대의 관객을 동원한 작품이다. 그만큼 이 영화는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과 재미를 선사한 작품이라는 말이 된다. 그렇다면 이 영화의 어떤 부분이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과 재미를 주고 있는 것일까?

 


이것을 짚어내는 것이 바로 이 영화의 예술성과 흥행성을 함께 설명할 수 있는 열쇠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런 생각을 바탕으로 “왕의 남자”가 지닌 특징을 몇 가지 살펴보는 것으로 영화평을 대신해보고자 한다.


필자가 보기에 “왕의 남자”는 다음과 같은 네 가지 장점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첫째, 구성의 탄탄함. 둘째, 자유와 속박의 대립구조. 셋째, 개성이 매우 강한 인물 캐릭터. 넷째, 해학과 풍자를 통한 대중성 등이다. 이제 아래에서 이것들을 중심으로 하나 하나 살펴보도록 하자. 


첫째, 구성의 탄탄함이다.

영화와 같은 예술 작품에 있어서 구성이라고 하는 것은 작가가 독자에게 말하고자 하는 바를 일정한 형상으로 보여주기 위하여 작품을 이루는 여러 요소들을 유기적으로 배열하거나 서술하는 것을 의미한다.


“왕의 남자”를 예로 들어 말하자면 이 영화를 이루는 여러 요소들, 즉, 주제의 일관성, 중심인물과 부수적 인물의 유기적 관계, 색채의 조화, 언어의 조화 등이 모두 치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면서 주어진 구실을 제대로 해내도록 짜여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구성적인 측면에서 볼 때 이 영화는 작품의 중심을 이루는 광대문화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는다. 영화의 시작부터 끝날 때까지 광대문화만을 중심으로 하고 있으며, 다른 것들은 그것을 잘 표현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구실만을 하도록 짜여 있다.

 

 

 

조선시대 궁중의 문화나 사대부의 문화, 심지어 서민문화까지도 광대문화를 빛나도록 하는 하나의 부수적인 도구일 뿐이지 그것이 주체가 될 수 없도록 되어 있다는 것이다. 만약 감독이 광대문화와 함께 궁중의 문화나 사대부문화까지도 포괄할 수 있도록 욕심을 냈다면 아마도 이 영화는 형편없는 작품이 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감독이 욕심을 내다가 실패한 작품의 예로 지금 상영되고 있는 “음란서생”을 들 수 있는데, 이 영화는 17세기 이후에 나타난 소설의 발달과 성개방적인 사회 분위기를 작품의 중심 주제로 하면서도 남녀 사이의 진정한 사랑이라는 또 하나의 중심 주제를 첨가함으로써 이도 저도 아닌 작품으로 만들어 버린 결과를 낳은 것이다.


그러나 “왕의 남자”에서는 두 마리 토끼를 쫓는 어리석음을 경계하면서 작품을 진행시켜 나갔기 때문에 거기에서 오는 구성의 탄탄함을 통해 바로 관객을 몰입하게 하며, 짜릿한 쾌감을 느끼도록 하는 구심점으로 작용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광대문화를 중심으로 하는 “왕의 남자”가 갖는 구성의 치밀함은 이 영화의 흥행이 성공할 수 있도록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으로 보인다.


둘째, 자유와 속박의 대립구도이다.

광대(廣大)는 넓고 큰 존재라는 의미를 지니는 명칭이다. 넓고 넓은 세상을 집으로 삼고 우주의 기운에 순응하면서 삶을 살아가는 존재가 바로 광대인 것이다. 그러므로 이들은 우주의 섭리 안에서 가장 자유로운 존재이다.

 

 

놀 때는 놀고, 잘 때는 잠을 자며, 먹을 때는 먹기만 하면 되는 존재가 바로 광대인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재물, 권력, 권모술수, 이념 따위는 아예 생각지도 않는다. 우주가 시키는 대로 살고 우주가 시키는 대로 죽으면 그만인 존재가 바로 광대인 것이다.


광대가 가장 낮은 계급의 천민이라면 가장 높은 지위에 있는 왕은 어떠한가? 왕(王)은 권력을 지니고 있는 존재이지만 세상의 모든 짐을 한 몸에 지고 있는 사람이기도 하다. 이것은 王이란 글자를 보아서도 알 수 있는데, 커다란 나무를 세 개나 지고 다니는 사람이 바로 왕이라는 것이 이 글자가 지닌 의미이기 때문이다.

 

 

위로는 하늘에 눌려 있고, 아래로는 땅에 의해 받쳐져 있으며, 중간에는 사대부들에 의해 구속을 받는 존재가 바로 왕이니 권력을 가지는 대가로 그들이 평생 지니고 살아야 하는 구속과 고통을 이루 말할 수 없이 클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겉으로 보아서는 사람을 죽이고 살리는 생사여탈권을 가지고 있으면서 절대 권력을 마음대로 휘두르는 것처럼 보이지만 정해진 법도와 일정한 규범에 맞추어서 자신의 삶을 살아야 하기 때문에 진정한 의미의 자유인이라고 하기 어려운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권력을 담보로 자유를 저당 잡힌 왕과 자유를 담보로 권력을 탐내지 않는 광대야말로 서로 반대되는 방향의 두 꼭짓점을 형성하고 있는 존재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닐 것이다.

 

 

그런데, “왕의 남자”에서는 반대되는 두 꼭짓점에 있던 광대와 왕이 서로 만나게 되면서 작품이 형성된다. 구속된 삶을 살면서도 늘 자유를 꿈꾸는 왕과 자유로운 삶을 살면서도 부조리한 세상을 향해 큰 소리를 내고 싶은 광대가 궁중이라는 묘한 장소에서 만나는 것이다.


그렇다면 서로 반대되는 삶을 살면서 두 극점을 형성했던 존재들이 만난다면 어떻게 될 까? 그것은 보나마나 불꽃 튀기는 대립과 대결이 일어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따라서 “왕의 남자”에서 연산과 장생은 늘 대립적인 관계에 있게 되는 것이다.


자유와 속박의 대립구도는 피지배계층과 지배계층의 대립구도로도 이해되는데, 이는 조선시대만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도 늘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에게 더욱 큰 반향을 일으키게 된다.

 

 

특히 “왕의 남자”에서는 왕과 광대라는 양 극점의 존재를 대상으로 한 대립구도를 형성했기 때문에 나머지 모든 존재들의 대립구도를 그 속에 포함하는 보편성을 지닌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더욱 크다고 할 수 있다.


왕과 광대의 이러한 대립구도는 녹수와 공길이라는 성적 대립구도를 보조수단으로 하면서 만남과 화해의 방법을 강구하게 되고, 그것을 통하여 우리들에게 소통의 장을 열어주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이제 아래에서 이 네 사람의 성격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자.


셋째, 개성이 매우 강한 인물 캐릭터

“왕의 남자”에 등장하는 중심인물은 ‘장생’, ‘왕’, ‘녹수’, ‘공길’이다. 이 네 사람이 바로 이 영화를 이끌어 나가는 중심 캐릭터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네 사람이 갖는 성격은 과연 어떤 것일까?


1. 장생 : 타락하고 부조리한 세상을 향해 언제나 깨어있는 눈을 가진 진정한 자유인이다. 맹인 역할을 하면서 줄을 타는 광대의 삶을 살지만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 자신이 해야 하겠다고 생각하는 것을 위해서는 어떤 것과도 타협하지 않는다.

 

 

이런 점에서 장생은 무관의 제왕이다. 피부로 느낄 수 있는 권력은 없지만 온 세상을 해학과 풍자로 조롱하면서 마음먹은 대로 내뱉을 수 있는 존재가 바로 장생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장생은 다음 세상에서도 다시 광대로 태어날 것이라고 서슴없이 말한다.


세상의 어떤 것에도 욕심이 없으며, 어떤 금은보화나 권력이라도 헌신짝처럼 내동댕이치는 장생이지만 절대로 버릴 수 없는 하나가 있으니 그것은 바로 자신의 광대 파트너인 공길이다.


그는 공길을 위해 살인도 하고, 도망도 치며 왕과도 맞선다. 공길을 위해서라면 이 세상에서 무서울 것이 전혀 없는 인물이 바로 장생이다. 그러므로 공길에 대한 애정은 동료 사이에서 생기는 우정 같은 것을 이미 넘어서고 있다.


장생에게 있어서 공길은 자신의 모든 것이기 때문에 생명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존재이다. 우정, 애정, 연민 등 어떤 미사여구라도 공길에 대한 마음을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이다. 공길은 장생에게 있어서 삶 자체이다.


장생이 공길에게 이처럼 애정을 쏟는 이유는 세상에서 혼자라고 생각하는 절대고독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세상 속에 혼자 버려졌던 장생이 절대고독을 잊고 광대로서의 삶을 신명나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해준 존재가 바로 공길이었기 때문이다.


장생이 갖는 이런 절대고독은 반대변의 꼭짓점에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연산도 마찬가지다. 사대부과 공중의 여러 법도에 둘러싸여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연산이야말로 장생이 느끼는 것과 똑 같은 절대고독을 맛보면서 사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2. 연산 : 꽉 짜여진 규정과 법도 안에서 숨막혀하면서 마음속에 절대고독을 품고 사는 존재가 바로 연산이다. 절대지존의 자리에 있는 연산은 표면적으로는 권력과 부귀를 누리고 있는 존재이지만 그것들이 바로 자신의 삶을 가장 비참하게 만드는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자신이 갖고 있는 것으로 치부되는 권력도 알고 보면 나라를 잡고 흔드는 사대부들에 의해서 주어진 것이기 때문에 연산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연산은 어느 누구에게도 정을 주지 못하는 불구자의 삶을 살게 된다. 더구나 엎친데 덮친 격으로 자신의 생모가 독살당한 사실을 알게 되면서 그에 대한 복수심만으로 살아가는 서글픈 존재가 된다.


허울뿐인 절대권력과 망망대해에 혼자 버려진 것과 같은 절대고독이 연산을 휘감고 있는데, 어느 누구도 그의 이런 슬픔을 알아주지 않는다. 언제나 근엄해야하고, 언제나 법도를 지켜야 하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는 존재가 바로 연산인 것이다.


그런 그에게 자유를 찾을 수 있는 구실을 만들어준 사람이 바로 천하디 천한 광대 신분의 장생과 공길이었으니 이들과의 만남은 연산의 삶을 송두리째 바꾸어놓는 결과를 가져오기에 충분했다.


가식과 권력욕으로 가득 찬 녹수의 사랑 보다 연산이 원했던 사랑은 말없이 자신을 받아주는 공길의 사랑이었으니 이것을 통해서야 비로소 연산은 참된 자유를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3. 공길 : 공길이란 광대의 캐릭터는 매우 특이하다. 그는 장생과 연산의 틈바구니에서 말없이 양 쪽을 보듬어야 하는 존재이면서 한편으로는 녹수와 성적 대결을 벌여야 하는 매우 피곤한 삶을 사는 성격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그는 광대라는 천직을 한 번도 잊어본 적이 없다. 다만 그에게는 만물을 담아서 키워내는 힘을 지닌 대지와 같은 부드러움과 모성애를 지니고 있을 뿐이다. 그는 자신의 근본이 되는 광대로서의 삶을 가능하게 해주는 장생을 떠날 수도 없으며, 절대고독과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으로 삐뚤어진 성격을 지닌 연산에 대한 연민 때문에 그를 떠날 수도 없는 존재가 바로 공길인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볼 때 공길은 장생과 연산이라는 반대되는 꼭짓점을 이어주는 구실을 하는 매개체가 된다.


장생의 고독과 슬픔을 보듬어주기 위해서는 그와 함께 줄타기를 해야 하고, 연산의 절대고독과 원한을 보듬고 해결하기 위해서는 그의 곁에 있으면서 꼭두각시놀음이나 경극 같은 것을 해야 하는 것이다.


공길의 이러한 삶은 어떤 상황에 처하더라도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 났는데, 이것은 그가 지닌 양성적 성향 때문인 것으로 이해된다. 몸만 남자이고 성격을 비롯한 나머지는 모두 여성적인 성향을 지니고 있는 관계로 연산과 장생이라는 양 극단의 세계에 의해서 휘둘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공길은 녹수라는 존재에 의해 꾸며지는 음모와 질투를 받아야 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기생으로 왕의 여자가 되었던 녹수는 연산을 치마폭에 싸안고 세상을 마음대로 하고 싶었는데, 공길로 인하여 실패하게 되자 그를 시기하고 질투하게 되기 때문이다.


양 꼭짓점의 두 사람을 보듬고 소통시켜야 하는데다가, 궁중의 거대 세력인 녹수와 사대부의 공격을 함께 받아야 하는 공길이라는 캐릭터야말로 관객으로 하여금 아주 복잡한 연민의 정을 자아내기에 충분한 존재가 아닐 수 없었던 것이다.


더구나 어머니에게 대한 그리움과 원한으로 일그러져버린 자신의 생을 이용하려고만 하는 녹수라는 이성애의 사랑보다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으면서 자신의 슬픔을 보듬어주는 공길에게 느끼는 연산의 동성애적인 사랑이 오히려 관객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키게 된 것으로 생각된다.


따라서 공길이 지닌 이러한 성격이 바로 “왕의 남자”를 최고의 영화로 올려놓도록 한 원동력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공길이라는 캐릭터가 빠진 “왕의 남자”는 생각할 수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4. 녹수 : 미색으로 연산을 호리기는 했지만 그의 진정한 동반자가 될 수 없었던 녹수는 공길이라는 캐릭터가 지닌 특성을 잘 드러내주는 구실을 하는 매우 중요한 존재이다. 공길에 대한 녹수의 시기와 질투로 인한 음모가 없었다면 공길이 지닌 캐릭터로서의 특수성이 상당히 반감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미색과 치마폭으로 세상을 휘어잡으려고 했던 녹수는 결국 실패하였다고 역사는 기록하고 있지만 이 영화에서만은 연산을 진정한 자유인으로 만드는데, 결정적인 구실을 한 존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녹수와 연산과 공길의 삼각관계와 장생과 연산과 공길의 삼각관계라는 이중의 삼각관계가 이 영화를 이끌어가는 중심축이라고 할 수 있는데, 두 관계에서 중요한 구실을 하는 캐릭터가 바로 공길이다.


그리고 공길이란 캐릭터를 완성시켜주는 존재가 바로 녹수이기 때문에 역사 기록에서는 실패한 인물로 그려졌을지라도 이 영화에서만큼은 작품의 예술성을 완성시키는데 있어서 없어서는 안 될 매우 중요한 캐릭터라고 할 수 있다.


 넷째, 가면과 해학과 풍자를 통해 형성되는 대중성이다.

가면은 이상한 모양을 한 탈바가지를 쓰고 하는 놀이를 말하는데, 이것은 익명성이 철저하게 보장되기 때문에 자신이 목표로 하는 것에 대한 비판과 풍자를 마음대로 할 수 있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가면극은 등장인물들이 욕설과 비속어를 사용하여 해학적인 표현을 자유자재로 구사함으로서 보고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엄청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함과 동시에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골계미를 지닌 것이 특징이다.


따라서 철저한 신분사회였던 전통시대에는 가면극을 통한 백성들의 스트레스해소가 매우 중요한 구실을 했었다. 그런데, 여기서 더욱 흥미 있는 것은 가면극이나 재주넘기 등의 놀이는 주로 천민신분의 광대들이 맡아서 했다는 점이다.

 

 

광대는 신분상 사람 취급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오히려 역설적으로 어느 것에나 자유로울 수 있었는데, 이들의 그런 점을 이용한 것이 바로 사당패를 비롯한 광대놀음이었던 것이다. 욕설을 곁들인 걸쭉한 입담에 담겨서 나오는 해학과 풍자야말로 세상살이의 고단함을 싹 날려버리고도 남을 만큼 통쾌·유쾌·상쾌를 동반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하물며 “왕의 남자”에서는 궁중에서 사대부들을 풍자하고, 그곳에서 일어나는 암투와 살인 등을 다루었으니 그 짜릿함이란 여느 광대의 그것과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효과가 컸을 것으로 생각된다.


더구나 연산이 광대놀이에서 나타나는 풍자를 이용해서 어머니를 독살한 장본인들에 대한 원수를 갚고, 정적을 제거하는 수단으로 이용하는 색다른 갈등구조를 곁들였으니 이것이야말로 관객들에게 더할 수 없는 재미를 안겨주었던 것이다.


해학을 동반하는 이러한 광대놀음은 궁중의 까다로운 법도에 신물이 나있던 연산에게 잠시라도 자유를 만끽할 수 있는 탈출구 구실도 하기 때문에 이승에서의 마지막을 웃음으로 맞이할 수 있도록 해주기도 했던 것이다.


자유과 속박의 대립구도를 중심으로 하는 구성의 탄탄함, 특이한 캐릭터를 지닌 등장인물들이 만들어내는 이중의 삼각관계, 해학과 풍자를 동반하는 대중적 성격이 삼위일체를 이루었기 때문에 이 영화는 작품성에 있어서도 괜찮은 평가를 받으면서 흥행적인 측면에서도 기록을 세우는 성공을 한 것으로 생각된다.

사진출처 : http://movie.daum.net/movieInfo?mkey=41059&mode=2

출처 : 우리문화사랑방
글쓴이 : 죽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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