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신앙2/새 카테고리

[스크랩] 일본문화의 상식<3> 관광

대한유성 2013. 1. 20. 04:58

 

3.관광

나라(奈良, 平城京 : 헤이죠꾜) 관광

우리나라의 삼국시대의 영향을 받아 100여개국의 구니(國)에서 6세기 일본최초의 국가가 세워진 아스카(飛鳥)에서 옮겨 온 곳이다. 그래서 그런지 순수 우리말 “나라”로 남아 있다.

710~784년 까지 일본의 수도이다. 이는 새로운 통치자가 나올 때마다 수도를 옮기는 독특한 관례 때문이다.

나라부근의 관광지는 法隆寺(호류우지), 東大寺(토다이지), 興福寺(코후꾸지), 春日大社(카스카다이지), 사슴공원, 正倉院(쇼소인) 등이 있다.

9시경에 오사카역/남바역/텐노지역에서 JR의 쾌속선을 타고 호류우지로 가서 관광한 후 점심을 먹고 다시 호류우지역에서 JR로 15분정도가서 나라역에서 내려 버스(Y170)를 타고 사슴공원 앞에서 내려 사슴구경을 하면서 토다이지의 남따이몬(南大門)를 거쳐 다이부쯔덴(大佛殿)을 보고 시간이 있으면 카스카따이샤 혹은 코후꾸지를 보면 하루가 지난다.

東大寺(토다이지)

세계최대의 목조건물 다이부쯔덴(大佛殿)과 세계최대의 청동불상 다이부쯔(大佛)로 유명하다. 728년 쇼무천황이 세워 이후 강당, 종루, 탑 등으로 크게 번창하였으나 1180년, 1567년 발생한 두 차례 전란으로 사찰전체가 소실되기도 하였으나 1692년에 지금의 축소된 형태로 정비되었다.

난따이몬(南大門)

절의 정문으로 1180년 소실되었다가 13세기 초에 복구시킨 것이다. 原平내란시에 平氏에 불에 탓으나 송의 최신기술에 의해 재건되었다. 중국 송나라의 천축(天竺)양식을 도입했으며 문안 양쪽의 안쪽에 목조금강역사상(仁王像)이 있다. 이 작품은 1203년 20명의 佛師가 꼬박 69일 걸려서 만든 것으로 높이가 8m를 넘는다.

다이부쯔덴(大佛殿)

747년부터 시작해 연인원 260만명이라는 어마어마한 인력이 투입된 다이부쯔덴의 공사가 끝난 것은 751년이었으나 안타깝게도 1180년 타이라(平)가문이 일으킨 전쟁으로 완전히 소실되었다. 그 이후 재건되었다가 1567년 또다시 전란에 소실되었다가 1709년에 원래 크기의 반쯤인 지금의 모습이 재건되었는데 현재의 건물 크기는 너비 57m, 높이48m이다.

내부에 모셔진 대불의 크기는 높이 15m, 얼굴크기 5m, 무게 380톤을 자랑한다. 손바닥에는 16명의 사람이 올라 설 수 있다. 제작에는 銅 500톤, 여덟 번의 주조와 26년에 걸쳐 제작했다. 불상전체에 440kg의 금을 입혀 놓았다.

따이부쯔텐의 재미있는 것은 오른편 뒥쪽에 있는 거대한 기둥 밑에 한사람이 기어 들어갈 조그만 구멍이 뚫려 있는데 그 구멍을 빠져나오면 1년치의 불운을 막아주는 데 효과(?)가 있다고 하여 어린이 들이 통과하기도 한다.

카스카따이샤(春日大社)

미까샤야마(御蓋山) 기슭의 울창한 숲 속에 위치한 이곳은 710년 후지와라(藤 原)가문이 자기들의 씨신(氏神)을 모시기 위해 세운 신사이다.

이 후 헤이안(교토)시대(794~1192)의 권력자인 후지와라씨의 영향으로 姬君과 貴公子들의 보물이 많다.

원래 에도(東京)동쪽의 카시마(鹿島) 신궁에서 신을 모시고 올 때 신이 흰 사슴을 타고 왔다고 해서 사슴을 신성히 여기는 풍습이 시작된 것이기도 하다.

이곳은 후지와라 가문과 연계된 왕실전용 신사로 성장했고 중세에는 코후꾸지(興福寺)와 함께 하늘 높은 줄 모르는 세력을 과시하기도 했다. 본전은 대표적인 신사건축양식의 하나로 손꼽히며 1300년 역사 속에서도 고고한 왕실 분위기를 유지하고 있다. 신사를 올라가는 양쪽에 2000개가 넘는 石燈이 유명하다.

코후꾸지(興復寺)

669년에 山階寺가 시초인 이절은 飛鳥(아스카)로 이전 되었다가 710년 헤이죠꼬(平城京, 나라)천도와 더불어 이 자리로 옮겨와 코후꾸지로 되었다.

창건당시에는 후지와라 가문의 절로 왕실과 연합해 막강한 寺勢를 과시했지만 13차례에 걸친 화재로 소실과 재건이 번복되었다.

현재는 높이 18m의 삼층탑(12세기), 호꾸엔도(北圓堂 : 1208년 재건축, 팔각형, 미륵여래 등의 불상이 모셔져 있음. 봄, 가을에만 개방한다.), 난앤도(南圓堂, 1741년 재건), 동쪽에는 오층탑(1426년 재건, 높이 50.8m), 토콘도(東金堂 : 약사여래상을 모심), 고꾸후깐(國寶館 :

아수라상 등의 국보급 보물과 각종 불상 등의 중요한 문화재가 있다) 등이 있다.

法隆寺

法隆寺(호류지)는 飛鳥(아스카)문화의 대표적인 것으로 현재에 전하는 세계 最古의 목조건축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 창건 유래는 金堂(콘도우)의 동쪽 방에 안치되어 있는 약사여래상의 光背銘(광배에 새겨진 글)과 法隆寺伽藍緣起井流記資財帳(747)의 유래문에 의해서 알 수 있다.

그것에 의하면 用明(요메이)천황이 자신의 병의 쾌유를 기원하는 것으로 절과 불상을 조성하였지만 그 실현을 보지 못하고 사망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推古(쓰이코)천황과 聖德(쇼토쿠)태자가 요메이천황의 遺願을 이어받아 607년에 절과 本尊(藥師如來)를 조성한 것이 이 法隆寺(斑鳩寺, 이카루카노데라 라고도 불리우고 있다)라고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670년에 발생한 대화재로 대부분의 건물이 불타버려 708~747년에는 대대적인 복구공사가 이루어졌고 925년과 1435년에 발생한 화재 당시에는 강당과 남대문 등이 소실되는 비운을 맛보았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은 15세기 이후 일본전역을 휩쓴 각종 전란의 피해를 거의 입지 않아 대부분의 건물이 8세기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할 수 있었다.

호류지는 금당벽화와 각종 건축물로 유명한 塔, 金堂을 중심으로 하는 西院伽藍(사이인가람)과 갖가지 보물을 전시하는 大宝藏院(타이호우소우인), 쇼토쿠 태자의 넋을 기리는 夢殿(유메도노)을 중심으로 하는 東院伽藍(토우인가람)으로 나누어져 있다. 넓이 약 18만7천 평방미터의 경내에는 아스카시대를 시작으로 각 시대의 진수를 모은 건축물이 처마를 잇대어 있고 많은 보물류가 전래되고 있다. 국보, 문화재로 지정된 것도 약 190건, 개수로는 2300여점에 이르고 있다.

이러한 법륭사는 聖德태자가 건립한 사원으로 1400년에 걸쳐 빛나는 전통을 오늘에 과시하고 특히 1993년 12월에는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의 리스트에 일본 최초로 등록되는 등 세계적인 불교문화의 寶庫로서 사람들의 주목을 모으고 있다.

西院伽藍(사이인가람)

백제의 사찰 건축양식을 그대로 답습한 사인가람의 형태와 담징이 그린 <사불정토도>가 한 반도에서 유입된 문화의 흔적을 잘 보여 준다. 내부는 중문, 오층탑, 금당, 대강당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1. 南大門(난다이몽, 무로마치시대) : 法隆寺의 현관인 이 문은 1438년에 재건된 것이다.

2. 中門 및 廻廊(아스카시대)

사이인 가람의 정문. 화재로 불탄 것을 670년에 재건했다. 좌우에 세워진 금강역사상은 711년에 만든 것이다. 중문을 중심으로 가람을 정방향으로 감싸 안은 회랑의 기둥을 살펴 보면 가운데가 불룩한데 이것이 배흘림(엔타시스) 양식의 기둥이다.

깊게 덮여진 처마, 그 아래의 네모꼴로 짠 창살, 굽은 난간, 그것을 지지하는 기둥, 어느 것도 아스카건축의 진수를 모은 것이다. 중후한 문과 좌우에 서있는 塑像(점토나 석고로 만든 상)의 金剛力士상(나라시대)은 동서로 연장된 회랑의 살창과 대조적으로 조합을 이 뤄 나란히 건축한 탑과 금당을 장려하게 품고 있다.

3. 金堂(아스카시대)

法隆寺의 本尊佛을 안치한 성스러운 전당이 金堂이다. 위풍당당한 이 건물의 안에는 聖德 太子의 명복을 비는 金銅釋迦三尊像(아스카시대), 태자의 아버지 요메이천황을 위해 조성 한 金銅藥師如來座像(아스카시대), 어머니인 아나호베노하시히도를 위해 만든 金銅阿彌陀 如來坐像(가마쿠라시대), 그리고 3개의 불상을 위해 녹나무(樟木)로 만든 일본 最古의 四天 王像(하쿠보시대)이 악귀의 뒤에 조용히 서 있다.

그 외 木造의 吉祥天立像(끼죠덴류소), 毘沙門天立像(비쟈몬텐, 헤이안시대)가 안치되어 있 다. 또 천정에는 天人과 봉황이이 나르는 서역색이 농후한 天蓋가 걸려져 있고 주위의 벽 면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벽화(주 : 우리나라 책에는 고구려 담징의 벽화라고 알려져 있 으나 여기에는 그런 설명이 없음. 인도의 아잔타 벽화의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는 昭和 24년(1949년) 건물의 해체수리 도중 발생한 화재로 소손되어 현재는 판넬에 그려진 재현 벽화가 끼워져 있다)가 그려져 창건당시의 아름다움을 과시하고 있다. 이 조차도 벽화를 보존한다는 이유에서 내부 조명을 거의 하지 않아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4. 五重塔(오층탑, 아스카시대)

탑은 釋尊의 유골을 봉안하기 위한 것으로 불교사원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건물이다. 높이 는 31.5미터(기단 위에서)로 일본 最古의 오층탑으로 알려져 있다. 최상층의 면적은 일층 면적의 절반이다. 1989년에 이 탑에서 담징의 <관음보살상>이 발견됐다. 최하층의 내에는 탑의 기둥을 중심으로 나라시대 초기에 만들어진 불상(塑像群 :점토나 석고로 만든 상)을 모셔 놓은 수미단(須彌壇) 있고 동쪽면에는 維摩居士(유이마코지)와 文殊菩薩이 問答, 북쪽 면에는 釋尊이 入滅, 서쪽면에는 釋尊遺骨(사리)의 分割, 남쪽면에는 彌勒菩薩의 說法 등의 장면이 표현되어져 있다.

5. 大講堂(헤이안시대)

이 강당은 불교의 학문을 硏鑽하거나 法要를 행하는 시설로 건립되었으며 정확한 건축연대 는 알 수 없으나 사인인 가람 창건당시에는 없던 건물이다. 鐘樓와 함께 925년에 落雷에 해 소실되었다. 다행히 990년에 재건되어 本尊의 藥師三尊像 및 사천왕상도 그때 만들어 것이다.

6. 經藏(교우소우, 나라시대)

이 건물은 경전을 보관하는 시설로 건립되었지만 현재는 천문과 지리학을 일본에 전하였다 고 하는 백제의 학승 觀勒僧正(칸로꾸소우조우)라고 전해지는 座像(헤이안시대)을 안치하고 있다.

7. 鐘樓(헤이안시대)

이 종루의 안에 걸려 있는 하꾸보시대의 梵鐘은 지금까지도 당시의 음색을 소리내고 있다.

8. 上御堂(카미노미도우, 가마쿠라시대)

이 당은 나라시대 텐무천황의 자식인 舍人親王(토네리신노우)의 발원에 의해 건립되었다고 전하여지고 있지만 현재의 건물은 가마쿠라시대에 재건된 것이다. 그 당내에는 헤이안시대 의 釋迦三尊像과 무로마찌시대의 사천왕상이 안치되어 있다.

9. 西圓堂(사이엔도우, 가마쿠라시대)

관람코스에서 벗어나 西院(사이인)伽藍 북서쪽의 약간 높은 언덕에 팔각조성의 圓堂이 있 다. 그 창건은 나라시대에 타찌바나부인의 발원에 의해서 교오우끼보살이 건립했다고 전해 지고 있지만 현재의 건물은 가마쿠라시대에 재건된 것이다. 이 당의 중앙에는 일본 최대급 의 乾漆像(칸시쯔조우)로 알려진 本尊藥師如來座像(나라시대)이 안치되어 있다.

10. 聖靈院(소료인, 가마쿠라시대)

동서의 회랑 외측에는 각각 동실, 서실이라고 하는 남북으로 좁고 긴 건물이 있다. 이것들 은 승려의 주거였으므로 승방이라고 불리우고 있다. 특히 가마쿠라시대에 聖德太子 신앙의 고양에 따라서 聖德太子의 尊像(헤이안 말기)을 안치하고 있기 때문에 동실의 남단부를 개 조한 것이 이 聖靈院이다.

11. 大宝藏院(타이호우소우인)

타이호우소우인은 호류지의 각종 보물을 전시하는 곳이다. 금당벽화의 일부가 전시돼 잇 다. 또한 일본사의 중요 인물인 쇼또꾸 태자와 관련된 유물, 다수의 불상, 부가꾸의 의상, 가면, 악기, 13~14세기의 탱화 등도 전시한다.

성령원에서 동쪽으로 가면 보물고인 綱封藏(코우후우조우, 헤이안시대)가 있다. 그 앞에서 북쪽으로 가면 식당(나라시대)과 細殿(호소도노, 가마쿠라시대) 등의 건물의 안쪽에 새로운 가람이 보인다. 이곳이 평성10년에 낙성한 百濟觀音堂(구다라칸논도)을 중심으로 하는 大 宝藏院이다.

건물의 내부에는 유명한 夢違觀音像(유메찌가이칸논소, 하쿠보시대), 쓰이코천황 所持의 불 상으로 전해지는 玉虫廚子(타마무시노즈시, 아스카시대), 蓮池의 위에 앉은 金銅阿彌陀三尊 像을 본존으로 하는 타찌바나부닌노즈시, 하쿠보시대)를 시작으로 百方塔, 중국에서 전해진 白檀으로 만들어진 九面觀音像, 天人을 묘사한 金堂小壁畵 등 일본을 대표하는 보물류를 다수 안치하고 있다. 아스카시대에서 근세에 이르는 이들 보물은 1400년에 걸쳐 法隆寺의 신앙의 유산이고 法隆寺가 걸어온 길을 엿볼 수 있는 귀중한 보물이다.

12. 百濟觀音堂(쿠나라칸논도)

백제관음상의 높이는 2.11m로 이 불상은 잔잔한 미소와 미려한 곡선이 조각예술의 극치를 보여준다. 일본사람들은 이를 가리켜 일본 불교미술의 대표작이라 자랑하지만 아마 백제에 서 건너간 작품인 것 같다.

法隆寺에 전하는 百濟觀音像(아스카시대)은 일본 불교미술을 대표하는 불상으로 세계적으 로 유명하다. 또한 일본 불상에는 진귀한 팔등신의 늘씬한 자태와 우아하고 자비심 깊은 그의 표정은 많은 사람들을 매료시키고 있다. 法隆寺에서는 이 백제관음당의 안주의 전당 을 만드는 것이 오래 동안의 소원이었다. 그 꿈이 드디어 1998년에 실현되었다. 그것이 백 제관음당이다.

13. 東大門(나라시대)

大宝藏院을 나와서 夢殿(유메도노)로 향하는 도중에 세워져 있는 이 문은 진귀한 三棟구 조로 하는 나라시대를 대표하는 건물의 하나다.

14. 夢殿(유메도노, 나라시대), 토우인가람(東院伽藍)의 중심

원래 이 자리에는 서기 601년에 조성된 斑鳩宮(이카루카노미야)이 있었으나 649년에 소실 되어 버렸고 그 자리에 行信僧都(교우신소우스)라고 하는 고승이 聖德太子의 遺德을 기려 서 739년에 건축한 伽藍을 上宮王院(죠오구우오우인)이라고 한다. 그 중심이 되는 곳에 활 짝 벌어진 연잎을 본뜬 팔각형의 건물이 이 夢殿(유메도노)이다. 이는 八角圓堂의 중앙 의 廚子(즈시 : 불상, 사리, 경전 등을 안치하는 궤모양의 불구, 감실)에는 聖德太子등신의 秘佛救世觀音像(아스카시대, 본존으로 救世觀音을 모시고 있으나 秘佛이라고 일반 공개는 하지 않는다)을 안치하고 그 주위에는 聖觀音菩薩像(쇼우칸논호사쯔쇼, 헤이안시대), 聖德 太子의 孝養像(코우요우쇼, 가마쿠라시대), 乾漆의 行信僧像(교우신소우쇼, 나라시대), 헤이 안시대에 夢殿의 수리를 한 道詮律師(도우센릿시)의 塑像(헤이안시대) 등도 안치하고 있다. 이 夢殿은 중문을 개조한 礼堂(라이도우, 가마쿠라시대)와 회랑에 둘러 쌓여 참으로 관음 의 화신이라고 전해지는 聖德太子를 공양하기 위한 전당으로 어울리는 신비적인 분위기를 띄고 있다.

몽전에 모셔진 불상은 구세관음상으로 일년에 봄/가을에 개방되는데 불상의 키는 178cm이고 얼굴에 수염이 있고 코가 큰 일반사람의 모양을 하고 왕관모양의 관을 쓰고 있는 얼굴이 특이한데 삼국사기에는 백제 위덕왕이 아버지를 생각하여 아버지 얼굴을 재현하여 만든 것이 구세관음상이라 한다.

*** 聖德(쇼토쿠)太子(574~622)

요메이천황의 아들로 요메이->스슌->스이코(推古)천황(최초의 여성 천황)에서 스이코천황의 섭정을 함. 법륭사의 유메노도노의 연표로는 595년 고구려 승 慧慈 法師를 스승으로 모심.(한국의 국사에는 백제의 王人박사가 스승이라 함). 遣隋使파견으로 수나라의 문화를 받아들이고 천황중심의 국가건설의 정책과 관료복무지침 17조등을 만듬. 48세의 나이로 사망. 뒤에 그가 보낸 견수사의 유학생들이 율령국가의 건설을 함.

15. 舍利殿, 繪殿(가마쿠라시대)

사리전은 聖德太子가 두 살때의 봄에 합장한 손바닥에서 출현하였다고 하는 사리를 안치한 건물이고 繪殿에는 聖德太子 일대의 사적을 표시한 액자그림이 보관되어 있다.

16. 伝法堂(텐보우도우, 나라시대)

이 당은 쇼무천황의 부인이었던 다찌바나노고나카찌의 주택을 불당으로 개조한 것이다. 당내에는 三組의 乾漆阿彌陀三尊像(나라시대)를 시작으로 다수의 불상이 안치되어 있다.

17. 東院鐘樓(토우인쇼우로우, 가마쿠라시대)

이 종루는 과하마카코시라고 불리우는 형식의 건물로 내부에는 中宮寺(츄우구지)라고 불리 우는 음각된 나라시대의 梵鐘이 걸려져 있다.

교토관광 (平安京 : 헤이안교, 794년부터 1869년 까지 일본의 수도 이었다.)

교토역에서 관광버스타는 곳에 가서 0900출발 A코스 (Y4500~4950)를 선택하면 金閣寺(킨카쿠지), 淸水寺(키요미쓰데라), 銀閣寺(긴카쿠지)를 관광하고 1400에 쿄토역으로 돌아 와서

도보로 히가시 혼간지, 니시혼간지를 보고 버스로 니죠성을 보고 쿄토고소가 공개된 경우 관람하고 돌아오면 저녁 7시경이 된다.

긴카쿠지(로쿠온지) 金閣寺(鹿苑寺)

원래 이 자리에는 키타야마저택(北山山莊)이 있었는데 1397년부터 10년에 걸쳐 무로마찌 바쿠후의 3대 쇼군 아시카가 요시미쓰(足利義滿)가 지은 별장인 기타야마텐(北山殿)을 그가 죽은 뒤 선종(禪宗)의 절인 鹿苑寺(아시카가 요시미쓰의 법명)로 개칭하였다. 석가모니의 유골을 모신 3층의 사리전(긴카쿠)이 유명하다. 교코치(鏡湖池)를 중심으로 한 정원은 무로마치 시대의 대표적인 지센카이유식(池泉回遊式 : 사리불전 앞에 연꽃이 피는 연못이 있는 양식으로 정원 안에 극락정토를 표현하고 있으며 중세 정토종의 가르침에서 유래한다고 말해진다. 또한 연못 주위를 돌아서 거닌다고 해서 지센카이유식이라 한다.) 정원으로 특별 사적 명승으로 지정되어 있다. 금박으로 칠해져 있어 이러한 이름이 불려졌다.

금각의 구조 : 1층은 寢殿造(신텐)의 阿弥陀堂, 2층은 觀音殿, 3층은 唐樣(가라요우)로 되어 있고 중국문화의 영향을 받았다.

독특한 점은 킨까꾸의 1~3층의 건축양식이 모두 제각각이다. 호수인(법수원)이라 부르는 1층은 헤이안시대의 귀족건축양식, 쬬온도(조음동)라 부르는 2층은 무로마찌시대의 무가식(武家式)전통, 쿳쿄쬬(구경정)라 부르는 3층은 중국의 선종 사원 양식을 따르고 있다.

1400년에 세워진 킨카쿠는 1950년에 방화로 불타 버렸으며 지금 세워진 건물은 1955년에 복원 한 것이다.

킨카쿠 옆의 리쿠슈노마쯔(陸舟の 松) : 배모양의 소나무로 이 절을 세운 아시카가 요시 미쯔가 분재로 심은 이 소나무는 무려 600년이 되었다.

뒷산에 있는 다실풍 구조의 셋카데이(夕佳亭)에서 바라보는 경치도 뛰어나다.

후도도(不動堂)의 본존 이시후도묘오(石不動明王)는 고보대사의 작품이라 전해지고 있다

이 시기는 무사들(武家)의 정권이 세력을 잡고는, 이전부터 내려오던 귀족들(公家)의 문화를 흡수 융합하면서 독자적인 문화를 만들어나갔는데, 초기에는 교토 북쪽에 있는 산 근처를 중심으로 발달하여 키타야마문화(北山文化)라고 일컬어지고 있다. 그리고 이 로쿠온지는 그중심에 있는 것이다.

築山林泉(츠키야마린센) : 흙을 쌓아서 산의 형태를 만들고 연못이나 물의 흐름을 만들어 자연산수의 경치를 표현한 정원 양식.

枯山水式(가레산스이) : 무로마찌 시대에 선종의 가르침을 받아 생겨난 건축 양식으로 연못 을 조성하지 않고 흰모래와 돌을 세워 조합하는 방식으로 물이 떨어 지는 폭포를 표현하고 흰모래를 깔아 물의 흐름을 표현한 정원 양식.

池泉回遊式(지센카이유식) : 사리불전 앞에 연꽃이 피는 연못이 있는 양식으로 정원 안에 극락정토를 표현하고 있으며 중세 정토종의 가르침에서 유래한다고 말해진다. 또한 연못 주위를 돌아서 거닌다고 해서 지센카이유식이라 한다.

茶亭(차데이) : 차실과 함께 발달함. 일반주택의 정원, 석등, 손씻는 수반을 배치하고 징검돌 을 깔아 둠.

淸水寺(기요미즈데라)

칸무천황시대의 장군인사카우에노다무라마로(坂上田村麻呂, 758~811) 정이대장군이 동북쪽의 에미시(아이누족)의 땅을 평정한 후 교토로 개선하여 라쿠토(洛東)에 교토 서민들의 묘지였던 곳에 영혼을 위로하고자 하는 취지로 기요미즈사를 세웠다.

오토와산 청수사는 1,200년전 즉 나라시대말 778년에 개창했다. 798년 당(堂)이 세워져 북관음사로 칭해졌으며 807년에 가람이 건립되었다. 이때부터 사찰명을 청수사라고 부르게 되었다

778년 오토와(音羽)폭포를 찾아낸 엔친대사가 폭포위에 관음상을 모시고 후에 헤인안시대 칸무천황시대의 장군인사카우에노다무라마로(坂上田村麻呂, 758~811) 정이대장군이 동북쪽의 에미시(아이누족)의 땅을 평정한 후 교토로 개선하여 라쿠토(洛東)에 교토 서민들의 묘지였던 곳에 영혼을 위로하고자 하는 취지로 기요미즈사를 세웠다.

坂上田村麻呂(사카노우에노다무라무로)가 본존으로 십일면 천수관음상을 안치한 것이 시초라 한다. 錦雲溪(긴운쿄)에 내어단 본당에서 본 사계절은 절경을 이룬다. 절이름의 유래가 된 오토와 폭포는 예로부터 ‘황금의 물’ ‘수명을 연장시키는 물’이라하여 신성시되어 왔다.

절벽위의 10여미터의 절벽에 세워져 그 아찔함이 자랑인 본당마루는 느티나무로 만들어진 나무 기둥들을 볼 수 있는데 둥치는 각각 아름이 넘고 높이는 15m나 139개의 나무기둥에 못하나 없이 세워진 목조기술의 신기라고 밖에 불릴 수 없는 웅장함이 숨겨져 있다.

사람들이 줄서서 마시는 세줄기 폭포물은 오른쪽 순으로 총명, 장수, 사랑의 꿈이 이루어 진다는 전설이 있다.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돼 있다.

銀閣寺(慈照寺) 긴카쿠지

무로마찌 시대인 1482년 아시카가 바쿠후의 제8대 쇼군 아시카가 요시마사가 자신의 별장 히가시야마전(동산전)을 지은 것이 시작. 금각사를 의식해서 은칠을 하려고 은각사라고 붙였다는데, 주인공이 건물을 다 중수하기도 전에 죽고 돈도 없어서 은칠을 못했다고 한다.

실제 이 절의 이름은 토오잔지쇼오지(東山慈照寺)"이고 절 건물 중의 하나인 관음전(觀音殿)을 은각(銀閣)이라고 지칭하는 것이며 오래된 짙은 나무색상 그대로의 목조건물이다.

나무울타리가 있는 참배길로 들어가 중문을 빠져나가면 지센카이유식 정원이 있다. 국보인 긴카쿠(관음전) 앞에 있는 銀沙灘(긴사단), 向月臺(고게쓰다이)라는 이름의 모래더미가 인상적이다.

본당 가까이에 있는 국보 東求堂(도구도) 안에 잇는 다실 同仁齊(도진사이)는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서원 건물이다.

이 절은 금각사 보다 늦게 다른 권력자의 별장으로 무로마치시대의 후기 문화인 "히가시야마문화(東山文化)"의 발상지(發祥地)가 되었다. 현재 일본을 대표하는 문화로 일컬어지는 다도(茶道), 꽃꽂이(華道), 향나무를 태워서 그 향을 즐기는 것(香道) 등이 이 별장(나중에 절로 바뀜)에서 시작된 것이다

히가시혼간지(東本願寺, 眞宗本朝 ; 신슈혼뵤)

쿄토역에서 약간 오른쪽으로 직진하여 도보로 약 10분거리에 위치.

신란대사가 개창. 높이 27m의 고에이도몬(어영당문)은 쿄토3대문의 하나이다. 정면에는 세계최대의 목조건물 어영도가 우뚝 솟아 있다.

니시혼간지(西本願寺)

교토역에서 서쪽(왼쪽)으로 100m 정도가서 북쪽으로 직진하면 걸어서 15분정도의 위치에 있다. 정토진종 혼간지파의 본산. 정면에 신란대사의 진영이 있는 御影堂(현재 수리중), 오른쪽에 阿彌陀堂이 있다. 국보와 중요문화재가 많으며 서원(국보)의 벽, 병풍, 미닫이, 장지 등에 그린 그림과 천정화도 뛰어나다. 국보인 가라몬(唐門)은 후시미성(伏見城)에 있었던 것이다.

니조성(二條城)

지하철 니조조마에 역에서 도보 1분이며 버스도 많이 있다. 0845~1600까지 관람가능하다.

1603년 도쿠가와이에야쓰의 숙소로 지은 성으로 1626년에 완성했다. 모모야마 문화이다.

니노덴마루고텐(二の丸御殿, 국보)

1603 완성. 무가풍서원 건축양식의 대표적인 궁전건축.

이에야쓰가 교토고쇼(황실 궁전)의 수호와 쇼군(將軍)의 교토방문시 숙박지.

이에야쓰가 거처하면서 지방 다이묘(大名)들의 접견과 황실의 칙사 등을 대면하든 곳.

도오자무라이(다이묘들의 대기소), 시끼다이(다이묘들이 로오쥬(老中)와 인사하는 곳, 獻納 하는 곳), 오오히로마(쇼군이 다이묘들과 대면하는 곳), 소데쯔노마, 구로쇼인(쇼군가문의 친척과 장군을 섬긴 무관들이 대면하는 곳), 시로쇼인(장군의 거실 겸 침실) 등의 6개의 건 물이 동남쪽에서 서북쪽으로 연결되어 있다.

니노마루고텐의 내부는 후스마에(障壁畵), 난간의 조각, 금속장식 등으로 호화롭게 장식되 어 있다. 3000여점의 벽화가 유명.

수상한 자의 침입을 막기 위해 걸어 다니면 삐꺽거리도록 만들어진 복도(우구이수바리, 꾀 꼬리마루)가 독특하다.

니노마루이엔(二の丸 庭園)

옛날부터의 정원조성기법에 의거 연못의 중앙에 샘을 상징하는 돌을 두고 그 좌우에 학과 거북이 모양의 돌을 배치하는 지센카이유식 정원.

혼마루(중요문화제, 1626 완성)

쿄토고소의 옛 가쓰라노미야고텐(桂宮御殿)에서 가져온 것.

1867년 15대장군 요시노부가 통치권을 천황에게 반환함에 따라 니조성은 정부의 것이 되었다. 현재는 교토시의 것이다.

교토고소(京都御所)

지하철로 간다. 입장료 없음.

1889년 황궁이 도쿄로 이전되기까지의 황궁으로 매년 봄과 가을에 일반인에게 며칠 공개된다. 2008년에는 4월9일부터 4월 13일까지 공개되었다.

794년 칸무천황이 천도한 헤이안쿄의 다이다이리 안에 천황의 거처인 다이리(皇宮)가 있었다. 황궁에 화재가 발생할 경우 천황은 귀족의 저택을 임시 황궁으로 정했는데 이를 사토다이리라 한다. 헤이안 시대 말기에는 거듭되는 화재와 끊임없는 전란으로 인해 원래의 다이리는 사용할 수 없게 되고 사토다이리가 일상적인 황궁이 된다.

현재의 교토 고쇼는 쓰시미카도 히가시토인도노라 불리던 사토다이리 중의 하나이다. 1331년에 고곤천황이 이곳에서 즉위한 이후 메이지 시대 초기에 이르는 긴 세월 동안 이곳이 황궁으로 사용되었다. 화재로 의한 소실과 재건이 거듭되었으며 현재의 건물은 대부분 1855년에 재건된 것이다.

교토고쇼에서는 신신덴, 세이료덴과 같은 헤이안시대의 침전 건축양식에서 오가쿠몬조와 오쓰네고덴과 같은 무로마치시대의 서원 건축양식으로 변하는 건물양식의 변천을 세세하게 볼 수 있으며, 그 외에도 겐지모노가다리와 같은 왕조문학의 세계를 엿볼수 있다.

담장으로 둘러싸인 교토 고쇼의 면적은 약 11만 평방미터이다.

京都 五山送り火 (교토고산오꾸리히) 8월 16일

お盆(오봉, 양력 8월 15일)에 즈음하여 망령을 불러와 위로하여 8월 16일에 보내고 악도 침범하지 않도록 하는 의식. 700년의 전통이 있음

교토를 둘러싼 오산(다섯산)에 우에서 좌로 도리이, 大, 배, 妙法, 大 의 순서로 점화

: 산에 大자모양으로 6~7m 높이의 불경을 먹물로 기록한 나무토막을 쌓아서 불지피는 곳을 만들어 2000시에 점화.

妙法 : 2010에 점화, 南無妙法蓮華經의 妙法

(船型 ; 후나가다찌) : 2015 점화, 18명의 젊은이가 산에 배모양으로 만들어진 횟불에

점화

: 2015에 점화 53개소

문 모양(鳥居型 도리이 : 신사의 문) : 2020 점화. 100개소, 횟불대에 나무둥지를 꽂는 형식

카도마쯔(門松, 신년현관장식)

새해를 맞이하기 위해 현관 양쪽에 설치한다. 길이가 다른 대나무를 비스듬히 잘라 3개를 묶어서 하얀 자갈이 든 화분에 세운다. 그리고는 소나무가지나 상엽수가지, 벼이삭, 밀감 등을 달아서 새해 행운이 오기를 기원하는 것으로 각 가정은 물론 회사 등에서도 대부분 설치하고 있다.

 

다음은 4. 연중 풍습, 5. 성(城)

 

 

출처 : 紫軒流長
글쓴이 : 紫軒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