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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선비들의 독서소리가 낭랑하게 들릴 것만 같은 영주 소수서원을 거닐어 보다.

대한유성 2012. 9. 20. 17:22

 

 

 

 

 

 

 

 

 

 

 

 

 

 

 

 

어제 포스팅한 부석사와

 이곳 소수서원을 돌아보는 하루 여행은

종일 퍼붓는 빗속을 다녔던 기억입니다

 

정말 많은 비가 내렸던 날 돌아본

조선조 최초 사액서원으로 경관이 뛰어난

소수서원을 소개합니다.

 

 

 

 

 

 

 

 

비가 오지 않았다면...

날씨 좋은 날 찾아왔다면

이 길을 걸으며 나는 느꼈을 텐데....

 

옷깃 사이로 스며드는 솔바람,

냇물 흐르는 소리,

싱그러운 녹음, 그리고 새소리를 들으며 걸어 들어갔을 텐데....

 

이런 서원은 정말 많은 시간을 가지고

천천히 돌아보면 마음에 닿는 것이 많을 텐데....

 

비가 와서 우산 쓰고 카메라 매고

정신없이 돌아보았던 기억에

돌아와 아쉬웠습니다

 

휴가 마지막 날 일찍 올라가야 할 일이 생겨

소수서원을 돌아보고 바삐 집으로 향하였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오늘은 소수서원의 아름다운 풍경이 비에 젖어버렸던 날

담아온 사진으로 함께합니다..

 

 

 

 

 

 

 

 

 

솔 숲길을 걸어 들어가다가 마주치게 되는

옛 사찰 터임을 알리는 입구의 당간지주도 이채롭게 보였습니다

 

소수서원 당간 지주( 보물 제59호)

통일신라 때에는 숙수사라는 절이 건립되었던 곳이었답니다.

사찰은 불타 소실되고 그 자리에 소수서원이 들어선 것이라 합니다.

 

 

 

 

 

 

 

 

 

장대비가 쏟아지고....

 

 

 

 

 

 

 

소수서원 옆으로는 죽계천이 흐르고 있어 운치 있고

죽계천 주변에는 울창한 노송 숲이 어우러져 절경을 이루고 있답니다

 

 

 

 

 

 

 

죽계천 너머에는 취한루가 호젓하게 자리 잡고 있더군요

여기 취한대는

퇴계 이황 선생이 지은 이름으로 푸른 연화산의 기운과

맑은 물빛에 취하여 시를 짓고

풍류를 즐긴다는 뜻을 지녔다고 합니다.

 

 

 

 

 

 

 

 

 

 

 

이 아름다운 풍광의 죽계천에는 끔찍한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답니다

 

조선 초 수양대군이 단종을 몰아내고 왕위에 오르자

당시 유배 중이던 금성대군을 중심으로 단종 복위운동을 벌였던 곳이 바로 여기 순흥면 지역이었답니다

선비들의 반란 계획을 밀고했던 하인 한 명으로 하여금 수천 명이 죽임을 당했는데

그 시체는 소수서원 앞 죽계천에 수장됐고

그 피가 죽계천을 따라 15리가량 흘렀다고 전해집니다

그때의 상황을 증언이라도 하듯이

죽계천 아래에는 '피가 끝나는 곳.이라는 의미의 '피끝마을'이라는 지명이 남아 있답니다.

 

 

 

 

 

 

 

 

 

비가 많이 내려 물이 무척 불어서 글자가 가려 보였어요

 

백운동(白雲洞) 이란 글자와 경(敬)자가 새겨져 있는데요

백운동 글자는 퇴계 이황 선생이 새겼으며,

경자는 주세붕선생이 새긴 글씨로

단종복위 실패로 금성대군을 비롯한

수 많은 사람들이 참변을 당한 원혼들을 달래고자 새긴 글씨라고 하더군요

 

여기에 얽힌 전설이 전해 내려오고 있답니다

 

주세붕이 숙수사를 헐어내고 서원을 건립하던 당시

밤만 되면 혼령들이 울었답니다

주세붕이 희생된 넋을 기리는 위혼제를 올리고

바위에 새긴 경자에 붉은 칠을 한 뒤에는

혼령의 울음이 그쳤다고 합니다

 

경(敬)은 주자 철학의 근본으로 공경의 의미가 담겨 있어서

원귀들의 한이 위로받게 되었다고 합니다.

 

 

 

 

 

 

 

 

소수서원 은행나무

수령이 약 500년 된 은행나무입니다

바로 앞쪽에도 수령이 비슷한 은행나무가 서 있더군요..

가을날 노란 단풍이 들 때 참 아름다울 것 같았습니다.

 

 

 

 

 

 

 

 

 

 

 

 

 

 

 

 

 

아픈 고목이 보이더군요

비를 맞고 있는 모습이 애처로워 보이고..

 

아래 사진처럼 나무껍질엔 버섯 꽃이 피었더군요..

 

 

 

 

 

 

 

 

 

 

 

 

 

경렴정 정자는 시연을 베풀고 호연지기를 가꾸던 곳이었답니다.

 

 

 

 

 

 

 

 

정자 내부를 바라보니 시판이 많이 걸려 있더군요.

주세붕 선생과 퇴계 선생 등 당대 여러 묵객의 자연을 노래한

시라고 합니다.

 

 

 

 

 

 

친구와 그의 짝궁 뒷모습

 

 

여행지에서 신기한 일이 있었습니다.

우연히 친구를 만나게 되어서 얼마나 놀라고 반갑던지 ㅎㅎ

수많은 여행지를 다니면서

아직 누구를 만나지 않았었는데

같은 여행지에서 만나게 된다는 것이 무척 신기하더군요..

그것도 비를 맞고 돌아보는 중에 ...

 

서로 발견하고서 ... 어~~누구야..눈만 휘둥그레지던 ㅎㅎ

 

반갑다는 인사를 나누고

소수서원을 돌아보는데

비는 어찌 그리 내리는지...

 

우산을 쓰고 사진 담기에 여념이 없어

서로 안부만 묻고 많은 이야기는 서로 못 하고

헤어져 왔었는데...

사진을 정리하다 보니 기억이 새롭네요...

 

참 반가웠다는....

 

 

 

 

 

 

 

 

 

길게 둘러진 돌담도 비에 젖고...

풍경이 참 아름다웠는데

비가 와서 제대로 담아지지 않았습니다.

 

 

 

 

 

 

 

 

소수서원으로 들어서는 입구 모습...

여기서 소수서원을 알아보고 돌아보겠습니다.

 

 

 

소수서원은

 

사학의 시작

소수서원은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이다. 최초의 주자학자로 알려진

 문성공 안향 선생이 유배 시절 머물렀던 자리에 세워진 서원은

 마을의 이름을 딴 백운동 서원으로 불리었다가,

퇴계 이황 선생이 명종에게 현판을 하사받아 지금의 소수서원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고려 말 원나라에 사신으로 건너간 안향이 우리 땅에 처음으로 알린 주자학은

 국가 경영의 원리로 새롭게 해석되어 훗날 조선 건국의 기본사상이 되었다.

조선 중기 풍기군수로 부임한 주세붕은 중국의 백록동 서원을 흠모하여

서원을 세우고 안향 선생을 배향하였다.

서원은 기존의 지방 관립 교육기관인 향교를 뛰어넘는

높은 수준의 학문을 전수하는 지방사립대학이었다.

관직에서 물러난 유학자들이 대개 자신의 고향으로 낙향하여 건립한 서원은

후학을 교육하고 사당을 통하여 선학을 배향하는 지방의 사상 중심지로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정책이 있기까지 그 영향력은 실로 막강한 것이었다.

처음 만들어진 서원이라 소수서원은 그 형식과 건물배치가 자유롭다.

 앞으로 교육시설을 두고 뒤편으로 사당을 세우는 전학후묘의 배치는

 이후 만들어진 서원건립의 형식이었고,

소수서원은 강학 장소인 명륜당을 중심으로 직방재, 학구재, 지락재 등이

자유롭게 자연경관에 따라 어우러진다.

 그 규모 또한 큼직한 모습이 당시의 위세를 느끼게 하며 하천을 따라 취한대 등

아름다운 정자가 자리하고 있다.

한적한 서원 내부를 둘러보고

 안향 선생과 설립자인 주세붕의 영정이 보관되어 있는

전시관도 둘러볼 수 있는 곳이다.

-출처 네이버지식백과-

 

 

 

 

 

 

 

백운동 강학당(보물 제1403호)

유생들이 강의를 듣던 곳이랍니다

 

사찰에서 보던 단청이 여기에도 있었습니다

궁금했었는데

검색을 해보니... 서원과 사찰의 단청 차이가 있다더군요

사찰에는 연꽃무늬를 사용하고

서원은 연꽃무늬를 사용하지 않은 단청이라고 하더군요..

 

 

 

 

 

 

 

 

 

 

 

아름다운 담장 모습 위로 내리는 비...

우산 쓰고 사진을 담아내다 보니

 사진이 흔들려 보이고 ㅠㅠ

 

 

 

 

 

 

 

 

 

문성공묘 역

안향선생과 안보, 주세봉선생등 세 분의 위패를 봉안한 곳입니다.

 

 

 

 

 

 

 

 

비가 계속 내리고

주변에 예쁜 꽃도 많은 비가 와서 그런지

힘없어 보이고...

적당히 와야 생기가 돌고 어여쁠 텐데....

 

 

 

 

 

 

 

 

담 밑에 상사화는 많은 비로 고개를 숙이고.....

 

 

 

 

 

 

 

 

열린 창문 너머로 보이는 풍경을 담으면서...

아 그냥 내리는 비를 바라보고

여기에 앉아 있으면 좋겠다...생각들던 그 자리...

 

 

 

 

 

 

 

 

 

 

소수서원을 돌아보다 보니

오밀조밀 건물이 무척 많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건물마다 이름이 다 걸려있어서

사용처를 돌아와서 검색해보고 알게 되었네요...

 

 

 

 

 

 

 

학구제는 유생들의 기숙사 역할을 하였던 곳이더군요

 

 

 

 

 

 

 

 

 

장서각

 

 

 

 

 

 

 

 

사료관

제향과 강학하는 모습을 재현하여 보여주는 전시관입니다.

 

 

 

 

 

 

 

 

 

정말 많은 비가 내리던 날인데도

여행객은 많더군요..

물론 늦은 휴가로 저도 찾아본 곳이지만

생각보다 많은 분도 비를 뚫고 여행 중이었다는 사실...

늦여름을 보내는 여행.....

 

 

 

 

 

 

 

비가 많이 내려

마당에 비가 흐르는 길들이 나 있고...

 

문턱이 없는 작은 문을 통해  건물과 건물 사이를 오갔을 것이란 생각을 해보고...

 

 

 

 

 

 

 

 

 

일신재는 스승의 집무실이랍니다.

일신재는 교무실에 해당하는 곳이고

직방재는 교장실에 해당하는 곳이랍니다.

 

건물 앞 마루 끝에 나무로 만든 난간이 무척 예뻐 보이고....

 

 

 

 

 

 

내리는 비와

오래된 건물의 나무색과

예쁜 건물의 구조물이 어우러져

아름답다는 생각이 더 들었습니다.

 

 

 

 

 

 

 

 

열린 창호문 사이로 부는 바람결...

늦여름 사이로 다가온..

가을바람이 살갗을 스치고 지나감을 느끼게 되던...

 

 

 

 

 

 

 

 

 

전사청인데요..

이곳은 제사용 그릇 등을 보관하고

춘추제향 때마다 집사들이 제물을 마련하는 곳이랍니다.

일종의 부엌 역할을 하는 곳이더군요.

 

 

 

 

 

 

 

 

영정각

안향선생을 비롯한 다섯 분의 초상화를 봉안한 전각입니다

[안향, 주세붕, 이원익, 이덕형,허목선생]

 

 

 

 

 

 

 

 

 

영정각 앞에 있는 '일영대'

해시계라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맑은 날 윗부분 돌에 막대기의 그림자가

아랫돌에 드리워지는 것을 보고 시간을 알았다고 합니다

 

 

 

 

 

 

 

 

영정각 안 모습입니다

초상화가 모셔져 있더군요..

 

 

 

 

 

 

 

 

지락재는 공부하는 학생들의 처소였답니다..

일종의 기숙사인 셈이죠...

 

소수서원은 처음에 입학정원이 10명이었으나 사액을 받은 후

30명으로 늘었답니다

입학자격은 초시에 합격했거나 학문에 정진하는 유생들이었다고 합니다

또 학문에 정진하지 않고 한눈을 팔거나 미풍양속을 어기면 퇴원 됐다고 합니다

그리고,

경내에는 여자, 술, 폭력이 없었답니다..

 

그래서 공부만 열심히 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담장과 어우러진 나무들....

가을 단풍이 들면 참 예쁘겠다 싶었습니다...

 

 

 

 

 

 

 

굳게 닫힌 창호문을 바라보니

저 안에 공부하는 학생들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고향집같은 느낌도 들고....

 옛것들이 아름답고 마음이 가는 풍경들이 많았습니다.

 

 

 

 

 

 

 

 

 

 

소수서원을 돌아보면서 느끼는 기분은

건물이 많은 사이를 걷다 보니

어디선가 선비들의 독서소리가 낭랑하게 들릴 것만 같은 느낌이랄까?

이 가을에 찾아가 거닐어 보면 참 좋겠다 싶네요..

 

 

바쁘게 돌아보게 되어

자세하게 다 보지 못하고 온 것이 아쉬웠지만

비가 내리지 않았다면

훨씬 멋진 풍경이 아니었을까 싶었습니다.

 

 

 

 

 

 

 

잠시 머물러 돌아본 소수서원

바쁘게 돌아가야 했던 일이 아니었다면

더 천천히 머물렀을 텐데...

소수 서원에서 만난 친구와 아쉬운 인사를 하고

소수서원을 나서는 길에 담아본 

담이 둘러쳐진 소수서원을 뒤로하고

아쉬운 발길을 돌려야 했습니다.

 

 

 

 

 

 

 

 

 

소수서원을 돌아 나오면서 다시 취한루를 담아보고..

 

내가 찾았던 날은 비가 많이 와서 취한루로 건너갈 수가 없었습니다

비가 오지 않은 날은 징검다리를 건너서 취한루에 갈 수 있습니다.

 

또 소수서원과 선비 촌이 나란히 있고

그 근처에 금성대군 신단이 있어서

한꺼번에 둘러볼 수 있답니다.

 

 

 

 

 

 

계속 비는 내리고...

소나무 숲에 내리는 빗소리를 들으며 소수서원을 나섰습니다..

 

하루 종일 내리던 빗속으로 돌아본 여행도

지금 뒤돌아 생각해보면

여행이 주는 또 다른 경험이었기에 좋은 추억으로 남을 것 같습니다.

 

 

 

 

 

 

 

 

 

 

 

출처 : 아름다운 詩사랑..그리고 여행...
글쓴이 : 초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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